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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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의 협약에 따르면 게이트에 대한 ‘공식 정보’를 배포할 권리는 게이트 발생국에 있다.
즉, 한국이 누구보다 빠르게 미국 내 게이트를 감지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미국민들에게 알리는 건 미국의 권한이란 뜻이었다.
이러한 협약은 엄밀히 따지자면 각국 정부의 정보 은폐를 위한 것이었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 국가는 게이트를 선별해서 대중들에게 공개해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대중들이 패닉에 빠져 삶의 의지를 잃으면 국가도 사라진다.
그래서 클리어한 게이트, 클리어할 수 있는 게이트, 클리어는 실패하겠지만 피해를 최소화한 게이트만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에는 전신망이 날아가서 전화나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 시기였으니까.
게이트 사태가 진정된 뒤부턴 보다 부패한 이유로 정보를 은폐하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특정인들에게 클리어 권한을 양도한다든지, 일부러 폭주시켜 건설업을 밀어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뭐가 됐든, 국민에게 게이트에 대해 통보할 권리는 해당 국가의 정부에게 있었다.
그러니 이번 일본의 기습적인 독도 게이트의 공개는 한국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았다.
사실 한국에서 독도 게이트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다만 S급 게이트를 포기할 것인지, 도전할 것인지를 결정한 다음에 국민들에게 발표하려고 논의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SG에 곧바로 연락해 일본에 대한 제재를 취하려고 했지만, 일본은 당당했다.
독도는 영유권 분쟁 지역이니 SG의 협약과는 무관하다는 억지로.
슬프게도 아직 국제 사회에서는 한국보다 일본의 위상이 높았다.
SG는 공식 대변인을 통해 이번 사태에 어떤 국가의 편도 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정의 이면에는 일본의 정치적인 공작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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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독도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좀 절박했다.
한국에 SS급 각성자 두 명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일본을 강타하고 얼마 뒤.
훗카이도에 AA급 게이트가 열렸다.
한데, 일본 정부는 훗카이도 AA급 게이트의 클리어를 포기했다.
실리만 따지자면 일견 합당한 결정처럼 보였다.
훗카이도는 일본의 농업 경제에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고, 대부분이 농업 생산지였다.
게이트가 터져도 농경지에는 그리 큰 타격은 없다.
아니,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속초처럼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 자연환경이 회복된 지역도 있었으니까.
또한, 게이트의 발생 위치도 절묘해서 전문가들은 도심에는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게이트 클리어를 포기한다고 해도 큰 손해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클리어에 도전한다면?
고위 각성자들 중 다수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클리어율 0퍼센트의 S급 게이트만큼은 아니지만, A급 이상의 게이트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일본은 인구수 대비 각성자의 수가 적고, 평균 각성 등급이 낮았다.
경제력은 여전히 월등했지만, 각성자의 무력을 비교해 보자면 빈말로라도 강국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괜히 훗카이도 게이트에 소중한 인적 자원을 버리지 말자.
이것이 일본 정부의 최종 결론이었다.
정부의 방치하에 훗카이도 게이트가 폭주했다.
그리고…….
훗카이도 AA급 게이트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웃기라도 하듯 도심지의 절반 이상을 날려 버렸다.
혹시나 싶어 시민들을 대피시켰기에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일본 정부가 ‘힘든 시대를 의지로 이겨 내자’ 따위의 말로 시민들을 달래려 했다는 것.
구체적인 보상안이나 복구 플랜조차 정하지 못한 채 말이다.
당연히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하루아침에 정권이 바뀔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때, 그들에게 황금 동아줄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독도에 S급 보스 레이드 게이트가 예고된 것이었다.
섬나라인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국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외부로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는 데 능숙한 나라였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한국 정부보다 빠르게 게이트를 예고했다.
일본 정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
자국민들에게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라는 걸 보여 주는 것.
일본 언론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한국, 훗카이도와 마찬가지로 다케시마 게이트 클리어를 포기하나?]
[일본 정부와 같은 선택을 내릴 것으로 보이는 한국.]
훗카이도와 독도는 인구와 면적에서는 비교도 안 되는 섬이었지만, 그런 건 프레임을 씌우기 나름이었다.
‘국토’, ‘클리어 포기’, ‘폭주’ 같은 단어를 적절히 섞어 쓰면 대중들은 훗카이도와 독도를 동일 선상에 놓을 테니까.
둘.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있지 않음을 국제 사회에 보여 주는 것.
또한 이 방법으로 국민들의 눈길을 해외로 돌릴 수도 있을 터였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떠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방법이었다.
[일본 정부, 한국 정부에 게이트 공동 클리어 팀 결성 제안.]
[일본, 다케시마 게이트 클리어를 위해 S급 각성자 포함 하이 랭커 대거 지원안 제시.]
[한국, 영유권 주장하던 다케시마를 포기하나?]
[외무성, “지도상에서 다케시마가 사라진다면 일?한 어업협상 다시 진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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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습 발표 이후 한국의 SG 간부들이 본부로 모여들었다.
오늘만큼은 친한, 친SG 같은 정치색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분노와 침통, 고민을 얼굴에 담은 채 회의에 참석한 상태였다.
그중에는 SG 서울 지부의 한지후 소장도 있었다.
본래 한지후 소장은 간부급 회의에 참석할 지위가 아니었다.
소장이 간부가 아니란 말은 아니었지만, 소장은 어디까지나 현장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후 소장이 SG 간부급 회의에 참석한 것은, 그에게 세계적인 인지도가 생긴 덕분이었다.
두 명의 SS급 각성자를 키워 내고, 황제 아놀드 벡의 관심을 사면서 말이었다.
덕분에 한지후 소장은 현장 고문 역할로 회의에 참석했다.
SG 본부장의 첫 질문은 한지후 소장을 향했다.
“한 소장님.”
“네.”
“공동으로 팀을 꾸리자는 일본의 제안을 어떻게 보십니까?”
“치킨 레이스입니다.”
치킨 레이스.
서로를 향해 달리는 오토바이의 핸들을 먼저 꺾는 쪽이 지는 게임.
즉, 겁을 먹는 쪽이 지는 게임이란 말이었다.
“어떤 규칙이 걸린 레이스죠?”
본부장은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노회한 정치가다.
그들이 묻는 이유는 생각을 환기시키기 위함이었고, 덩달아 한지후 소장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다.
“게이트 클리어에 도전하느냐, 마느냐가 이번 치킨 레이스의 규칙이겠죠.”
일본이 공동 팀을 제안한 것은 당연히 블러핑이었다.
얼마 없는 고위 각성 인력도 아쉬워 AA급 게이트를 포기한 국가가 일본이다.
그런 그들이 클리어율 제로인 S급 게이트에 도움을 준다?
어불성설이었다.
일본이 원하는 건, 지도상에 독도가 사라진 이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였다.
영유권 분쟁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무단 점검한 한국에서 분쟁 지역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어찌 독도가 한국의 땅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이것이 일본의 향후 수십 년간 외교가에서 주장할 논리가 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거짓말을 밝히기 위해서는 한국이 정말로 독도 게이트의 클리어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끝까지 각성자를 파견해 공동 팀을 꾸리려 했다고 주장할 테니까.
즉, 이번 치킨 게임은 게이트를 향해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올라타 핸들을 먼저 꺾는 쪽이 패배한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은 이길 때도, 질 때도 얻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긴다면 그들은 영유권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다.
독도가 지도상에서 사라진 순간부터 배타적 경제 수역과 어업 협상의 판을 뒤집으려고 할 것이다.
일본은 질 때도 얻는 것이 확실했다.
일본이 지는 경우는 한국이 독도의 S급 게이트 클리어에 도전했을 경우.
이 경우에는 한국의 각성 국력이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설령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겠는가.
고위 각성자들은 대부분이 죽을 것이고, 살아남은 이들도 크나큰 부상에 시달릴 것이다.
S급 게이트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이니까.
물론 한국이 클리어에 도전하고, 일본이 뒤늦게 ‘공동 팀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망신은 잠깐이고, 실리는 영원했다.
만약 독도 게이트 클리어가 실패해 한국의 하이 랭커 200명이 몰살당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한국은 각성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할 것이며, 향후 국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자치권을 SG에게 완전히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즉, 이 판은 한국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깔린 판이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한국 각성자들이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가능할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 0퍼센트의 확률이니까.
“한지후 소장님.”
“예.”
“실무자의 경험으로 한국의 하이 랭커 200명이 게이트 클리어에 도전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한참 말이 없던 한지후 소장이 한숨을 푹 내쉬곤 입을 열었다.
“독도는 지도상에서 사라지지만, 울릉도는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독도와 울릉도의 거리는 87킬로미터.
87킬로미터는 S급 게이트가 폭주한다면 충분히 영향을 받는 거리였다.
한지후 소장의 말은 클리어에 도전한다고 해도 폭발 반경을 줄일 뿐, 클리어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간부 중 한 명이 물었다.
“하지만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는 클리어되지 않았습니까? 대중들에게 공개되진 않았지만, 기록상으로는 S급으로 나와 있습니다.”
“당시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는 외부에서 게이트 등급이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각정자들이 관리자에게 S급이란 정보를 들었을 뿐이죠.”
“그렇다면 S급이 아닌 겁니까? 관리자의 정보는 오류가 없다는 게 세간의 상식 아닙니까?”
“글쎄요. GEL 수치에 의거해 탄생하던 게이트가 아무런 징후 없이 탄생한 것처럼, 오류가 없던 관리자가 오류를 내기 시작했을 수도 있죠.”
“…….”
“상식적으로,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는 S급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미지의 인물들이 클리어했다고 가정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SSS급 각성자들 셋이 모여도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한데,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는 반 SG 체제의 인물들이 뚝딱 클리어해 버렸다.
S급이란 정보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독도 게이트는 명확한 S급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한지후 소장은 말이 없어진 SG의 간부들, 아니 정치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이들은 정치인들이었다.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하고, 실패보다 책임을 두려워했다.
한지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인들이 자신을 왜 불렀는지 알고 있었다.
정말 현장 전문가가 필요해서 부른 게 아니었다.
책임을 전가할 대상.
그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자꾸 자신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고.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독도 게이트는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 자리는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자리입니다.”
정치인들의 요식 행위를 덤덤히 지켜보던 한지후 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 놀아나는 것이라도 상관없다.
각성자들을 전부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정치인들은 그 뒤로도 한지후 소장의 의견에 요식적으로 반발했다.
다분히 회의록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몇 시간 뒤, 회의가 종료되었다.
내일로 오전 중 발표될 SG의 공식 입장도 정리되었다.
[오랫동안 서울의 게이트 치안을 담당해 온 현장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한국 SG 본부는 독도에 예고된 S급 게이트의 클리어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