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9화>
* * *
서역을 공포로 지배하던 세쌍둥이가 게이트를 연 이유는 간단했다.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인간이라 칭하기에 그들은 너무나 강했다.
강함은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어째서 우리가 인간인 거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인간과 우리가 어떻게 같은 종(種)일 수 있지?
우리는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여야 한다.
그렇기에 이토록 강한 힘을 타고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고, 끝내 게이트를 열었다.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 ‘보다 높은 세계로의 진입’을 신이 되는 길로 본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신이 되기는커녕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영혼백육(靈魂魄肉)중 백과 육을 잃고 망령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본래 백과 육을 잃는 인간은 자아를 잃고, 존재조차 잃어야 했다.
하지만 세쌍둥이는 마도 비술에 통달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영혼체 상태임에도 존재를 보존하는 데 성공했고, 자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호문클로스를 빚어 내 영혼을 투사하고, 인간의 세계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봄이 찾아오면 고드름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조금씩 자아가 마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로는 정해져 있는 필연과 같았다.
자아를 완전히 잃고 존재 자체가 흩어지든지, 자아를 잃기 전 폭주해서 아카샤에 의해 추방당하든지.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인간의 영성을 포식해 무한한 힘을 얻는 것.
영성(靈性).
영성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자원의 총체였다.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생명력의 근간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력은 동식물에게로, 동식물의 생명력은 인간에게로 전달된다.
인간은 땅에서 얻은 생명력을 바탕으로 아이를 잉태하고, 문화를 일군다.
그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인류(人類).
즉, 세쌍둥이는 인류를 구성하는 근간을 훔쳐 그들의 격을 높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렇게 되면 머지않은 미래에 이 세계의 인류가 사라질 테지만 그들이 인류의 안녕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의지는 충분했다.
문제는 아카샤의 눈을 속이는 방법이었다.
아카샤(????: ?k??a).
우주적 의지를 담은 절대 공간.
아카샤가 가진 ‘의지’는 인류의 번영이었다.
그리고 이 의지는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이종의 기운을 배척했다.
세쌍둥이가 아카샤의 의지에 반하는 힘을 쓰는 순간, 절대 공간이 그들을 색(色 : 물질)으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추방당하는 존재의 소멸과도 같았다.
세쌍둥이는 고민했다.
그들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카샤의 눈을 피해 영성을 포식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백 년이 흐르고, 그들은 점차 지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아카샤의 허점을 찾아냈다.
[아카샤는 무조건적으로 이종의 기운을 배척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돌연변이들도 추방당했겠지.]
이 세계에도 마도술을 사용하거나, 미약한 초능력을 타고나는 돌연변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힘의 총량이 하잘것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사이비 종교를 일궈 내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나이가 들면 백과 육이 쇠해 힘을 잃고 진짜 사이비가 될 뿐이고.
[아카샤가 모든 것을 기록하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
[그곳에 이종의 기운을 기록하면, 우리의 힘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다.]
첫째의 말에 둘째와 셋째가 반발했다.
[아카샤의 의지조차 피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아카식 레코드를 변형시킬 수 있지?]
[힘을 써야 아카식 레코드를 변형시킬 수 있지만, 아카식 레코드를 변형시키지 못하면 힘을 쓸 수 없다. 이건 모순이다.]
그러나 첫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아카식 레코드를 변형시키는 게 아니다.]
[아카샤의 의지는 너무나 깊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이 직접 아카식 레코드를 변형시키게 만들어야 한다.]
아카식 레코드.
인류가 공유하는 무의식의 보고이자, 세계의 기록.
그곳에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모든 의식과 무의식이 기록되며,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인류의 번영을 이끌었다.
모든 인간은 아카식 레코드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할 수 있는 이들은 고도로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인간일 뿐이었다.
그들도 아주 잠깐밖에 접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잠깐은 인류의 많은 것들을 발전시켰다.
인간의 과학 기술이 핵융합에 이르고, 우주로 나아가는 게 그저 천재들의 뛰어난 지능 때문일까?
아니었다.
그들의 무의식적으로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케쿨레는 벤젠의 구조식을 정립해 유기 화학의 지대한 발전을 이끌어 냈다.
한데, 그는 구조식의 힌트를 꿈에서 얻었다.
구조식에 대해 고민하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뱀의 형태를 한 원자가 자기 꼬리를 무는 모습을 보았다.
꿈에서 깬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기록했는데, 그게 바로 벤젠의 화학 구조식이었다.
이런 경험은 비단 케쿨레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원소 주기율표를 만들어 낸 멘델레예프도 꿈에서 답을 얻었다.
1869년 멘델레예프는 당시에 알려진 63개의 원소 사이에 규칙이 있을 거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깜빡 잠들고 말았는데, 꿈속에서 118개의 원소들이 위치해 있는 표를 보게 되었다.
그게 오늘날 세상에 알려진 주기율표였다.
재밌게도 당시에는 발견된 원소가 63개뿐이라서 과학자들은 주기율표를 무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어 있는 곳에 들어갈 원소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결국, 멘델레예프가 꿈에서 본 형태가 옳았던 것이었다.
이들은 잠이 든 게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해 고도의 집중을 하다가 우연히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카식 레코드가 전지(全知)한 것은 아니다.
아카샤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기는 하나, 기록이란 결국 과거의 것.
이들이 뛰어난 과학자이기 때문에 아카식 레코드에서 얻은 힌트로 정답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첫째는 이러한 아카식 레코드의 형태에 주목했다.
아카식 레코드가 위대한 기록의 집약체이긴 하나, 결국 그 근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즉, 모든 인간이 이종의 기운에 대해서 익숙해진다면?
자연스럽게 이종의 기운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면?
마침내 인간의 무의식 속에 당연한 것이 된다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어 더 이상 ‘이종’의 것이 아니게 된다.
첫째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있었고, 둘째와 셋째는 동의했다.
그렇게 그들이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게이트와 시스템이었다.
[인간들이 익숙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무의식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게임의 형태는 어떨까?]
[게임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 낸 많은 허구를 담아야 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세계 전체에 게이트를 열고, 각성자들에게 힘을 부여하려면 그들로서도 막대한 힘을 써야 했다.
그런데 아카샤가 그 힘을 배척해 버린다면?
소멸당한다.
첫 단추를 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성공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사전 각성자들도 만들어 내고, 일루미나티 같은 음모론도 꾸준히 양성했다.
그럼에도 아카샤의 의지가 두려워 선뜻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도사 셋이 힘을 합쳐도 찰나밖에 열 수 없었던 게이트.
그것을 누군가 완전히 열어 버린 것이었다.
[대체 누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리에게 길이 생겼다는 게 중요한 거다.]
이종의 힘을 배척하는 아카샤에 생긴 샛길.
그건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2002년,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 시대의 시작이었다.
* * *
모든 설명을 끝낸 록펠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는 듯.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게이트와 시스템이 친절했던 이유가 그거였냐?”
“그래,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의 몰락이 아닌, 적응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게이트와 각성자를 이질적인 존재로 여겼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모든 것들은 익숙해졌다.
게이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뉴스를 오르내리고, SG가 출범했다.
각성자들에 대한 이슈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결국은 각성자들이 스킬을 통해 이종의 힘을 쓰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힘을 얻고 싶어서 간절히 원하고, 또 누군가는 꿈까지 꿨다.
힘을 얻은 이들은 힘에 대해 연구했고, 노하우를 공유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종의 무의식에 ‘이종의 힘’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이종의 힘은 결국 세쌍둥이가 제공했다.
각성자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힘의 기원을 추적하면 거기에는 세쌍둥이가 있었다.
“우린 그렇게 아카식 레코드를 오염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기록하는 아카식 레코드.
그곳에 세쌍둥이의 힘이 기록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아카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이제 아카샤가 자신들을 추방하려면, 그들의 힘을 당연시하고 있는 수십억 인류도 함께 추방해야 했으니까.
“알겠나? 진유성? 이 모든 것이 네 덕분이라는 걸?”
록펠러는 즐거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사악한 의지를 품고 태어난 그들은 타인이 고통을 받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니 중원의 절대자가 괴로움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모습은 엄청난 만찬이리라.
그러나…….
진유성의 표정은 뚱할 뿐이었다.
괴로운 기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하, 지금 네 잘못을 부정하는 거냐?”
“이게 왜 내 잘못이냐? 너희들 잘못이지.”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게이트를 열 수 없었다.”
“칼로 사람을 찔러 놓고 칼을 만든 사람을 탓하냐? 너 바보야?”
“…….”
록펠러가 말문이 막혔을 때, 진유성이 물었다.
“세쌍둥이랬지? 나머지 둘은 어디 있냐?”
“왜 그러지?”
“찾아다니기 귀찮아서. 싹 다 데려와.”
“흐흐, 자신만만하군.”
“너 나한테 이미 한 번 졌잖아?”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을 것 같나?”
뭔가 준비했음을 암시하는 록펠러의 경고에도 진유성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런 놈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중원에서도 늘 그랬다.
몇 대 맞고 도망친 놈들은 하나같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고 자신하는 함정을 파고 그를 기다렸다.
참 개성 없는 놈들이다.
진유성이 혀를 쯧쯧 차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아놀드 벡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펠러야.”
“친근한 호칭이군.”
“나랑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
“있다.”
“언제?”
“아카샤의 눈을 속이는 데 성공한 뒤, 게이트를 연 자를 찾아 나섰지.”
“그게 나고?”
“그래, 너에겐 천신궁에서 싸웠던 기억이 없나?”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나 아닌 거 같다.”
“맞다.”
“아니야, 아닐 거야.”
진유성이 검을 뻗어 록펠러의 목을 겨눴다.
“정말 나랑 싸워 봤으면 지금처럼 겁대가리를 상실했을 리가 없거든.”
진유성의 온몸에서, 그리고 검 끝에서 막대한 기운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