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6화>
채팅방이 난리가 난 사이, 샤이나크는 기분이 나빴다.
큰돈을 던지며 일대일을 하자는 게 꼭 그를 놀리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는 프로였고, 프로에게는 팬서비스의 의무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껏 개인 방송에 찾아와 악성 코멘트를 하는 수많은 악플러들을 보아 왔지 않은가?
샤이나크는 표정관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시하기에 500만 원은 너무나 큰돈이었다.
“이길 때마다 주실 필요는 없고, 삼판이선승으로 하실까요? 아이디 알려 주세요.”
돈이 얼마나 많은지 후원 단위가 백만 원이었다.
그때 떠오른 메시지에 샤이나크가 눈을 크게 떴다.
지존천마.
바로 어제 게임을 했었는데, 샤이나크에게 충격을 준 장본인이었다.
샤이나크가 깜짝 놀라서 친구 추가를 걸었고, 지존천마가 수락했다.
진짜 장본인이었다.
지존천마는 아직 대중들에게 유명하진 않았지만, 유투브를 통해서 서서히 다뤄지고 있었다.
워낙 컨셉이 확실한 데다가 승률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서 슬슬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했다.
샤이나크의 개인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들 중에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존천마 승률 80퍼센트 넘겨서 챌린저 단 사람인데. 존나 잘함.
└승률 80퍼센트? 핵 아님?
└핵 아니래. 구단에서도 영입하려고 게임사에 확인했다는 오피셜 있었음.
└와, 뭐야. 그냥 돈 많은 어그로꾼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 봤는데 개쩌네. 현재 한국서버 88위임.
└와, 재밌겠다.
샤이나크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판삼선승으로 갈게요.”
사실 샤이나크도 어제 게임을 해 보고는 놀랐었다.
경험이 부족한 점을 공략해서 이기긴 했지만, 지존천마가 가지고 있는 포텐셜은 장난이 아니었다.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그를 뛰어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일대일이 시작되었다.
└와.
└와, 미친.
└우와.
└와.
만 명 이상이 들어온 샤이나크의 개인 방송은 본래 채팅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두들 두 플레이어의 화려한 플레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채팅들도 그저 감탄사일 뿐이었다.
롤에서 일대일은 1킬을 먼저 내는 쪽의 승리였다.
일대일 상황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들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적을 죽이기 위해서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됐다.
고수들 간의 싸움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한데, 지존천마와 샤이나크의 싸움에서는 좀처럼 킬이 나지 않았다.
수많은 스킬이 교차하고,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킬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실력은 비등비등했다.
승부를 가른 것은 아주 사소한 차이였다.
[Zi존천ㅁr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샤이나크님이 사망하였습니다.]
동시에 죽었지만, 지존천마의 사망 메시지가 먼저 떴다.
즉, 샤이나크가 이긴 것이었다.
‘와, 씨. 간신히 이겼네.’
샤이나크는 아군 미니언이 3마리가 더 많아지는 순간, 싸움을 걸었다.
미니언 3마리는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하지만, 두 사람은 워낙 치열하게 싸우느라 HP가 낮아져 있었다.
미니언 2마리가 넣은 32의 데미지가 승부를 갈랐다.
샤이나크가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지존천마가 물었다.
[일부러 미니언을 두고 싸운 건가?]
[네, 맞아요.]
[앞선 스킬이 빗나간 건, 빗나간 게 아니라 미니언을 먼저 지우려했던 거고?]
[네. 어차피 피할 거 같아서. 대신 아슬아슬 던져서 이동기를 뺀 거죠.]
[오늘 본 교주가 여러 번 놀라는구나. 제법이다.]
지존천마의 말투에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자 지존천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이 그의 컨셉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지존천마와 샤이나크는 그 이후로 네 판을 더 싸웠다.
오판 삼승이란 규칙은 없어지고 다섯 판을 연이어 싸운 것이었는데, 결과는 3승 2패.
샤이나크의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정말 재밌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잘하시는 것 같아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지존천마와의 일대일은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계속 이것만 할 수는 없었다.
시청자들 중에 벌써부터 지겨워하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샤이나크가 적당히 정리하려고 하는데, 후원 메시지가 다시 올라왔다.
<다섯 판만 더하자>
“아…… 백만 원 후원 정말 감사한데 이제는, 어?!”
└헐ㅋㅋㅋ 천만 원ㅋㅋㅋ
└ㄹㅇ천만 원임?
└그럼 가짜 천만 원도 있냐ㅋㅋ
└ㅁㅊ, 뭐하는 사람임?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그 어떤 사람도 천만 원이란 거금을 후원 받고서 입을 씻을 수 없을 터.
결국 샤이나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일대일에 임했다.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좋았다.
그도 지존천마와의 일대일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앞선 게임보다 더욱 치열한 다섯 번의 게임이 진행되었다.
샤이나크는 게임 내내 소리를 지를 뻔한 걸 여러 번 참았다.
지존천마가 어느새 자신의 노하우를 훔쳐서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다섯 게임의 결과는…….
3 대 2.
지존천마의 승리였다.
<본 교주를 즐겁게 해 주다니, 기특하군. 다음에 다시 찾아오지.>
지존천마는 마지막까지 폭풍 같은 멋을 선사하고는 사라졌다.
└개쩐다…….
└병신 같은데 멋있어.
└졸라 병신 같은데 졸라 멋있다.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
지존천마와 샤이나크의 10연전.
최종 스코어 5 대 5.
두 사람의 채팅, 후원, 경기 내용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국내에만 퍼진 게 아니었다.
세계적인 선수인 샤이나크와 얽혔기 때문에 해외로도 번역이 되어서 엄청나게 퍼져 나갔다.
이제 사람들은 지존천마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몇천만 원을 쉽게 후원하는 재력과 엄청난 실력.
재벌집 아들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게임사에서 개발한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은퇴한 프로게이머거나 각성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누구도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 * *
진유성의 랭킹이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샤이나크와 일대일 혈전을 벌인 날 50위를 찍더니, 며칠 뒤에는 20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10위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러한 수직 상승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진유성이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서 노하우를 배운 탓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배웠다기보다는 훔친 것이지만, 어쨌든 진유성의 게임 실력은 진일보했다.
이제는 샤이나크와 싸워도 백중세거나 진유성이 우세할 때가 훨씬 많았다.
첫 번째 이유가 게임 내부적인 이유였다면, 두 번째 이유는 게임 외부적인 이유였다.
바로, 진유성의 유명세였다.
진유성이 국내와 해외에서 너무 유명해지자, 유저들도 지존천마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와 벌인 10연전에서부터 시작해 엄청난 재력, 확실한 컨셉까지.
그러다 보니 다들 진유성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셨습니까, 교주님.]
[존안을 뵙습니다, 교주님.]
[교주님, 오늘도 차 맛이 좋습니다.]
[미드차이옵니다.]
덕분에 진유성의 팀원들 중에는 게임을 고의로 포기하는 이들이 점점 적어졌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면 지존천마가 이겨 주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50위권 안으로 진입한 순간부터 무패행진을 이어 가고 있었다.
무려 22연승이었다.
챌린저 구간의 승률이 89퍼센트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진유성은 맥 빠지는 소식을 들었다.
일주일 뒤, 한국의 롤 프로 리그가 개막하면서, 내일부터 프로 선수들이 솔로 랭크를 멈춘다는 이야기였다.
본래 선수들은 비시즌 중에는 솔로 랭크로 경기력을 유지하고, 시즌 중에는 솔로 랭크를 자제했다.
솔로 랭크에서 플레이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팀에게 전력 분석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개막 시즌에는 이러한 현상이 심했다.
챌린저 하위권 유저들은 드디어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지만, 진유성은 아니었다.
그는 샤이나크를 비롯한 최상위 중의 최상위 유저들과 경기를 할 때만 재미를 느꼈다.
“재미없군.”
다음 날, 프로 선수들이 떠난 솔로 랭크는 재미가 없었다.
다섯 판을 해서 다섯 판을 전부 이겼지만, 짜릿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동네에서 축구를 하는 것처럼 쉽고, 무난했다.
진유성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본래 랭킹 1위를 찍고 나서 연락을 하려고 했으나, 이제 솔로 랭크에는 흥미가 떨어진 것 같다.
진유성이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ST-1 구단의 단장이었다.
* * *
지존천마가 직접 찾아온다는 소식에 ST-1 구단이 발칵 뒤집혔다.
이 소식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왔냐면, 게임과 상관없는 모기업 ST 그룹의 본부장이 구경을 가도 괜찮냐고 질문을 할 정도였다.
본부장의 아들이 지존천마의 열렬한 팬이라고 하면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ST-1 구단의 단장은 일언지하에 본부장의 부탁을 거절했다.
지존천마에게 구단의 좋은 면과 경쟁적인 면만 보여 줘도 모자랄 판에 구경꾼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장님, 통화하셨다면서요. 몇 살처럼 느껴졌어요?”
“모르겠는데. 한 이십 대 중반? 근데 목소리로는 정확히 알 수 없잖아.”
“어린 느낌은 아니었나 보네요?”
“음…… 잘 모르겠어.”
“진짜 재벌집 자제인가? 이십 대가 몇천만 원을 어떻게 쓰지?”
“혹시 유명 게임 방송인인 거 아닐까요? 그럼 돈 쓸 수도 있잖아요.”
“에이, 그런다고 몇천만 원을 쓰나?”
“아니지. 방송인들이니까 몇천만 원 쓰고 방송 콘텐츠 만들 수 있지. 만약에 방송인 중 한 명이 사실 내가 지존천마였다고 커밍아웃이라도 해 봐. 난리 날걸?”
“아, 그런가?”
“그치. 그만큼 지존천마란 아이디에 파급력이 생긴 거잖아.”
단장, 감독, 코치들은 지존천마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답은 없었다.
지존천마가 구단에 방문하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건 비단 코칭스태프들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도 큰 궁금증을 느끼고 있었다.
ST-1 구단의 선수들은 대부분 지존천마와 게임을 해 봤다.
그들도 모두 솔랭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지존천마가 구단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시간은 7시까지 15분이 남은 시점에 단장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도착했나 보다.”
지존천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어, 네. 네. 제가 내려가도 되고, 아니면 4층으로 바로 올라오셔도 되는데.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단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생각해 보니까 어이없어서.”
“뭐가요?”
“나는 왜 존댓말을 하고 있고, 얘는 왜 반말을 하고 있지?”
“그 친구가 반말했어요?”
“어. 인게임 채팅이랑 완전 똑같은 말투던데…… 위화감이 하나도 없어서 전화할 때는 몰랐네.”
“현실이 컨셉에 잡아먹혔나?”
“보면 알겠지.”
그들이 출입문 쪽만 쳐다보고 있을 때, 띵 하며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이내 발소리와 함께 멀끔하게 잘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나이를 짐작하기는 좀 애매했다.
어떻게 보면 어려 보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나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10대나 30대는 아닌 것 같았다.
20대 초중반 정도?
“지존천마 선수?”
단장이 다가가서 말을 걸자, 구단 내부를 한 차례 둘러보던 지존천마가 답했다.
“[진짜]를 찾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