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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70화 (7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0화>

* * *

지종수는 유명한 축구광이자, 실력자였다.

비록 진유성에게 탈탈 털리고 체면을 구겼지만, 대정고에서 체육 특기생들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지종수의 실력은 타고난 게 아니었다.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노력의 영향이 더 컸다.

그는 방학이 되면 영국 리그의 유소년 캠프에 참여해 축구를 배우고, 한국에서는 K리그 3군 선수들과 주말마다 축구를 했다.

돈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도, 몇 년째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였다.

이번 방학도 마찬가지였다.

지종수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아버지의 눈치를 슬슬 보다가 영국으로 떠났다.

고3이나 된 놈이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욕을 먹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영국에서의 방학 생활을 시작했다.

문제가 생긴 건 유소년 캠프가 중반쯤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Yellow 따위가 축구를 잘할 리 없지. 일단 축구공부터가 하얗잖아?”

우연히 영국 유소년 선수들의 웃음 섞인 대화를 듣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인종 차별적인 조크로 캠프 내의 동양인들을 놀리며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한국이었다면 모를까, 여긴 영국이다.

그리고, 설령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지종수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축구로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종수는 평소보다 훨씬 열심히 훈련했다.

코치들은 엄지를 들어 올렸다.

매년 있는 일이지만, 낙하산으로 들어와 선수도 아니면서 훈련에 참여하는 지종수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종수가 워낙 열심히 훈련을 하자 부정적인 시선들은 싹 사라졌다.

그럼에도 지종수는 캠프 내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축구 실력이 늘었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캠프 선수 평균 레벨 정도였다.

사실 일반인이 이 정도 레벨까지 올라왔다는 것조차도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종수는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만족할 수 없는 성과였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후후. 몸을 솔직하군.”

자신을 제치고 골대에 골을 넣던 진유성의 모습이.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축구를 잘하는 나라였다.

그리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도 있었다.

즉, 대한민국의 U-18 국가 대표 선수들이 그 나이대의 세계적인 레벨이란 뜻이었다.

진유성은 그런 청소년 국가 대표 선수들을 아버지가 만드는 자동문처럼 열어 버렸다.

지종수가 알고 있는 한, 진유성은 최고의 드리블러이자 골게터였다.

‘그렇다면……?’

진유성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동양인은 축구를 못한다는 차별을 확실히 부숴 버리는 그림을!

그런 생각이 든 지종수는 즉시 진유성에게 연락했고, 비서실장 아저씨에게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친구 한 명을 유소년 캠프에 넣고 싶은데 말 좀 잘해 달라고 말이었다.

물론 말로만 될 일은 아니고, 기부금이 오갈 것이었다.

그렇게 이틀 뒤.

지종수는 반가운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유성이 영국에 도착할 시간이다.

상소윤이 오지 않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에는 상소윤보다 진유성이 훨씬 반갑다.

공항에 도착한 지종수는 출국 게이트 앞의 진유성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유성!”

“뭐야? 왜 소리를 질러?”

“놈들의 몸을 솔직하게 만들어 버려!”

지종수.

그는 주변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이었다.

* * *

영국 런던에 도착한 진유성은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로 나왔다.

내친김에 영국의 언어도 멀더의 술법으로 익혔다.

이태원에서 만난 색목인에게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국식 영어가 사천(四川)의 말투라면 영국식 영어는 북경(北京)의 말투랄까?

언어 자체는 똑같지만 발음이나 억양, 상황에 따른 단어의 취사 선택이 많이 달랐다.

‘근데 그 색목인은 어떻게 게이트 패스워드를 알고 있던 거지?’

혹시 그 여자가 게이트와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왠지 아닌 것 같다.

진유성은 멀더의 술법을 사용할 때마다 가능하면 선천진기가 곧고 맑은 이들에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바른 정신에 올바른 언어가 깃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태원에서 만났던 색목인 여성도 굉장히 훌륭한 선천진기를 가지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그 정도로 곧고 맑은 선천진기는 본 적이 없다.

그보다 타고난 기운이 청명했던 이는 대정고의 최유리뿐이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색목인 여자가 게이트를 이용할 것 같진 않았다.

게이트 자체가 악한 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필터 몬스터라 불리는 이들을 유린하고 있는 건 분명했으니까.

‘뭐, 선천진기가 늘 정확한 건 아니지만.’

곧은 선천진기를 가지고 있어도 악행을 자행하는 이들이 있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본격적으로 런던을 관광하기 시작했다.

상하이에서도, 프라하에서도 느꼈지만, 이국의 풍경은 참 재밌다.

신기한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

게다가 진유성이 완벽한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니 현지인들이 훨씬 친절하게 대해 줬다.

진유성은 현지인들의 친절 속에서 식당을 몇 곳 추천 받았다.

영국 전통의 가정식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음…….”

아무래도 이 자식들이 장난을 친 것 같다.

맛이 없다.

런던을 구경하던 진유성이 지종수와 만난 것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였다.

하늘은 우중충했지만 점심에 잠깐 비가 내린 뒤로 더는 오지 않을 듯했다.

기온도 한국보다 훨씬 따뜻해서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그러니까, 골을 최대한 많이 넣어 달라 이거지?”

“바로 그거야.”

“인터넷에서 보니까 축구 선수들은 득점 수당 같은 걸 받던데?”

“야! 내가 비행기 표도 비즈니스로 끊어 주고! 호텔도 잡아 줬잖아! 그거 다 내 용돈으로 한 거라고!”

전화로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영국에 축구를 배우기 위해 왔는데, 현지 선수들이 인종 차별을 해서 혼내주고 싶다는.

사실 진유성은 인종 차별이란 행위 자체에는 특별한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황인이나 백인 같은 피부색 따위나 타인의 저열한 감정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인간이 인간을 추악한 우월감으로 차별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중원에서도 그러했다.

무림인들은 내공을 지닌 게 대수인 양 민초들을 얕잡아봤고, 관리들은 학식이 높은 게 특권인 것처럼 민초들을 깔아봤다.

그것을 없애기 위해 무림을 일통하고, 황실을 일통한 게 바로 진유성이었다.

“좋아. 이번 한 번은 특별히 무료로 서비스를 해 주지.”

“무료가 아니라니까?”

“가자.”

그렇게 진유성은 지종수와 함께 런던 교외에 있는 축구장으로 들어섰다.

* * *

모든 산업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이것은 스포츠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런던의 교외에서 열리는 크로스 브릿지(Cross Bridge) 유소년 축구 캠프도 마찬가지였다.

런던 소재지의 유스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한곳에 모여 스카우트들에게 실력을 선보이고.

캠프 참여를 원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클래스를 개최하고.

영국 축구의 유소년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영국 축구 발전 기금의 예산을 배정받는 것.

이 모든 게 엄밀히 말하면 장삿속이었다.

하지만 그 역사가 43년간이나 이어지자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었다.

그래서 캠프가 종반으로 달려가는 지금, 스카우트들이 속속 런던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즉시 전력으로 쓰일 1군의 선수들을 확인하고, 프런트의 입맛에 맞을 유망주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 친구가 가나의 블랑코군요.”

“아, 쟤야? 생각보다 키는 작네. 비자 문제는 어떻게 됐대?”

“귀화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저 친군 차라리 공격형 미들로 쓰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왜 감독이 수비형으로 쓰는 거지?”

“저 팀 CDM이 약해서 그렇지, 뭐. 연습 때는 공미로 써 보는 거 같던데.”

안면이 있는 스카우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유성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스카우트들에게 정식으로 목록이 전달된 선수도 아니었을뿐더러, 진유성이 참가한 훈련 캠프는 일반인 캠프였다.

지종수는 진유성을 선수 캠프에 참가시키고 싶었지만, 그건 돈의 힘으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실 캠프 종료 직전에 합류한 일반인이 선수들 사이에 끼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대신 지종수는 크로스 브릿지의 프런트에다가 대고 연습 경기에 무조건 진유성을 참가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크로스 브릿지가 아닌 다른 유소년 캠프에 참가할 거라면서.

무리한 부탁이었지만, 지종수의 부탁은 받아들여졌다.

지종수의 아버지가 크로스 브릿지에 기부하는 금액은 상당했고, 내년부터는 정식 스폰서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이런 뒷이야기 덕분에 진유성은 훈련은 일반인들과 받고 연습 경기에는 선수단 쪽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훈련 시간에는 몸이나 풀고 있어. 너무 체력 많이 쓰지 말고.”

지종수는 그렇게 말하며 사라졌지만, 진유성은 오히려 일반인 캠프 쪽이 더 재미있었다.

선수 캠프 쪽은 딱 봐도 기본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축구 훈련이라기보다는 체력 훈련과 기본기 훈련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일반인 캠프 쪽은 코치들이 나와서 갖가지 재미있는 기술들을 알려 줬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인들은 기부금을 내고 즐거운 추억을 위해 일회성으로 참여한 이들이다.

힘든 체력 훈련과 재미없는 기본기 훈련을 시킨다면, 내년에 또 찾아올 리가 없다.

최대한 자극적이고 멋진 기술들로 혼을 빼놓아야 했다.

그래야 내년에도 친구와 손을 잡고 유소년 캠프를 방문한다.

코치들의 발에서 마르세유 턴, 사포, 라-크로케타, 라보나킥 등등의 화려한 기술이 시연되자, 진유성은 흥미를 느꼈다.

‘이런 거였군.’

진유성은 지종수 때문에 축구를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축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발로 공을 몰고 가서 골을 넣으면 된다는 대명제만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엄청난 실력을 뽐낸 것은 입신의 경지에 오른 체술 때문이었다.

툭 치고 달리기만 해도 그를 잡을 사람은 없었고, 여러 명이 달려들어도 가벼운 허초를 가미하면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즉, 지금까지의 진유성은 최소한의 볼 터치로 수비수를 제치는 스타일밖에 몰랐다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축구 기술들을 설핏 본 적은 있었지만 따라 할 생각까지는 안 했다.

그런 걸 안 해도 무방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코치들이 화려한 볼 터치 기술들을 보여 주자 마음이 동했다.

“호오.”

주의 깊게 코치의 발재간을 보고 있던 진유성이 공을 툭 찍었다.

공이 튀어 오르며 무릎에 안착했다.

툭.

진유성은 그 뒤로 코치를 따라 하며 공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처음엔 공의 탄성 정도를 완벽히 알지 못해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툭, 툭툭, 툭툭툭.

진유성이 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코치가 보여 준 기술들이 그대로 복사되어서 나왔다.

아니, 복사가 아니었다.

이건 진화였다.

진유성의 신의 경지에 이른 개인기가 이어지자, 하나둘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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