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76화 (7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6화>

Quest 16. 개학한 천마님

진유성은 영국에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언제 올지 모르는 나라이기에 기회가 있을 때 좀 더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웃기게도 막상 진유성을 영국으로 초대한 지종수는 한국으로 먼저 떠났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3이나 된 놈이 축구 캠프도 끝났는데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성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큰 이유는 아니었다.

본래 지종수는 하나의 축구 캠프가 끝나면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참가하는 주말 리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학을 꽉 채워서 축구를 하다가 귀국하는 게 지종수의 평소 방학 패턴이었다.

진유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축구에 미친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종수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영국을 떠난 이유는 두 번째였다.

바로…….

“미스터 지! 지!”

“연락처를 알려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세계 축구는 역사상 유례없던 스타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진유성을 찾아 매일같이 지종수를 따라다니는 스카우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유소년 캠프를 학살하고 홀연히 떠난 동양인 축구 천재를 간절히 찾고 있었다.

한 스카우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앞에서 슈퍼볼 당첨 용지를 잃어버린 기분이라고 했다.

지종수는 진유성에게 제발 스카우트들 앞에 나타나 주면 안 되냐고 애걸복걸했지만, 진유성은 단호했다.

축구는 가끔 해야 재밌다.

그에 반해 지종수가 고생하는 모습은 늘 재밌다.

진유성은 스카우트들에게 시달리는 지종수를 방치하고 영국을 돌아다녔다.

이 시점에서 지종수가 귀국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지종수는 뻔뻔한 진유성을 스카우트들에게 팔아넘기기로 결정했다.

스카우트들의 열렬한 구애도 진유성이 받아야 마땅했고, 거절하더라도 진유성이 해야 했다.

난 축구를 해야 하고!

이게 지종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 호텔 방 안에 있습니다!”

지종수가 불과 1분 전에 확인한 호텔 방문을 열자, 스카우트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하지만 그 안에 진유성은 없었다.

“없는데요?”

“그럴 리가? 도, 도망갔나?”

다음으로는 불과 10초 전에 확인한 화장실로 스카우트들을 인도했다.

“이 안에서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화장실에는 진유성이 없었다.

지종수는 진유성을 스카우트들에게 팔아넘기기로 마음먹었지만, 진유성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했다.

그 어떤 장소로 몰아넣어도 스카우트들이 나타나면 귀신처럼 사라졌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정도맹이 펼친 천라지망도 진유성을 가둘 수 없었는데, 지종수가 그를 어떻게 가두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자 스카우트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처음엔 지종수를 동양인 축구 천재와 맞닿은 유일한 끈으로 여기고 예의를 지켰다.

극성으로 달려들긴 했지만, 태도 자체는 정중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종수가 자꾸 그들을 똥개 훈련시키자, 정중함이 실종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종수는 영국이 왜 신사와 훌리건이 공존하는 나라라고 불리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것이 지종수가 진저리를 치며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 사건의 전말이었다.

* * *

지종수가 떠나고, 진유성은 홀로 영국에 남아 관광을 즐기다가, 5일 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교주님, 한국에 언제 오세요?

“왜?”

-빨리 들어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상림이 자신을 찾은 탓이었다.

어차피 진유성은 이미 영국의 관광명소 대부분을 구경한 상태였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뛰어서 구경하고 오면 그만이니까.

런던 공항에 도착한 진유성은 탑승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공항 TV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오.”

TV 속 아놀드 벡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보고 알았는데, 아놀드 벡은 본래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비징후 게이트 때문에 영국에 온 모양이었다.

‘국적이 미국이었군.’

그러고 보면 말투가 미국식이긴 했다.

케임브리지에 열린 비징후 게이트는 생각보다 적은 사상자를 내고 클리어되었다.

선별 인원 대부분이 명문대의 학생들이라 그런지, 효율적이고 영리하게 게이트를 클리어한 것 같았다.

운 좋게 F급 게이트기도 했고.

하지만 사상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사망 9.

부상 17.

단 한 명의 사망자라도 누군가에겐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이었다.

아놀드 벡은 TV에서 사망자의 가족들을 위로하다가 한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기자의 질문은 SSS급의 벽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 인터뷰에서 아놀드 벡이 SSS급의 벽에 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꺼내긴 적절치 않은 질문이었다.

아놀드 벡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자극적인 취재를 위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당신과 당신 언론사의 실적과 관련된 질문이었겠죠.”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돈과 관련됐을 테고.”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건, 그 빌어먹을 돈은 게이트 안에서 숨을 거둔 인간의 존엄성보다 한참 아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당신과 당신의 언론사에게는 절대 인터뷰를 받지 않겠습니다.”

진유성은 아놀드 벡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중원에서 자신이 품었던 생각과 같다.

같잖은 무인들의 무력보다, 야비한 관리들의 학식보다, 민초들의 존엄성이 더 중요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놀드 벡은 자신의 가르침 덕분에 더 강해질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었다.

질문을 받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진심으로 게이트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짜식,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 한 번 더 쓰다듬어 줄 걸 그랬네.’

아놀드 벡은 진유성보다 한참 약하고, 진유성보다 한참 어렸다.

하지만 그는 분명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진유성이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인천행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군.”

잠시 뒤, 런던 공항에서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영국 여행의 끝이었다.

* * *

록펠러는 올드 캐슬에서 만났던 중원의 절대자, 진유성의 뒤를 쫓고 있었다.

첫째는 여전히 하위 차원을 헤매는 모양이었고, 둘째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애당초 그들은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계획만 공유할 뿐, 개인적으로 꾸미는 일은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셋 모두 알고 있다.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언젠간 다가올 <신성의 날>이 끝나면 세쌍둥이는 셋이 아닌 하나가 될 것이다.

나머지 둘의 영성은 최후의 한 명에게 흡수당한 후일 테니까.

록펠러 역시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신만만한 계획도 있었다.

이 계획의 첫 단추는 진유성을 사로잡아 영성을 빼앗는 것이다.

진유성을 포식할 준비는 이미 끝이 났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가 한 가지 있었다.

진유성을 무대 위로 올리는 것.

하지만 록펠러는 게이트의 시스템으로는 진유성을 추적할 수가 없었다.

놈은 분명 게이트에 들어오고,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획득하고, 스탯을 얻었다.

그렇다면 게이트 내에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 어떤 기록도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마도술의 근간이 되는 마나나 무공의 근간이 되는 내공을 자연적으로 얻을 수 없었다.

즉, 중원의 절대자도 무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레벨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게이트에 들어간 이유도 무공을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었다.

한데, 어째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록펠러는 게이트 기록을 토대로 진유성의 뒤를 캐는 걸 포기했다.

진유성을 쫓는 일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직접 찾아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은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

분명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세상에 유명한 각성자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록펠러가 먼저 떠올린 각성자는 CSG의 수장인 월성이었다.

그들의 고향과 이곳의 지구는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았고, 지리적으로는 똑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말은 곧, 중원의 절대자가 중국에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의미했다.

인간은 익숙한 곳에 끌리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CSG의 월성은 SSS급 각성자이며,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정확히 몰랐다.

SG에서 독립한 이후 CSG는 중국 내 최고권력 기관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문제는 ‘과연 누가 CSG의 수장이 되어, 게이트 시대의 절대 권력을 쥐게 될 것인가?’였다.

대외적으로는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벌어졌고, 수면 아래에서는 총칼이 대동된 무력 다툼이 벌어졌다.

엄청난 피가 흘렀다.

오죽하면 보다 못한 국가주석이 ‘적어도 목숨은 빼앗지 말자.’라고 넌지시 권유할 정도였다.

기나긴 권력 싸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월성’이란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각성자 청년이었다.

젊다 못해 새파랗게 어린 월성은 내각의 만장일치로 CSG의 수장이 되었다.

무서운 것은…….

그 누구도 월성이 정확히 어떤 방법을 통해 CSG의 수장이 됐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진실을 아는 이들은 모두 죽었거나, 그의 편이 되었다.

사실 세쌍둥이도 그의 정체를 몰랐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법 비밀스럽고 제법 강한 것 같지만 그래 봐야 인간이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중원의 절대자가 이 세계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월성이 수상했다.

록펠러는 마음먹은 순간 곧장 중국으로 향했다.

마침 중국에 A급 게이트가 열려서 각성자들이 고위급 각성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어디…….’

먼발치에서 월성을 지켜보던 록펠러가 오른손을 들어 월성을 겨눴다.

어둠이 떨리며 새까만 영기가 유형의 형태를 갖췄다.

이윽고 화살촉 같기도 하고, 쐐기풀 같기도 한 뭔가가 월성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로펠라잔투스의 촉매란 이름을 가진 마도술이었다.

츠츠츠츠츠!

유형화된 무언가가 월성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월성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수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흠, 아니군.’

록펠러는 월성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CSG는 필요한 존재이고, CSG를 이끄는 월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록펠러는 월성을 시험해 보았다.

방금 전, 록펠러가 마음을 조금만 바꿨다면 월성은 죽었다.

월성의 몸에 침투했던 촉매는 록펠러의 의지에 따라 폭발했을 것이고,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으니까.

이것은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확실의 영역이었다.

로펠라잔투스의 촉매를 피하기 위해서는 쐐기풀 모양의 촉매 자체를 알아채고, 피해야 했다.

월성이 중원의 절대자였다면 촉매를 맞는 일부터 없었으리라.

록펠러는 그 뒤로도 중국을 샅샅이 뒤지며 각성자들을 살폈고, 시험했다.

실수로 몇 명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중국에는 진유성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높은 곳은 이제 하나뿐이다.

한국.

진유성을 처음 만난 곳은 체코였지만, 의심스러운 흔적이 시작된 곳은 서울역이었다.

필터 몬스터 린트콕을 죽이고 영성을 훔쳐 갈 만한 이가 일반적인 각성자 중에 있을까?

그렇게 한국을 주시하던 록펠러는 이윽고 확실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한국의 천안이란 도시에 열린 F급 보스 레이드 게이트.

누군가 그곳의 보스를 해제하고 영성을 훔쳐 간 것이었다.

두 번의 우연은 없었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한국이었단 말이지…….]

수면 아래 몸을 숨긴 물고기는 손으로 잡기가 힘든 법.

물고기를 잡을 때는 먹음직스런 미끼로 유혹해야 했다.

[마침 좋은 미끼가 있군.]

록펠러의 음험한 시선이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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