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7화>
* * *
삭막한 집이었다.
80평이 넘는 초호화 아파트에 고급 자재들로 인테리어를 했음에도, 삭막하단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삭막함은 집이 주는 느낌이 아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
그가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CSG, 중국 내 최고 권력 기관의 수장인 월성이었다.
월성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견과류를 씹으며 아파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테라스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짝살짝 흔들리던 커튼이 갈수록 요동쳤다.
이상한 일이었다.
창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말이었다.
그러나 월성은 커튼에 힐끔 쳐다봤을 뿐,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고오오오오-
불길한 소리와 함께 나타난 무언가가 월성의 옆에 앉았다.
[맛없는 걸 먹는군.]
“이제는 인간들의 식성에까지 관심을 갖나?”
[나도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는 식도락에 관심이 많았지. 첫째와 셋째는 어린 여자의 살점을 즐겨 먹었지만, 난 늙은 남자를 고아 먹는 걸 좋아했거든.]
“식성 한번 특이하군.”
[너희 인간들이 쓴 한약을 보약이라고 먹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검은 무언가가 키득거리며 새까만 영기를 폴폴 뿜어냈다.
영기 속에서 음험한 악취가 풍겼다.
그랬다.
월성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세쌍둥이 마도사들의 둘째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킬 만한 농밀한 악의.
하지만 월성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견과류만 씹던 월성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며칠 전, 네 동생이 날 관찰하고 가더군.”
[셋째가? 관찰만 하고 갔을 리는 없을 텐데?]
“내가 자신을 인지했나 시험했다. 이상한 쐐기풀을 던지면서.”
[로펠라잔투스의 촉매로군. 록펠러는 자기 이름과 비슷하다고 로펠라잔투스의 술법을 좋아했지.]
“전혀 비슷한 거 같지 않은데?”
[술어로 읽으면 비슷하거든.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했나?]
“싸울까 하다가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너와의 약속도 있었으니.”
[싸우면 이길 자신은 있고?]
월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 속에 담긴 건 부정이 아닌, 긍정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세쌍둥이 마도사는 상실의 공간을 건너오며 그들의 육체를 잃었고, 육체의 상실은 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지 못했다.
호문클로스에 빙의해 식욕을 채우고, 성욕을 풀고, 탐욕을 만끽해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허상(虛像)의 쾌락을 탐닉해 봤자, 남는 것은 허상뿐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고통과 별개로 세쌍둥이는 육체를 잃고 더욱 강해졌다.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더 다양한 마도비술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육신이 붕괴될까 봐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은 개중 한 명을 이길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둘째 역시 그런 월성의 태도를 이상하거나 건방지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획은 언제쯤 진행할 생각이지?”
[글쎄, 첫째와 셋째가 숨겨 놓은 비수를 먼저 확인해야겠군.]
“구체적인 일정이 나온 게 아니면 불쑥불쑥 나타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너의 그 시커먼 영기를 보고 있으면 속이 불편하거든.”
[하하하하.]
둘째가 폴폴 뿜어내는 영기 사이로 웃음을 흘렸다.
[난 그대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 월성(越星), 별을 넘는다. 꼭 내 소망과 같지 않은가?]
“싸구려 연극 배우 같군. 본인 입으로 소망을 천명하다니.”
[오래 살다 보면 누군가 날 알아주길 바라는 법이지. 내가 그대를 자주 찾아오는 이유를 이제 알았나?]
“그럴 거면 카운슬링 비용을 내는 건 어때?”
[얼마든지 지불하지! 내가 지구란 별을 뛰어넘는 순간!]
고오오오-
그렇게 둘째는 사라졌다.
마도사가 떠났음에도 거실에 시커먼 악의의 냄새가 남아 있다.
“……꼬리가 길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월성이 검을 빼 들었다.
그러곤 휘둘렀다.
스라라락!
월성의 검이 둘째가 남기고 간 악의의 영기를 베어 냈다.
* * *
한국으로 귀국한 진유성은 다음 날 바로 상림과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놀러 간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블랙 마켓과의 접선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 뭐냐, 삼합회야?”
“아뇨. 이번엔 일본 쪽 야쿠자들입니다.”
“우린 뭐 깡패들만 만나냐? 근데 한국에는 그런 거 없냐? 영화 보면 많던데.”
“한국은 조폭이 뿌리 뽑혔어요. 지난 검찰 총장이 SG와 연합해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다음부터요.”
물론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게 폭력 조직이다.
이제 폭력 조직은 딱 두 부류만 남았다.
조폭이라기보다는 양아치라고 불러야 할 아주 작은 조직들.
혹은 조폭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대해져 양지로 올라와 버린 기업들.
건설 쪽 일을 하는 상림은 이런 생태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건설 업계에는 조폭 출신 기업들이 제법 있으니까.
사실 삼합회에게 팔든, 야쿠자에게 팔든, 한국의 조폭들에게 팔든, 동아시아의 블랙 마켓은 CSG로 통하기 마련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SG의 체재에 순응한 나라에는 블랙 마켓이 생길 수가 없다.
SG 소속 각성자들이 아이템을 팔고 싶다?
그럼 그냥 SG의 각성 마켓을 이용하면 된다. 심지어 이게 돈도 제일 많이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블랙 마켓을 이용할 이유가 있겠는가?
일본의 야쿠자들에게 판 아이템도 결국은 돌고 돌아 CSG가 운영하는 마켓의 상품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야쿠자와의 거래는 상하이의 즉매회와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성질이었다.
즉매회와는 수많은 아이템들을 직접 거래했다면, 이번에는 품목이 정해져 있다.
마정석 전량.
F급 아이템 전량.
이것만 팔 것이었다.
“일곱 차례에 걸쳐 거래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첫 거래라 부산에서 하지만, 다음부터는 서울에서 편리하게 진행될 거예요.”
“흠, 일곱 번?”
“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싶어 할까 봐?”
상림이 진유성의 말에 놀랐다.
진유성의 머리가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멍청한 이미지가 있어서 이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딱!
“아! 왜 때려요!”
“네놈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불경스러운 생각이 들렸도다.”
“……인정.”
황금 한 알의 가치가 높다면, 사람들은 기어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싶어 한다.
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알을 한두 알만 더 얻어도 충분한 이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멍청한 짓임이 알고 있어도 그렇다.
인간은 생각보다 장기적인 생물이 아니었다.
단기적인 이득에 쉽게 충동을 느끼기 마련, 그러나 거위가 낳는 황금알이 아주 작다면?
결코 배를 가르지 않는다.
그 작은 걸 꾸준히 모아야만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상림이 거래를 일곱 번으로 쪼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진유성에게는 마정석과 F급 아이템이 너무나 많다.
이 많은 물량을 한 번에 쏟아 내면 야쿠자들이 욕심을 품을 것이다.
이놈을 잡아서 아이템을 빼앗자!
이미 상해에서 한 번 겪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한 번에 거래하는 아이템의 양이 그리 많진 않다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을 꾸준히 거래한다면?
꽤 믿음직한 고객과 거래처의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뭐, 야쿠자들이 습격한다고 해서 위험하진 않겠지만…….’
세상에 블랙 마켓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싸우면 나중에는 아이템을 팔 곳이 없어진다.
상림은 이런 생각으로 진유성의 아이템을 적절히 나누어서 거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진유성은 ‘일곱 번’이라는 단어만 듣고도 모든 전후 사정을 짐작해 버렸다.
통찰력과 추리력이 절로 혀를 내두르게 했다.
“아무튼 뭐, 이번 거래는 안전할 겁니다. 수수료는 중국에서 거래하는 것보다 비싸지만,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
“네. 그리고 원화로 준비해 주기로 했으니, 그 부분도 이득이고요.”
달러로 받았을 경우, 검은 달러를 깨끗한 한국 돈으로 바꾸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있다.
이동 비용에 환전 비용을 생각해 보면 결국 중국에서의 거래와 비슷비슷할 터였다.
상림이 그런 설명을 이어 가는데, 마침 그들의 차가 부산항에 도착했다.
상림과 진유성의 예리한 기감에 그들의 차를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차명으로 렌트한 차였기 때문에 차번호 같은 건 상관없었다.
“갈까?”
“가시죠.”
상림과 진유성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곤 차에서 내려 부산항에 정박 중인 수많은 배들 중 한 곳으로 올라탔다.
이어진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즉매회와 다르게 야쿠자들은 깔끔했다.
미리 전달된 리스트와 물품을 확인하고는 바로 돈을 지급했다.
거래가 끝날 때쯤 상림이 거래처 간부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야쿠자라고 해서 일본인이 나올 줄 알았는데, 거래처 간부는 나이가 제법 많은 한국인이었다.
아마 상림의 실제 나이보다 약간 윗줄인 것 같았다.
“양이 그리 많진 않지만, E급 아이템도 거래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린 마정석과 F급만 거래하는데?”
“그렇다면 업체를 소개해 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적절한 수수료를 드리죠.”
“흠, 조건은 한국에서의 거래?”
“하나 더. 대금을 한화로 받을 수 있으면 거래 요율을 조금 더 양보하죠.”
“알아보지.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간부가 진심으로 궁금한 태도로 물었다.
“뭘 믿고 달랑 둘이 온 건가?”
깔끔한 거래가 약속되어 있다고 해도, 보통 이런 경우에는 꼬리를 달고 오기 마련이다.
선상에서 공격을 받았을 경우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림이 믿는 구석은 딱 하나였다.
진유성.
진유성이 있는 한 야쿠자 집단 전체가 달려들어도 머리카락 하나 건들지 못하리라.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거래처를 신중히 고르며 알아보니 평판이 굉장히 좋더군요.”
“뭐, 우리가 사고를 좀 안 치긴 하지. 일본 정부가 싫어해서.”
“그걸 믿었습니다.”
“배짱이 두둑하군. 나쁘지 않아.”
간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상림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거래가 끝이 났다.
배에서 빠져나온 상림과 진유성이 차에 올라탔다.
“앞으로도 이 업체와 거래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E급 아이템까진 어떻게 팔아 보죠.”
“우리 오늘 돈 좀 벌었지?”
“많이 벌었죠.”
진유성이 오늘 거래로 벌어들인 돈은 8억가량이었다.
총 7회의 거래를 할 예정이니 예상 수입은 56억.
56억은 상림에게 주기로 한 수수료 2할을 제외한 순수입이었다.
앞서 중국에서 벌어들인 225억 중 55억은 상림이 가졌으니, 진유성의 수익은 170억.
즉, 진유성은 방학이 끝나기 전에 226억이란 돈을 통장에 가지게 될 것이었다.
‘226억이랑 방학은 진짜 안 어울리는군.’
그때 진유성이 말했다.
“이제 진짜 페라리 내놔라.”
“아, 진짜! 주문할 거예요. 그거 주문 제작이라 만들어지는 데 시간 좀 걸리거든요?”
“주문하고 주문표 보여 줘.”
“……알았어요.”
상림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로 주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 억울했다.
‘현금은 지가 나보다 많으면서!’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자동차가 부산항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