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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91화 (9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91화>

* * *

세쌍둥이는 그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들의 영성을 흡수한 그들의 격이 한계에 도달하고 나면…….

셋 중 하나만 살아남는 싸움이 시작된다.

싸움의 승자는 패자들의 영성을 모조리 흡수해 신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패자는 승자에게 모든 것을 흡수당해 존재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예정된 미래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존재의 소멸을 바라진 않았다.

세쌍둥이는 각자의 방법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고, 이것은 록펠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록펠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형제들을 이길 방법을 고민했다.

이것은 철학적 난제와도 같다.

세쌍둥이의 힘은 본질적으로 똑같기에, 내가 나를 이기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조력자.

하지만 대체 누가 그들과 나란히 서서 ‘도움’이란 걸 줄 수 있단 말인가?

진유성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록펠러는 인간들을 벌레처럼 생각했다.

서역에서도 소드 마스터니 뭐니 하는 무인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독을 품고 있고 성가신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조심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었다.

사실 진유성이 등장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진유성은 자신들처럼 특별한 존재였다.

그저 그들이 신의 영역으로 마음을 던졌다면, 진유성은 아둔하게 인간의 영역에 마음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록펠러가 주목한 건 상실의 공간이었다.

그는, 그리고 그들은 상실의 공간에서 [관리자]에게 패배했다.

[관리자]가 신인지, 아니면 신의 대리인인지, 그도 아니면 초월적인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관리자라는 명칭도 그들이 임의로 붙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명칭을 붙인 이유는 있었다.

[관리자]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저 상실의 공간의 규칙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록펠러는 상실의 공간에서 관리자와 사흘 동안 싸웠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관리자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싸움을 질질 끌면서 상실의 공간을 구성하는 놀라운 법칙들을 훔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록펠러가 인류 최고의 마도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록펠러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알아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상실의 공간은 공명정대한 공간이었다.

[관리자]는 마음만 먹는다면 록펠러와의 싸움을 훨씬 쉽게 풀어 갈 수도 있었다.

공간의 모든 규칙이 [관리자]의 의지에 따라 흐르기에, 그는 록펠러의 마도술을 원천 차단할 수 있었다.

마도술의 근간이 되는 마력을 봉인하면 그만이니까.

아니, 마력을 봉할 필요도 없다.

산소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의 신체를 지니고 있던 록펠러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관리자]는 그러지 않았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

스포츠맨십을 가진 운동 선수처럼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고 싸움을 벌였으니까.

둘째, 상실의 공간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경계에 서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을 구성하는 건 관성이나 진실이 아니다.

인식(認識)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록펠러의 손가락은 태어났을 때부터 다섯 개였다.

하지만 상실의 공간 안에서 록펠러가 ‘내 손가락은 여섯 개다’라고 확실히 인식하면…….

그의 손가락은 여섯 개가 된다.

물론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식이란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고, 진실로 그렇게 여겨야 했다.

록펠러는 [관리자]와 사흘 밤낮을 싸웠고, 패배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의 힘이 약해서 패배한 것일까?

아닐 수도 있다.

록펠러는 [관리자]와 싸움을 벌이는 순간부터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고 인식했다.

짧으면 이틀, 길면 사흘 정도 싸움 끝에.

그래서 그동안 이 신비한 공간의 비밀을 파헤치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록펠러가 그렇게 인식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만약 승리를 확실히 믿었고, 그 방법을 확실히 인식했다면?

이겼을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 생각해 봐도 불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가능성 자체는 있었다.

록펠러는 지구에 떨어진 이후 수백 년간 상실의 공간을 연구하고,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상실의 공간을 재현할 수 있다면, 그의 쌍둥이 형제들을 참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실의 공간을 구성하는 법칙은 모방할 수는 있었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근원은 모방할 수가 없었다.

에너지 총량의 문제는 아니었다.

에너지의 성격을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록펠러는 우연한 기회에 정답을 알게 되었다.

아직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던 시기.

아카샤의 눈을 피해 인간의 영성을 착취할 방법을 모색하던 록펠러는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신앙을 이용해 보면 어떨까?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라면 영성을 착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서부의 흑인들이 서인도제도로 팔려올 즈음에, 그들의 종교를 변형시켰다.

카톨릭을 기반으로 하는 토착 종교를, 로아(Loa)라고 부르는 정령(精靈)과 사령(死靈)에 대한 숭배 집단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었다.

이게 세간에 <부두교>라고 알려진 종교의 시작이었다.

부두교가 숭배하는 정령과 사령 Loa는 록펠러였다.

그렇게 수백만의 신자를 거느리게 된 록펠러는 그들의 신앙을 통해 영성을 착취하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상실의 공간을 구성하는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 보내오는 정신적 에너지였다.

근원의 성질에 대해 깨닫게 된 이상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록펠러는 이후에도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이비 종교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곤 그들의 정신 에너지를 모아서 상실의 공간을 모방한 <신성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는 록펠러의 사이비 종교 놀이를 부를 축적하기 위한 유희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록펠러가 첫째와 둘째를 누르고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한 비장의 한 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게이트를 열고, 영성을 착취할 수 있게 되면서 록펠러의 계획은 가속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신성의 공간이 탄생했다.

신성의 공간은 상실의 공간을 모방했지만, 성격은 매우 달랐다.

이곳은 공명정대한 공간이 아니며, 인식의 힘이 통하는 공간도 아니다.

록펠러의 뜻에 따라 모든 법칙이 흐르고, 불확실과 확실히 정해지며, 인과가 정해진다.

설령 진유성이 상실의 공간에서 [관리자]를 이겼더라도 상관없다.

신성의 공간 안이라면 록펠러 역시 [관리자]를 이길 수 있다.

이기는 것뿐만이 아니다.

손가락으로 개미를 눌러 죽이는 것처럼 농락할 수도 있다.

이 공간 안에서 록펠러는 유일하고 전능한 신이니까.

[인간의 길을 택한 중원의 절대자여.]

[이 안에서는 내가 신이다.]

신의 눈길이 진유성에게 닿았다.

* * *

록펠러가 광소를 터트리는 순간, 진유성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아놀드 벡의 검에서 피어오른 심검이 빛처럼 움직이며 록펠러의 가슴을 찔렀다.

프스스스스.

하지만 록펠러는 연기처럼 사라지고는 진유성의 등 뒤로 나타났다.

록펠러의 손에서 뿜어진 새하얀 기운이 진유성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록펠러가 심검의 기운을 뿜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진유성의 착각이었다.

록펠러를 신으로 모시는 인간들의 정신적 에너지가 집약된 것을 그렇게 느낀 것뿐이었다.

진유성은 상황을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얼추 이해했다.

이 공간 안에서 록펠러는 신이다.

퍼퍼펑!

진유성의 검이 록펠러의 공격을 잘라 내고 반격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진유성이 검이 록펠러를 찌르고, 자르고, 토막을 내도 록펠러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이곳은 그의 영역이니까.

[굉장하군, 진유성.]

록펠러가 감탄했다.

진유성의 공격력은 0에 수렴하고, 자신의 공격력은 무한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공격은 진유성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진유성이 모조리 방어해 내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록펠러가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이 새하얗게 빛나며 공간의 기운이 변모했다.

신성의 공간을 구성하는 힘의 근원이 도도하게 흐르더니, 진유성을 배척했다.

[어떠하냐? 이제 너는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록펠러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유성의 단전에 잠들어 있는 막대한 내공이, 진유성의 의지를 배신했다.

내공이 움직이지 않았다.

록펠러가 내공의 움직임을 봉한 탓이었다.

“흐음…….”

진유성이 턱을 긁적였다.

내공의 움직임을 봉했다는 건, 록펠러의 권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말 전능했다면 내공 자체를 없앴을 테니까.

이 자식이 신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유성은 개의치 않았다.

뭐가 됐든 전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진유성, 순순히 영성을 내놓는다면 너를 나의 사도로 받아 주마.]

[너는 내 뒤에 설 수 있는 존재이다.]

진유성이 코웃음을 쳤다.

“이 자식이 미쳤나? 벌써 이긴 것 같아?”

[네 힘으로는 날 이길 수 없다.]

“어디 건방지게 평가질이야?”

진유성이 온몸의 힘을 풀었다.

그는 스스로를 믿었다.

무인이란 마음 안에 한 자루의 검을 곧게 세워서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

스스로의 믿음으로 무를 완성시키는 존재들.

가슴속에 소우주(小宇宙)를 품은 존재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를 배신한 적이 없다.

상대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

내공이 움직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나를 믿으니까.

진유성이 아주 부드러운 동작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진유성의 온몸에서 심검의 기운이 요동쳤다.

심검이란 의념을 극한으로 응집한 힘.

생각하는 것을 막지 않는 이상 심검을 막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내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심검이 거세게 요동침에도 진유성의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은 미동도 없었다.

그 모습에 록펠러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소용없다!]

록펠러의 손이 다시 한번 빛나며 신성의 공간의 법칙이 바뀌었다.

진유성은 주변의 모든 공기가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우주에 떨어진 것처럼 호흡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개한 진유성의 눈빛에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진유성의 검이 움직였다.

생(生), 사(死), 입(入), 멸(滅).

입멸공의 최종오의(最終奧義).

생은 모든 것을 살리는 힘이다.

사는 모든 것을 죽이는 힘이다.

멸은 모든 것을 지우는 힘이다.

그렇다면 입(入)은 무엇일까?

규칙에 개입하는 힘이다.

인과(因果) 사이에 자신을 각인시키는 힘이다.

본래 입멸공의 오의를 사용할 때는 막대한 내공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진유성은 어떠한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의념의 힘으로 최종오의를 펼치고 있었다.

입멸공(入滅功).

오의(奧義).

입(入).

진유성의 검이 공간을 격한다.

록펠러는 그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분명 아무런 마력도 담지 않은 일검이었다.

하지만 어찌하여 이토록 두려운 것일까?

록펠러가 뒤늦게 신성의 공간의 법칙을 조종해 검의 궤도를 틀어 버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아아아아악!

진유성의 검이 유려한 궤적을 그렸다.

그 아름다운 궤적의 끝에는.

록펠러가 서 있었다.

[――――――――!]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록펠러의 신언마저 집어삼키며 공간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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