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92화>
Quest 19. 다짐하는 천마님
영원히 공간을 채울 것 같던 하얀빛이 사라지는 순간.
진유성은 자신의 내공에 대한 통제권이 돌아왔음을 느꼈다.
공격이 성공한 것이었다.
“큭.”
하지만 진유성은 비틀거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수백 명에게 멍석말이를 당한 것처럼 온몸이 아려 왔다.
이번 공격은 그에게도 굉장히 부담되는 것이었다.
본래 막대한 내공이 필요한 입멸공의 오의를 순수한 의념만으로 전개했으니 말이었다.
내공과 의념은 별개였다.
두 힘이 융합되면 상호 작용을 발휘했지만, 힘의 근원은 각기 다른 곳에 있다.
내공이 천지간의 기운을 단전에 담아 두는 것이라면, 의념은 의지를 응축한 힘에 가깝다.
의지는 무한하면서도 유한했다.
이론적으로 무한한 의지를 품을 수 있지만, 인간이란 그리 강한 생명체가 아니다.
순간마다 마모되고 조금씩 깎여 나가는 것이 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은 막대한 의지를 일으켜서 입멸공을 사용한 것이었다.
만약 공격이 실패했다면 상단전에 큰 손상을 입고 백치가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진유성은 성공했다.
제아무리 위험한 순간에도 올바른 길을 찾아내는 것인 진유성의 진정한 힘이었다.
진유성은 의념이 소모되고 몰려온 고통 속에서도 마음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렸다.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적이 있는 이상, 아직은 쉴 때가 아니었다.
진유성이 고개를 들어서 록펠러의 상태를 확인했다.
놈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영기가 압축되어 있던 신체 곳곳에 균열이 생겼고, 그 균열을 통해 영기가 줄줄 새어 나갔다.
영기가 새어 나간 균열의 틈.
그 사이로 새까만 악기가 언뜻언뜻 보였다.
올드 캐슬에서 느꼈던 그 기운이다.
‘껍데기가 부서지고 알맹이가 드러났군.’
진유성은 록펠러의 상태를 꿰뚫어 보았다.
록펠러는 신성의 공간이라 명명한 이곳에서 스스로를 신으로 옹립했다.
공간의 모든 법칙과 흐름이 록펠러를 중심으로 흘렀고, 진유성조차 그것을 거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입멸공 최종오의는 그 흐름에 진유성의 존재를 강제로 각인시켰다.
컴퓨터도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다운이 되고, 프로그램도 오류 하나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
그리고 신성의 공간의 복잡성은 컴퓨터나 프로그램 따위를 아득히 뛰어넘는 고차원이었다.
그 탓에 록펠러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수백 년을 준비한 신성의 공간의 법칙이 찰나에 부서진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쉬이이이익!
진유성의 검이 날아와 록펠러를 공격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록펠러는 어떠한 방어나 반격도 하지 못하고 공격에 직격당했다.
[크아아아악!]
록펠러가 비명을 질렀다.
진유성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영기가 깎여 나가고, 악기가 소멸했다.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신성의 공간이 약동하더니 붕괴가 시작됐다.
[진유성-!]
고통과 분노에 찬 록펠러가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신의 상태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진유성의 방어를 불안정한 상태로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싸움이 거듭될수록 록펠러의 영기와 악기는 소모되고, 공간의 붕괴가 가속화됐다.
록펠러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의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 그는 소멸당하고 말 것이다.
위대한 신이 되어야 할 자신이, 존재에 대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리라.
‘그럴 순 없다.’
록펠러가 이를 악물었다.
최악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후의 한 수가 있긴 했지만 이것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싸움에서 승리할 순 있겠지만, 그동안 이룩했던 대부분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동안 게이트를 통해 착취한 인간의 모든 영성이 흩어지고,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마력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진유성을 이긴다고 하더라도 진유성의 영성을 전혀 흡수할 수 없었다.
록펠러가 독도를 통해 함정을 판 이유는 진유성을 죽여 그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영성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수를 사용하게 될 경우, 진유성을 이기고 나서도 아무런 전리품을 얻지 못했다.
즉,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형제들에 비해 월등히 약화된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들키는 순간, 첫째와 둘째는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집어삼키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소멸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미래의 생존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하더라도, 아예 제로인 것보다는 낫다.
결심을 내린 록펠러가 두 손을 펼쳤다.
그의 온몸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진유성! 네가 자초한 일이다!]
인류 최악, 그리고 최고의 마도였던 록펠러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쥐어짰다.
본래 이 수법은 세쌍둥이 중 한 명이 낙오되고, 둘만 남았을 때를 대비한 수법.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수법 따위가 아니었다.
살도 내주고 뼈도 내주지만, 상대의 목숨만은 거둬 가는 고육지책이었다.
최후의 싸움에서는 아무리 큰 피해를 입어도 살아남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드드드드드-!
붕괴하던 공간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공간의 근원을 구성하던 힘들이 맹렬히 압축됐다.
신성의 공간을 구성하는 힘의 근원은 록펠러를 신으로 모시는 이들에게서 나온 정신 에너지이다.
록펠러는 인간의 신앙 따위가 왜 이렇게 큰 힘을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신성의 공간을 만들 단서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신력’이란 이름을 붙이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신력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특성은 신력이 아닌 힘을 모두 배척한다는 것.
록펠러가 신성의 공간에서 자신의 본래 힘인 악의의 영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그의 새까만 악기는 신성의 공간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력에게 배척 받으니까.
사실 진유성이 가진 내공도 이 공간 안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심검은 신력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타인이 록펠러를 믿음으로써 나오는 힘이 신력이라면, 진유성이 스스로를 믿음으로써 나오는 힘이 심검이니까.
어찌 됐든 신력과 심검은 비슷할 뿐 다른 힘이다.
때문에 록펠러가 준비한 마지막 수는 진유성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록펠러의 마지막 수는 간단했다.
추방.
모든 힘을 배척하는 신력의 성질을 극대화시켜 모든 것을 추방한다.
지금까지는 신성의 공간이 록펠러의 의지에 따라 흘렀다면.
이제부터는 본연의 성질에 따라 흐르리라.
신력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배척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록펠러도 버틸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추방 주문]이 완성되는 순간, 그동안 록펠러가 모아 온 영성과 마력 모두 추방된다.
그러나 록펠러는 존재 자체가 추방되지는 않았다.
그를 신으로 모시는 수천만의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진유성은 존재 자체가 추방된다.
중원에 진유성을 신으로 모시는 인간들이 있다지만, 중원의 신력은 이 세계로 전달되지 않았다.
차원이 다른 탓이었다.
그렇기에 진유성의 내공이 추방되고, 육신을 구성하는 모든 기운이 추방되고, 마침내 존재 자체가 이 세계에서 추방될 것이다.
이것이 록펠러의 마지막 수였다.
드드드드드!
신력이 일점으로 압축됐다.
꾸역꾸역 모여드는 신력이 점차 록펠러의 제어를 벗어나더니…….
막대한 인력을 발휘했다.
모여드는 힘이 끌어들임을 만들고, 끌어들임이 모여듦을 만들었다.
인과가 역전되고, 공간 안의 모든 법칙이 소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신력 그 자체가 가진 힘의 성질뿐이었다.
소멸의 위기 앞에 모든 것을 내던진 록펠러가 소리를 질렀다.
[이곳은 신성의 공간!]
[신이 아닌 자들을 추방할지어다!]
록펠러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공간을 뒤흔들던 진동 소리가 사라졌다.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침묵 속에서 파동이 일어났다.
고요한 수면에 물방울이 하나 떨어진 것처럼, 신력이 모인 일점을 중심으로 파동이 펴져 나갔다.
파동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 것은 록펠러였다.
[크아아아아아!]
록펠러가 비명을 질렀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느껴진다.
타고난 마력과 그동안 모아 온 영성이 전부 사라지는 데서 오는 탈력감과 허무함.
손과 발이 사라지고, 몸과 머리가 사라지는 느낌.
온 우주에 홀로 남아 영구한 세월을 보낼 것 같은 지독한 고독.
그 허무함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지른다.
록펠러의 비명을 들으며 공간의 변화를 느낀 진유성이 검을 붙잡았다.
그러곤 파동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온몸을 울리며 파동에서부터 시작된 이명이 진유성을 휩쓸었다.
“큭!”
내공이 사라졌다.
단전을 가득 채운 막대한 내공이 뭔가에 밀려나듯이 흩어졌다.
진유성은 이를 악물고 대항하려 했지만, 대항할 수가 없었다.
‘이건…….’
천신궁 게이트 안의 상실의 공간.
거기서 내공을 빼앗겼을 때와 똑같은 감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공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한데 놀랍게도 진유성은 모든 내공을 잃은 건 아니었다.
록펠러가 버티지 못했던 신력의 추방을 견뎌 낸 것이었다.
하지만 파동은 백사장의 파도처럼 또다시 밀려왔다.
두근.
두근.
두근.
탈수기가 물기를 털어 내듯, 끝없는 파동이 진유성의 몸에서 내공을 털어 냈다.
진유성은 한 줌의 내공을 제외한 모든 내공을 잃어버렸다.
록펠러는 진유성이 극소량의 마력을 품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요소는 아니었다.
그 순간, 압축된 일점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던 파동이 멈췄다.
파동의 성질이 변했다.
이번에는 안에서 밖이 아닌, 밖에서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것에선 신력을 품지 않은 존재를 추방하는 힘이 느껴졌다.
록펠러는 그 파동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이 추방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웠다.
그것을 떨쳐 내기 위해 록펠러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끝이다, 진유성.]
파동이 진유성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두근.
* * *
진유성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몰려와서 자신을 밀어냈다.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진유성은 버티고 버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찰나를 버틴 것 같기도 하고, 하루를 버틴 것 같기도 했다.
한 시간을 버틴 것 같기도 하고, 칠 주야를 버틴 것 같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희미해졌다.
그의 주변에는 오직 신력과 신력이 아닌 것을 배척하는 힘만이 가득했다.
다시 한번 거대한 힘이 몰려왔다.
진유성은 힘의 파동을 느끼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또한 버티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존재 자체를 추방하려는 힘을 견디는 자신의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느껴졌다.
아주, 아주, 희미했다.
하지만 굳건했다.
진유성은 그 굳건한 무언가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곤 휘둘렀다.
* * *
김운철은 어머니의 묘에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던 김운철은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야산을 돌아보다가 절을 올렸다.
-그대 어미의 보금자리를 지키게 돼서 몹시 기쁘도다…….
-무엇도 아니다. 나는 백성들을 삿되게 괴롭히는 게이트를 막기 위해 내려온 천신(天神)이다.
그가 믿고 있는 신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