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96화>
이제 문제는 남은 두 놈을 어떻게 찾느냐였다.
진유성에게는 마도사들의 거처를 찾아낼 수단이 없었다.
놈들은 수백 년 동안 마도술을 갈고닦았으며, 지구에 정착한 지 진유성보다 훨씬 오래됐다.
작정하고 몸을 숨기면 찾아낼 방법이 궁할 수밖에 없었다.
록펠러의 복수를 하겠다고 찾아오면 편하겠지만…….
‘성향상 그럴 것 같지는 않고.’
그러니 진유성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놈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중간에서 빼돌리는 것.
게이트는 에너지 공장이고, 마도사들은 에너지를 흡수해 자신들의 격을 높이려고 한다.
한데 진유성이 에너지를 훔치기 시작한다면?
게이트를 만든 의미 자체가 없어지니 진유성을 저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스 레이드가 관건이군.’
게이트의 구조는 잘 모르겠지만, 수비나 공격 미션 게이트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보스 레이드 미션.
보스 레이드 게이트 안에만 신성의 신전과 필터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진유성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한국에 열리는 보스 레이드 게이트의 씨를 말리고, 말리고 또 말린다.
그러다 보면 마도사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일 터.
진유성을 죽이려고 하거나, 더는 한국에 게이트를 열지 않으려고 하거나.
전자라면 찾아오는 놈들과 맞서 싸우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록펠러의 경우에도 느꼈지만, 놈들의 역량은 결코 낮지 않았다.
이는 태어나자마자 서역의 지배자가 될 정도의 힘을 타고난 이들이 수백 년간 기술을 연마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그들이 지닌 무력 자체는 진유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백 번 싸우면 백 번을 전부 이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상실의 공간>을 본뜬 <신성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입멸공의 가르침에 따르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는 역(力), 운(運), 시(時), 소(所)의 네 가지.
이는 힘과 운, 때와 장소를 의미했다.
힘과 운은 통제할 수 없는 선천의 영역이었다.
인간이 갈고닦은 힘과 하늘이 내리는 운은 전투 중에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때와 장소는 선택의 영역.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곳에서 싸우는 것은 승리를 노리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였다.
한데, 진유성은 소(所)를 등한시했다.
록펠러가 함정을 파고 있다는 걸 직감했으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프라하에서처럼 록펠러가 도망을 칠까 봐 그랬다는 건 변명일 뿐이었다.
진유성은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신이 아닌 이상 종종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고, 실수를 통해 뭔가를 얻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유성은 더는 실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세쌍둥이 마도사와 첫째, 둘째와 싸움을 벌일 때는 록펠러 때와는 다를 것이다.
아무튼, 마도사들이 에너지를 훔쳐 가는 진유성을 죽이려고 할 때는 싸우면 그만이었지만 꼭 그럴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두려움을 느낀 놈들이 한국에 게이트를 열지 않고 도망 다닐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보스 레이드 게이트를 클리어할 생각이었다.
놈들이 도저히 싸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게다가 진유성은 이제 마스터 플레이어의 자격을 증명한 곳으로 마음껏 이동할 수 있었다.
해외를 돌아다니는 게 딱히 크게 부담되는 일도 아니라는 뜻.
결국, 이건 지구력 싸움이었다.
마도사들의 인내심이 떨어지거나, 자신이 지치거나.
하지만 진유성은 결코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고작 이런 일로 지칠 인물이었다면, 중원의 평화를 위해 수십 년간의 외로움을 참지 않았을 테니까.
또한, 중원에 머물렀을 때와 달리 진유성에게는 이제 감정을 교류할 인물들이 있었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면담실과 3학년 건물을 사이의 교정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휘익!
어디선가 손이 날아와서 진유성의 등짝을 노렸다.
딴에는 기습이라고 한 것 같았지만, 진유성은 등짝을 노리는 이가 살금살금 다가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상소윤이었다.
진유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다가 타격 순간에 몸을 슬쩍 움직였다.
워낙 완벽한 타이밍이었던지라, 균형을 잃은 상소윤이 철푸덕 넘어졌다.
진유성이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이 철없는 것을 19살이라고 보겠는가. 하는 짓을 보면 9살 여아와 다른 게 없다.
“아야…….”
무릎을 부딪친 상소윤이 아파하다가 진유성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좀 맞아 줘!”
“싫다. 박색한 것에 닿으면 박색해진다.”
“나 안 못생겼거든?”
“시력까지 나쁘구나.”
한참을 투덜거리던 상소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담하고 왔냐?”
“그래.”
사실 새 학기 면담은 개학날 해야 했지만, 독도 게이트가 생기며 유야무야됐다.
물론 독도에서 S급 게이트가 터진다고 해도 서울에는 아무런 여파가 없었다.
독도뿐만 아니라 제주도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바다에서 반경 수십 킬로미터짜리 폭발이 일어나면 해일이 밀려와야 정상이지만, 게이트 폭발을 그렇지 않다.
게이트 폭주로 인한 폭발은 딱 그 폭발 반경 안만 소멸시켰다.
충격파가 퍼지지도 않고, 후폭풍도 없었다.
사실 이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꽤 큰 난제였는데, 진유성은 그 이유를 알았다.
세쌍둥이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인간들이 적극적으로 게이트 클리어를 궁리해야만 아카식 레코드를 오염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많은 에너지를 쓰는 건 부담스러웠기에 아주 제한적인 폭발만 일으키는 것이다.
“쌤이 뭐래?”
“그냥 평범했다. 왜 자판기를 고장 냈는지, 왜 1학년 반에 가 있었는지.”
“……하나도 안 평범한데?”
상소윤이 진유성을 어이없게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너한테도 꿈이 뭐냐고 물어봤냐?”
“물어보더구나.”
“뭐라고 했냐?”
“세계 평화.”
“미친놈이냐?”
“허어, 오라버니한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어우, 지겨워.”
“그러는 너는 꿈이 뭐라고 했느냐?”
“비밀인데?”
“사실 하나도 안 궁금했다.”
그렇게 대꾸한 진유성이 교실로 향하자, 상소윤이 쫄래쫄래 뒤를 따르며 스마트폰을 열심히 쳐다봤다.
어찌나 열심히 보는지 넘어질 뻔한 것을 두 번이나 잡아 줬는데도 변함이 없었고, 이쯤 되니 진유성도 궁금해졌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어? 아, 입덧.”
“입덧?”
“엄마가 요즘 입덧이 너무 심한 거 같아서.”
상소윤의 말처럼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든 유혜연은 입덧을 시작했다.
본래 입덧은 2~3개월 차에 가장 심하다고 들었는데, 유혜연은 막상 그때는 괜찮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최근 들어 심해진 것이었다.
진유성이 기감으로 신체의 변화를 감지해 입덧을 치료해 주려고 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쳐 줄 수는 있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서 하지 못했다.
진유성과 상소윤은 자리에서 서서 함께 스마트폰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수정란을 발육시키기 위해 분비되는 융모성선 때문이라는데?”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증상이 완화되는지를 찾아봐라.”
“음…… 공복이 오면 더 심해지니까 조금씩 음식을 자주 섭취하래. 녹차나 우유도 좋고.”
“집에 갈 때 우유를 좀 사 가야겠군.”
“그래. 맨날 아이스크림만 사 오지 말고.”
“내가 사 오면 너도 먹잖느냐.”
“있으니까 먹는 거지.”
“아이스크림도 공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찬 건 안 좋은 거 아니야?”
“그런가?”
진유성은 상소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왜 웃냐?”
“웃기게 생겨서.”
“너?”
“너.”
사실 진유성이 웃은 건 상소윤 때문은 아니었다.
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걱정하는 본인 스스로가 낯설어서였다.
오랜 삶을 살아왔지만 한 번도 이래 본 적이 없었다.
중원에 있을 때 수하의 자식이 태어난 것을 축하해 준 적은 있었지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쯤에는 게이트 사태가 종결되면 좋겠군.’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고, 상소윤이 다시 뒤를 따랐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지종수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다정하게 걷다가 함께 핸드폰을 보다가, 다시 다정하게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진유성……!”
지종수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적(?)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지극히 평범한 대정고의 일상이었다.
* * *
파르르르르!
진유성의 검이 묘한 소리를 토해 내며 흔들거렸다.
분명 연검이 아닌 장검이었는데, 낭창거리며 휘는 것이 꼭 연검 같았다.
진유성의 날카로운 공격에 상림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지 마라!”
진유성의 호통에 상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용감하게 진유성의 검영(劍影) 속으로 뛰어들다가…….
“으아아악!”
도망쳤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검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딱!
결국, 오늘도 비무의 끝은 진유성의 손바닥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이었다.
개구리처럼 철푸덕 넘어진 상림의 모습을 보며 진유성은 상소윤을 떠올렸다.
‘딸이랑 넘어지는 자세도 똑같군.’
물론 이걸 입 밖으로 꺼내면 상림이 화낼 것 같아서 참았다.
평소엔 자신의 앞에서 지극히 소심한 상림이지만, 딸과 관련되면 제법 기운을 세웠다.
아마도 이게 부정인가 보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상림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교주님. 근데 좀 억울합니다.”
“뭐가?”
“왜 맨날 뒤통수를 때리면서 비무가 끝나요? 좀 멋지게 쓰러트려 주실 수도 있잖아요.”
“손맛이 있어.”
진유성이 입맛을 다시다가 말을 이었다.
“대머리면 좀 더 손맛이 있지 않을까? 머리카락이 좀 거슬리는데.”
“…….”
손맛이 있다는 말에 진유성에게 반항하려던 상림이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말을 꺼내면 불리해리라는 걸, 진유성을 보필한 수십 년의 경험으로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안 그래도 요 며칠간 상림은 진유성에게 쉼 없는 갈굼을 먹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게이트에서 본인을 신으로 믿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 안에 상림이 없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였다.
상림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한 일이었다.
분명 진유성은 신보다는 인간이길 원했다.
그리고 상림이 보기에 진유성은 확실한 인간이었다.
신이었으면 저렇게 철이 없고, 생각이 없고, 계획이 없고, 즉흥적인 데다가, 못되지 않을 거니까.
본인이 인간이길 원해서 인간으로 생각해 주는데 화를 내다니?
인간성이 실종된 인간임이 틀림없다.
한마디로 인간도 아닌 인간이었다.
‘그래서 인간 같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나?’
딱!
진유성이 상림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제 얼굴이 불경해 보였나요?”
“어.”
“인정합니다.”
“겸허히 수용했으니 한 대로 끝내 주마.”
진유성과 상림이 비무를 벌인 곳은 압구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룡산이었다.
구룡산은 고도가 높다거나 산세가 험한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본래 무공은 심신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했다.
상림은 그동안 잃어버린 내공을 되찾으며 심기(心器)를 갈고닦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그릇이 완성되었으니, 신기(身器)를 갈고닦을 때가 되었다.
물론 신기를 갈고닦는 최고의 방법은 고수한테 맞아 가면서 배우는 것이었고.
그 뒤로도 한참 상림을 때리던, 아니 가르치던 진유성이 검을 거두었다.
그러곤 상림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림아, 네가 보기엔 내가 좀 더 강해진 거 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