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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02화 (10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2화>

그들이 지존천마에게 주목한 것은 우스꽝스러운 닉네임 때문이 아니었다.

닉네임이 우습긴 하지만 게이머 중에는 이거보다 더 이상한 닉네임을 쓰는 사람도 많았다.

중요한 건 승률과 게임 내용이었다.

언제나처럼 상위권 게임을 모니터링하던 스카우터들의 눈에 말도 안 되는 승률을 기록하는 지존천마가 들어온 것이었다.

처음, 스카우터들은 너무 말도 안 되는 승률이라 리플레이부터 확인했다.

리플레이 안에 담긴 지존천마의 플레이는 실로 믿기 힘든 것들이었다.

마치 불법 프로그램 유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사에 문의해 봤다고?”

단장의 물음에 스카우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문의한 모양입니다.”

“답변은?”

“불법 프로그램의 사용 흔적은 전무하다고 합니다.”

“안 쓴 거 맞아? 못 잡아낸 거 아니고?”

“99퍼센트의 확률로 안 썼을 거랍니다. 반응 속도가 미친 듯이 빠를 뿐이지, 매순간 반응 속도의 값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불법 프로그램 사용의 유무를 판단 짓는 잣대 중 하나가 바로 반응 속도 값이었다.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반응 속도가 항상 일정했으나,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놀라운 점은 지존천마의 반응 속도가 불법 프로그램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답니다. 실제로 저희 팀의 샤이나크 선수의 수치도 비슷합니다.”

샤이나크는 전 세계 1위의 선수이자,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ST-1 구단의 상징 같은 선수기도 했다.

“다만 반응 속도에서는 지존천마가 훨씬 낫습니다.”

“훨씬? 비슷하다며?”

“순간적으로는 비슷한데 평균값을 산출하면 월등합니다. 즉, 어떤 순간에도 완벽한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흠, 승률이 85퍼센트지?”

“정확히는 84.8퍼센트입니다. 다이아 구간에서는 91퍼센트까지 기록했는데, 마스터 티어에서부터 조금 하락했습니다.”

“85퍼센트한테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좀 우스운데, 최상위 게이머한테 안 먹히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닐 겁니다. 아무래도 경험의 문제 같습니다.”

“경험?”

“제 생각에는 지존천마가 이번 시즌에 처음 게임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이디는 남의 것을 빌린 거 같고요.”

“뭐? 그게 말이 돼?”

“기록상 그렇습니다. 유저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계속해 봐.”

“아시다시피 마스터 구간에서부터는 예측샷의 개념이 많지 않습니까? 스킬을 보고 피하는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플레이들을 살펴보면 예측샷에는 유독 많이 당해 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

“지금은 안 당해?”

“예. 몇 차례 경험이 쌓인 이후부터는 거의 안 당합니다. 점점 능숙해지고 있습니다.”

단장과 리포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수 중 한 명인 김달인이 손을 들었다.

현재 ST-1의 1군 선수들은 세계 대회 출전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세계 대회 6인 로스터에 들지 못한 1.5군과 2군 멤버들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계 최정상에 위치한 구단인 ST-1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팀에 가면 충분히 주전이 될 수 있는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제가 지존천마랑 게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같은 팀으로.”

“그래? 어땠어?”

“좀 어이없었어요. 막 이상한 말을 하던데.”

“이상한 말?”

단장과 스카우터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김달인이 말했다.

“저한테 리플레이랑 채팅 스샷 있는데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뭔데 그래?”

“걔가 저한테 오더를 내렸었는데, 제가 보기엔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서 무시했거든요? 근데 게임 끝나고 친추 걸어서 엄청 뭐라고 하더라고요.”

단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리플이랑 채팅이 있다고?”

“네.”

“김 대리, 빔 프로젝터 쓸 수 있지?”

“네. 쓸 수 있습니다.”

“그 판 리플레이 한번 보자. 채팅은 다음에 보고.”

잠시 뒤, 직원이 빔 프로젝터로 김달인이 보내온 리플레이를 재생했다.

게임 내용은 평범했다.

다이아 구간이라서 그런지 김달인과 지존천마를 제외하면 두드러지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엄청 잘하네.”

“다이아 구간 승률이 91퍼센트인 이유가 있었네요.”

“반사 신경이나 상황 파악이 진짜 빨라요.”

“정글러 위치도 대충 다 눈치채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롤은 5 대 5 게임이다.

두 명이 아무리 잘하더라도 나머지 세 명이 못하면 패배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김달인과 지존천마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나머지 3명은 아주 처참한 스코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모든 아마추어 게이머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꽤 많은 아마추어들은 본인의 성장이 상대에게 뒤처지면 게임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달인과 지존천마가 어떻게든 게임을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나머지 3명은 확연히 의욕을 잃은 모습이었다.

“쟤들 너무 대충했어요.”

게임 당시가 생각났는지 김달인이 열 받는 목소리로 말했다.

2군 팀 감독이 물었다.

“근데 달인이 너랑 쟤가 싸울 이유는 딱히 안 보이는데? 둘 다 잘하고 있잖아.”

“조금 이따가 싸워요.”

게임이 계속해서 진행되다가, 최후의 순간에 이르렀다.

지존천마가 엄청난 컨트롤로 적 팀 중 한 명을 자르고 살아 나오는 사이, 이상한 곳에서 얼쩡거리던 아군 팀원도 잘려 버렸다.

양 팀이 한 명씩 잘려서 4 대 4인 상황, 적 팀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후의 공성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여기예요. 여기서 싸웠어요.”

“여기서? 여기서 싸울 게 뭐가 있어?”

“그쵸? 감독님이 봐도 그렇죠?”

“잠깐.”

단장이 손을 들어 두 사람의 대화를 멈추었다.

“편견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일단 리플레이부터 보자.”

이어진 4 대 4 한타에서 지존천마와 김달인의 팀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싸움에 이겼음에도 딱히 이득을 볼 만한 구석이 없었다.

이후에는 시야를 밝히던 지존천마 팀의 탑과 서폿이 어이없게 잘리면서 조금 허무하게 게임이 끝나 버리고 말았다.

리플레이가 끝나자 단장이 입을 열었다.

“지존천마가 오더를 했는데, 네가 거부했다고?”

“네.”

“오더 내용은 스샷에 있지?”

“네.”

프런트 직원이 눈치 좋게 스크린 캡처 파일을 열었다.

[답답하구나! 왜 말을 안 듣는 것이냐! 사대사 상황에서 네가 바텀으로 쭉 밀고 갔으면 우린 승리할 수 있었다!]

[아니, 님. 무슨 소리 하세요. 거기서 무슨 바텀을 가요. 한타 이겼잖아요.]

[한타를 이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게임은 캐릭터를 죽이는 게 아니라, 건물을 부수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가 바텀으로 밀고 갔으면 이겼다고?]

[그러하다!]

“말투가 왜 이래?”

“그냥 컨셉인 거 같아요. 맨날 저러던데.”

“스샷 넘겨 봐.”

[네가 적진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8초고, 가는 길에 미니언 18마리를 처리해야 하니 총 34초가 걸린다.]

[물론, 궁극기까지 써서 빠르게 미니언을 정리했을 때의 이야기다.]

[다음으로 타워를 깨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초.]

[앞서 잘렸던 적군이 되살아나긴 하나, 점멸과 힐을 쓰면서 넥서스를 쳤다면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이 상림 같은 자식아!]

“상림은 또 뭐야?”

“모르겠어요. 인터넷 유행어 같은 게 아닐까요?”

단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지존천마의 길고 장황한 채팅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얼핏 보기엔 어이없는 소리로 보였다.

그냥 화가 나서 헛소리를 떠든 것 같았다.

한데,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뭔가 묘했다.

김달인이 말했다.

“저러고는 다음 게임에 들어갔는지 더 이상 말을 안 하더라고요.”

“흠.”

“저때는 화가 나서 캡쳐해 놓고 실험해 보려고 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무의미한 거 같아서 안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한번 해 보자.”

단장의 말에 2군 감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상황을 똑같이 재현하자는 말씀이신가요?”

“어. 힘든가?”

“힘들다기보다는…… 미니언 체력이나 방어력까지 고려하면 게임 플레이 시간까지 그대로 맞춰야 해서요.”

2군 감독의 뒷말에 이어질 건 그럴 시간이 아깝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아이템이랑 시간만 맞추면 되는 거잖아? 한 번 해 보자고.”

단장의 고집을 알고 있는 2군 감독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실험이 시작되었다.

혹시나 실수를 할 수도 있기에 2군 선수 다섯 명을 데리고 동시에 실험을 진행시켰다.

선수들은 리플레이와 똑같은 타워 상황을 만들어 놓고, 김달인과 똑같은 아이템을 맞췄다.

그러곤 기다렸다.

김달인이 지존천마가 오더를 내렸던 시점을 알려 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섯 명의 코치들은 다섯 명의 선수들 뒤에서 시간을 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지금!”

김달인의 말에 다섯 명의 선수들이 캐릭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본진에서 바텀으로 뛰쳐나가 적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만나는 미니언들은 궁극기까지 써 가며 최대한 빨리 정리했다.

그러곤 타워를 두들겼다.

코치들의 표정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체크해야 할 시간은 3가지였다.

적진까지 도달하는 시간 28초.

미니언을 정리하는 6초.

타워를 깨는 11초.

이것이 지존천마의 주장이었으니까.

그리고……

“일번.”

“29초, 6초, 12초입니다.”

“이번.”

“28초, 6초, 12초입니다.”

“삼번.”

“28초, 6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실험 결과가 28초, 6초, 11초라는 지존천마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놀란 것은 2군 감독이었다.

사실 그는 이 실험에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그 어떤 선수도 이런 걸 계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샤이나크도 예측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막상 나온 결과는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대체 어떻게……?’

연습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단장이었다.

“빨리 연락해.”

“네?”

“프로가 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의사가 없어도 한 번만 만나자고 해.”

단장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싫다고 하면 집 주소라도 알아 와. 내가 직접 찾아간다. 삼고초려, 아니 십고초려도 할 수 있어.”

단장의 흥분은 타당한 것이었다.

85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승률은 지존천마가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음을 뜻했다.

아무리 게임 지능이 뛰어나도 지능만으로는 이런 승률이 나오지 않는다.

흔히 65퍼센트의 승률을 넘기면 그 티어의 평균 피지컬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85퍼센트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김달인과의 대화를 보면 단지 피지컬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게임 지능이 한마디로 미친 수준이었다.

이동 속도, 라인 클리어 속도, 타워 철거 속도.

이 모든 걸 순식간에 고려했고, 28초, 6초, 11초란 데이터를 뽑아냈다.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가지고 관철할 자신감도 있다.

만약 김달인이 지존천마의 말을 들었다면 그 게임을 이겼을 것이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생각하면 할수록 흥분이 차오른다.

어쩌면 그들은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등장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서둘러. 다른 팀이 접촉하기 전에 낚아채야 해. 강 팀장!”

“예.”

“우리가 쓸 수 있는 계약금이 얼마까지야?”

“신인 말씀이십니까?”

“아니, 신인으로 제한하지 말고, 집행 자금 다 쓴다고 치면.”

“그럼 5억까지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인한테…….”

“5억 오케이. 그게 우리 맥시멈이다.”

“다, 단장님!”

“토 달지 말고 얼른 움직이기나 해!”

“……예.”

단장의 진두지휘하에 ST-1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Zi존천ㅁr.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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