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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61화 (6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61화>

* * *

삼척천능보의 모태가 되는 무공은 삼적보(三積步).

삼적보는 정도맹에서 멸마대원들에게 보급해 준 무공으로, 제법 뛰어난 절기였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멸마대의 존재 이유는 마교주의 암살.

싸구려 무공을 가르쳐 주고 마교주의 목을 베라고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삼적보가 구대문파의 절기들만큼 뛰어나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은 삼적보를 미완성의 무공으로 보았다.

실용성과 위력은 뛰어나나,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만한 현묘함이 부재한 무공.

마교주의 목을 베려는 사냥개들에게 가르치기엔 적당한 무공.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무수한 수라장을 헤치며 삼적보를 진화시켰다.

그러곤 삼적보의 일권으로 소림의 백보신권을 격파하는 순간, 무공의 이름을 바꾸었다.

삼적천능보.

입멸공이 진유성이 익힌 가장 뛰어난 무공이라면, 삼적천능보는 실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무공이었다.

이러한 삼적천능보는 진유성의 믿음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투-쾅!

진유성의 주먹이 새까만 어둠 속의 놈을 강타하는 순간.

거센 바람이 연기를 밀어내는 것처럼 어둠이 훅 물러났다.

어둠이 사라지자 현실과 허상의 경계에 걸친 듯 흐릿하던 놈의 모습이 명확히 보였다.

흑색에 가까운 빛을 띠는 푸른색의 머리칼, 눈썹, 눈동자를 가진 백인 남자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놈은 삼적천능보로 위력을 적층한 진유성의 일권을 막아 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놈은 경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죽은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이제야 비로소 대화할 자세가 된 것 같았다.

진유성이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였었다.

“이 자식이 다짜고짜 살수를 쓰면…….”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진유성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놈이 다시 한 번 피를 토해 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진유성 때문이 아니다.

‘자결?’

본인이 기운을 움직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경력을 해소하지 못해 생긴 울혈은 검은색이어야 하는데, 선홍색의 피가 입가에서 주르륵 흐른다.

“이게 무슨……?”

드물게 당황하는 진유성의 눈앞으로 색목인의 시신이 풀썩 쓰러졌다.

귀식대법 따위로 죽은 체를 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죽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시신을 중심으로 불길한 어둠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실타래처럼 끝없이 풀려나오는 어둠이 다시 한 번 올드 캐슬을 가득 채웠다.

진유성은 그 순간 깨달았다.

놈은 죽은 게 아니었다.

맹수가 우리에서 풀려나듯.

나비가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듯.

육신을 벗어던진 것이다.

‘그랬군.’

진유성은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놈이 가지고 있는 기운보다 훨씬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투에 관한 진유성의 직감을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상함을 느꼈었는데, 이젠 알겠다.

놈은 지금, 좁은 육신을 버리고 원래의 형태로 돌아온 것이다.

드르르르르르.

녀석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벽돌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고성의 벽돌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서 흩날렸다.

마침내 새까만 영기가 올드 캐슬의 최상층을 가득 채우는 순간.

엄청난 악의와 살기가 느껴졌다.

인간의 몸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도 불쾌한 악의였는데, 지금은 실로 끔찍한 수준이었다.

그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는 뭔가가 나타났다.

“너 이 자식, 귀신이냐?”

놀랍게도, 그동안 말이 통하지 않던 놈이 소리를 질렀다.

[네놈! 중원의 절대자구나!]

* * *

예전에 멀더는 진유성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00여 년 전, 세쌍둥이가 게이트를 열기 위해 마력을 퍼부은 적이 있고, 문이 절반쯤 열렸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멀더가 굳이 말하지 않았던 정보와 멀더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가 숨겨져 있었다.

멀더가 말하지 않은 정보.

그것은 100여 년 전 서역을 지배하던 세쌍둥이가 지독히도 사악했다는 것이었다.

세쌍둥이가 지배하던 서역은 지옥이란 단어와 가까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이 죽어 갔고, 행복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음악도, 문학도, 연극도 모조리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로지 공포뿐이었다.

오죽하면 세쌍둥이의 직접적인 폭거로 죽은 사람보다, 절망을 느껴 자살하는 이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멀더는 세쌍둥이의 지배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가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잘 알았다.

수많은 기록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서역인들은 게이트를 무리하게 열다가 죽은 세쌍둥이를 두고,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것이 멀더가 말하지 않은 정보였다면, 멀더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절반쯤 열렸던 문이 닫히며, 세쌍둥이가 동시에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세쌍둥이는 게이트를 열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게이트를 열었다.

다만 진유성이 천신궁에 열었던 게이트처럼 완전히 열지 못했을 뿐이었다.

게이트에 들어간 세쌍둥이는 그곳에서 <상실의 공간>에 기거하는 미증유의 존재를 만났다.

그리고 패배했다.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인간의 피로 목을 적시고, 인간의 살로 허기를 채우고, 폭력적인 성욕과 말초적인 쾌락을 즐기던 세쌍둥이.

그들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

그것은 바로…….

육신이었다.

육신을 서역에 두고?남들의 눈엔 죽은 것으로 보였지만- 게이트를 통과한 세쌍둥이는 지구에 도착했다.

그들의 눈에 지구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문명을 파괴하고, 찬란히 꽃피운 문화를 파괴하고, 나아가는 인류의 발전을 파괴하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던 곳과 달리 발전한 과학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육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인류 최고의 마도술사였던 세쌍둥이는 영혼체임에도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지구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카샤 때문이었다.

아카샤(????: ?k??a).

최초의 원시 물질을 뜻하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고대 종교에서 아카샤는 우주적 의지를 담은 절대 공간을 의미했다.

이 우주적 의지가 세쌍둥이의 사악한 힘을 배척하고 있었다.

세쌍둥이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들이 아카샤의 의지에 반하는 힘을 쓰는 순간, 절대공간이 그들을 색(色 : 물질)으로 인식하지 않으리라는 점.

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추방당해 존재마저 소멸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결국, 그들은 지구에 영혼체를 투사하여 인간의 몸을 빌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부를 이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하지만 진짜 육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상실의 공간이 그들의 육신을 가져갔다는 건, 단순히 육체를 가져간 것이 아니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영혼백육(靈魂魄肉)에서 백과 육을 거세시킨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끝없는 갈증에 먹혀 버려, 파멸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존재를 걸고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끝없는 갈증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인간을 벗어나서 신이 되는 것뿐이니까.

신이 되기 위해서는 아카샤의 의지를 피해서 인간의 영성을 착취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들은 아카샤의 의지를 속일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도사 셋이 힘을 합쳐도 찰나밖에 열 수 없었던 게이트.

그것을 누군가 완전히 열어 버린 것이었다!

세쌍둥이는 당황했다.

그들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이룩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했다.

아카샤의 의지를 속이는 일은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계획이 필요했으며, 실패할 시 존재의 소멸을 각오해야 할 만큼 위험천만했다.

약간의 불안 요소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위 차원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게이트를 열어 버린 이를 찾아냈다.

중원의 절대자.

천신궁의 주인.

진유성이란 자였다.

* * *

록펠러는 당황했다.

첫째가 중원으로 진유성을 확인하러 간 사이, 자신의 눈앞에 진유성이 나타났으니까.

이는 진유성이 게이트를 넘어 지구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록펠러는 진유성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셋이 진유성을 죽이려고 했었다.

아카샤의 의지를 속이기 전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진유성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유성을 죽일 수 없었고, 동수를 이룬 채 물러나야만 했다.

그들은 상실의 공간에서 첫 패배를 맛보았으나, 셋이 힘을 합쳤다면 분명 관리자를 이겼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개 무인이 일신의 무력으로 동수를 이룰 수 있다는 건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우선, 그들이 중원에서 만났던 진유성과 눈앞에 있는 진유성은 연령대가 달랐다.

중원의 진유성은 30대 초반의 나이였다면, 지금은 10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이야 그럴 수도 있었다.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에게 신체적인 나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정말로 이상한 건, 중원에서 만났던 진유성과 눈앞의 진유성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곧장 알아보지 못했다.

왜일까?

중원의 절대자는 상실의 공간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그때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중원의 절대자?”

[네놈은 상실의 공간에서 무엇을 잃었지?]

“상실의 공간?”

[게이트를 건너온 이유가 무엇이냐?]

“게이트?”

연신 반문하던 진유성이 말했다.

“대답을 듣겠다는 거야, 질문을 하겠다는 거야?”

[대답해라.]

“내 질문에 먼저 답하면 해 줄게. 너 뭐하는 놈이야?”

[날 기억하지 못하나?]

“너랑 나랑 만난 적이 있냐?”

[네놈, 상실의 공간에서 기억을 잃어버렸나?]

“그럴 리가.”

겉도는 대화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진유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까만 놈. 네가 왜 계속 쓸데없이 말을 걸고 있는지 알아?”

진유성의 시선이 올드 캐슬 최상층을 가득 채운 어둠을 꿰뚫었다.

“내가 두려우니까.”

진유성의 말은 기폭제가 되었다.

고오오오오-!

잠잠하던 어둠이 격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작 호문클루스 따위를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구나!]

육신이 없는 세쌍둥이는 평소에 마도술로 빚어낸 호문클루스에 영혼체를 빙의시켰다.

하지만 빙의된 상태일 때는 본래 힘의 30퍼센트도 낼 수가 없었다.

영혼체로 돌아온 지금.

록펠러는 자신이 있었다.

그들 셋이 진유성과 동수를 이룬 것은 먼 과거의 일.

아카샤를 속이는 데 성공하고, 인간의 영성을 착취한 뒤부터 그들은 몇 배로 강해졌다.

흩뿌려진 어둠이 꾸물거리더니 진유성의 몸을 휘감았다.

록펠러의 비기 거울 환몽이었다.

이제 진유성은 꿈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지닌 적을 상대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리라.

하지만 그 순간.

“흡!”

짧은 기합에 진유성을 휘감던 어둠이 밀려났다.

어둠 사이로 진유성의 심검이 날아들었다.

영혼체 상태인 록펠러에게는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심검의 위험성을 눈치챘다.

마력을 흩뿌리며 뒤로 물러나자, 진유성의 발차기가 공간을 격하며 날아왔다.

콰―앙!

영혼체를 통과한 발차기가 고성의 한쪽 벽면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그딴 게 통할 것 같으냐?]

“통할걸?”

[웃기는…….]

록펠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진유성의 공격이 지나간 구멍이 메워지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잘!”

진유성이 왼손의 날을 세워 횡으로 휘두르자, 록펠러가 화들짝 놀라서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건 속임수였다.

뒤이어 날아온 오른손이 어둠의 어딘가를 꽉 움켜쥐었다.

록펠러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인간은 이상했다.

이건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하고, 형제들과 함께 훗날을 기약해야만 했다.

“어딜!”

록펠러의 도주 의사를 읽은 진유성이 왼손을 내밀어 또 다른 어둠을 움켜쥐는데.

꽈르르르릉!

올드 캐슬이 무너져 내렸다.

진유성은 바닥이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에 디딤 발을 옮겨 균형을 유지했지만, 이미 록펠러는 내뺀 뒤였다.

하지만 록펠러가 멀쩡하게 도망친 건 아니었다.

진유성에게 붙잡혔던 영성의 대부분을 희생양 삼아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다시 그만큼의 영성을 모으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는데도.

“쳇.”

진유성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꽤 많은 내공을 소진했는데, 끝을 못 본 탓이었다.

그때였다.

“응?”

까만 놈이 사라지자, 진유성의 손에 붙잡혀 있던 영성의 색과 성질이 바뀌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푸른색으로 바뀌며, 끔찍한 악의에 물들어 있던 성질도 대자연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진유성은 이와 똑같은 기운을 본 적이 있었다.

[필터 몬스터가 사망했습니다.]

[현재까지 필터링 진척도는 33퍼센트입니다.]

[마스터 플레이어에게 필터링이 완료된 에너지에 대한 흡수가 진행됩니다.]

서울역 2차 게이트에서 쏟아져 내렸던 기운.

그것과 같은 기운이었다.

“흠.”

진유성이 의념을 통해 억지로 붙잡고 있던 기운을 놓아 버렸다.

그러곤 기경팔맥을 활짝 개방했다.

진유성의 단전에 막대한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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