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0화>
* * *
유혜연에게 ‘다시는 함께 먹는 탕수육에 소스를 붓지 않는다’는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고 나서야 진유성은 마음 편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진유성은 여전히 찍먹은 사도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밥을 먹은 세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었다.
상림은 일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이 왔다.
과일을 다 먹은 진유성이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자, 유혜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드라마 안 봐?”
“오늘은 할 게 있어서요.”
“오늘 편 엄청 기대했잖아?”
“재방송으로 보면 되죠.”
진유성은 그렇게 2층으로 올라왔다.
할 일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자신에게 생애 처음으로 완벽한 패배를 안겨 준 게임.
그것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는 패배자일 뿐이었다.
컴퓨터를 킨 진유성은 롤을 설치하면서 유튜브로 게임에 관련된 영상을 봤다.
게임을 설치하고 업데이트하는 시간은 20분 남짓이었지만, 진유성은 그사이에 30개가 넘는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생사결의 순간에 접어들 듯 집중력을 끌어올려, 4배속으로 동시에 4개의 동영상을 시청했기 때문이다.
8배속으로 봤다면 더 많은 영상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유튜브는 4배속까지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흠, 그런 거였군.’
진유성은 처음에는 롤이 전쟁인 줄 알았다.
전쟁은 적병을 많이 죽이고, 상대의 자원을 많이 약탈하면 이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롤은 그런 게임이 아니었다.
몇 번을 죽어도 상관없다.
결국, 적의 근거지인 성을 먼저 깨면 이기는 게임이다.
똑같이 시작하더라도 시간과 동선을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했다.
‘흥미롭군.’
진유성은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지금까지는 분노와 굴욕감으로 게임을 정복하려 했는데, 이젠 제법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유성은 무학(武學)을 익히는 것을 꽤 좋아했다.
여기서 무학이라 함은 전술, 전략, 병법 등등 무와 관련된 일체를 공부하는 학문을 뜻했다.
이론적으로는 무공도 무학에 포함되는 개념이었다.
다만 무공은 실제로 익히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무학에서는 무공이 아닌 무예를 다뤘다.
무공과 무예의 차이는 내공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고의 차이였다.
금군이 배우는 황궁의 십팔반무예는 열여덟 가지의 무기 사용법을 배우는데, 이는 내공이 없어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무예인 것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진유성이 무학에 대해 관심이 있고, 제법 깊은 공부를 했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시작했던 것은 멸마대의 대주로서였다.
멸마대의 목표는 마교주의 암살이었는데, 이는 치밀하고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유성은 무학을 공부했다.
단지 암살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마교주의 암살이 성공하는 순간, 멸마대는 공적을 인정받아 단(團)으로 승격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암살대가 아니라, 밝은 빛을 받으며 활약하는 군단이 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진유성은 멸마단주가 되어서 마교의 잔당을 소탕하는 멸마단을 이끌어야 했다.
그때를 위해서도 무학은 필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교주는 주화입마로 사망했고, 진유성은 생존대를 구성하여 도망만 다녔다.
무학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빛을 본 것도 아니었다.
진유성이 자신의 무학을 완성시킨 것은 해남에서였다.
정확히는 입멸공을 배우면서였다.
입멸공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라 오히려 무학에 가까웠다.
앞서 말했듯이 본래 무학에는 무공도 포함되어야 하지만, 무학자들이 무공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기에 무예만 다룰 뿐이었다.
입멸공은 무공까지 아우르는 무학의 정수였다.
그렇게 자신의 무학을 완성시킨 진유성은 중원으로 나와서 마교의 잔당을 흡수하고 중원일통을 노렸다.
그것이 자신들을 토사구팽한 정도맹에 대한 완벽한 복수가 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진유성의 무학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진유성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었다.
구대문파에 차례로 들어가서 장문인의 팔 한쪽을 가져올 정도로 강한 진유성이 무학을 활용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었다.
이것은 진유성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무학을 써먹을 곳을 발견한 것이었다.
게임이란 전장.
실제 피와 살이 튀고 목숨이 오가는 곳은 아니지만, 그러므로 더욱 철저히 무학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
‘아주 재밌겠어.’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마침내 게임 설치가 끝이 났다.
설치가 완료되자마자 진유성은 심도훈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심도훈이 알면 놀랄 일이었다.
그는 진유성에게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 준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심도훈은 진유성에게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 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진유성의 눈앞에서 직접 키보드를 친 것은 대놓고 종이에 적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흐음.”
유튜브에서 벼락치기를 한 바로는 이 게임에는 랭킹 시스템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원래 줄 세우기를 좋아했다.
중원에서도 무림십대고수, 백대고수, 흑도의 칠마, 백도의 팔절 등등 분류도 많았으니까.
이 세계의 각성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니 게임에도 랭킹이 있는 게 당연하다.
“흠. 다이아2로군.”
다이아면 제법 높은 랭킹이었던 것 같다.
진유성은 몰랐지만 심도훈은 꽤 높은 수준의 고수였고, 진유성이 쓰고 있는 건 심도훈의 두 번째 아이디였다.
최선을 다한 게임보다는 이런저런 캐릭터들을 연습할 때 쓰는 아이디.
로그인을 했지만 진유성은 곧장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무작정 도전을 반복하는 것은 하책.
궁리하고 또 궁리해 자신의 마음과 두뇌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다음에 도전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진유성이 게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 최상의 상태라고 해 봤자 수치화하면 20퍼센트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이란 기준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다.
다음 게임 때는 21퍼센트가 될 수 있고, 그다음 게임에는 22퍼센트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고점을 갱신하다 보면 언젠간 100퍼센트가 될 것이고, 그 100퍼센트가 기준점이 된다.
그때부턴 언제나 100퍼센트의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다.
그리고 100퍼센트란 수치를 뛰어넘는 순간, 인외의 길이 열린다.
문득 용어의 어색함을 느낀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10할이 아니라 100퍼센트라니.’
그런 생각을 한 진유성이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캐릭터의 움직이었다.
결국, 이 게임은 캐릭터를 움직여서 몬스터를 죽이고, 돈을 벌고, 적을 죽이는 게임이다.
게임이 검법이라면 캐릭터는 검이다.
검리(劍理)의 첫 번째는 검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이다.
길이가 어떤지, 무게는 어떤지, 얼마나 날카로운지.
손잡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의 마찰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단단한지.
검에 관한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또 파악해서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야 했다.
손을 사용할 때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는 것처럼 검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보자…….’
찾아보니 게임 내에 연습 모드 기능이 있었다.
진유성은 연습 모드로 들어가서 아무 캐릭터나 선택했다.
그러곤 캐릭터를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속도.
무학에 있어 군사의 기동성은 많은 변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아이템에 따라 이동 속도가 달라진댔지?’
기본 속도를 확인한 진유성은 이윽고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착용해 보며 속도를 확인했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서 그런지 속도의 증가폭이 일정했고, 덕분에 파악하기가 훨씬 쉬웠다.
그 뒤로도 진유성은 이런저런 것들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게이머들처럼 공격 속도나 공격의 사거리, 스킬의 데미지만 확인한 게 아니다.
마우스 클릭을 통해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최소 거리.
마우스와 키보드 입력이 실제 게임에 반영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스킬이 시전되고 끝나는 사이의 미묘한 공백에 대한 파악.
사실 이러한 것들은 일반인들은 체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최고 수준에 오른 프로게이머들이 직감, 혹은 수많은 연습으로 터득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진유성은 아니었다.
진유성은 1분을 60으로 나눈 1초를 다시 60으로 나누어 셀 수 있었다.
본래 1초를 60으로 나눈 것에는 단위가 없다.
그저 아주 짧은 시간을 지칭하는 찰나(刹那)라고 부를 뿐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찰나라는 단위를 정량적으로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내 의도가 게임에 반영되기까지 1찰나(0.016초) 정도가 걸리는군.’
진유성은 그 뒤로도 모든 챔피언에 대해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챔피언마다 이동 속도, 사거리, 스킬, 데미지 등등이 다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점검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챔피언을 파악한 이후에는 아이템들을 공부했고, 다음으로는 지형지물을 살폈다.
동시에 유튜브를 통해 게임 내에 등장하는 오브젝트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진유성의 오성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본래 입멸공은 인간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왜 입멸공을 세상에 남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입멸공의 난이도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입멸공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 진유성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입멸공이 잠들어 있었던 장소에는 수백이 넘는 해골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가 입멸공을 익히기 위해 들어왔다가 죽은 이들이었다.
입멸공의 기연이 잠들어 있었던 해남의 이름 모를 섬에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진법은 입멸공의 최종오의를 익히지 못하면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그 안에서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결국 입멸공을 체득했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린 것도 아니었다.
진법 안과 밖의 시간이 달라서 10년 정도는 흐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2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이처럼 엄청난 오성을 지니고 있는 진유성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아주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고 있었다.
시간이 째깍째깍 흘렀다.
“으음.”
마침내 모든 것을 확인한 진유성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어느덧 새벽 4시.
저녁을 먹고 6시 반쯤에 게임을 설치했으니, 9시간이 넘도록 게임에 집중하고 있던 것이었다.
“자기는 글렀군.”
진유성은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뇌는 수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잠을 청하는 것뿐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 진유성이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진유성이 선택한 캐릭터는 조작 난이도는 낮지만 섬세한 컨트롤이 요구되는 ‘데인’이었다.
그가 이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스킬의 구조가 직관적이고 단순하며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의 생각처럼 데인은 잘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잘만 한다면 아주 강력한 캐릭터였다.
‘모든 스킬을 피하면 되겠지?’
이윽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유성의 진정한 첫 번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그 결과는…….
“쉽군.”
손쉬운 승리였다.
처음엔 미드에서 데인을 픽한 진유성에게 플레이어들이 욕을 퍼부었지만, 욕설은 아주 잠시였다.
모두들 진유성의 플레이를 보면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스킬을 완벽하게 회피하며 낭비 하나 없는 움직임으로 엄청난 딜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님 누구임? 프로예요?]
[프로 같은데?]
[핵 아님? 움직임이 말도 안 되던데.]
[핵 없어진 지 좀 됐는데.]
게임이 끝나고 플레이어들이 설왕설래했지만, 진유성은 그런 사소한 것엔 관심이 없었다.
곧장 다음 전장으로 향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