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94화>
* * *
전 세계의 시선이 한국에 쏠렸다.
각국의 시선 속에는 축하, 부러움, 질투, 의심, 당황의 감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독도에 열린 S급 게이트.
그것이 클리어 됐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S급 게이트에는 전대미문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
지난 시대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S급 게이트의 클리어률이 제로라는 것은 그 내부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미션이 있고, 어떤 난이도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총 99명의 각성자들이 S급 게이트에 들어갔고, 99명의 각성자들이 나왔다.
부상자는 있었지만, 천운이 따랐는지 사망자는 없었다.
이 말은 곧 S급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가진 99명의 정보원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사실 사망자가 없다는 것 때문에 작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도의 게이트가 사실 S급 게이트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의심은 일본으로 번졌다.
독도에 S급 게이트가 열릴 거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국가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으니까.
세계 정상들은 일본과 한국이 합을 맞춰 짜고 친 게 아닐까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합리적인 의심이 아니었다.
일단, 그렇게 할 이유조차 없었다.
S급 게이트 최초 클리어는 전 지구적으로는 큰 성과였지만, 국가적인 이익은 거의 없었다.
그저 한국이 가진 각성강국으로서의 이미지가 굳건해진 정도?
그에 반해 일본은 잃은 게 너무나 많았다.
우선 일본의 자충수는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
일본은 영유권 분쟁 지역의 게이트를 함께 클리어하자며 한국에 각성자를 파견했다.
이것이 한국을 외통수로 몰아넣는 신의 한 수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팀 우산도 덕분에 일본의 외통수는 스스로의 목을 물게 되었다.
팀 우산도가 정말로 독도에 발을 디딘 순간, 기겁한 일본 내각이 일본 각성자들의 철수를 명했으니까.
이 행동은 일본의 얄팍한 술수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결과만 불러일으켰다.
일본은 더 이상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힘들어졌다.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서 함께 클리어해야 한다는 논지 자체를 본인들이 부정해 버린 꼴이 됐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에서 우스운 모습을 보였지만 일본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독도 게이트에서 한국의 고위 각성자들이 전부 죽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렇게 된다면 국가 간의 각성 순위가 바뀔 것이고, 한국이 멍청한 짓을 했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바람도 헛된 희망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게이트가 클리어됐으니까.
이제 일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독도의 게이트가 애초에 S급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전 세계에 발표한 내용이었으니까.
그사이 한국은 한지후 소장의 진두지휘하에 일본과 체결했던 조약을 들이밀었다.
[일본이 각성자 파견을 취소한다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라.]
이는 일본이 한국의 발악을 블러핑이라고 생각하고 체결했던 조약이었다.
한국이 조약을 들이밀자 일본은 우물쭈물할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조약을 인정하자니 문제가 많고, 인정하지 않자니 증거가 많다.
결국, 일본이 선택한 것은 파워 게임이었다.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에게 정치적 싸움을 거는 것이었다.
미국, 영국, 중국 등등의 강대국들이 일본의 편을 들어 주면 조약을 무효화할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실제로 일본은 한국보다 국제적으로 더 큰 발언권을 가진 나라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일본이 한국을 이길 수 없었다.
한국은 전 세계의 국가가 원하는 정보를 쥐고 있었다.
무려 S급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한국은 일본이 <영유권 주장 철회 조약>을 국제 질서 속에 공식화하기 전에는 S급 게이트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다고 천명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의 각성자 사이에는 친SG 계파가 있고, 친한국 계파가 있었다.
한국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친 SG 계파의 반대를 이겨 내야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친 SG 계파도 한국의 이러한 행보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도 알고 있으니까.
운 좋게 살아났지만, 팀 우산도가 본래 죽음을 각오했다는 걸.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는 걸.
처음, 각국의 정상들은 한국을 압박했다.
세계의 위기인 S급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한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게 그릇됐다는 논리였다.
물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논리를 이기는 건 무논리였다.
한국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다.
‘배 째.’
일본이 조약을 인정하기 전에는 죽어도 S급 게이트 정보를 공유하지 않겠다.
그러자 이제 상황이 바뀌어 각국의 정상들이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S급 게이트는 하나의 국가 자체를 없애 버릴 수도 있는 치명적인 위험이었다.
그러니 다들 S급 게이트 정보를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흐른 뒤, 일본 정부는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한다.]
정부의 공식 발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일본이 드러냈던 독도에 대한 야욕.
그것이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 * *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하지만 99명의 증언이 모두 일치합니다.”
“정신계 각성자를 동원해서 증언을 검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SG 한국 본부장의 도를 지나친 요구에 한지후 소장이 설핏 인상을 찌푸렸다.
“이들은 모두 하이 랭커와 랭커이며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굳건한 의지를 가진 이들입니다. 어지간한 정신계통의 검증으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아멜라 메건을 파견할 수도 있다고 전해 왔어요.”
“본부장님.”
한지후가 SG 본부장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왜 그들을 의심하십니까? 우산도의 일원들이 전부 죽었어야 의심을 안 하셨을 겁니까?”
“한 소장님, 제가 뭐 나쁜 마음으로 그럽니까? 정황이 믿기 힘들잖아요. 정체불명의 각성자가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게 믿깁니까?”
“네. 저는 믿습니다.”
“세상엔 믿음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본부장을 노려보던 한지후 소장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기분이 나빠진 본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본부장님, 제가 조언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지 말라면 안 할 겁니까? 해 보세요.”
“팀 우산도가 이대로 해체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뭐요?”
“각성자들은 엄밀히 따지면 국가와 계약을 맺은 SG가 고용한 프리랜서입니다.”
기업, 방범 업체, 방범 업체 소속 계약직 직원.
국가, SG, 각성자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비유였다.
“한데 프리랜서들이 국가와 SG가 하지 말라던 일을 해냈습니다. 그것도 오직 정의를 위해서요.”
SG 본부장의 표정이 슬쩍 바뀌었다.
그도 한지후 소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것이었다.
“팀 우산도는 함께 역경을 이겨 낸 동료들이자 동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 내 SG를 이끌어 가는 암묵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그리고 SG는 각성자들의 사조직을 인정하지 않아요.”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조직을 지양하는 거죠. 개인적인 친분으로 뭉치는 것을 어떻게 막습니까?”
현재 한국의 각성자 대부분은 팀 우산도에게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99명의 각성자가 독도 게이트 클리어를 위해 죽음으로 달려갈 때, 그들은 외면했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의 사정은 있었다.
아내가 얼마 전 아이를 가졌거나, 나이 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든가, 이제 막 결혼을 했다든가.
그러나 팀 우산도에도 이러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팀 우산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 것이고, 나머지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질 수는 없었다.
각자의 가치관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각성자들은 팀 우산도의 멤버들에게 존경과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즉, 앞으로 팀 우산도가 어떤 행보를 보여도 지지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한지후 소장은 SG 한국 본부장을 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팀 우산도가 전부 본부장님을 보이콧하면 어떨까요?”
“뭐, 뭐요?”
“예를 든 겁니다. 본부장님이 적극적으로 정신 감정을 진행하고 싶어 하시는 거 같아서.”
“…….”
“본부장 임명은 SG 본부에서 하는 것이지만, 각성자들이 의견을 모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본부장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팀 우산도가 결성되자마자 가장 정치적으로 움직인 자가 눈앞에 있는 한지후 소장이라는 걸.
즉, 한지후 소장은 팀 우산도의 대변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국무총리까지 움직인 육사 출신의 한지후 소장이 우산도를 등에 업었다면?
냉정히 따져 보았을 때, 그 영향력은 자신을 능가할 수도 있었다.
“…….”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가 보죠.”
현실을 직시하고 자세를 낮춘 것이었다.
본부장의 뒷모습을 본 한지후 소장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각성자들을 위해서지만 본부장을 협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협박이 먹힌 것은 그가 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팀 우산도에는 그만한 힘이 생겼다.
또한…….
“저희는 모두 은혜를 입었습니다. 단순히 목숨을 구해 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르침을 내려 줬죠.”
한지후 소장은 전 세계에서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아이언맨 헬멧을 쓴 정체불명의 남자는 각성자들을 살렸고, 그들에게 더욱 강해질 수 있는 힌트를 주었다.
팀 우산도의 각성자들은 몇몇 인터뷰 일정을 제외하면 전부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건네준 가르침을 소화하기 위해서.
“머지않은 미래에 팀 우산도는 모두가 하이 랭커가 될 것입니다.”
“한 사람 덕분에요.”
생각해 보면 소름 돋는 일이었다.
한 나라의 각성자 순위 1위부터 200위까지를 하이 랭커라고 부르는데, 그중 99명이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 건 이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과 이타심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그 남자는 누굴까?’
그는 게이트 안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에 대해 들었지만, 딱 한 가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그의 신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분위기를 보건대 그자가 어쩌면 얼굴이나 이름을 밝힌 것 같기도 했다.
99명의 각성자들이 모두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었고, 뭔가를 숨기는 기색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지후 소장은 감히 정체불명의 남자에 대해 추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독도 게이트에 들어간 것은 99명의 각성자뿐만이 아니었다.
99명의 각성자와 1명의 구원자.
그리고 모든 이들은 그들이 구원받았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기회가 온다면 은혜를 갚아야겠죠.”
사실 이와 비슷한 일은 중원에서도 있었다.
진유성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생존대와 마교도들이 하나로 뭉쳐서 중원을 통일했던 것.
그리고 중원인들은 그 세력을 천마신교라 불렀다.
진유성이 모르는 곳에서 한국의 천마신교가 움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