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97화>
진유성의 뜬금없는 질문에 상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교주님이 더 강해진 거 같냐고요?”
“어.”
“산도 정상이 보여야 얼마나 높은지 알죠. 아득히 높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혀 모르겠어?”
“네.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볼 때 교주님은 너무 높이 계십니다.”
“흠. 짜식.”
진유성이 상림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자 상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에 와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단 말이지?”
진유성도 양심이 있는지라 학교에서 운동을 할 때는 내공뿐만 아니라 의념까지 제한하고 경기에 임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을 하다가 부딪친 상대가 기절할 수도 있었다.
재밌는 건, 중원에서는 의념을 제한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진유성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내공과 의념을 숨 쉬듯이 써 와서 미처 몰랐는데, 육체가 가진 힘과 의념의 힘은 별개였다.
또한, 얼마 전에 록펠러와 싸우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순수한 의념의 힘으로 입멸공의 최종 오의를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것들 외에도 물리를 배우면서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깨우쳤고, 지구의 발전된 과학을 보면서 느낀 바도 있었다.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원에서의 나와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경지가 너무 높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1과 2는 차이가 있지만, 1억 1과 1억 2는 별 차이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가?”
상림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구석이 있었다.
워낙 높은 곳에 서 있는 진유성은 자신의 무공을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기준점이 어제의 자신이 되기에, 객관적인 판단이 힘든 것이다.
하지만 상림의 말이 전부 옳지는 않았다.
무공의 경지 상승은 계단을 밟듯 점진적으로 오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벽에 막혀 있다가 한 번에 훅 올라선다.
그래서 삼류 무인이 깨달음을 얻어 단번에 일류 무인이 되는 것도 가능한 것이었다.
‘근데 뭐, 내가 벽에 막혀 있던 건 아니니까.’
진유성에 한해서라면 상림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진유성의 경지 상승은 커다란 벽을 만난 다음에 벽을 넘어선 게 아니다.
그냥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알게 된 것뿐이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림이 입을 열었다.
“교주님.”
“왜?”
“그럼 제 수준은 어디일까요?”
“너?”
진유성이 턱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무공은 초절정이나 무위는 절정 이하일 걸?”
“역시 그렇겠죠?”
“그치. 아무래도 심신의 조화가 완벽하지 않고 깨달음을 실현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니까.”
무(武)와 공(功)으로 이루어진 무공은 무예에 대한 공부를 뜻한다.
즉, 깨달음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반해 무위(武威)는 무예로 낼 수 있는 위력이다.
무공과 무위는 비례 관계이긴 하나 정비례는 아니다.
무공이 높으면 보통 무위도 높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공이 높아짐에 따라 무위가 동일하게 증진 하냐면,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절정의 무인이 불의의 사고로 단전을 잃었으면, 그의 무공 경지는 여전히 절정이다.
단전을 잃었다고 깨달음까지 잃어버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력이 없으니 무공으로 낼 수 있는 위력, 즉 무위는 삼류무사와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가 아니라면 내공을 잃어버린 이후 깨달음도 점점 상실된다.
본래 무공이란 갈고 닦아야하는 것이지 궁리만 한다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니까.
현재의 상림을 예로 들자면 무공의 경지는 초절정에 닿아 있다.
중원에 있을 때 밟아 본 경지라서 금방 회복했다.
하지만 무위는 절정이거나 그 이하일 수밖에 없었다.
진유성의 목표는 상림의 무공과 무위를 초절정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본래 진유성은 상림의 무공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본인도 그저 머리카락과 정력이 돌아온 것에 만족하는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복잡해졌다.
게이트를 만든 마도사들이 무슨 수를 쓸지 알 수 없어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진유성이 아닌 상림, 상소윤, 유혜연을 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상림의 무공을 적극적으로 회복시키려는 것이었다.
가족들을 지킬 수 있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지?”
상림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자, 상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림은 진유성에게 독도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전해 들었다.
게이트가 어떤 연유에서 탄생했으며, 누가 그것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지도 알고 있다.
상황을 보아하니 진유성의 걱정은 합당한 것이었다.
상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교주님.”
“엉?”
“마도사들이 저희 가족을 노릴 확률이 있을까요?”
“사실 엄청나게 희박하긴 해.”
“진짜요? 왜요?”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곳이 게이트 안이 아니잖아.”
마도사들이 아카샤의 눈을 피해 영성을 착취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게이트 안에서의 일이다.
그에 반해 상림, 상소윤, 유혜연의 생활 공간은 게이트 밖이다.
마도사들은 여전히 아카샤를 두려워한다.
게이트 밖에서 이종의 힘을 쓰면 추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나는 왜 괜찮지?’
진유성의 무공은 정말로 입신의 경지에 달했다.
그가 마음을 먹는다면 세계 정복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의 힘은 아카샤에 의해 추방당하지 않는다.
‘힘을 안에서 키우고, 밖에서 끌어오고의 차이인가?’
무공은, 인체란 소우주를 끝없이 확장시키는 힘이다.
그에 반해 마도술은 세상의 법칙과 인과율을 교묘하게 뒤트는 힘이다.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보기엔 진유성도 마도술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멀더에게 배운 언어 습득의 술.
그것의 기원은 마도술이다.
‘모르겠군.’
정말로 모르겠다.
그때 상림이 확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그럼 마도사들이 우리 가족을 공격할 확률은 극히 드문 거네요?”
“그치. 만약에 공격을 한다면 최후의 최후겠지. 나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다행이네요.”
진유성은 활짝 웃는 상림의 얼굴을 보며 순간 씁쓸해졌다.
상림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중원에서의 상림은 지금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까불거리고, 주접 떨고, 말 많은 건 똑같다.
하지만 가슴 안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시퍼렇게 벼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상림이 멸마대에서 생존대를 거쳐 천마신교의 3인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칼이 무뎌졌다.
예전에도 한 번 생각했던 것인데, 진유성은 상림이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무(武), 그 자체.’
그렇기 때문에 상림은 자신에게 위험이 다가올 확률이 낮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실의 공간은 부재 의식까지 없애는 것 같다.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뭔가가 없어졌으면 ‘없어짐’을 인식해야 했다.
두 개의 팔로 살다가 하나의 팔을 잃었으면 불편함 느끼는 것처럼 말이었다.
하지만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은 부재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림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딱!
“아! 왜 때리세요! 이번엔 불경한 생각 안 했는데!”
“야 이 대머리 고자야. 투쟁심을 가지라고, 투쟁심을.”
“아니 대머리 아니잖아요!”
상림이 성성한 자신의 머리숱을 자랑하듯 쓸어 올렸다.
“고자도 아니에요! 5분간 보여 드려요?”
“확 잘라 버린다.”
찔끔한 상림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다가 흐흐 웃었다.
“교주님.”
“왜?”
“아까 우리 가족이라고 하신 거 아십니까?”
“내가?”
“네.”
상림의 말이 맞았다.
진유성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곳이 게이트 안이 아니잖아.”
상림이 능글맞게 입을 연다.
“근데 생각해 보십쇼. 우리 가족의 가장은 누굽니까?”
“너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가족의 구성원인 교주님도 가장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가장.”
“네?”
“지옥으로 가장.”
진유성이 검을 인벤토리에 넣더니 주먹을 들었다.
화르륵 하며 진유성의 주먹에서 새파란 권기가 뿜어졌다.
상림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진유성의 주먹이 상림의 머리가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갔다.
투확!
엄청난 권풍에 상림의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자라처럼 목을 집어넣은 상림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교주님!”
“뭐?”
“저 방금 죽을 뻔했거든요!”
“말했잖아. 지옥으로 가장.”
진유성의 주먹이 미친 듯이 움직이며 상림의 요혈을 노리기 시작했다.
상림이 기겁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요혈만 간신히 피해 내는 정도였다.
진유성은 상림을 두드려 패면서 자신의 진심에 대해 생각했다.
마도사들의 사악한 계략을 막으려던 게, 단지 대승적인 차원이 아니었다는 것.
진유성이 마도사들을 없애려는 이유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였다.
* * *
3월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다.
길고 긴 방학 이후 등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이들도 슬슬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3월 말에는 몇몇 학생들이 기다리던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체육 대회였다.
“가자! 진유성!”
지종수는 체육 대회의 일정을 듣자마자 교실로 달려와 진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던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뭘 가?”
“뭐긴 뭐야, 체육 대회 우승으로 나아가자는 거지.”
“의미가 있나?”
체육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고 해봐야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다.
일반 고등학교는 담임 선생님들이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걸 걸고 의욕을 고취시키는 모양이지만, 대정고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가벼운 내기로 반 학생 전원의 치킨을 거는 게 대정고다.
게다가 이런 내기의 기본은 1인 1닭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체육 대회에 의욕을 가지려면 적어도 우승 상금이 2,500만 원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한 학급의 인원이 25명 정도니까, 한 명당 백만 원씩을 준다면 조금은 의욕을 가질 것 같다.
그리고, 놀랍게도 진유성의 생각은 정확했다.
대정고에는 체육 대회와 관련된 전통적인 역사가 있었다.
바로 학생 한 명당 오십만 원씩 걸어서 내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 돈은 전부 우승한 반에게 돌아간다.
한 학년에 총 4개의 반이 있으니까, 우승을 한 반의 학생들은 내기에 건 돈을 제외하고 150만 원 정도를 갖는 셈이었다.
물론 이게 대정고 체육 대회의 공식적인 룰은 아니었다.
사행성 내기를 학교에서 공식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1회 졸업생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던 유구한 역사기도 했다.
“호오?”
이야기를 들은 진유성이 관심을 보이자 지종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진유성의 운동 센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영국에서 진유성을 쫓아다니던 훌리건, 아니 스카우터들도 있던 것이었다.
‘진유성과 함께라면 무조건 우승이다.’
지종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유성 참가하면 안 해.”
다른 반 학생들이 고개를 저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