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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11화 (11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11화>

* * *

서울역의 노숙자 권경재는 날씨가 너무 좋아 입구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보통은 이러고 5분만 있어도 미관을 해친다며 경비원들이 제재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조용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밤 10시 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재수가 좋은 날인 거 같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마지막 한 방울 남은 소주병의 소주까지 탈탈 털어 먹은 권경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따, 서울역에서 게이트 한 번 더 안 열리나잉.”

같은 노숙자였던 김인창은 각성을 해서 엄청난 부자가 됐는데.

자신은 운도 지지리 없어서 대부분의 노숙자가 끌려갈 때 포함되지도 못했었다.

“에혀.”

그래도 김인창이 좋은 양반이다.

성공하면 노숙자 시절을 외면할 법도 한데, 아직도 종종 찾아와서 밥도 사 주고 술도 사 준다.

‘근디 게이트 이후에 꼭 뭐가 있었던 거 같은디 말이여.’

권경재가 생각날 듯 말 듯한 뭔가를 떠올리다가 포기했다.

사실 뭐 대수로운 일이 있었을 거 같지도 않다.

그냥 나이가 들어 가며 생기는 건망증이겠지.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에겐 아멜라 메건의 정신 조작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선선한 초여름의 밤을 만끽하던 권경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응?”

뭔가 서울역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갑자기 소름이 쫙 올라오고, 누군가 주변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뭐, 뭐시당가! 누구여!”

권경재가 주변을 휙휙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게 더 소름이 끼쳤다.

겁에 질린 권경재가 소주병을 내팽개치고는 후다닥 서울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누군가 어둠 속에서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진유성이었다.

“초저녁에는 위험하겠네.”

진유성은 논산의 보스 레이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는 서울역 게이트로 이동했다.

그러곤 공간을 찢고 나왔다.

록펠러를 죽인 이후 알게 된 편리한 방법이었다.

한데, 주변에 있던 노숙자가 뭔가를 느꼈나 보다.

물론 진유성의 은신술을 감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은신술은 상림도 감지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노숙자가 느낀 것은 논산의 게이트와 서울역 게이트가 이어지면서 생기는 기운이었다.

그리고 이건 기운의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종종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한데 저 노숙자, 얼굴이 좀 익숙한 것 같다.

기억을 더듬던 진유성이 노숙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따, 사투리가 찰지고만. 고향이 어디여?”

처음, 서울역에 도착해 멀더의 술법을 썼던 노숙자였다.

이제는 저 남자가 썼던 것이 사투리라는 걸 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워낙 많이 다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재밌다.

한국에 온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세계에 굉장히 익숙해진 것이.

하지만 마냥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중원의 생각도 난다.

이제는 죽어서 흙이 된 신주청, 주혜미, 멀더 같은 인연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또한 대명제국이 어떻게 됐을지도 궁금하고, 백성들이 평안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진유성은 충동적으로 게이트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행위를 행한 것 자체는 충동적이었지만, 자신이 언젠간 이런 선택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 고독하고 외로웠으니까.

그래서 떠날 준비를 다 갖췄다.

백여 년에 걸쳐 대명제국의 법을 제정하고, 관리와 무림인들이 백성을 수탈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천마신교주도 내정해 두었고, 그가 대명제국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있었다.

그래도 약간은 걱정이 된다.

“흠.”

진유성은 중원의 일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중원의 요리가 먹고 싶어졌다.

정확히는 황실 요리가 먹고 싶다.

‘상하이라도 갈까?’

하지만 오늘은 월요일이다.

상하이에 다녀오려면 최소한 금요일은 돼야 한다.

그 순간, 진유성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직접 해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진유성은 중원을 일통하기 전, 먹을 것을 만들어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요리가 아니라 조리였다.

그냥 산짐승을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버섯과 나물을 이것저것 넣고 끓이기만 했을 뿐이니까.

정도맹에 쫓겨 다닐 때는 혀끝을 즐겁게 만들 여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원을 일통한 이후에도, 진유성은 요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가 수라간에 들어가는 그날이, 곧 황실 요리사들의 목이 날아가는 날이 될 테니까.

명목도 단순하다.

얼마나 요리를 못했으면 천신께서 불만을 가졌냐는 이유로.

그런 만큼, 진유성은 오랜 시간 동안 명 황실의 요리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알고 있었다.

처음 해 보는 요리라 해도,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

“재밌겠군.”

재미있을 것 같다.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진유성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서울역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 * *

“유성아, 이게 뭐니?”

“요리 재료들이에요.”

“요리?”

“네. 해 보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

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진유성이 이것저것을 꺼내 놓자 유혜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해물들에서 비린내가 확 났기 때문이었다.

유혜연이 인상을 찌푸리자, 진유성이 아차 했다.

본래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면 입덧이 끝나야 하는데, 유혜연은 여전히 입덧이 심했다.

걱정이 된 상림이 유혜연의 손을 잡고 병원에 다녀왔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진유성이 유혜연의 몸을 기운으로 훑어봤는데, 역시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유혜연의 뱃속에 있는 하마는 굉장히 건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유성이 한 번씩 진기를 이용해 하마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유혜연이 입덧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요리를 할 건데? 외숙모도 줄 거지?”

유혜연은 역함을 느끼면서도 진유성이 요리를 하려는 걸 만류하지 않았다.

유혜연은 원래 진유성이 뭘 하든 응원을 해 주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입덧이 끝나면 해 드릴게요.”

진유성은 그렇게 사 온 재료를 주섬주섬 냉장실과 냉동실에 나눠 넣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곤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상소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거의 끝날 때까지 연결이 되지 않아서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소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왜.

“어디냐.”

-친구들이랑 논다니까. 왜? 너도 같이 놀게?

“그건 됐고,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다.”

-뭔데?

“수험생을 선택한 이들은 자율 주도 과목을 들을 수 없는 것이냐? 공부를 해야 해서?”

대정고에는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신청해 들을 수 있는 자율 주도 과목이 있었다.

심지어 수업이 개설되지 않았다면 직접 개설을 할 수도 있다.

평범한 인문계를 다녀 본 적이 없는 진유성은 자율 주도 과목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

학생이 원하는 강사에게 원하는 수업을 들어서 교육청 지침의 정규 수업 시간을 채울 수 있다?

이건 불법이었다.

다만 대정고에게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는 파워 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모든 지침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시간표의 1/4만 자율 주도 과목이었다.

-아니? 야, 너 학교에서 선생님 말고 다른 강사한테 수업 듣는 애들 알지?

“알고 있다.”

-그게 자율 주도 과목으로 하는 거잖아. 수능 족집게 강사들 불러 가지고.

“아, 그런 것이냐? 그럼 나도 들을 수 있겠구나.”

-그치. 그냥 내일 담임 선생님한테 말하면 해 줄걸?

“그렇군.”

진유성이 흡족한 표정을 짓는데, 상소윤이 물었다.

-왜? 뭔 수업 들으려고?

“요리.”

-요리? 네가 요리를 한다고?

수화기 너머의 상소윤이 웃음을 터트리자, 오히려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뭐야, 너 방금 웃었냐?

“웃었다.”

-왜!

“네가 요리를 얼마나 못하는지 상, 외삼촌에게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야!

엄마를 닮아 요리하는 건 좋아했지만, 엄마의 솜씨까진 닮지 못한 상소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말했어?

“그래. 재료 하나하나가 살아서 뚜렷한 개성을 선보인다고 하더구나.”

재료가 하나도 섞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와, 씨!

상소윤이 갑자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마 상림에게 전화를 해서 한소리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상관없었다.

이건 정말 상림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물론 상림은 절대 상소윤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내가 윗사람인데 상림의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잖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천마신교의 스물 하고도 몇 번째 교리에 보면 천신에게는 그 무엇도 요구할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진유성은 상림을 아끼는 마음에, 그로 하여금 차마 교리를 어기게 할 수는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마친 진유성은 내일 당장 학교에 가서 요리 수업을 신청할 생각을 했다.

요리는 꽤 인기 있는 클래스인 걸로 알고 있었다.

진유성은 오감이 말도 안 되게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건물에서 하는 요리의 소리나 냄새도 인지할 수 있었다.

요리 수업에는 최소 20명 이상은 늘 참석하는 것 같았다.

전 학년의 학생 수가 300명이 채 못 되는 대정고에서는 그야말로 인기 수업이었다.

아마 축구나 농구 다음이지 않을까?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컴퓨터를 켰다.

그러곤 습관처럼 롤을 띄우다가 슬픈 표정으로 껐다.

이래서 습관은 참 무섭다.

입신의 경지에 오른 진유성조차도 아차 하는 사이에 행동할 때가 있다.

아니면 아직 지존천마를 보내 줄 마음의 정리가 덜 됐거나.

진유성은 슬픔을 떨쳐 내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가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 그에게는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취미라고 말하기엔 좀 거창할 수도 있었는데, 옛날 만화를 보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영화나 드라마는 좋아했지만 애니메이션은 싫어했다.

심지어 만화책은 재밌게 보는데, 애니메이션은 도저히 못 보겠다.

사람이 아닌 캐릭터들이 나와서 사람처럼 구는 거에 감정 이입이 안됐다.

상소윤은 이러한 진유성을 보고 ‘신이 너에게 내린 유일한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까, 물어보지도 마란다.

애니메이션을 따라 하고 있는 걸 상상하면 끔찍하니까.

아무튼 진유성은 애니메이션을 싫어했다.

한데, 며칠 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옛날 만화는 꽤 재미있었다.

그 뒤로는 생각 날 때마다 한 번씩 옛날 만화를 보고 있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은하철도999 같은 것들은 정말이지 재밌었다.

그 순간, 진유성의 눈에 꽤 흥미가 돋는 옛날 만화의 제목이 들어왔다.

“으음?”

호기심이 생긴 진유성이 영상을 클릭했다.

잠시 뒤, 진유성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머, 멋지다.”

* * *

대정고의 요리 클래스에 새로운 학생 3명이 들어왔다.

뉴페이스의 정체는 진유성, 상소윤, 그리고 지종수였다.

진유성은 애초에 요리 수업을 들을 생각이었고, 상소윤은 어제 당했던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수업을 신청했다.

상소윤은 진유성이 말도 안 되는 요리를 만드는 순간 목 놓아 비웃을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리고 지종수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진유성을 따라오는 척 상소윤을 따라왔으니까.

3명의 학생이 추가됐다지만 특별히 소개한다거나 인사하는 시간은 없었다.

대정고의 자율 주도 과목은 애초에 학생들의 이동이 빈번했다.

친구 따라서 들어 봤다가 재미가 없으면 다른 걸 듣는 건 예사였다.

다만 진유성과 상소윤이 대정고의 유명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기색은 있었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오늘 만들 요리에 대한 전체적인 레시피와 맛을 좌우하는 포인트에 대한 이론을 공부했다.

10분 정도의 이론 수업이 끝났을 때, 강사가 말했다.

“자, 그럼 실전에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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