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2화>
놀란 것은 경기장 안의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진유성의 실력을 알고 있는 지종수만 조금 덜 놀랬다.
하지만 그 놀람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진유성과 같은 팀이 된 2군-실력적인 의미로- 선수들은 질투를 느꼈다.
공을 지나치고 될 대로 되라고 찼는데 운 좋게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스카우트들은 경기장보다 높은 펜스에 있기에 진유성의 노림수를 정확히 파악했지만, 경기장 내의 선수들은 거기까진 알 수 없었으니까.
“젠장. 이상한 새끼가 주목 받고 있네.”
“내 말이.”
그사이, 아무런 세레머니 없이 하프 라인으로 돌아온 진유성 덕분에 곧장 경기가 진행되었다.
중원에서 공을 잡은 지종수가 미드필더 싸움에서 이기고 진유성을 찾았다.
진유성은 1선과 2선 사이의 우측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공이 오지 않으면 절대 뛰지 않는 게 꼭 대정고에서의 모습과 같았다.
“솔직하게!”
지종수가 이상한 기합과 함께 진유성에게 패스를 건넸다.
그러자 좌측 수비수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저 동양인이 공을 가지고 있을 때의 속도가 얼마인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이 없을 때의 속도를 보자면 절대 느릴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이번엔 속도가 아니었다.
진유성은 공을 툭툭 치며 우측에서 중앙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 중 한 명이 속도를 경계하며 접근하는 순간.
타-탁!
진유성의 번개 같은 양발 드리블, 라-크로케타가 시전되었다.
흔히 한국 축구팬들이 팬덤 드리블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허무하게 벗겨진 수비 공간을 메우기 위해 다른 수비수가 달려들자.
다시 한번 라-크로케타.
한 번 더 라-크로케타.
이번에 달려든 수비수는 양발 드리블을 경계해 우측 방향에서 견제만 하려 했지만.
스륵.
순간적인 속도를 내며 시전한 마르세유턴에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4명을 제치는 순간, 더 이상 진유성의 눈앞엔 아무도 없었다.
진유성이 있는 힘껏 공을 찼다.
부웅!
“No!”
골키퍼가 직감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번에 진유성이 선보인 것은 오른발로 차는 척하며 왼발로 찍어 차는 라보나킥이었다.
그야말로 농락.
진유성이 귀신이라도 본 듯 넋이 빠져 있는 수비수와 골키퍼에게 말했다.
“You say ‘No.’, But your body is honest.”
지종수가 구체적인 문장까지 짜서 알려 준 멘트였다.
진유성의 도발에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오버헤드킥은 우연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비수 4명을 제치고 골키퍼를 농락한 화려한 발재간은 우연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과 같은 팀의 공격수들은 진유성에게 패스하지 않았다.
차라리 진유성이 적당한 실력을 선보였다면 그 실력을 인정하고 패스했을지도 몰랐지만, 저건 너무 압도적이지 않은가.
진유성의 플레이를 보고 싶은 스카우트들이 답답해 하는 것도 모르고 진유성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저 친구들은 답이 없군.”
“재능 있는 선수를 질투하는 건가?”
“아니면 팀플레이를 전혀 모르거나.”
그 때문에 스카우트들 눈에 완벽히 벗어나 버렸다는 것도 모른 채.
수비수에 막혀 전진을 못하던 같은 팀 37번 공격수도 진유성에게 패스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 순간 그의 눈에 진유성이 들어왔다.
‘에라, 모르겠다.’
37번 공격수는 진유성의 등번호를 보고는 패스가 아니라 슛을 했다.
진유성의 엉덩이를 향해 슛을 하듯이 강하게 차 버린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공이 날아갔다.
회전하며 직선으로 날아온 탓에 트래핑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공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몸을 공중으로 날리며 공간을 확보한 진유성이 가볍게 공을 받았다.
그러곤 사포.
떨어지는 공을 다시 사포.
다시 떨어지는 공을 또 사포.
기술 코치 조 버든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3연 사포!
보통의 사포는 느렸지만, 진유성의 사포는 전혀 아니었다.
저 공을 어떻게 저리 컨트롤할 수 있을지 경외감이 들 정도의 속도였다.
본래 사포는 비매너 개인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남은 것은 최종 수비수와 골키퍼뿐.
모두가 저 소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뚫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데, 몸을 빙글 돌린 진유성이 난데없이 뒤를 향해 공을 날렸다.
정확히는, 등번호 37번의 엉덩이를 향해.
퍼-엉!
엉덩이에 맞은 공이 튀어 올라 다시 진유성에게 돌아왔다.
진유성은 공을 그대로 또 한 번 걷어찼다.
이번에는 47번 공격수를 향해.
텅!
47번 공격수의 머리에 맞은 공이 묘한 궤적을 그리며 다시 진유성에게 돌아왔다.
그러자 베스트 일레븐 팀의 최종 수비수가 이성을 잃었다.
저 동양인 선수가 자신들을 놀리고 있다 생각한 것이었다.
“으억!”
눈이 돌아간 수비수가 위험하게 태클을 하는 순간 스카우트들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진유성이 다쳐서?
아니었다.
태클을 보며 피식 웃은 진유성이 수비수의 정수리를 왼손으로 짚으며 다리를 쭉 뻗었다.
나이키 광고에 나올 것 같은 궤적을 그린 진유성의 발이 공중에 뜬 공을 차 냈고.
촤르륵-!
골망을 흔들었다.
진유성이 피식 웃으며 수비수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못해, Cracker.”
조롱을 받은 수비수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진유성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오…….”
“저게 가능해?”
진유성은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수비수의 주먹을 간단한 동작으로 전부 피해 냈을 뿐이었다.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 몸놀림은 축구 실력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심판이 다가와서 수비수를 퇴장시키고 같은 팀원에게 공을 맞힌 진유성에게 경고를 하나 준 뒤, 경기가 재개되었다.
진유성은 건방지게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수비수를 피떡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한 번 참기로 했다.
지금 퇴장당하면 골당 14만 원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 * *
경기는 2군 팀의 9 대 1 승리로 끝이 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9골 중 8골을 넣은 진유성이 MVP로 뽑혔다.
진유성의 완벽한 원맨쇼였다.
수비수가 3명이 붙든, 4명이 붙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속도로 젖히고, 드리블로 보내고, 기묘한 페인팅 모션으로 기를 죽였다.
마지막에는 오기가 붙은 수비수 5명이 진유성에게 달라붙었는데, 진유성은 너무나 가볍게 그들을 뚫어 버렸다.
공을 툭 찍어서 차 올린 다음에 어깨싸움으로 다섯을 전부 넘어트리고 돌파한 것이었다.
그때가 후반 90분이었다.
후반 90분임에도 진유성의 체력은 이제 막 경기를 시작한 것처럼 팔팔했고,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경기가 끝나자 스카우트들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표정으로 하염없이 진유성만 바라보았다.
모두의 머릿속에 같이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로또다.’
저 소년과 계약하는 사람은 로또에 맞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유소년 축구에서 활약한 게 뭐 대수냐고?
프로 무대에 가면 통하지 않을 거라고?
미친 소리.
저 퍼포먼스의 반, 아니 반의반만 해도 매 경기 1골씩 집어넣는 선수가 되리라.
어쩌면 1부 리그에서 3연 사포로 골을 넣을지도 몰랐다.
스카우트들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프런트를 향해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프런트에 도착한 모든 스카우트들이 말의 앞뒤도 없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름! 이름 뭐야!”
“소속!”
“몇 살!”
“경력!”
“국가!”
온갖 질문이 쏟아진다.
모든 질문을 침착하게 듣고 있던 프런트의 스카우트 전담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내가 더 궁금해…….”
* * *
경기가 끝나고 진유성은 조 버든에게 돈을 받았다.
“제발, 메디컬 테스트라도…….”
“시시하다니까.”
조 버든이 애타게 진유성에게 매달렸지만, 진유성은 가차 없었다.
사실 축구 자체는 꽤 재밌었다.
사람을 차별하는 건방진 수비수들이 시뻘게진 얼굴로 달려들고, 그들을 농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직업으로 삼을 만한 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종수는 감격해서 울기 직전이었다.
진유성을 부를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잘해 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인종차별을 하던 놈들을 혼내 준 걸로 모자라, 거의 트라우마까지 생기게 만들어 버렸다.
놈들은 앞으로 동양인 축구 선수만 보면 오줌을 지릴 듯했다.
“야, 진유성.”
“안 해.”
“뭐? 뭐를?”
“축구하라고 말하려 했잖아.”
“그럼 대신……!”
“난 간다. 아시아에서 온 신비한 축구 천재가 홀연히 사라졌다는 건 네가 설명하고.”
진유성은 정말 그렇게 유소년 캠프를 떠났다.
간만에 땀을 흘려서 꽤 기분이 좋은데, 사람들이 들이닥치면 귀찮을 것이다.
안 그래도 프런트에서 자신에 대해 물어보던 수많은 사람이 선수 대기실로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호텔에 도착해 샤워를 한 진유성이 산뜻한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 * *
조 버든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를 놓칠 수도 있으니 발걸음을 서둘러야 하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눈앞에서 마법을 보여 주고, 마법처럼 사라진 동양인 소년 때문이었다.
진유성의 친구라는 미스터 지는 진유성이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급히 공항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 런던에 들렀다가 캠프에 참여한 것뿐이라고.
말하는 태도가 왠지 거짓말인 거 같았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다.
시시하다고 말하는 진유성의 태도를 기억했기에.
그건 거짓말도, 오만도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다만, 스카우트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젠장.”
꼭 눈앞에서 로또 당첨 용지를 받았다가 실수로 먹어 버린 기분이었다.
아쉬움에 뱃속이 다 불쾌했다.
조 버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오랜만에 멍청한 짓을 하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저런 놈이 아직도 있군.’
조 버든이 도착한 기차역은 킹스 크로스 역.
킹스 크로스 역은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소로 유명했다.
소설의 설정상, 마법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킹스 크로스 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Platform 9, 3/4)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건 작가의 실수였다.
킹스 크로스 역의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은 섬식 승강장인 데다, 거리도 아주 멀었다.
당연히 그 사이에 공간 따윈 없었다.
작가가 소설에서 그리고자 했던 9와 4분의 3 승강장의 모습은 사실 8번 승강장에 있었다.
그렇기에 해리포터와 관련된 관광명소, 사진 촬영 장소, 기념품 판매점도 전부 8번 승강장에 있었다.
그러나 관광객들 중에는 종종 인터넷으로 찾아보지도 않고 9번 승강장으로 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곤 주변에 그럴듯한 게 없으니, 괜히 벽에다가 카트를 미는 포즈로 사진을 찍곤 했다.
그 모습을 본 런던 사람들은 웃음을 참으며 지나갔고.
조 버든도 카트를 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에게 혀를 차며 지나가려고 했다.
승강장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마지막 기차가 벌써 끊긴 게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됐다.
한데…….
“……?!”
문득 멍청한 관광객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아니었다.
그 관광객은 진유성이었다.
“진……!”
조 버든이 황급히 소리를 지르려는데, 드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진유성이 카트를 밀며 9번 승강장 옆의 벽으로 돌진하는 소리였다.
한데, 소리가 심상치 않다.
다들 카트를 미는 척 사진만 찍기 마련인데, 진유성은 실제로 엄청난 속도로 벽을 향해 달렸다.
영화에 나왔던 그 장면처럼.
“위, 위험해!”
저 정도 속도면 위험했다.
물론 카트가 있으니 크게 다치진 않겠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놀란 조 버든이 진유성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스륵.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진유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분명 저 정도 속도로 벽에 들이박았으면 큰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조 버든이 후다닥 벽으로 달려갔다.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에 무슨 장치가 설치됐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벽은 아주 단단한 시멘트와 벽돌이었다.
이건 각성자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흐억…….”
다리가 풀린 조 버든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현실이라 믿을 수 없었던 몸놀림, 환상과도 같은 축구 실력, 속세의 관심을 껄끄러워하는 태도까지.
“마법사였어…….”
믿기 힘든 일이고, 믿고 있는 자신이 미친놈 같았지만…….
그거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런던의 한 남자가 동심을 되찾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