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5화>
Quest 18. 알게 된 천마님
본래 게이트에 들어와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은 수백 명이 서 있어도 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 너른 평원이다.
하지만 지금, 진유성을 포함한 백 명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늘 마주하던 평원이 아니었다.
푸르르륵!
사방에서 뜨거운 불길이 피어올랐다.
쩍쩍 갈라진 암석 사이로 마그마가 흐르고, 연기가 피어올라 각성자들의 시야를 가렸다.
용암과 불꽃의 열기가 각성자들의 살갗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불길한 붉은빛이 세상을 가득 채운 화산 지대.
“이, 이게 대체……!”
그러나 각성자들을 놀라게 만든 건 화산 지대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산 지대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외곽의 풍경이 더욱 기괴했다.
용암이 흐르는 화산 지대 너머에 아마존처럼 보이는 열대 우림이 있었다.
하지만 아마존과 자연과 비교하기엔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했다.
서울의 빌딩보다 거대한 나무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그 나무를 타고 뱀 같은 것들이 스르륵 지나다녔다.
놀라운 건 뱀의 크기였다.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도 이만큼 멀리서 보면 작아 보이는데, 이 정도 거리에서 저만한 크기라니.
도대체 저 뱀은 얼마나 크다는 것일까?
뱀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문수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뱀이…… 보스인가?”
“글쎄, 본래 보스는 신전 내부에…….”
그때 각성자들의 귀에 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기, 끼기기기-
원숭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쇠를 긁는 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
소리가 나는 곳은 용암이 흐르는 암석들 사이였다.
각성자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북돋기 위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냐!”
그 순간, 뭔가가 튀어 올랐다.
박쥐처럼 보이는 뭔가가 용암을 줄줄 흘리며 퍼덕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박쥐라기엔 너무나 거대했고, 기괴했다.
크기는 독수리의 2~3배쯤 되는 것 같은데, 날개 아래에는 거미처럼 생긴 게 다리를 꿈틀거렸다.
“으억!”
공포스럽기까지 한 모습에 깜짝 놀란 각성자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허공만 갈랐다.
괴생명체는 각성자를 노리고 날아오는 듯했지만, 뭔가에 가로막혀 날개만 퍼덕이고 있었다.
날개의 피막에서 튄 용암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혀서 주르륵 흘러내릴 뿐이었다.
“보, 보호막 같은 건가?”
“대체 저건 뭐야?”
“소름 끼치게 생겼군.”
박쥐의 날개에 거미의 몸체를 한 뭔가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각성자 중 한 명이 스킬을 사용해서 놈을 날려 버렸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지만, 안에서 밖으로는 공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젠장…….”
“밖으로 나가면 저런 놈들이 공격하는 건가?”
각성자들은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에 말을 잃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클리어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의지가 완벽히 사라졌다.
‘이게 S급 게이트…….’
S급 게이트가 무서운 점은 집단 지성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 게이트가 등장했을 때, 게이트는 미지의 땅이었고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걸 클리어한 이들이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미지를 이지(理智)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각성자들이 낮은 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들을 어그로를 이용해 손쉽게 처리했다.
하지만 이 어그로 공략법도 게이트 초장기에는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의 희생과 연구 끝에 탄생한 것이었다.
이것이 현대 사회를 구성한 집단 지성의 힘이다.
하지만 S급 게이트에 대한 정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게이트에 들어간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생환하지 못했기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모든 S급 게이트도 이런 식이었을까?
그렇다면 클리어률이 0퍼센트인 것도 이해가 갔다.
보스 레이드라고 해서 보스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사방에 몬스터들이 널려 있다니.
설령 이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고 보스의 신전에 당도한다고 해도, 무사히 전력을 보존할 수 있을까?
각성자들 사이에서 싹튼 절망은 공포를 영양분 삼아 금세 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관리자가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 ‘S-3S’입니다.]
[우선, 게이트 인원에 선별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재 인원은 100명입니다.]
절망을 느꼈지만, 팀 우산도 전원은 하이랭커와 랭커로 구성된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관리자에게서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힘을 합쳐 24시간 안에 보스를 클리어해야 합니다.]
[보스의 신전은 화산 지대와 열대 우림을 통과하면 나오는 신성의 정원에 있습니다.]
[선별 인원의 안전지대는 30분 뒤 해제됩니다.]
[레벨 업과 스탯 분배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부디 생존하시길 빕니다.]
끝이었다.
관리자는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졌다.
관리자를 주시하고 있던 진유성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자는 본래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관리자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오직 관리자를 공격한 이들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관리자는 분명 진유성에게 시선을 주었다.
‘흐음.’
저 관리자라는 놈은 아무리 봐도 신기한 존재였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진유성의 기감을 벗어날 수 없는데, 관리자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은 잡아낼 수가 없었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99명의 각성자들을 돌아보았다.
진유성이 느끼기에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무시무시했다.
각성자들이 어디까지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유성은 화산 지대와 열대 우림에 가득한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느끼고 있었다.
이건 절대 인간이 클리어할 수 없는 난이도의 게이트였다.
물론, 엄청난 희생을 바탕으로 길을 뚫고 나아가는 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보스의 신전에 당도했을 때, 몇 명이나 전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진유성은 이제 궁금해졌다.
각성자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인간은 나약했고, 때론 추악하기도 했다.
강자는 본능처럼 약자를 짓밟았다.
진유성이 세상 물정을 몰랐을 때, 그는 약자들이 선하다고 생각했다.
관리들에게 수탈당하고, 무림인들에게 약탈당하는 백성들을 보며 그들이 선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약자는 선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약자는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찾아서 수탈하고, 약탈했다.
관리들에게 수탈당하기 싫어 화전민으로 살던 이들은 고아를 납치해서 노예상에게 팔아넘겼다.
무림인들에게 상납금을 내지 못해 흠씬 두들겨 맞은 객잔의 주인은 객잔 앞의 거지를 이유 없이 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민초들을 위해 노력했던 것은, 선함이 피어오르기 위한 텃밭이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살아가는 게 버거울 때 선함을 실천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는 게 버겁지 않다면?
호의를 베푸는 이들의 수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자신의 믿음이 제대로 실천됐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여전히 악인은 많았고, 선인은 드물었다.
선인의 수가 늘어난 것 같지만, 그게 자신의 영향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의문을 해소해 줄 99명의 각성자들이 보였다.
독도 게이트에 도전하는 시점까지만 해도 그들은 쉽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강자였다.
살아가는 게 버겁지 않은 이들.
아니, 오히려 아주 쉬웠을 것이다.
게이트 시대의 강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게이트 안에 들어온 지금 그들은 상대적인 약자가 되었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클리어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 가며 게이트의 폭주 범위를 줄이겠다는 희생정신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진유성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각성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사라지고, 각성자들은 한참 말이 없었다.
진유성조차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씨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에 들어와서…….”
그러자 다른 각성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젠장.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니까. 평소에 공부 좀 할걸.”
“아, 씨. 주식 팔아서 엄마한테 돈으로 주고 올걸.”
“너 주식 샀냐? 비트코인 때 그렇게 말아먹고?”
“거, 형님은 무식한 소리 좀 마십쇼. 비트코인이랑 주식이랑 엄연히 다르지.”
“너희 그거 아냐? 해외 베팅 사이트에 독도 클리어 베팅 상품 생긴 거?”
“어, 나 그거 신문에서 봤어. 배당률이 20배가 넘던데.”
“근데 어떤 미친놈이 클리어에 30억 꽂아 넣었다던데?”
“그거 나야.”
한 각성자의 충격 고백(?)에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그 미친놈이 너라고? 30억이 어디 있어서?”
“전 재산 처분했지. 원래 한 40억은 받을 수 있는 데 급매로 내놓느라.”
“그걸 다 넣었다고? 너 미쳤냐?”
“아니, 생각해 봐. 독도를 클리어 못하면 우린 그냥 죽잖아? 돈이 무슨 소용이야. 근데 클리어하면?”
“오…….”
“클리어만 하면 난 900억대 자산가다.”
“에이, 먹튀나 당해라.”
“그럼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
각성자들이 킬킬거렸다.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모습에 진유성은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절망했지만 동시에 이겨 내고, 희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유성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의지가 꺾인 적도 없었고, 뭔가를 두려워해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답답할 때가 있었다.
왜 포기하는 거지?
왜 끝까지 가지 않는 거지?
죽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그런 답답함을 가졌다.
상림이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중원에 있을 당시, 생존대는 정도맹에서 탈출해 도망 생활을 시작했다.
추격을 시작한 정도맹은 손쉽게 생존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존대주인 진유성은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고수이자, 지략가였다.
외통수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해도 번번이 진유성에게 놀아났고, 진유성의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에 애꿎은 고수들만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정도맹주는 천라멸문을 고용했다.
천라멸문(天羅滅門).
중원에서 가장 거대한 살수 단체이자, 이름 그대로 하늘의 그물조차 멸문시킬 힘이 있다는 광오한 집단.
이들의 천라지망은 정말 끔찍했다.
1분, 1초도 마음 편한 순간이 없었다.
이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1분, 1초도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팔이 잘리고, 오줌을 싸려다가 귀가 잘려 나갔다.
그들은 진유성을 제외한 생존대원들을 몇 번이나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부상을 입히고 공포에 젖게 만들었다.
그래야만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고수인 진유성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의 노림수는 꽤 적절했고, 꽤 날카로웠다.
생존대원들은 점차 정신병을 앓기 시작했고, 울며불며 난리를 치기도 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며.
제발 목을 잘라 달라며 검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던 이도 있었다.
그들의 손에 생존대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상림과 신주청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천라멸문의 손에 죽은 게 아니었다.
진유성의 손에 죽었다.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을 더는 볼 수 없어서 원하는 대로 해 준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진유성이 자신을 죽여 줄 것을 직감한 수하 한 명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대주님은 두렵지 않으십니까? 옥죄어 오는 저들의 손길이?”
어쩌면, 그때 진유성도 정신적으로 꽤 많이 몰려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난 나약한 자들이 답답하다.”
그리고 오랫동안 후회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수하에게 왜 더 부드러운 말을 해 주지 못했는지.
진유성은 지금,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리 큰 절망이 와도 한 줄기 희망만 있다면 인간은 견딜 수 있다는 걸.
그러니 천라멸문에 쫓겨 자살하듯 생을 마감한 수하들을 죽인 건 자신이었다.
진유성은 도망칠 궁리를 했을 뿐, 수하들에게 진짜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으니까.
‘미안하구나. 내가 부족했다.’
깊은 반성에 잠겨 있던 진유성이 문득 오른손을 들었다.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손에서 갑자기 푸른색의 청명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아.
빛은 이내 한 자루의 검을 만들어 냈다.
각성자들이 진유성을 쳐다봤다.
몇몇 이들은 난데없이 검을 뽑아낸 진유성의 행동에 긴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순간, 진유성의 일검이 화산 지대를 향해 쏟아졌다.
츠츠츠츠츠츠측!
검이 날아가며 분화했다.
네 자루, 여덟 자루, 열여섯 자루, 서른두 자루…….
더 이상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분화한 검이 일제히 어딘가에 꽂히는 순간.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이이이엑-!
박쥐의 날개에 거미의 몸뚱이를 한 기괴한 생명체 수 백 마리가 동시에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각성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강할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압도적인 무력을 목도한 각성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따라와라.”
진유성이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희망이 되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