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3화>
* * *
“쓸데없이 과하게 반응하는군.”
킹스 크로스 역에서 소소한 재미를 즐기던 진유성이 혀를 찼다.
우연히 자신을 발견한 유소년 축구 캠프의 코치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흠.”
각성자가 넘쳐 나는 세상에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은 생각보다 담이 작은 것 같다.
하지만 진유성의 이런 생각은 자신만의 오해였다.
사실 지구상의 그 어떤 각성자도 진유성처럼 허깨비처럼 사라질 수는 없었다.
물론 각성자들은 인간보다 확연히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만약 평범한 민간인과 각성자가 싸울 일이 있다면, 민간인의 눈에 각성자는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리가 충분히 가깝거나 페인팅 모션이 먹혔을 때의 이야기다.
속임수 동작으로 좌측을 신경 쓰게 만들고 우측으로 움직이면 평범한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각성자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 버든은 진유성을 제법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각성자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심지어 손에 카트까지 밀고 있는데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 버든이 각성자가 와도 저렇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또 한 가지, 각성자는 민간인 앞에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각성자의 스킬은 군인의 총과 같다.
한국처럼 징병제인 나라는 성인 남성의 대부분이 총을 다뤄 보았겠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그런 이들은 총이 있다는 건 알지만, 총을 발포하는 장면 자체를 보는 일은 별로 없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SG가 발의한 법안에 따라 각성자들은 게이트 외의 공간에서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각성자 훈련장이라든지 사열식 같은 곳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각성자 개개인을 전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랬다.
이런 이유로 조 버든이 놀라고 있었지만, 진유성은 한심해 하고 있었다.
건장한 사내놈이 놀라서 하악거리는 꼴이 우스워서.
“쯧쯧.”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진유성이 발걸음을 옮겼다.
킹스 크로스 역을 빠져나와 런던 밤거리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진유성이 영국에서 머물 시간은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관광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역을 벗어나 인근 공원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음?”
진유성의 기감 사이로 뭔가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진유성은 주변을 백팔 방위로 분할하고, 그 백팔 방위를 다시 삼재(三才)로 나누어 인지하는 고수였다.
단순 수리적인 계산으로는 108에 3을 곱해 주변을 324개로 분할해 인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재란 수학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삼재.
하늘과 땅과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인식의 체계.
진유성이 시선을 하늘로 두면 그의 머리 위 공간 전체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땅으로 향한다면 발밑 공간의 전체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사람에게 향한다면 주변에 있는 인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삼재였다.
그리고 지금.
진유성은 자신의 백팔 방위와 삼재 안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존재감을 읽었다.
처음에는 프라하에서 만났던 까만 놈 같은 존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때와 같은 악의와 불길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력이었다.
‘뭐야? 강하잖아?’
지구에 도착한 이래로 허약한 인간만 만나오던 진유성이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던 강함이었다.
“신상을 개시할 순간이군.”
진유성은 점차 다가오는 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동 방향을 보아하니 자신에게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듯했으니.
좋은 일로 오는지 나쁜 일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얼굴을 감추는 게 좋았다.
진유성은 인벤토리에서 헬멧을 꺼냈다.
이번엔 아이언맨이 아니었다.
영국에 도착해 런던에서 충동 구매한 신상 헬멧이었다.
‘음악이 아쉽군.’
이 헬멧을 쓸 때만큼은 꼭 어울리는 음악이 있는데, 그게 아쉬웠다.
헬맷을 뒤집어쓴 진유성은 내공으로 음악을 만들 수는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좀 힘들 것 같았다.
특정 소리를 낼 수는 있겠지만, 음악으로 들릴 만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때, 킹스 크로스 역을 넘어 공원에 도착한 누군가가 진유성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긴장한 백인 남자가 먼 거리에서 진유성을 응시했다.
그러곤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충분히 좁혀졌을 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이 마른 듯 잔뜩 갈라진 목소리였다.
“Who…… are you.”
진유성은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I…… am your father.”
그는 다스베이더의 헬맷을 쓰고 있었으니까.
진유성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남자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가 검을 빼 들었다.
검에 살기가 묻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강렬한 투기는 있었다.
진유성은 이 남자가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재미있군.’
흥미롭다.
지금껏 지구에서 진유성에게 감흥을 주었던 상대는 셋뿐이었다.
하나는 서울역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린트콕.
둘은 천안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엘비온.
마지막으로는 프라하에서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놈.
셋 다 인간은 아니었다.
게이트란 미증유의 것에서 이어진 존재들로 보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진유성은 눈앞의 남자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냐?”
“날 모르나?”
“너 유명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알고 있지.”
“유튜버야?”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라 물었건만, 백인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을 뿐이었다.
“난 아놀드 벡이다.”
황제(Emperor).
아놀드 벡(Arnold Beck).
전 지구상에 3명뿐인 SSS급 각성자이자, 인류 최초의 SSS급 각성자.
그가 진유성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 * *
아놀드 벡이 영국을 급히 방문한 것은 케임브리지에 열린 게이트 때문이었다.
평범한 게이트였다면 황제라 불리는 아놀드 벡이 찾았을 리가 없었다.
케임브리지에 열린 게이트는 평범하지 않았다.
지금껏 세계에서 딱 두 번밖에 보고되지 않은 ‘비징후 게이트’.
그것이 난데없이 열려 버린 것이었다.
비징후 게이트는 서울역에서 최초로 탄생했으며, GEL 수치를 무시하고 태어나는 게이트를 뜻했다.
비징후 게이트가 위험한 것은 GEL 수치를 측정해 게이트 탄생을 예고하는 방위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었다.
예고 없이 등장해 민간인들을 휩쓸어 가는 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들과 지하철도 공무원을 선별했던 게이트는, 케임브리지에서 대학생들을 선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서울역의 비징후 게이트는 D급이었지만, 케임브리지의 게이트는 F급이었다.
사상사는 발생하겠지만, 민간인들의 클리어도 기대해 볼 만한 등급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SG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만큼 비징후 게이트는 위험했다.
만일 비징후 게이트가 계속해서 생겨난다면?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분류되고 있던 게이트가 관리가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탈바꿈될 것이다.
그래서 SG는 아놀드 벡에게 케임브리지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미 열려 버린 게이트라지만 지구상의 수위를 다투는 아놀드 벡이라면 뭔가를 알아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아놀드 벡은 SG의 요청에 응했다.
그렇게 도착한 런던.
아놀드 벡은 기차를 통해 케임브리지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교통 정체 때문에 시간이 조금 늦어 버렸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런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케임브리지로 향하거나, 기차 운행이 종료된 철로를 따라 쭉 달려서 케임브리지에 도착하거나.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긴 한데…….’
왠지 모르게 초조했다.
평소보다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고, 미묘하지만 뭔가 자신을 옥죄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철로를 따라 달릴 생각이었다.
민간인들 앞에서 각성자의 힘을 사용하는 건 지양해야 하는 일이지만, SG에 공문을 보내서 철로의 인원 통제를 요청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초조함을 느끼고 있지?
초조할 일이 없는데?
비징후 게이트는 위험하지만 이미 게이트는 열려 버린 상태.
아놀드 벡이 영국으로 온 것은 혹시라도 비징후 게이트의 특이점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이지, 게이트를 해결하러 온 게 아니었다.
즉, 심정적으로 긴장하거나 초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게 뭔가 이상했다.
“……!”
그 순간, 뭔가를 느낀 아놀드 벡이 눈을 감았다.
그러곤 온 신경을 감각 계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스킬에 의존했다.
하지만 인외의 벽이라 불리는 SS급 각성자들과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SSS급 각성자들은 스킬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들은 스킬이 발동되는 매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마다 스킬을 짜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놀드 벡은 모든 역량을 자신의 감각 계통에 몰아넣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이게 대체……?”
어지간해서 놀라는 일이 없는 아놀드 벡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촘촘한 기운들이 주변 전체에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기의 파동이 런던 외곽을 완벽히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했다.
이 일대가 모두 누군가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
기운의 주인은 영역의 모든 변화를 감지하고 있을 것이며, 원한다면 즉시 물리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놀드 벡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진유성의 인지 범위였다.
아놀드 벡이 초조함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놀드 벡의 무의식과 전투 감각은 그가 위험에 빠졌음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무방비 상태의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꿀꺽.
침을 꿀꺽 삼킨 아놀드 벡이 고민했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여기가 자신의 무덤이 될지라도,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다.
그는 인류 최초의 희망이자, 마지막 희망인 황제였으니까.
아놀드 벡이 그물망처럼 촘촘한 기운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개의 역을 지나쳐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했을 때.
아놀드 벡은 깨달았다.
기운의 주인이 킹스 크로스 역의 뒤편 공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후우…….”
심호흡을 길게 내쉰 아놀드 벡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기운의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미증유의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남자는 다스베이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함인가?’
그럴 것 같다.
심지어 정체불명의 남자와 가면은 굉장히 잘 어울렸다.
끔찍하리만큼 묵직한 위압감이 등 뒤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타는 목마름을 느낀 아놀드 벡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그러자 다스베이더가 말했다.
“I…… am your father.”
“……!”
아놀드 벡이 당황했다.
아놀드 벡은 SG 말고도 하나의 비밀 단체에 더 소속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미국의 유명한 정신계 각성자인 아멜라 메건부터 시작해서 많은 각성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비밀 단체가 찾아 헤매는 것은 바로 ‘어머니(Mother)’.
그런데 아버지라니?
이자가 자신들의 단체와 관련이 있나?
뭔가를 암시하려고 하는 것일까?
의도적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상식적으로 특별한 의도 없이 저런 헬맷을 쓸 리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다스베이더의 모습이 의미심장했다.
저 대사의 유명함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끝내 아놀드 벡은 검을 들었다.
“난 아놀드 벡이다.”
무인으로서의 감각이 꿈틀거렸다.
뭐가 됐든 지금은 저 남자의 무력을 견주어 볼 시간이었다.
인류 최강의 각성자가 중원의 고금제일인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