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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62화 (6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62화>

Quest 14. 방학의 천마님

록펠러는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록펠러를 둘러싼 어둠은 평소와 달랐다.

본래 그를 둘러싼 어둠이 한 점의 빛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짙었다면, 지금은 어딘지 농도가 옅어져 있었다.

[진유성……!]

록펠러가 이를 갈았다.

진유성에게 빼앗긴 영성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공격이 스쳐 지나간 곳이다.

본래 영혼체에는 인간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진유성의 공격은 달랐다.

그의 공격이 스쳐 지나간 곳에는 아직도 어둠이 잘 모이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음기가 차오를 것이고, 상처도 치료될 것이었다.

하지만 상처는 저절로 치료돼도 금이 간 자존심은 저절로 치료되지 않는다.

록펠러가 생각에 잠겼다.

중원의 절대자가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왔다는 것은 중요한 정보였다.

아마 무수한 하위 차원을 건너 중원에 도착한 첫째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리라.

이후에는 자신이 진유성과 손해를 보는 싸움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고.

그게 문제였다.

형제들과 힘을 합쳐 진유성과 싸운다면 그들이 승리할 테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힘을 합칠 수 있을까?

진유성에게 패배해 영성을 빼앗긴 록펠러는 현재 첫째와 둘째보다 현저히 약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의 형제들은 그를 잡아먹으려 들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증오했으니까.

이는 도플갱어의 설화와 같았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 중 하나가 죽는다는 말은, 둘 중 하나가 상대를 죽여 버린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유일성을 훼손시키는 존재는 신비로운 동시에 혐오스럽다.

인간들 중에서 탄생하는 쌍둥이는 외양이 비슷할 뿐 본질은 다른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다.

세쌍둥이는 외양부터 본질까지 완벽히 같았다.

그러니 첫째와 둘째가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는 순간.

그들은 자신을 죽여서 신의 반열에 오르는 거름으로 쓰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그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셋의 힘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신의 장난일지도 모르지만, 셋이란 숫자는 실로 절묘했다.

둘이 싸운다면 한 명이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기에, 살얼음판 위에서도 균형은 유지됐다.

하지만 힘의 균형이 깨진 지금,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진유성을 죽여야 했다.

그를 죽이고 그의 몸에 잠재된 엄청난 양의 영성을 흡수해야 한다.

록펠러는 진유성과 마주치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역의 필터 몬스터 린트콕.

린트콕을 거름종이 삼아 모은 영성을 흡수한 정체불명의 상대가 진유성이란걸.

그러니 진유성을 죽여 그 영성을 되찾고, 더불어 그의 몸에 잠재된 영성까지 흡수할 수 있다면.

자신은 첫째와 둘째의 영성까지 흡수해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진유성을 죽일 수 있느냐인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정면 대결로 이길 순 없겠지만, 마도사에게는 마도사의 방법이 있다.

록펠러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영원히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이좋게 셋이 함께 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딴 게 가능할 리도 없거니와 설령 가능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아카샤의 이목을 완전히 속이고 지구의 영성을 완벽히 착취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들은 그들끼리 싸우게 되리라.

아마 첫째와 둘째도 다가올 것이 분명한 미래를 대비해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록펠러는 확신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한 수가 형제들은 물론이고, 중원의 절대자마저 압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본래 형제들을 위해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제1 막은 중원의 절대자를 위해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최종장의 막이 내리는 순간.

그는 신으로서 우뚝 서리라.

* * *

진유성은 상림, 유혜연, 상소윤과 함께 Pribram Airport로 향하는 미니 버스에 있었다.

그들이 경비행장으로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프라하의 다양한 관광 코스 중 가장 유명한 액티비티, 스카이다이빙을 위해서였다.

사실 진유성은 스카이다이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맨몸으로도 지구의 굴절을 느낄 만큼의 고도에 올라갈 수 있으니, 스카이다이빙에 별 감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상림과 상소윤이 꽤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굳이 반대를 하진 않을 뿐이었다.

유헤연은 임신 중이라서 스카이다이빙에는 참여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던 버스의 창문 너머로 넓은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 진유성이 경공을 써서 지나갔던 그 포도밭이었다.

‘사람들이 많군.’

진유성의 기감에 포도밭 너머 고성 주변에 모여 있는 인파가 느껴졌다.

아마도 성이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성을 다시 지어 올릴 생각이든가.

‘그놈은 뭐였을까?’

고성에서 만났던 새까만 놈.

살기와 악기를 풀풀 뿌리는 게 꼭 망령이나 악귀 같은 놈이었다.

하지만 귀신은 아닌 것 같았다.

[네놈! 중원의 절대자구나!]

놈이 이렇게 말했으니까.

‘날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하지만 진유성은 저런 놈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단언컨대 놈은 진유성이 만나 본 적들 중 가장 개성 넘치는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놈이 많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기억을 해야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네놈, 상실의 공간에서 기억을 잃어버렸나?]

어젯밤, 중원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도 사람인 이상 모든 일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확신은 생겼다.

고려에서부터 중원까지의 모든 기억이 있었고, 미심쩍은 부분도 없다.

“흠.”

잘 모르겠다.

일단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는 까만 놈이 중원이 있던 세계에서 넘어온 것 같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중원의 절대자란 말을 썼을 리가 없다.

또 하나는 놈이 상실의 공간을 경험했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상실의 공간에서 뭔가를 잃어버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놈도 상실의 공간에서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혹시 싸가지를 잃어버렸나?’

싸가지가 좀 없던데.

어쨌거나 진유성은 어제 봤던 까만 놈을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것만 같았다.

이건 경험에 의거한 직감이다.

꼭 저런 놈들이 복잡하고 나쁜 짓을 꾸미는 걸 좋아했다.

그러곤 짜잔 나타나서 ‘널 위해 이 정도로 준비했지!’라며 기세등등하게 덤벼들곤 했다.

정파의 꼰대들도 그랬고, 혈마도 그랬고, 주화입마로 죽은 척했던 마교주도 그랬다.

하지만 다들 몇 대 쳐 맞고 울면서 사라지거나, 진유성의 손에 죽었다.

진유성은 살생을 가려서 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았다.

특히 무고한 양민들을 이용해 함정을 파는 이들은 전부 몰살시켰다.

까만 놈도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일 작정이었다.

그 정도의 악의와 살기를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놈이 수도 없는 살인과 악행을 저질렀다는 증거였으니까.

당장은 단서가 없어서 추적할 수 없지만,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진유성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까만 놈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멈췄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일에 심력을 소모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니까.

그때 버스를 운전하던 기사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렸다.

스카이다이빙을 위한 경비행장인 Pribram Airport였다.

* * *

다이빙장에 도착한 진유성과 일행들은 동의서를 작성하고, 스카이다이빙 상품 옵션을 확인했다.

사진 촬영과 동영상 촬영이 함께 진행되는 스카이다이빙은 그냥 스카이다이빙보다는 비쌌다.

하지만 추억을 남긴다는 의미에서 모두들 촬영 옵션을 선택했다.

다음으로 다이빙 슈트로 환복하고는 다이빙 자세 교육에 들어갔다.

“어머, 유성이 너무 멋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혜연이 박수를 치며 좋았다.

쭉쭉 뻗은 신체와 균형 잡힌 골격을 가지고 있는 진유성은 전문 스카이다이버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이빙 슈트가 잘 어울렸다.

“여보, 나는?”

상림이 투덜거리며 유혜연을 쳐다보았다.

초절정 고수가 되어 신체 능력을 회복한 상림도 진유성 못지않게 균형 잡힌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키는 원래부터 상림이 진유성보다 컸고, 덩치도 상림이 더 좋았다.

무력 말고는 진유성에게 꿇릴 게 없단 말이었다.

유혜연이 상림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아!”

“왜?”

“당신,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저팔계 같다.”

유혜연의 말에 다이빙 교육을 함께 받고 있던 관광객들이 킥하고 웃었다.

애초에 그들이 찾은 게,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스카이다이빙 업체였기에 손님들은 다들 한국인이었다.

“…….”

상림이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유혜연은 관심도 없는지 상소윤과 진유성을 연신 카메라에 담을 뿐이었다.

뭔가 억울하다.

‘분명 내 돈으로 하는 활동인데 왜 나는 주목받지 못하는가!’

상림의 투덜거림과 함께 짤막한 자세 교육이 끝이 났다.

어차피 전문 스카이다이버와 함께 2인 1조로 진행되기에 배울 게 많진 않았다.

“자, 이제 활주로로 이동해 비행기 탑승합니다.”

한국인 코치의 말에 상림, 상소윤, 진유성이 전문 다이버와 함께 활주로로 이동했다.

* * *

“오호.”

비행기가 이륙하자 진유성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객기는 워낙 컸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맛이 떨어졌는데, 경비행기는 좀 달랐다.

하늘을 날고 있는 느낌이 확연했다.

‘헬리콥터를 하나 살까?’

어차피 돈은 많고 쓸데도 없으니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기도 했다.

진유성이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상소윤이 진유성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왜?”

“야, 4,000미터까지 올라간대.”

“그렇다더구나.”

“그리고 1분 만에 떨어진다는데?”

“그렇군.”

진유성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4,000미터 상공에서 1분간 자유 낙하를 하고 패러글라이딩으로 전환한다는 설명을 했었다.

“안 무섭냐?”

“안 무섭다.”

“아 씨, 난 무서운데.”

버스에 탈 때까지만 해도 신이나 보이던 상소윤은 막상 뛰어내릴 때가 되자,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진유성은 처음 보는 상소윤의 모습에 잠깐 놀릴까 말까를 고민했다.

평소 같으면 놀렸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걱정 마라.”

“왜? 사고 날 수도 있잖아. 낙하산이 안 펴지면 어쩌지?”

“어차피 이 정도 높이면 고통 없이 한 방에 갈 수 있다.”

“…….”

“안 아프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아빠!”

상소윤이 상림에게 가서 진유성이 악담을 했다느니, 한 방에 가라고 했다느니 이르기 시작했지만, 진유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림도 고수가 됐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었을 테니까.

자신이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을 건네줬다는 것도.

그때 상림의 전음이 날아왔다.

[아니, 왜 애를 놀리세요?]

[내가? 내가 언제 놀려.]

[방금요.]

[난 위로해 줬는데?]

[그게 위로면 욕은 프러포즈겠네.]

[…….]

진유성은 상림의 낙하산에 탄지공을 날릴까 고민하다가 참기로 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그는 몰라도 상림은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마침내 비행기가 4,000미터 상공에 올라왔다.

스카이다이빙은 전문 다이버와 2인 1조로 뛰기 때문에 머뭇거릴 시간 따윈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1번 타자로 주춤주춤 자세를 잡던 상소윤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소윤의 뒤에 있던 다이버가 휙 하고 뛰어내린 거였다.

“으아아아아악!”

잠시 뒤, 2번 타자로 상림이 휙 하고 뛰어내렸다.

그러자 진유성의 등 뒤에 있던 스카이다이버가 진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겁나요?”

겁을 먹었냐고 물어보는 건 좋은데, 바람 소리 때문에 귓가에 속삭이는 건 딱히 좋지 않았다.

등 뒤에 사내놈이 딱 붙어서 귓가에 속삭이니 기분이 더 별로였다.

“전혀.”

“오? 진짜? 확 뛰어 버린다?”

그 순간, 진유성이 먼저 확 하고 뛰어내렸다.

진유성의 등 뒤에 붙어 있던 스카이다이버가 피식 하고 웃었다.

고등학생 남자애라 그런지 자존심이 강해서 겁먹은 티를 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장난기가 발동한 스카이다이버가 다리 모양을 바꿨다.

이렇게 다리를 만들면 자유 낙하 중에 빙글빙글 돌면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두 사람의 몸이 수직으로 서더니 미친 듯한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무, 뭐야!”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보통의 자유 낙하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른 것 같았다.

스카이다이버의 가슴이 철렁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뭔가 잘못되지 않고서는 이 정도 속도가 나올 리 없었다.

그리고 스카이다이빙 중에 뭔가가 잘못됐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으아아아아악!”

스카이다이버가 소리를 지르며 낙하산 버튼을 당겼다.

하지만 낙하산은 펼쳐지지 않았다.

조금 더 이 속도를 즐기고 싶은 진유성이 내공으로 붙들고 있었으니까.

“으아아아아악-!”

죽음을 직감한 다이버가 절박하게 소리를 지르는 순간.

펄럭―!

낙하산이 펼쳐졌다.

“허억, 허억-”

겨우 진정을 되찾은 스카이다이버가 거친 숨을 귓가에 몰아쉬자, 진유성이 진저리를 쳤다.

진유성은 다시는 스카이다이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영 기분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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