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8화>
Quest 21. 대접하는 천마님
독도의 S급 게이트 사태가 발발한 이후, 한국의 각성 사회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는 외부적이기도 했고, 내부적이기도 했다.
외부적인 변화로서 가장 큰 것은 한국의 위상 변화였다.
그동안 한국에 대한 SG의 평가는 Empire without Emperor.
황제가 없는 제국.
한국은 세계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평균 각성자의 질이 우수했다.
평균 각성 등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타국의 동일 등급 각성자와 실력을 비교해도 우위에 있었다.
한국의 B급 각성자와 북미의 B급 각성자가 싸우면 한국 각성자가 이길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국에는 우수한 병사를 지휘할 황제가 없었다.
문수혁과 차정명이 SS급의 고지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왕조차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이 독도의 게이트에 하이랭커들을 대거 투입할 때, SG는 동아시아의 각성 국력의 판도가 바뀔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한국이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세계가 독도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야욕을 꺾기 전까지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간이 흘러 세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
마침내 S급 게이트 관련 문서가 SG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공개된 문서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성자의 도움으로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정체불명의 각성자일까?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완벽한 사회 보장 시스템과 조세 시스템, 현역-예비군의 징집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였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한국처럼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나라는 없었다.
좋은 의미로도, 또한 나쁜 의미로도 말이다.
그래서 SG와 여타 국가들은 한국을 의심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이라고 보고된 각성자가 사실은 한국의 비밀 무기일 수 있다고.
정말 그렇다면 한국은 Emperor Dominated Empire(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인 셈이었다.
그들이 이런 추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정체불명의 각성자는 최소 SSS급이었다.
그리고 SSS급 각성자는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무력 집단도 SSS급 각성자를 통제할 수 없으며,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SSS급 각성자를 반길 테니까.
돈, 권력, 명예.
자신의 능력을 공개하는 순간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대체 어떤 멍청한 인간이 그것을 포기하겠는가?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이미 원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정체를 밝히지 않을 뿐.
사실 중국의 SSS급 각성자인 월성도 처음에는 중국 외부에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에서 CSG와 SG가 충돌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게 최초였다.
SG는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정체불명의 각성자에게 Unknown Emperor란 비공식 코드 네임을 붙였다.
그러고는 한국의 각성 국력 평가를 전면 수정했다.
미국, 중국, 멕시코, 러시아, 인도, 브라질.
그다음이 한국.
인구가 1억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가 각성 국력 7위에 랭크된 것이었다.
전 세계의 대중들은 한국이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격상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못지않게 Unknown Emperor의 영향력도 컸다.
이처럼 한국의 각성 사회는 외부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인 변화도 이에 못지않았다.
한국 SG는 내부적으로 엄청난 결속력을 갖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팀 우산도가 있었다.
대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각오한 죽음을 극복하고 나면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
정답은 유대감과 자신감이었다.
모든 각성자가 자신만만하고 외향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건 아니었다.
각성자들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비율은 10퍼센트가 넘고, 개중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도 많다.
무기력증을 느끼고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비단 낮은 등급의 각성자들만 이런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이랭커들 중에도 존재했다.
사실 팀 우산도에 합류한 이들 중에는 대의명분보다는 자살 충동 때문에 합류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모든 것을 극복했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느끼게 되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떨쳐 버리고, 자신감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얻은 것이었다.
그렇게 팀 우산도가 한국의 각성 사회의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우산도란 주류의 흐름 밑으로 수많은 각성자들이 들어왔다.
우산도 멤버들과 친분이 있는 이들도 있고, 우산도에 합류하지 못했던 걸 미안해 하는 이들도 있고, 그저 주류에 편승하려던 이들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런 이들이 막대한 힘을 몰아주었다는 것이었다.
본래 이러한 상황은 SG가 굉장히 경계하는 상황이었다.
각성자 집단의 힘이 너무나 강해지면 무정부 상태로 변질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SSS급 각성자 엔리케 카를로가 창단한 멕시코의 독립 각성 단체 메히까뜰(Mexicatl)처럼.
하지만 우산도와 메히까뜰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한지후 소장이었다.
한지후 소장은 각성자가 아님에도 팀 우산도 멤버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리더인 문수혁, 차정명과 막역한 사이였다.
덕분에 국내외 정보 단체들이 한지후 소장의 이름 옆에 파워맨이란 단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팀 우산도의 행동에는 크든 작든 한지후 소장의 지혜가 담겨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지후 소장을 중심으로 팀 우산도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이러한 변화의 시발점이 독도 게이트를 물고 늘어졌던 일본이라는 것이었다.
국제 정세 전문가들은 일본의 과욕이 동아시아의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를지언정 팀 우산도의 일원들은 알고 있었다.
진짜 이무기의 입에 여의주를 물려 준 이가 누군지.
바로, 진유성이란 남자였다.
* * *
“어때? 장난 아니지?”
A급 스킬술사 이종학의 말에 팀 우산도의 동료가 콧방귀를 꼈다.
“아니, 형님. 위력이 강하면 뭐합니까? 등 뒤가 훤히 비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네?”
“등 뒤를 동료가 지켜 준다는 가정하에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면 되는 거 아니야?”
“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종학답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노련한 스킬술사인 이종학은 본래 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비를 우선하는 성격이었다.
그 탓에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제대로 화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순간, 동료는 이종학의 변화가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아차렸다.
독도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야! 너! 못생긴 놈!”
“너 스킬 쓰고 자꾸 뒷걸음질 치지 마라. 이 자식, 이상한 버릇이 있네.”
“누가 몸이 간대? 마음이 뒤로 가잖아, 마음이. 너 스킬 쓰다가 뒤통수라도 맞은 적 있냐?”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나타났던 그들의 구세주, 진유성.
그가 해 줬던 충고였다.
사실 트라우마라는 게 한두 마디의 조언으로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종학의 변화에는 그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솔직히 이종학은 아직도 다른 각성자들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다.
믿으려고 해도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됐다.
하지만 함께 사선을 넘은 팀 우산도의 멤버들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한 번 더 해 볼까?”
이종학의 말에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스킬술사들은 힘을 상생시키지 못했다.
화염 계열 스킬과 빙결 계열 스킬을 동시에 사용하면 화염과 빙결이 동시에 약해지곤 했다.
하지만 숙련도가 극한에 이르면 이와 반대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화염 계열 스킬이 빙결 계열 스킬에서 열을 가져갔고, 화염 스킬은 더욱 뜨거워지고, 빙결 스킬은 더욱 차가워졌다.
본래 이종학은 스킬을 상생시킬 줄 몰랐다.
개념은 감을 잡고 있었지만 실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왠지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종학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장기는 4가지 원소의 힘을 가진 스킬을 완벽한 사이클에 맞춰 순차적으로 꽂아 넣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종학의 공격은 순차적이지 않았다.
상생하며 일순간 폭사되었다.
쿠쿠쿠쿠쿵!
조금 전보다 훨씬 묵직한 소리가 연습실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스킬 샌드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정석과 우레탄을 섞은 뒤 가공해서 만든 SG 연구소의 발명품인 스킬 샌드백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S급의 공격력이 필요했다.
드드드드드!
샌드백이 끝없이 진동했다.
이종학은 뭔가에 홀린 듯이 모든 스킬을 쏟아 냈다.
마침내 모든 마력이 모두 떨어졌을 때, 이종학이 갑자기 검지를 내밀었다.
곧게 내민 손가락으로 사용된 마력이 페이백되기 시작했다.
페이백.
이건 시스템에 의거한 스킬이 아니었다.
각성자의 마력 점유율이 마력의 휘발성을 압도하는 순간부터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건 S급 스킬술사들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었다.
주변에서 이종학을 구경하던 동료들이 깜짝 놀랐다.
본인은 무아지경에 빠져 있느라 아직 인식을 못한 모양인데, 이종학은 이 순간 S급의 경지에 올라섰다.
만년 A급 스킬술사였던 그가 두 단계를 단번에 건너뛴 것이었다.
“어…… 어?!”
이종학이 정신을 차릴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동료들의 축하였다.
“씨바, 형! 뭐야!”
“미쳤어?!”
“S급이다! 야생의 S급이 나타났다!”
동료들의 축하 속에서 이종학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이종학의 손을 잡아 주는 순간 실감이 났다.
인외의 벽을 넘어서 SS급에 도착한 문수혁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진짜? 진짜로 내가?”
“옆에서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비로소 이종학이 소리를 질렀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부터 A급이었지만, 지난 10년간 등급이 정체되어 있던 그가 훌훌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종학이 기뻐하는 사이 문수혁은 차정명에게 다가갔다.
“벌써 일곱 명째네.”
“그보다는 S급이 두 명이라는 게 놀랍죠.”
독도 게이트가 클리어되고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일곱 명이 본래 등급을 뛰어넘었다.
진유성이 해 준 조언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얻은 결과물이었다.
아직 SG에 정식으로 보고한 건 아니었다.
A등급 미만은 특별한 보고 없이 기준에 부합하면 승급과 승단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이상부터는 절차가 필요했다.
S등급 이상부터는 SG 본부로 가야 하고.
아직 팀 우산도가 그들의 눈부신 성장을 보고하지 않은 건 거대한 충격을 위해서였다.
모든 멤버들의 성장세가 한계에 접어들었을 때쯤 한꺼번에 SG에 보고한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진유성이라는 존재였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기지 않는군.’
어떻게 말 몇 마디로 각성자들의 성장을 자극할 수 있을까?
만약 진유성이 검을 쓰는 이들을 한정해서 조언을 해 줬다면 이토록 놀랍진 않을 것이었다.
본인이 검을 쓰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창, 궁, 도, 스킬, 뭐 하나 가리지 않았다.
문수혁은 간절히 진유성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처 전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것.
또 하나는…….
“나 드벡이랑 친해. 아니 막 친한 건 아니고, 아무튼 내가 써도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걱정 마라.”
아놀드 벡의 세븐 가디언즈 중 하나를 돌려받기 위해서.
나머지 여섯 개는 돌려줬지만, 진유성이 빌려 갔던 것이 세븐 가디언즈에서 가장 귀한 아이템이었다.
“설마 먹고 짼 건 아니겠지?”
“뭐라고요, 형님?”
“어, 아니야.”
문수혁이 한숨을 푹 내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아놀드 벡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독촉 전화를 한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인내심이 떨어진 건가?
문수혁이 당황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곤 더듬더듬 영어로 말했다.
“Oh, Sorry. First Guardian is not come back. Really sorry.”
그때 수화기 너머로 구글 번역기를 음성 재생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국에 갈 것이다. 다음 달에.
“네? 아니. Why? Why you come?”
-난 그를 찾을 거야.
“Who?”
이어진 말은 번역기 따위가 아니었다.
아놀드 백의 육성이었다.
-Unknown Emper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