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4화>
* * *
보통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여객선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99명의 각성자들은 해군 구축함을 타고 이동했기에, 1시간 만에 독도를 눈앞에 둘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작네.’
짧은 감상을 마친 문수혁은 갑판을 쭉 둘러보았다.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싶다는 자신과 차정명의 말에 따라준 바보 같은 이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웃는 얼굴로 떠들고 있었다.
“게이트 클리어하면 난리 나겠지?”
“난리 나죠. 기자들 엄청 올걸요? 전 세계에 생중계될 거고.”
“그때 되면 다 같이 <독도는 우리 땅> 노래라도 부를까?”
“오. 그거 좋네요. 전 국민한테 까방권 획득이네.”
“까방권이 뭐냐?”
“아, 형님. 인터넷 좀 하고 사시라니까요?”
“아 됐고. 까방권이 뭐냐고.”
“까임방지권이요.”
“까임방지? 그걸 누구한테 받는데?”
“아, 됐습니다. 형님은 너무 아재예요. 말이 안 통하네.”
“야, 씨. 뒤질래?”
30대와 40대 각성자가 투덕거리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20대 각성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 까방권이란 말을 요즘 누가 써요.”
“뭐? 요즘 안 써?”
“안 쓰죠.”
“뭐야! 지도 아재였네!”
“아냐, 나 어제 인터넷 기사에서 봤단 말이야.”
“그 기자가 아재였나 보죠.”
각성자들은 딱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왜 두렵지 않겠는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는데.
팀 우산도가 결성되고 매일 매일 고민했다.
그냥 참여하지 말까.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결국 여기에 왔다.
두려움보다 큰 무언가를 품었으니까.
문수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축함이 독도와 가까이 붙었다.
독도는 부두가 없고 지형이 험난해 접안이 쉽지 않은 섬이다.
더구나 여객선보다 몇 배는 큰 구축함이라면 안전하게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각성자들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이들이었다.
쾅!
방법은 간단했다.
로프를 묶은 창을 던져 배와 독도를 연결한 것이다.
배와 독도의 거리는 150m가 넘었지만, 하이랭커과 랭커로 구성된 각성자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문수혁이 로프 위로 뛰어올라 독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며 축 늘어진 로프가 위태롭게 흔들거렸지만, 문수혁의 움직임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오오.”
“쩌는데?”
휘이익-!
각성자들이 짧게 감탄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로프 위를 달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저토록 안정적이고 빠르게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독도에 도착한 문수혁은 로프를 발로 밟아 고정시키며 건너오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구축함 쪽을 쳐다보는데…….
“……?”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휘이잉-
쏴아아-
보이는 것이라고는 해상에 이는 거친 바람과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배 한 척뿐.
하나 문수혁은 그쪽에서부터 뭔가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신을 집중한 그는 곧 소스라치게 놀랐다.
“……!”
그는 어린 시절, 산에 올랐다가 수많은 나뭇가지들 속에서 뱀을 본 적이 있었다.
보호색으로 자신의 몸을 완벽히 숨긴 뱀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놀람이 너무 커서 문수혁은 아직도 뱀을 보면 흠칫 놀랐다.
20m짜리 아나콘다도 한 손으로 썰어 버릴 힘이 생겼음에도 말이었다.
문수혁의 놀람은 어린 시절 나뭇가지 속에서 뱀을 발견했을 때와 꼭 같았다.
파도와 바람의 일렁거림 속에 몸을 숨긴 누군가가 구축함에서 날아올라 독도로 건너오고 있었으니까.
문수혁은 몰랐지만, 이는 능공허도(凌空虛道)의 경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조금이라도 집중을 풀면 보이지 않았다.
위장복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청바지에 갈색 빛이 도는 후드를 푹 눌러쓴, 영락없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구축함 위의 각성자들은 정체불명의 누군가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정체불명의 남자가 사라졌다.
“뭐, 뭐야!”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빠르게 건너올걸.”
문수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이언맨.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에서 만났던, 정체불명 각성자가 서 있었으니까!
“안녕, 빠끄.”
* * *
기묘한 광경이었다.
99명의 각성자와 1명의 각성자가 대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 진유성이 문수혁에게 모습을 들킨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진유성은 평소처럼 몰래 게이트에 들어가서 클리어할 생각이었으니까.
수비, 공격 미션은 모습을 완벽히 감추기 힘들지만, 보스 레이드 미션은 아니다.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보스의 신전으로 달리면 그만이다.
이런 진유성의 계획이 꼬인 것은 각성자들을 태워다 준 구축함이 섬에 완전히 접안하지 않으면서부터였다.
독도와 구축함의 거리는 150미터가 넘었다.
들키지 않게 건너가려고 해도 쉽지 않은 거리였다.
입멸공 최종오의 멸(滅)을 사용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고작 모습을 감추기 위해 엄청난 내공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진유성은 신체의 선과 호흡을 감추고 능공허도를 이용해 바다를 건넜다.
서울역에서 만났던 각성자들의 수준을 생각해 본다면 들키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하나 독도에 먼저 발을 디딘 문수혁의 수준이 한층 올라섰다는 것이 문제였다.
S급이란 벽을 넘어 SS급에 올라섰기에, 아슬아슬하게나마 발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진유성은 발각된 다음에도 각성자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독도 구석에 짱박혀 있다가 게이트가 열릴 때 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짜식들이, 제법 기특하단 말이지.’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위해 모인 각성자들이 기특해서였다.
물론 이들은 죽지 않는다.
자신이 게이트에 함께 들어가는 한 S급이고 나발이고, 어려울 리가 없다.
하지만 우산도란 깃발 아래 모인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즉, 죽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모여든 것이었다.
그때 문수혁이 진유성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당신 정체가 뭐지?”
“I AM IRON MAN.”
딱.
진유성이 핑거 스냅을 하자 문수혁이 흠칫 놀랐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조금 창피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모인 각성자들 중 가장 각성 등급이 낮은 이들도 무려 A급이다.
<우산도>가 하이랭커 56명과 랭커 43명으로 구성된 팀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진유성의 격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격은 등급이 높은 랭커들일수록 더욱 높게 느껴졌다.
43명의 랭커들은 진유성이 엄청나게 강하다고 생각했고, 54명의 하이랭커들은 진유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SS급에 올라선 문수혁과 차정명은 달랐다.
그들은 진유성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강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놀드 벡보다…….’
‘강하다!’
문수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체를 알려줄 수 없다는 건가?”
“알려줄 거면 헬멧을 썼겠냐?”
“그럼 다른 걸 묻지. 여긴 왜 온 건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려고.”
“왜?”
“음. 좀 복합적인데.”
“그럼 복합적인 이유를 말해 봐.”
“너 이 자식, 말투가 건방지다? 어디서 명령질이야?”
“우린 널 의심하고 있다.”
“의심? 무슨 의심?”
“한국의 SG를 무너트리려는 비밀 집단의 각성자일 수도 있다고.”
만약 각성자들이 진유성의 얼굴을 봤다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해졌다.
진유성이 기억하기로 자신은 SG에 해를 끼친 적이…….
‘있네.’
검을 빌렸다가 가루로 만든 적이 있고, 방패를 부서트린 적도 있다.
각성자들을 무더기로 기절시키기도 했고.
“크흠.”
진유성이 말을 이었다.
“음, 약간의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SG를 무너트리려고 했잖아? 그럼 진작 없어졌어.”
“…….”
“안 믿냐?”
“아니, 믿는다.”
문수혁은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에서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몬스터인 줄 알았던 눈앞의 남자에게 단번에 제압당했으니까.
만약 이 남자가 한국 SG의 각성자들을 한 명 한 명 암살하고 다닌다면?
한국 SG 전체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문수혁은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었다.
진유성의 무너트린다는 말은 각성자들을 암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각성자 전체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해 속에서 문수혁이 재차 물었다.
“다시 묻겠다.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지? 왜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려고 하지?”
“첫째는 할 수 있으니까.”
진유성은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나라를 위해 의기를 세운 기특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둘째는 나도 한국인이니까.”
진유성의 대답에 각성자들의 분위기가 설핏 바뀌었다.
물론 진유성은 한국인이 아니라 고려인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태어난 고려와 이 땅의 고려는 다른 점이 많았다.
일단 진씨 왕가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영위하게 된 일상이 만족스러웠고, 한국 사람들과 맺는 관계도 즐거웠다.
그가 태어났던 고려와 그가 일구었던 천마신교는 이제 없다.
그러니 누군가 진유성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한국’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한국은 고려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니까.
이런 이유로 진유성은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는 것이었다.
진유성의 대답에 문수혁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손을 내밀었다.
“우산도에 합류한 걸 환영한다.”
“흠…….”
진유성이 손을 맞잡자, 각성자들은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여기 모인 99명의 각성자들 중에는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에 참가했던 이들도 있고, 아닌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 눈앞의 남자가 지닌 강함을 알고 있었다.
남자의 정체와 속셈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셈이 무엇이든 게이트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클리어를 해야 하지 않는가.
어쩌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S급 게이트가 클리어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때 누군가 진유성에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각성 등급을 알 수 있습니까?”
“내 등급?”
예상치 못한 질문에 진유성이 잠깐 멈칫했다.
한 번도 자신을 각성자의 기준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기준점이 영 없는 건 아니었다.
“아놀드 벡이 SSS급이고……. 너, 너 등급 뭐냐?”
차정명이 대답했다.
“SS급이오.”
“아, 맞다. TV에서 봤다. 너랑 얘가 SS급이지?”
아마 문수혁이나 차정명 5명이 모이면 아놀드 벡과 동수를 이룰 것이다.
즉, SS급 5명이 모이면 SSS급인 아놀드 벡과 동수를 이룬다.
SSSS급은 아놀드 벡 5명이 동수인 거고, SSSSS급은 아놀드 벡 25명이 동수인 거다.
5의 제곱으로 가는 거다.
그렇다면…….
“SSSSSSSSSSSS급 정도겠는데?”
5의 9제곱이 이백만 정도 되니까, 아놀드 벡이 이백만 명 정도 있으면 자신과 동수를 이루지 않을까?
일단 자신도 사람인 이상 체력과 내공의 한계가 있으니까.
‘아닌가? 이길 거 같기도 하고? 천신궁 게이트에서도 달포는 싸웠잖아?’
진유성이 정정했다.
“S 하나 더 붙여야겠다.”
아놀드 벡 천만 명 정도면 비슷할 거 같기도 하다.
서울시 인구가 천만 정도 된다니까.
진유성은 꽤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다른 각성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S가 13개나 필요한 등급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체에 대한 단서를 숨기려 한다는 인상밖에 받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그르르르릉-
독도가 옅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진유성은 아까부터 독도로 모여드는 미증유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흐름이 엄청나게 가속화되고 있다.
진유성이 느끼기에도 굉장한 양의 기운이었다.
고오오오오오-!
무형의 기운이 유형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타원형의 게이트가 탄생하며 엄청난 빛을 뿜어냈다.
울릉도에서도 보일 만큼 환한 빛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독도를 가득 채운 밝은 빛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도에 모여 있던 99명의 각성자와 1명의 천마는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