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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75화 (7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5화>

아놀드 벡의 놀라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진유성이 투기를 뿜으며 한걸음 다가온 것이었다.

“이제 심화 과정으로 가 보자고.”

진유성이 바닥에 꽂아 놓은 검을 들어 아놀드 벡을 겨누었다.

그러곤 말했다.

“왼쪽.”

후웅!

횡소천군(橫掃千軍).

천 명의 군세를 일거에 벤다는 거창한 초식명과 다르게, 횡소천군은 삼재검법에 포함된 기본적인 횡단 베기였다.

진유성의 동작도 그러했다.

정직하고 단선적인 움직임으로 검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휘두르는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도 겁을 먹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위력의 공격.

하지만 아놀드 벡은 그 단순한 공격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했다.

분명 진유성의 공격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각적인 정보는 그러했다.

하지만 온몸의 생존 본능이 자꾸 반대쪽을 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아놀드 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진유성이 예고했던 왼쪽을 막아섰다.

까앙!

부딪친 두 개의 검이 불꽃을 토해 냈다.

“이게 어찌…….”

“심화 과정이라니까? 심동과 행동을 반대로 하는 거지.”

진유성이 다시 검을 겨누었다.

“오른쪽.”

후웅!

진유성은 계속해서 심동과 행동의 방향을 달리하며 아놀드 벡을 공격했다.

내공은 일절 쓰지 않았다.

내공까지 쓰면 아놀드 벡은 공격을 막긴커녕 팔이 잘리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놀드 벡의 눈에는 진유성의 팔이 대여섯 개는 되어 보였다.

시각 정보와 감각 정보가 혼동되자 어지러움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현혹되지 말자.’

아놀드 벡이 눈을 감았다.

시각 정보에 현혹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까가가가강!

진유성이 공격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놀랍게도 아놀드 벡이 진유성의 공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서 무의 경지를 개척하느라 배움이 느렸을 뿐, 지닌 바 재능 자체는 굉장한 무인이었다.

신주청의 재능과 비교할 정도면 중원에서도 비교할 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놀드 벡이 눈을 뜬 채로 진유성의 검을 걷어 내자, 진유성은 검을 거뒀다.

“괜찮네. 앞으로는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도 연습해라.”

아놀드 벡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거뒀다.

그러곤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가르침을 내려 준 이에게 표하는 극진한 존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진유성이 아놀드 벡에게 알려 준 건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다.

무림의 천년역사를 통해 정립된 무(武)와 공(功)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경지니까.

하지만 아놀드 벡에게는 이러한 선조들의 역사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으로 캄캄한 길을 더듬어 가며 이 세계의 무공을 개척해 가고 있었다.

아마 게이트 사태가 수백 년간 이어지면 이곳 사람들은 아놀드 벡을 소림의 달마나 무당의 장삼봉 같은 개파조사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진유성은 후학을 위해 길을 개척하다 사라지기엔 아놀드 벡의 재능이 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무공에 담긴 특징도 그렇고, 선천진기가 주는 느낌도 그렇고, 사람 됨됨이도 바른 것 같았다.

그래서 가벼운 가르침을 전수해 준 것이었다.

‘뭐, 상일문주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진유성은 가벼운 마음이었겠지만, 진유성의 가르침은 아놀드 벡이 간절히 원하던 무엇이었다.

무엇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스스로도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금.

아놀드 벡은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이 SSS급 너머에 도달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민망할 지경입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놀드 벡의 말투는 확연히 손윗사람을 대하는 것이었다.

그게 진유성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역시 사람은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상림이 놈은 맨날 툴툴거리기나 하는데 말이지.’

진유성이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놀드 벡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짜식, 예의 바르네.”

진유성의 행동에 아놀드 벡은 적잖이 당황했다.

자신을 이렇게 대한 건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이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실례일지 모르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전에 넌 누구냐? 유명한 각성자야?”

“저는 SSS급 각성자입니다. 또한 SG를 대표하고 있죠. 황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놀드 벡이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은 자신을 지칭하는 수식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다.

하지만 이 남자 앞에서는 부끄럽다.

“SSS급? 그거 세상에 몇 명 없는 거 아니야?”

“세 명뿐입니다.”

“진짜? 그렇게 적어? 그럼 네가 적어도 3등이라는 거네?”

“대인전은 잘 모르겠지만, 몬스터와의 전투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SS급과 SSS급의 차이가 너무 커서 대인전도 마찬가지일 테니, 아놀드 벡은 말은 겸손이었다.

진유성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인터넷을 즐겨 이용하기 때문에 각성자들 중 최고로 꼽히는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었다.

이놈이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일 줄은 몰랐다.

‘사람 보는 눈이 죽진 않았군.’

황제는 대중들이 존경하는 각성자였다.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온갖 사람들이 다 까이는데, 황제를 까는 글은 별로 못 봤다.

“야, 그럼 너 영향력 좀 있겠다?”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핸드폰 번호 말해 봐.”

“제 번호 말씀이십니까?”

“그럼 내 번호겠냐? 답답하긴.”

진유성이 손을 들어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아놀드 벡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이렇게 대한 건 이번에도 역시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아놀드 벡이 번호를 말하자 진유성이 주의 깊게 그 번호를 외웠다.

“제 번호는 어찌……?”

“내 번호를 주긴 좀 그렇거든.”

아놀드 백이 생각보다 거물인 것 같고, 진유성은 머지않은 미래에 거물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 올 것 같았다.

바로, 군대 때문이었다.

본래는 통일을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상림의 말에 따르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SG를 대표하는 SSS급 각성자라면?

그를 정상적으로 군대에서 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사실 아놀드 벡이 의지를 갖는다면 실제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방법도 간단했다.

진유성을 국방부에서 UN 평화유지군으로 파견을 보내고, 그 소속을 아놀드 벡 휘하로 두면 그만이었다.

다만 아놀드 벡은 자신의 권력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진유성도 아놀드 벡의 명예를 위해 복무 기간 중에는 꾸준히 게이트를 클리어해야 하리라.

그러나 이것도 진유성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내공을 얻을 수 있는 데다, 아놀드 벡을 따라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까.

“야, 내가 필요할 때 연락해도 되냐?”

“물론입니다.”

“음, 내 정체는 알려 주기가 좀 그래. 뭐 대단한 건 아닌데, 아무튼 좀 그래.”

지금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진유성은 자신의 힘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힘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순간 세상은 다시 그를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아놀드 벡을 보고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놀드 벡도 진유성이 보기엔 제법 재능 있는 놈에 불과했다.

예전에 신주청이 진유성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교주님, 저와 똑같은 무인이 몇 명이나 있어야 교주님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경하고, 위험한 질문이었다.

남들이 듣기에는 역심을 품었다고 추궁할 수도 있었고.

하지만 진유성과 신주청의 신뢰는 가족 그 이상이었다.

진유성은 막연히 신주청이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사실이었다.

“글쎄…… 너와 완전히 똑같은 거야? 아니면 각자 개성이 있는 거야?”

“뭐가 됐든 상관없습니다. 가정하기 편하신 걸로.”

“두 명에서 세 명 사이일 거 같은데.”

“그렇군요. 제가 벽을 넘으면 어떻습니까?”

“벽을 넘으면 확실히 두 명이지.”

진유성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진실이되 진실이 아니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벽을 넘은 신주청이 2명 있다면, 진유성은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인 느낌은 달랐다.

벽을 넘은 신주청이 2명, 혹은 그 이상이 있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이긴 했지만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진유성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만큼 진유성은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못했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종종 자신이 인간이 맞는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나와 똑같은 무공을 가진, 또 다른 나를 만나도 지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더더욱 세상에 힘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때, 진지한 표정을 지은 아놀드 벡이 물었다.

“그럼 그 힘은 어디에 쓰실 생각입니까?”

“주기적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있긴 해.”

“전 신께서 인간에게 힘을 주신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힘도 언젠간 쓰일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좋겠네.”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럼 적어도 자신은 확실히 한 명의 인간이란 소리니까.

신이 아니라.

그 순간, 진유성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있었다.

프라하의 올드 캐슬에서 만났던 이상한 까만 놈.

그놈은 평범한 각성자가 상대하기 힘든 놈이었고, 분명 게이트와 어떤 연관이 있는 놈이었다.

자신이야 그런 놈이 열 명이 와도 상대할 수 있지만, 일반 각성자들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까만 영기로 구성된 신체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야.”

“예?”

“심동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그걸 유형화한다고 생각해 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약간, 이런 느낌으로?”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진유성의 손에서 천천히 검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검이었다.

진유성은 아놀드 벡이 심검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다 보면 한 가지 경지에 오를 수는 있으리라.

의념.

심동이 모인 것이 의념이고, 의념이 모인 것이 심검이니까.

그 순간, 아놀드 벡이 깜짝 놀랐다.

“과, 광선검?”

다스베이더 헬맷을 쓰고 있는 진유성의 손에서 피어오른 심검이, 꼭 광선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그것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뿜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은은하게 청백색의 빛을 내는 형태가 비슷했다.

진유성은 광선검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자신이 잠시 콘셉트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직무 유기다.

이 헬맷을 뒤집어쓴 순간 완벽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아놀드 벡의 재능에 감화되어 버렸다.

“포스가 함께하기를…….”

그렇게 진유성이 사라지려는 순간, 아놀드 벡이 소리를 질렀다.

“잠깐! 한 가지만!”

“뭔데?”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습니까?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진유성이 아놀드 벡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그리고 러닝 10킬로미터. 이걸 매일 해!”

“예?”

“중요한 건 하루도 거르지 않는 거다.”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사라졌다.

SSS급 각성자인 아놀드 벡은 희미하게 진유성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감히 따라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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