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1화>
* * *
심도훈과 함께 매점을 다녀온 지종수가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진유성에게 향했다.
그러곤 뭔가를 건넸다.
“자.”
“고맙다.”
지종수가 건넨 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자리로 돌아가려던 지종수가 다시 진유성을 돌아봤다.
“야.”
“왜 그러느냐.”
“매점 갈 때마다 자꾸 뭐 사다 달라고 하지 마.”
“어차피 매점 가는 길이었잖느냐?”
“그렇긴 한데…….”
기분이 이상했다.
셔틀이 된 기분이었다.
지종수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려는데, 진유성이 대수롭지 않게 툭 말했다.
“만약 내가 매점에 갈 때 네가 부탁하면 어쩔 것 같냐?”
“너도 사다 주냐?”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자신은 매점을 간다는 티를 너무 많이 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심도훈이나 고인수한테 후다닥 달려가서 소리를 질렀으니까.
‘내일은 진유성이 매점에 가기 전까지 한번 자제해 봐야겠어.’
지종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흘리는 공부가 경지에 오른 진유성은 흥미가 동하지 않는 소리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종수가 상소윤을 좋아한다는 것까지 모르고 있었다.
지종수의 사생활에 일 푼의 관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이 유일하게 흘리지 않는 지종수의 소리가 있다면, 그건 그의 입에서 ‘매점’이란 단어가 나올 때였다.
그때만큼은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지종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잡아냈다.
그러고는 다가가서 말하는 것이었다.
다녀올 때 내 것도 사다 달라고.
그러니 지종수의 다짐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앞으로 아예 매점에 가지 않는 게 아니라면, 절대 진유성보다 늦게 매점에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또 속냐, 지종수라.’
하지만 진유성의 속마음을 모르는 지종수는 진유성이 자신을 셔틀로 여기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지종수가 마주 보고 있던 곳에서 자리를 옮겨 진유성의 등 뒤로 향했다.
진유성이 대화 중에도 계속 핸드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까…….
“롤?”
“어.”
롤 영상이었다.
“뭐야? 연습하냐? 군사복수 십년불만이냐?”
지종수의 말에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군사복수가 아니라 군자복수다.”
군자복수 십년불만(君子復讐 十年不晩).
군자가 복수하는 데 십 년이 걸려도 부족함이 없다.
지종수는 본인이 꼴등이 아니며, 답안을 밀려 썼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려운 말들을 쓰곤 했는데, 뭔가 좀 어설펐다.
“어쨌든 복수하겠다는 소리잖아? 연습 좀 했냐?”
“조금.”
“그럼, 오늘 일 대 일 한 판?”
지종수가 핸드폰을 보더니 정정했다.
“아, 오늘이랑 내일은 안 된다. 주말에 어때?”
“그러든가.”
“오, 자신 있냐?”
지종수는 자신만만한 진유성의 표정을 보며 살짝 불안함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진유성의 운동 신경이나 센스는 인정하지만 게임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었다.
일단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특히 롤에 있는 캐릭터만 수 백 개인데, 단 며칠 만에 익숙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령 좋은 머리로 캐릭터를 달달 외웠다고 해도, 습득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아마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만 익히는 데 적어도 몇 달은 걸리지 않을까?
“자신 있으면 뭐라도 걸고 할까?”
“마음대로.”
“네가 걸어. 난 무조건 수락해 줌.”
“흠…….”
진유성이 고민에 빠졌다.
일단 그에게 돈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진유성은 이미 엄청난 돈을 쥐고 있었으며, 그것보다 몇 배는 가치가 높은 물건들을 인벤토리에 담고 있었으니까.
“아마 현금화하시면 몇천억은 될걸요?”
“그래?”
“네. 블랙 마켓이 아니라 각성 마켓에서 경매용으로 올리면 그것도 넘을 수도 있어요.”
“흠…….”
“어차피 나중에 아놀드 벡한테 정체를 밝히실 거면 그때 한번 위탁해 보세요. 블랙 마켓에서는 소화가 안 되는 물건들이라서.”
상림의 말에 따르면 괜히 블랙 마켓에 팔려고 했다가는 분란만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엄청난 아이템들을 얻은 곳은 당연히 독도의 S급 게이트.
독도 S급 게이트는 록펠러가 진유성을 초대하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이었다.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서 파 놓은 건지, 아니면 가장 요란한 S급 게이트를 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록펠러는 자신이 독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즉, 독도 게이트 전체가 함정이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이트 내의 공간들이 대충 만들어졌다거나, 가짜였단 소리는 아니었다.
신성의 공간으로 진유성을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긴 했으나, 독도의 게이트는 정말 S급 게이트였다.
그렇기에 몬스터들을 잡으면 아이템이 나왔다.
그리고 진유성은 거의 단신으로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아이템을 입수한 것이었다.
‘뭐, 아이템도 마도사들이 아카샤를 속이기 위해 만든 것들이긴 하지만…….’
아이템의 존재 이유는 각성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용도였다.
인간들이 골똘히 궁리하고, 간절히 원하고, 꿈까지 꿔야지만, 게이트 시스템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됐다.
하지만, 무의미한 고난은 인간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지 않았다.
고문을 더 잘 받는 법 같은 걸 연구하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인간은 고난 뒤에 큰 성취가 있을 때 비로소 궁리를 시작했다.
각성 시스템에 당근과 채찍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아니, 뭐. 이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고.’
잠시 생각이 샜던 진유성이 고민을 이어 갔다.
엄밀히 따지면 진유성이 내기를 좋아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돈을 잃고 아쉬워하는 이들을 놀리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지종수도 축구 내기를 할 때 잃어버리는 돈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게 아니다.
돈을 낸다는 것 자체가 축구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것이다.
한동안 골똘히 고민하던 진유성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그냥 저녁 내기로 하지.”
“뭐야, 왜 갑자기 사이즈가 작아졌어?”
“비싼 걸 먹으면 되지. 이긴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오성급 호텔도?”
“원한다면.”
“오, 간만에 호텔 밥 먹겠네.”
지종수가 도발했지만, 진유성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지종수와 내기를 하는 건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였다.
그는 지종수가 게임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에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서 지종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잘 알았다.
지종수의 실력은 평범했다.
지금의 진유성과 비교하자면 보잘것없을 만큼.
길가에 돌아다니는 바퀴벌레를 잡는 것과 다름이 없는 난이도였다.
그만큼 진유성의 게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진유성이 생각했던 것처럼 롤이란 게임은 그의 무학이 통하는 전장이었다.
지고 있던 게임을 진유성의 신묘한 계책으로 이길 때면 쾌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만 처음부터 무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군이 적군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이고, 게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길 때도 전술과 전략을 실천해서 이긴다기보다는 진유성의 개인 역량으로 많이 이겼다.
팀원들에게 훈수를 둬 보기도 하고, 혼도 내 봤지만 소용없었다.
실제로 아는 사이라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겠는데, 게임에서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다이아를 벗어나고, 마스터를 벗어나, 그랜드 마스터에 도착하자 그의 전술과 전략이 통하기 시작했다.
그랜드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랭킹 1,000위 안에 드는 게이머들이 상주하는 천상계.
이 말을 곧, 아군들이 진유성의 의도를 이해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진유성은 이 구간에서 꽤 많이 패배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1초를 60으로 나눈 찰나의 단위로 게임을 바라보는 진유성이건만, 이기지 못하고 패배를 한다는 건.
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단지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반응하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공격들이 날아오는 탓이었다.
진유성이 손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고 해서, 캐릭터들까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캐릭터의 속도는 이동 속도란 설정값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반사 신경보다 예상과 속임수가 중요해졌다.
상대의 속임수를 간파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해야 했다.
또한 자신도 속임수를 쓸 줄 알고, 상대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해야 했다.
놀랍게도 최상위 게이머들 중에는 심동과 무심동을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게임 속 캐릭터다 보니 심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꾸며내는 의도들이 있었다.
공격할 것 같은 순간에 공격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공격하는 심리전들이.
진유성도 여기에 몇 번이나 속았다.
덕분에 진유성은 계속해서 롤이란 게임에 흥미를 가졌다.
만약 아주 빠른 반사 신경만으로 모든 플레이어들을 이겨 버렸다면 금방 흥미를 잃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에는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것들이 많이 요구되었다.
‘내일 정도면 챌린저를 찍겠군.’
챌린저란 대한민국에서 300등 안에 드는 게이머였다.
여기서부터는 명실상부 프로의 영역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지종수와 아옹다옹하기는 너무 귀찮다.
오히려 심도훈이 게임을 꽤 잘했던 걸로 기억했다.
초보인 진유성과 함께하기에 대충대충 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다.
아주 예리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심도훈에게 다가갔다.
“심도훈.”
“엉?”
매점에서 사 온 핫바를 먹고 있던 심도훈이 진유성을 올려다보았다.
“네 티어가 무엇이냐?”
“티어? 롤?”
“그래.”
“나 챌린저랑 그랜드 마스터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역시.”
“갑자기 왜?”
“아니다. 네 아이디가 무엇이냐?”
심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자신의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진유성은 그 아이디를 잘 기억해 놓았다.
혹시 게임을 하다가 만나면 아주 재미있는 장난을 칠 수 있을 거 같아서.
자신이 쓰는 건 본래 심도훈의 아이디였지만, 진유성이 임의로 닉네임을 변경해 놨으니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온 진유성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2시밖에 안 됐다.
‘빨리 학교가 끝나고 게임을 하면 좋겠는데.’
본인은 모르는 것 같겠지만, 전형적인 게임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 * *
ST-1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프로게임 구단이었다.
한때 스포츠 업계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각성자가 탄생한 시점부터 기존의 스포츠들이 전부 사장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은 반만 맞았다.
일단 메이저 스포츠들은 인기를 이어 갔다.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스포츠들은 타격이 적었다.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호황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할 때 가치를 얻는 마라톤이나, 육상, 역도 같은 종목들은 인기를 잃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인기를 얻은 스포츠가 있었다.
바로 E-스포츠였다.
E-스포츠는 애초에 사람의 신체 능력과는 크게 무관한 스포츠였다.
피지컬도 요구되긴 하지만, 바둑이나 체스처럼 두뇌 싸움이 더욱 중요했다.
모 각성자가 ‘난 일반 스포츠는 보지 않는다. 시시하기 때문이다. 대신 E-스포츠는 여전히 사랑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ST-1은 전 세계에서 파워 랭킹 1위에 손꼽히는 팀이었다.
그런 팀의 전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이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은 이슈는 한 명의 게이머 때문이었다.
다이아2 구간에서부터 85퍼센트의 승률을 기록하며 그랜드 마스터 구간을 초토화시키는 중인 정체불명의 게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