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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63화 (6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63화>

* * *

진유성은 세 번째로 다이빙을 했지만, 지상에 도착한 것은 가장 빨랐다.

내공을 이용해 자유낙하 속도를 엄청나게 올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이 끝나고 지상에 내려오자, 진유성의 등 뒤에 있던 프로 다이버가 황급하게 장비를 풀었다.

그러곤 후들거리는 다리를 버티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빴다.

진유성은 그런 스카이다이버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쯧쯧.”

사내놈이 그거 조금 빨리 내려왔다고 저리 방정을 떨다니, 큰일을 하긴 글렀다.

“하악, 하악.”

게다가 고양이도 아니고 자꾸 귓가에 하악거렸다.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던 스카이다이버는 뒤늦게 고객 생각이 났다.

스카이다이빙으로 밥을 먹고 사는 자신도 이리 놀랐는데, 고등학생은 오죽했겠는가.

스카이다이버가 간신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진유성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아요?”

질문을 받은 진유성은 묘한 표정으로 스카이다이버를 쳐다보았다.

소량이라서 본인은 모를 수도 있다.

땀을 흘렸다고 오해하는 걸 수도 있고.

하지만 진유성은 엄청나게 예민한 기감을 가지고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말을 해 주는 게 예의인 것 같다.

남들이 들으면 민망할 테니까, 조심스럽게.

진유성이 귓속말을 건넸다.

“지렸누.”

* * *

다이빙 장비를 해제하고 패러글라이딩 착지 지역 옆으로 가자, 유혜연이 그를 반겼다.

“유성아, 괜찮아?”

“네? 뭐가요?”

“아니, 아래에서 보고 있었는데 너만 엄청 빨리 내려오던데?”

다른 사람들은 사지를 활짝 펼치고 내려오는데, 진유성은 몸을 수직으로 세우고 내려왔다.

거의 내리꽂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낙하산을 피는 시점도 남들보다 훨씬 지상과 가까울 때였다.

“저랑 같이 뛴 사람이 베테랑이었나 봐요.”

“그래?”

“네. 속도를 즐기더라고요.”

“음, 그래.”

유혜연은 베테랑이면 더 안전하게 뛰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내려온 것치고는 진유성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돌이켜 보면 진유성은 강하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간첩들이 막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고 그러지 않는가.

걱정을 던 유혜연이 진유성에게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이거 봐라, 유성아?”

“뭐예요?”

“다이빙 동영상. 바로 전송해 주더라. 어, 근데 너는 안 나와. 너무 빨리 뛰어서.”

본래 동영상 촬영 옵션을 넣으면 촬영 다이버가 함께 다이빙을 한다.

진유성을 담당한 촬영 다이버의 동영상을 보니, 수직으로 내리꽂고 있는 두 사람의 엉덩이만 보였다.

“소윤이 영상 좀 봐.”

유혜연이 킥킥거리며 상소윤의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음…….”

좀 심했다.

바람에 얼굴 살이 전부 밀려난 것이, 추하고, 추하고, 추하기 그지없었다.

진유성은 동영상을 캡쳐하고, 그 사진을 상소윤의 핸드폰 메신저로 전송했다.

“뭐하는 거야?”

“시상이 떠올라서요.”

“시상?”

“소윤이 핸드폰 가지고 계시죠?”

“응.”

“잠깐만 줘 보세요.”

유혜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상소윤의 핸드폰을 건넸다.

상소윤의 핸드폰을 받은 진유성이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역시 자동 로그인이 되어 있다.

진유성은 메신저에서 다운 받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한 줄의 글귀와 함께.

[세상이 나를 밀어내더라도…… 난 꿋꿋이 버틸 거야……☆]

몹시 만족스러웠다.

사진과 매우 잘 어울리는 글귀였다.

진유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로 핸드폰을 돌려주자, 유혜연이 고개를 저었다.

“이러면 금방 들키잖아.”

“네?”

“일단 사진도 지우고…….”

유혜연이 메신저의 사진과 갤러리의 사진을 지웠다.

“알람도 꺼놓자.”

이어서 인스타그램의 알람을 껐다.

그걸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유혜연은 내친김에 로그인까지 풀어 버렸다.

“이러면 몇 시간은 안 걸릴 수 있을 거야.”

완전 범죄를 꿈꾸는 외숙모와 조카가 서로를 쳐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스카이다이빙과 패러글라이딩을 끝내고 장비를 해제한 상소윤과 상림이 다가왔다.

흥분한 듯 붉게 상기된 얼굴의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뭐야? 너 나보다 늦게 뛰지 않았냐?”

공중에서 비명을 지르느라 정확한 상황을 몰랐던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반해 기척을 읽은 상림은 진유성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좀 빨리 내려왔다.”

진유성의 말에 상소윤은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엔돌핀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이성적인 생각이 안 되는 상태기도 했고.

“엄마, 엄마.”

“왜, 왜.”

“나 영상 찍은 거 전송된다지 않았어?”

“보여 줄까?”

“엄마 핸드폰으로 갔어?”

상소윤이 유혜연의 핸드폰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상소윤의 생각은 이러했다.

푸르른 창공에서 낙하를 즐기는, 한없이 자유롭고 아름다운 나.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추하기 그지없다.

“…….”

상소윤의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던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빢쌖하구나.”

“뭐?”

“두 배로 박색하다는 뜻이었다.”

상소윤의 일권이 진유성의 턱을 노렸다.

* * *

스카이다이빙이 끝내고 프라하로 돌아온 넷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상소윤은 피곤한지 잠깐 자야겠다고 숙소로 들어갔고, 상림과 유혜연은 프라하에서 유명한 마사지 살롱으로 향했다.

숙소에 남은 진유성은 상소윤의 인스타그램이 들끓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천운이 따랐다.

식사 시간에 인스타그램 자동 로그인이 풀려 있다며 고개를 갸웃하던 상소윤은 로그인에 실패했다.

최근에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뭘로 바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오늘 내내 게시물이 유지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진유성은 호텔 창문으로 고즈넉한 프라하의 광경을 지켜보다가,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체코 맥주였다.

어제는 까만 놈이랑 싸우느라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진유성은 옷을 차려입고는 곧장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주변의 현지인을 찾아 근방에서 최고의 펍이 어딘지를 물어보았다.

멀더의 술법 덕분에 체코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다들 친절했다.

매년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프라하를 찾지만, 그중 체코어를 구사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언어가 어렵기도 했고, 범용성이 크지도 않았으니까.

한데 동양인으로 보이는 잘생긴 소년이 유창하게 체코어를 쓴다?

친절을 베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진유성은 가게까지 데려다주려는 현지인의 과잉 친절을 거절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프라하의 거리는 몇 번을 봐도 아름다웠다.

사실 프라하는 좀 특별한 도시였다.

게이트 사태가 발발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지만, 이곳에는 단 한 번의 게이트도 열리지 않았다.

게이트 발생이 전무했던 도시가 프라하뿐인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아산에 단 한 번의 게이트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프라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였고, 영화촬영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휴가를 보내는 곳에 게이트가 열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구역이 통제되고, 휴가가 날아가니 말이었다.

그래서 매년 프라하에 몰리는 관광 인구는 어마어마했다.

괜히 상림이 해외여행 장소를 프라하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마침 현지인이 알려 준 유명한 펍이 보였다.

“흐음.”

초저녁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진유성은 펍에 들어가 당당하게 맥주를 주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How old are you?’였다.

체코에선 청소년 음주가 합법이었으나, 외국인은 괜히 복잡해질 수 있었기에 깐깐해지는 가게 주인이었다.

이 경우에는 굳이 체코어에 능통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진유성이 일부러 더듬거리며 영어로 자신은 성인임을 어필했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말에 여권은 호텔에 놓고 왔다고 둘러댔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호텔에 가서 여권을 가져오기 전에는 맥주를 팔 수 없다는 뜻이었다.

“흠.”

귀찮음을 피하고픈 가게 주인의 철저한 블로킹에 뒤로 한걸음 물러난 진유성이 결심을 내렸다.

그는 불법을 저지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중원의 절대자로서 진유성은 많은 법안을 만들었다.

그 법안 대부분은 관리나 무림인들이 민초를 수탈하지 않게 제재하는 법안이었다.

하지만 법이란 건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진유성은 가급적이면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법을 준수하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적당히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진유성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체코란 나라의 맥주가 꼭 마시고 싶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구매’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적정 재화를 지불하고 상품을 인도받는 것을 의미했다.

진유성이 펍 바로 옆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는 건물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어서 어두컴컴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은 아니었다.

그 순간.

스윽-

골목으로 들어온 진유성의 몸이 그림자에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 * *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펍 ‘Prague’를 운영하는 파벨은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휴가철이 되면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수한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그의 가게를 찾기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농담 삼아 파벨이 블타바 강물만큼 맥주를 팔아치운다고 떠들곤 했다.

중요한 건, 자체적으로 양조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을 팔아도 맥주 퀄리티는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폴! 폴!”

정신없이 계산을 하고, 테이블을 체크하던 파벨이 매니저 폴을 불렀다.

부엌에서 뭔가를 하던 폴이 다가왔다.

“불렀어요?”

“우리 맥주 재고가 얼마나 남았지?”

“이틀 전에 체크하기에는 넉넉했었는데, 모르겠네요. 어제, 오늘 너무 많이 팔려서. 아, 감자 떨어져 가요.”

“벌써?”

“네.”

감자와 맥주는 거의 비슷하게 팔렸기 때문에 감자의 양이 떨어진다는 건, 맥주의 양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파벨은 폴에게 잠시 카운터를 맡기고는 Prague 뒤편에 있는 맥주 저장고로 향했다.

리스트를 들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맥주의 종류가 30가지가 넘어서 머리로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저장고의 문을 여는 순간.

파벨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쪽에 가지런히 모여 있는 오크통 때문이었다.

오크통이 모여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브랜드가 섞여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다.

바쁠 때 급히 꺼내 쓸 수 있도록 맥주 브랜드별로 모아 놨기 때문이다.

“설마……?”

파벨이 근처의 오크통을 흔들었다.

쉽게 흔들렸다.

얼추 30개쯤 되어 보이는 오크통은 전부 비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맥주 도둑이란 생각이 들어서 저장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맥주는 고스란히 잘 있었다.

마치 맥주 도둑놈이 브랜드별로 한 통씩만 마시고는 사라진 듯했다.

“허, 참.”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근데 좀 이상하기도 했다.

오크통 하나에 들어가는 맥주의 양은 대충 15L 정도.

브랜드별로 모든 맥주를 마셨다면 총 450L를 마신 셈이었다.

점심을 먹고 맥주를 꺼내 왔으니까 그가 저장고를 다시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추 4시간 정도.

누가 4시간 만에 450L를 마실 수가 있을까?

‘여러 명이 온 건가? 아니면 마신 게 아니라 가져간 건가?’

뭐가 됐든 십 년 감수한 셈이었다.

도둑놈이 모든 맥주를 훔쳐 갔다면 며칠간 문을 닫아야만 했을 테니까.

그때였다.

파벨은 뒤늦게 오크통 위에 놓여 있는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뭔가 싶어 종이를 들추니, 가지런히 놓여 있는 달러 뭉치가 보였다.

놀란 파벨이 달러 뭉치를 세니, 그 금액이 무려 8,000달러에 육박했다.

‘어, 잠깐.’

8,000달러면 사라진 450L의 맥주 가격과 얼추 비슷하다.

오히려 돈이 조금 더 많다.

“이런 미친.”

파벨은 종이에 적혀 있는 체코어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밤, 당신의 맛을 훔쳐 간다.

-괴도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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