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3화>
* * *
대외적으로 일본이 훗카이도 AA급 게이트를 포기한 이유는 한국 속초의 케이스 때문이었다.
속초가 게이트 폭주 이후 자연환경과 지력(地力)을 회복한 것처럼, 일본 정부는 훗카이도 게이트가 폭주하면 자연이 회복될 거라고 선전했다.
사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긴 했다.
훗카이도 내 게이트 발생이 예고된 지역은 농경지.
농경지는 지력이 중요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인공 비료를 통해 지력을 회복하며 농사를 짓는다지만, 땅 자체의 지력이 살아나는 것과는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일본은 방사능에 노출된 지역이 많았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방사능에 안전하다고 극구 주장해 왔지만, 땅과 밀접한 농부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이런 이유에서 훗카이도 AA급 게이트를 폭주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자연스럽게 형성한 것이었다.
사실 그 근거는 좀 희박했다.
게이트가 폭주된 지역의 자연환경이 회복된 곳도 있지만, 회복되지 않은 곳이 더 많았으니까.
이런 건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본디 여론이라는 건 언론에서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훗카이도와 속초의 비슷한 점을 나열하며 여론을 이끌었다.
이것이 일본이 훗카이도 AA급 게이트를 방치한 이유였다.
대외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만성 각성자 부족에 시달려 늘 SG의 원조를 받는 일본이 각성자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도 이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일본이 만든 판에 흔들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이 판을 만들었기에 한국이 독도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독도란 판에 일본이 올라탄 것이다.
즉, 한국의 의사 결정과 일본의 계획은 전혀 무관했다.
사견을 배제하고 정치적으로만 보자면 일본의 행보는 노련한 한 수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노련함은 영웅들의 멍청함 때문에 물거품이 되겠지.’
한지후 소장은 확신했다.
팀 우산도.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모인 바보 같고 멍청한 99명의 각성자들.
이제부터 자신이 할 일은 이들의 멍청함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멍청함이 위대함으로 바뀔 테니까.
지금까지 일본의 모든 판은 ‘한국이 독도를 포기한다.’라는 이성적인 판단하에 짜였다.
그러니, 판을 흔들 시간이다.
* * *
문수혁, 차정명의 방문을 받은 다음 날.
한지후 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총동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 정치권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간혹 SG를 정치권 진출로 위한 발판으로 여기는 소장들도 있었지만, 한지후 소장은 완벽한 현장 실무자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게이트 사태의 완벽한 평화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치권에 아무런 끈도 없냐면, 그건 아니었다.
한지후 소장은 육사 출신이었고, 그의 위 기수 선배 중에는 장성을 거쳐 정치권으로 뛰어든 이들도 많았다.
한지후는 자신이 댈 수 있는 끈 중 가장 높은 곳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놀랐다.
직통은 아니지만, 무려 대한민국 행정부의 2인자인 국무총리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 국무총리가 특이하게 육사 출신이란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것 같다.
4시간 뒤.
한지후 소장은 늦은 점심을 때우려는 국무총리와 식사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그것도 단둘이.
한지후 소장의 파워가 대단해서 생긴 자리는 아니었다.
육사 후배라는 타이틀에, SG 실무자로 이름을 날린 경력, 그리고 정권이 욕받이로 선택한 미안함, 마지막으로 호기심.
이런 것들이 얽혀서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그래요. 한 소장. 날 왜 보자고 했나요?”
“클리어 팀 우산도 때문입니다.”
국무총리가 언뜻 눈살을 찌푸렸다.
문수혁과 차정명이 독도를 클리어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결정은 단호한 No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하이 랭커과 랭커가 포함된 99명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
그들의 죽음은 국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설마 그들을 밀어주자는 소립니까?”
“아뇨. 어차피 그들을 말릴 수도 없습니다.”
“정부와 SG가 긴밀하게 협의해서 게이트 당일…….”
“웃기는 소리군요.”
한지후 소장의 건방진 말투에 국무총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제가 국무총리님을 비웃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마음이 급해서 말을 돌려 할 수 없다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크흠.”
국무총리의 불편한 심기를 무시한 채 한지후 소장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말리실 겁니까?”
“그야 공문을 내리고 실무자들이 각성자들을 다독여서…….”
“그들이 정부의 권위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뚫고 나아간다면요?”
사실 국가의 입장에서 SG가 한 가장 큰 업적은 게이트 클리어가 아니었다.
각성자들이 국가의 말을 듣게 만든 것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관습의 생물이다.
1대 각성자들이 1대 SG에 소속되어서 국가와 UN의 명령을 따르자, 후대 각성자들도 자연스럽게 그 관습을 따른 것이다.
만약 각성자가 생긴 초창기에 모든 것이 무력으로 결정되는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면?
국가와 정부는 S급 각성자 한 명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으리라.
실질적인 무력에서 밀리니까.
그래서 한지후 소장이 묻는 것이었다.
차정명과 문수혁이라는 두 SS급 각성자가 이끄는 99명의 결사대가 무력 돌파한다면 막을 방법이 있느냐고.
당연히 없었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 대 각성자 전용 저격 부대를 운용하고, SG에 지원 요청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오랜 싸움이 될 것이다.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고.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배와 헬리콥터까지 대여했습니다. 국가에서 그들을 막으려 해도, 그들이 독도로 향하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남은 시간 중에 그들을 잘 설득하면…….”
“누가요? 황제 아놀드 벡이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세븐 가디언즈의 대여를 약속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뭐, 뭐요?”
한지후 소장이 지난 밤 문수혁, 차정명과 나눴던 대화를 국무총리 앞에서 고했다.
각성자들이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국무총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 순간, 한지후 소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국무총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유치하게 애국심이나 희생정신 따윈 들먹이지 않겠습니다. 오직 정치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정치…….”
“정치가들은 바보 같은 이들의 바보 같은 행동조차 이상으로 포장해 국익을 얻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누군가가 밥을 먹지 못해 죽었다면 저소득층 복지 예산을 올릴 근거를 얻는 거고, 누군가 숨을 쉬지 못해 죽었다면 미세먼지 저감 조치 예산을 올릴 근거를 얻는 이들. 그게 정치인들 아닙니까.”
“그건 우릴 욕하는 거요, 칭찬하는 거요?”
“저희 계획에 따라 주신다면 칭찬할 거고, 따라 주지 않는다면 욕할 겁니다.”
국무총리가 한참 동안 한지후 소장을 노려보다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이런 미친.”
국무총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진 판이라는 걸 확실히 실감했다.
눈앞에 있는 소장의 기세부터 그러했다.
“그래서 나한테 뭘 원하는 거요?”
“뻥카로 올인을 하는 멍청한 도박 중독자가 되어 주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판에 발만 걸친 일본을 우리와 함께 진창에 머리끝까지 담가 버리자는 거지요.”
한지후 소장이 계획을 설명했다.
* * *
한국은 공식적으로 팀 우산도를 인정했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하여, 저희는 일본의 공동 클리어팀 제안을 수락하는 바입니다.]
대변인의 공식 발표가 전파를 타는 사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제안을 수락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일본은 코웃음을 쳤다.
금세 꼬리를 말고 사라질 블러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 SG 본부장 야마모토 고이즈의 판단도 그러했다.
한국 정부는 팀 우산도에 대한 지원 방법조차 논의하지 않았다.
그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과격한 각성자들이 떠벌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각성자들의 말조차 블러핑의 일환일지도 모르지.’
곧 지구상에서 없어질 다케시마에 99명의 각성자를 베팅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설령 다케시마를 클리어한다고 해도 SS급 각성자들이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너구리들이 발악을 하는군.”
일본 정부는 곧장 한국 정부의 공문에 화답했다.
그러곤 일본 내 랭킹 1위부터 50위까지의 차출 공문을 내렸다.
“각성자들 파견 준비해.”
“한국으로 보내실 생각입니까?”
“물론, 어차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니까.”
치킨 레이스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한국도 이에 질세라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한국이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포인트는 한 가지였다.
만약 일본이 각성자 파견을 취소한다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애당초 일본이 독도의 공동 클리어팀 구성을 제안한 것은 독도가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는 명분에서였다.
그러니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겠다는 선언이 거짓이라면, 앞으로 절대 영유권을 주장하지 마라.
이것이 한국의 논지였다.
세계 각국은 한국이 무리수를 던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이 독도를 클리어하지 못한다는 건 온 세상이 알고 있었다.
클리어 확률이 0퍼센트라는 건, 들어가는 모든 각성자가 사망한다는 소리니까.
일본은 한국 정부의 공격을 비웃으며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독도 게이트 클리어에 SS급 각성자 2명이 참여할 것.
독도 게이트 클리어에 하이 랭커 30명 이상이 참여할 것.
이러한 조건을 건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척만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살인이나 강간 같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F급 각성자 10명을 집어넣고 클리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우길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일본의 조건을 수락했다.
한국의 흔쾌한 수락에 일본 정부는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한국 정부가 각성자를 퍼부어 게이트에 도전할 리 없다는 믿음은 굳건했다.
그렇게 치킨 레이스의 마지막 단계인 일본 각성자 50명이 한국에 입국했다.
이 모든 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순식간에 진행된 일이었다.
애초에 게이트 탄생일까지 며칠이 남지 않았던 탓이다.
일본의 각성자들은 관광을 하는 기분으로 한국에 체류했다.
그들은 자국 정부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바가 있었다.
한국은 절대 독도 게이트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S급 게이트에 들어갈 일은 없다고.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독도 게이트 발생일의 아침이 다가왔다.
* * *
“날씨 좋네.”
“그러게.”
문수혁의 말에 차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 아침, 강릉에서 3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울릉도의 날씨는 화창했다.
울릉도로 향한 인원은 300여 명 정도.
그중 99명은 팀 우산도의 각성자들이었고, 50명은 일본에서 파견한 랭커들이었다.
나머지 150여 명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기자들과 각국의 SG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함께하는 것은 울릉도까지였다.
통상의 게이트는 참여 인원을 선별했다.
최소 선별 인원인 22명을 넘는 인원이 주변에 있다면 그중에서 몇 명이 더 뽑힐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많은 인원이 게이트 근처에 대기하고 있으면, 평균적으로 선별 인원이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S급 게이트는 통상의 게이트가 아니었다.
문수혁과 차정명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기록에 따르면 S급 게이트는 인근의 ‘모든’ 인간을 선별한다고 했다.
즉, 독도 게이트가 탄생하는 순간, 독도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 게이트에 선별된다는 소리였다.
게이트 발생 예고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 했다.
그때, 경상도 출신의 각성자가 문수혁에게 다가와 웃음을 터트렸다.
“행님, 점마들 보이소. 긴가민가하는 게 우습지 않습니꺼?”
각성자가 가리키는 것은 일본인들이었다.
50여 명의 각성자, 20여 명의 기자, 10여 명의 일본 SG 본부 직원들.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독도 게이트에 도전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팀 우산도의 이름 아래 모인 99명의 각성자들이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각시탈 흉내 좀 내 볼까? 정명이 네가 할래?”
“당연하죠. 재밌는 건 한 살이라도 어린 제가 해야 더 억울하지 않겠어요?”
“가는 데 순서 없다.”
“재수 없으면 오늘 같이 갈 텐데, 뭐.”
키득키득 웃던 차정명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일본 SG의 간부에게 다가갔다.
일본의 SG 간부는 한국말을 한국인만큼이나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인솔자로 선택된 것이고.
간부에게 다가간 차정명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간부가 깜짝 놀랐다.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결정하시죠.”
간부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무슨 결정을…….”
“뻔한 거 아닙니까? 끝까지 허세 부리다가 일본 각성자들도 게이트에 밀어 넣을 건지. 아니면.”
차정명이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그만 까불고 너희 나라로 꺼질 건지.”
“……!”
간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본 차정명이 피식 웃었다.
“빨리 연락해 봐요. 우린 10분 뒤에 출발할 거니까. 뭐, 굳이 도와주겠다면 말리진 않고.”
10분 뒤.
울릉도에서 독도로 향하는 배가 출발했다.
그리고 배에 올라탄 각성자의 국적은 전원 ‘한국’이었다.
고려까지 한국으로 포함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