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1화>
* * *
열심히 기술을 보여 주던 크로스 브릿지 캠프의 기술 코치 조 버든(Joe Burden)이 오른발로 공을 붙잡았다.
캠프 참가자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게 느껴져서였다.
‘뭐지?’
보통 이 시간은 캠프 참가자들이 가장 집중을 잘하는 시간인데, 모두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셀럽이라도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코치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툭, 툭툭, 툭툭툭, 툭툭툭툭!
투투투투투툭!
웬 동양인 소년이 축구공과 마치 한 몸이 된 듯한 신기를 펼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이럴 수가!’
저건 단순한 볼터치가 아니었다.
공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축구 종가인 영국에는 축구 개인기를 뽐내는 콘테스트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콘테스트 우승자들이 축구를 잘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애매했다.
기본적으로 볼을 다루는 감각이 있어서 못하진 않겠지만, 그 화려한 기술을 실제 축구에서는 거의 써먹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화려한 개인기는 그만큼 여러 번의 무게 중심 이동을 요하기 때문이었다.
무게 중심이 바뀐다는 건 속도가 죽는다는 소리이고, 클래스 있는 수비수들 앞에서는 재롱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동양인 소년의 신기(神技)는 화려하기만 한 개인기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게 중심이 완전이 하단에 고정된 상태에서 공만 미친 듯이 움직였다.
공이 머리 뒤로 넘어가면 보통 신체의 중심의 상단으로 향하기 마련인데, 전혀 아니다.
두 다리는 언제라도 스프린트(순간 가속)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
저 정도 수준이면 실전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다.
그 순간.
코치의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포-사포-사포.
트래핑 과정이 생략된 3연 사포!
보통 개인기를 하면 그 사이에 트래핑(공을 붙잡아 두는) 과정이 섞여 있다.
무게 중심을 회복하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 가기 위함인데, 동양인 소년의 3연 사포에는 트래핑이 전무했다.
발뒤꿈치로 공을 툭 차서 머리 뒤로 넘긴 다음, 떨어지는 공을 똑같이 넘기고, 또다시 넘겼다.
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 동작!
게다가 속도 역시 위협적이었다.
공중 볼을 다루는 데 최고라고 불리던 호나우지뉴도 저렇게는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봐!”
코치가 깜짝 놀라서 소년에게 다가갔다.
순간 소년이 영어를 못하면 어쩌지란 걱정이 들었는데, 코치의 걱정은 기우였다.
“한국인이라고?”
“맞아.”
소년은 영어를 아주 잘했다.
심지어 완벽한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기도 했다.
코치는 그 순간 이 소년의 정체를 깨달았다.
동양인 선수 대부분은 유럽 무대에서 무릎을 꿇지만, 개중 한국은 예외였다.
한국인이 무조건 성공한단 소리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비교적 많은 한국인들이 프리미어 리그에 안착했다.
또한, 유스 레벨에서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종종 튀어나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면 피지컬의 장벽에 부딪쳐 그저 그런 선수가 되고 말지만.
아마도 이 소년도 그런 유스 선수일 것 같았다.
왜 일반인 코스에 섞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개인기는 절대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아, 혹시 스페인에서 뛰는 유스 선수일까?’
근처에 관광을 왔다가 몸을 풀 겸 캠프에 참여했을지도 몰랐다.
코치의 부름에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거…….”
“그거?”
“그 개인기, 누구한테 배웠어?”
“누구한테 배우긴. 당신한테 배웠지.”
“나? 나한테 배웠다고?”
“방금 보여 줬잖아.”
“바, 방금 배웠다고? 태어나서 처음?”
“어. 왜?”
코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소년이 한국의 고등학교 팀에서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듣기로 아시아 감독들은 유소년 선수들의 개인기 사용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팀이 어디야?”
“팀? 축구 팀?”
“그래.”
“없어.”
“소속이 없다고? 아무 곳에도?”
“어.”
“그럼 계약된 곳은?”
“없어.”
코치의 눈앞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다.
이 소년을 팀으로 데려온다면?
그리고 선수로 키울 수만 있다면?
이 소년은 분명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다.
누군간 개인기만 보고 지나치게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기만 본 것이 아니었다.
코치는 개인기와 함께 많은 것들을 캐치했다.
공에 전혀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건, 신체를 움직이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또한, 개인기 이후의 자세를 보면 선천적으로 무게 중심이 낮고 균형 회복력이 좋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개인기를 이 자리에서 처음 배운 것이라면?
습득력과 관찰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선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축구사를 뒤흔들 선수까지는 모르겠지만, 팀에 들어와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프리미어리거는 충분했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조 버든이 생각에 잠겼다.
이제 필요한 건 근거였다.
이 선수를 팀에 영입하자고 밀어붙일 만한 근거.
현재는 비시즌이라 캠프의 기술 코치직을 맡고 있지만, 원래는 영국 3부 리그 팀의 기술 코치였다.
“이봐, 이름이 뭐야?”
“진유성.”
“진유…… 성. 발음이 이게 맞나?”
“맞아.”
“혹시 메디컬 테스트 받아 볼 생각 없어?”
“없어.”
“어?”
“귀찮아.”
“그, 그럼 입단 테스트는?”
“없어.”
코치가 당황해 입을 열었다.
“이봐! 너에겐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재능이 있다고!”
본래 유소년에게 이런 말을 해 주면 안 되는 것이 룰이지만, 마음이 급했다.
더 어이없는 건 소년의 반응이었다.
“알아.”
“안다고?”
“당연하지. 내가 최고가 아니면 누가 최고겠어?”
“그럼 왜…….”
“시시해서.”
정말이었다.
입신의 경지에 오른 진유성은 모든 스포츠가 시시했다.
물론 친구들과 가볍게 즐기거나, 돈을 걸고 하는 내기는 재밌지만 이걸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면 재미가 있을 수가 없었다.
양심에 찔리는 짓이기도 하고.
진유성의 대답에 코치가 코웃음을 쳤다.
이해는 갔다.
저 정도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면 동네 축구나, 공 좀 찬다는 애들이 다 우스웠겠지.
코치는 우선 동양인 소년에게 축구의 어려움을 깨우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있는 이들은, 어려움을 느끼고 그걸 재능으로 헤쳐 나갈 때 행복을 느끼는 법이다.
“오케이, 그럼 너 축구 한 게임 할래?”
“뭐, 내기라도 할까?”
진유성의 물음에 코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뭘 걸고 할까?”
“골당 50파운드 어때?”
50파운드, 한화 7만 원.
진유성은 5골 정도 넣을 예정이었으니까 이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이 따면 배째라고 나올 수가 있다.
그러나 코치는 고개를 저었다.
“골당 100 파운드, 콜?”
“진심이야? 파산할 수도 있는데?”
14만 원으로 올라간 금액에 진유성이 묻자, 코치가 코웃음을 쳤다.
“대신 네가 90분 동안 3골 이하를 넣는다면 우리 팀의 메디컬 테스트에 응시하는 거야. 어때?”
“좋아.”
“계약서 쓰는 거, 괜찮아?”
“더 좋지.”
잠시 기다리라던 코치가 어딘가로 후다닥 뛰어가더니 급조한 듯한 계약서를 가져왔다.
계약서 내용은 코치가 말한 그대로였다.
계약서를 읽어 보던 진유성이 물었다.
“설마 골키퍼를 시키는 건 아니겠지?”
어차피 진유성은 수비를 하라고 해도 골을 넣으러 올라가니, 골키퍼만 아니면 괜찮았다.
“네가 원하는 포지션 시켜 줄게.”
“공격수.”
“정확히 말해? 원톱? 투톱? 쉐도우 스트라이커?”
“그런 거 몰라. 그냥 앞에만 세워 주면 돼.”
동양인 소년의 자신감 있는 말투에 코치가 웃으며 펜을 내밀었다.
진유성의 사인과 함께 계약이 성사되었다.
* * *
조 버든이 입단 테스트가 아닌 메디컬 테스트를 제안한 건, 너무 몰아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다짜고짜 입단 테스트를 제안하면 소년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저 소년은 한 번 크게 깨져야 했다.
축구의 어려움을 느껴 봐야지만, 그 어려움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
그래서 조버든은 살짝 수작을 부렸다.
진유성과 상대할 11명을 이번 캠프의 베스트 일레븐으로 구성했다.
남은 문제는 일반인으로 참가한 진유성을 선수들과 함께 뛰게 하는 것인데…….
“자네도 청탁 받았나? 하아.”
프런트에서는 아주 손쉽게 허락을 해 주었다.
원래 그럴 예정이었다고.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조 버든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잠시 뒤.
짤막한 몸 풀기 운동 이후에 22명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모여들었다.
* * *
“내가 말했던 게, 저기 저놈들이랑 우리 팀의 저놈들.”
같은 팀에 배치된 지종수가 말하자,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사람을 차별하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돈까지 벌 수 있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골당 14만 원이니, 5골을 넣으면 70만 원.
‘좀 더 넣을까?’
왠지 70이란 숫자가 좀 재수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6골을 넣어서 84만 원을 맞춰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의욕을 가지는 건 진유성과 지종수뿐인 듯했다.
같은 팀의 다른 선수들은 투덜거리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팀의 밸런스가 너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린 선수들 입장에서는 스카우트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팀 밸런스가 엉망이었다.
“젠장, 저놈들만 돋보이라는 거지.”
“우리 팀 동양인은 또 뭐야?”
“아까 보니까 일반인 캠프에 있던 놈 같던데.”
“제기랄. 부자 놈들 취미 생활에 우리가 어울려 줘야 하나?”
“어려운 패스를 줘 볼까?”
“엉덩이를 노리고 차 버린다든가.”
“그거 괜찮네.”
진유성은 속닥거리는 선수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지만 반응하진 않았다.
그저 얼굴과 등번호만 기억해 두었다.
37번과 47번.
마침 딱 지종수가 말했던 놈들이기도 했다.
심판이 나와서 선축을 정한 뒤, 휘슬이 울렸다.
경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 3분 정도는 진유성에게 아예 공이 오지 않았다.
진유성이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타입도 아니고, 설령 좋은 공간에 있어도 팀원들이 패스를 주지 않았다.
진유성에게 공을 연결하고 싶은 지종수는 애가 탔지만, 지종수도 리턴 패스 말고는 기회가 안 왔다.
그때였다.
공을 받고 줄 곳을 못 찼던 선수 중 하나가 진유성을 향해 냅다 공을 걷어찼다.
정확한 패스는 아니었다.
그냥 대충 방향만 맞춰서 보내고 수비를 재정비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저런 식으로 걷어찬 공들은 수비가 먼저 선점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진유성이 움직였다.
“-!”
갑자기 진유성의 스프린트가 시작되자 펜스 쪽에 앉아 있던 몇몇 스카우트들이 깜짝 놀랐다.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유소년들의 평균 스피드가 느려서 상대적으로 빨라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빠른 속도였다.
“동양인이야?”
“혼혈인가?”
그사이, 대충 날아온 패스를 쫓아가던 진유성은 수비수와 경합이 붙었다.
베스트 일레븐에 뽑힌 수비수답게, 상대의 속도가 심상치 않자 어깨부터 들이밀었다.
균형을 잃게 해서 어떻게든 아군 수비진이 시간을 갖도록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속도를 더욱 높여 수비수를 제쳐 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비를 제쳐 버린 진유성의 위치가 공보다 두 걸음 정도 앞이기 때문이었다.
‘뭐지?’
‘볼의 위치를 파악 못했나?’
그 순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뒤로 몸을 빙글 돌린 진유성이 붕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오버헤드킥을 갈겨 버린 것이다.
“미친!”
살짝 앞으로 나와 있던 골키퍼의 키를 정확하게 넘기는 환상적인 골이었다.
운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절묘했다.
공의 궤적이 몇 인치만 낮았어도 골키퍼의 손에 걸렸을 것이고, 몇 인치만 높았어도 골대에 맞았을 테니까.
진유성의 퍼포먼스를 지켜본 스카우트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 친구…….’
‘대체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