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60화>
* * *
진유성은 본래 상림과 함께 스포츠 펍에 갈 생각이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긴 했지만, 너무 찰나의 순간이었다.
진유성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연 현상과 관련된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질이 음습하긴 했는데, 인위적이진 않았으니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음기와 관련된 자연 현상일 확률이 높다.
지진, 태풍, 해일 같은.
‘토네이도라도 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몸을 돌리려는 순간.
진유성은 문득 자신이 이 기운을 어디서 느꼈었는지를 알아차렸다.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
보스를 클리어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이, 이럴 수가!]
[신성을 위한 영성이 어찌하여 사라…….]
어둠과 함께 나타났던 무언가.
그놈에게서 느껴졌던 기운이다.
진유성은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서울역 2차 비징후 게이트에서 스쳐 지나갔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오래 품진 않았다.
어차피 답을 알 수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 궁금하긴 했다.
‘그 자식은 뭐였을까? 관리자였나?’
처음엔 관리자라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관리자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놈은 확연히 당황스러운 감정을 보였으니까.
각성자도 아닌 것 같고, 관리자도 아닌 것 같고, 심지어 인간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외계인?’
게이트에 대한 음모론은 엄청나게 많지만,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건 두 가지.
하나는 나사에서 차원과 관련된 실험을 하다가 실패해 게이트가 열렸다는 것.
또 하나는 외계인들이 지구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만들었다는 것.
어쩌면 어둠과 함께 나타났던 놈이 외계인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천신궁 게이트를 타고 지구로 넘어온 자신과 상림도 외계인이 아니겠는가.
진유성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관심을 꺼 버렸다.
한데, 가족 여행을 온 체코에서 외계인-아닐 수도 있지만-의 기운을 느낀 것이었다.
호기심을 느낀 진유성이 말했다.
“상림아, 나 잠깐 다녀와야겠다.”
“네? 어디요?”
“너 영화 ET 봤냐?”
“봤죠. 유명하잖아요.”
“거기서 보면 ET랑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잖아?”
상림은 진유성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최선을 다해 대화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상림을 천마신교의 3인자로 만들어 준 비기, 진유성 비위 맞추기였다.
“그쵸? 날죠.”
“나도 날아 봐야겠어.”
“자전거가 없잖아요?”
“음……. ET를 타고 날면 되지 않을까.”
“말처럼요?”
“응.”
“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
“다녀오마. 내 맥주 남겨 놓고.”
진유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상림은 멍청하게 서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교주 놈이 이상한 짓을 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상림은 홀로 스포츠 펍으로 향했다.
상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진유성은 기운이 느껴졌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프라하성을 지나면 알록달록 아름다운 벽돌로 지은 주택가가 나왔다.
주택가를 지나면 몇 개의 성에 둘러싸인 포도밭이 나온다.
진유성이 내려앉은 곳은 아름다운 포도밭 뒤로 펼쳐진 올드 캐슬.
그중 가장 높고 오래되어 보이는 곳이었다.
“여긴가?”
기운을 따라서 오긴 했는데, 워낙 찰나의 순간에 느낀 거라 확신이 없었다.
올드 캐슬 아래에 선 진유성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예민해진 기감이 올드 캐슬 전체를 훑는 순간.
“……!”
진유성이 놀랐다.
고성(古城)의 최상층에서 굉장한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의 심동이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입멸공의 비급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심동(心動)과 행동(行動)이 일치하면 능히 일류의 경지이다.
심동(心動)이 행동(行動)보다 느리면 능히 절정의 경지이다.
심동(心動)을 멈추고 행동(行動)하는 법을 알면 절정을 뛰어넘은 경지이다.
그리고.
심동(心動)과 행동(行動)이 독립된다면, 그대는 심검(心劍)을 얻으리라.
심동은 마음의 움직임을 뜻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내가 저놈을 공격할 수 있을까, 죽일 수 있을까, 반격당하지 않을까 등등.
수많은 복잡한 마음이 일어나고, 그 심동은 상대에게 신호를 준다.
이러한 신호를 행동보다 빠르게 알아차리면,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무인은 심동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심동에 반응해 공격을 피하거나, 피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일류의 경지에 접어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일류 무인들은 심동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다.
심즉행(心卽行).
마음먹는 순간 움직이는 경지.
심동과 행동이 동시에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상대의 심동을 읽고 미리 공격을 방비할 수가 없다.
절정 무인은 심동보다 행동이 빨랐다.
마음을 먹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무아지경과 몰아일체의 경지.
그렇다면 절정을 뛰어넘는 무인들은 어떻게 될까.
초극(超極), 흔히 초절정이라 일컫는 무인들은 무심동(無心動)의 경지에 다다른다.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한데, 검은 태풍처럼 움직인다.
신검합일은 무심동과 같은 말이었다.
검은 마음을 지니지 못했으니, 신체를 검에 일치시킨다는 말은 곧 심동을 죽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중원 역사상 채 열 명도 다다르지 못한 무극(武極)의 경지, 심검.
이때부터는 행동과 심동이 독립된다.
진유성이 한줌의 내공도 없이 절정 고수를 죽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유성은 무심동의 상태로 공격을 하고, 심동의 상태에서 무행동을 할 수 있다.
하나의 초식 안에서 심동과 무심동을 오가며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고, 실제로는 오른쪽으로 움직이지만 상대에겐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상대는 진유성이 팔과 다리가 8개는 달렸으며 실체가 없는 허깨비처럼 느껴진다.
제아무리 절정 무인이라고 해도 속수무책으로 목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진유성은 자신의 심동을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있었다.
한데, 고성의 최상층으로 기감을 확장하는 순간 심동이 꿈틀거렸다.
진유성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본능이 상대의 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굉장한데?’
그동안 진유성이 만났던 상대들은 절대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없는 놈들이었다.
물론 린트콕같이 제법 강한 놈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복싱 선수와 커터칼을 든 유치원생의 싸움 정도였다.
정말 방심하고, 실수를 하면 아주 조금 다칠 수는 있다.
하지만 유치원생이 커터칼을 들었다고 복싱 선수를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유일하게 진유성과 대적할 수 있었던 건 천신궁 안에서 만났던 이상한 놈.
하지만 그놈에게는 일말의 살기도 없었다.
뭔가를 빼앗아 가려고 했을 뿐, 죽이려는 마음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러나 지금 고성의 최상층에 있는 놈은 다르다.
저놈에게는 진유성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뭐, 그래 봐야 내가 이기겠지만.’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과 죽일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흠.”
진유성이 몸을 움직였다.
단 두 번의 발놀림으로 고성의 최상층에 도착한 진유성은 튀어나온 벽돌에 사뿐히 올라섰다.
유리가 없는 창 너머로 하얀 피부를 가진 색목인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색목인의 몸을 구성하는 경계가 흐릿했다.
분명 신체의 형태는 있지만, 그 형태의 경계선에는 아지랑이가 흔들거렸다.
스파이더맨이란 영화를 보면 온몸이 모래로 이루어진 샌드맨이 나오는데, 마치 그것과 비슷했다.
연기맨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이 눈앞의 연기맨에게서 사악한 악의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악행을 경험한 진유성이지만, 이 정도의 악의(惡意)는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첫인상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진유성은 가급적 사람을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이었다.
선천진기는 부정한 느낌을 풀풀 풍겨도 좋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놈일 수도 있으니까.
가만히 연기맨을 지켜보고 있던 진유성이 툭 내뱉었다.
“뭐야, 이 시꺼먼 놈은?”
그러자 연기맨이 흠칫 놀란다.
이윽고 신체를 구성하던 연기가 한층 짙어지더니 부정한 기운을 풀풀 풍기기 시작한다.
“대답 안 해?”
눈이 마주쳤음에도 연기맨은 말이 없었다.
“어허, 너 몇 살이냐? 어른이 묻는데 이 자식이…….”
한국식 꼰대 문화를 제대로 익힌 진유성이 건들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고성의 최상층을 수놓고 있던 촛불이 일제히 꺼지며, 연기맨의 몸에서 짙은 어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 외계인이냐?”
진유성이 조심스럽게 검지를 내밀었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검지를 맞대면…….
[ ]
“응? 뭐라고 한 거냐?”
[ ]
분명 어떤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특정 소리로 인식되지 않았다.
바람에는 소리가 있지만, 그 바람 소리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진유성이 멀더의 술법을 펼쳤다.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이해하는 데 멀더의 술법만한 게 없다.
그렇게 진유성의 내공이 움직이며 상대의 언어 체계로 파고드는 순간.
끄드드드드득!
엄청난 소리와 함께 올드 캐슬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아니었다.
멀더의 술법을 펼치는 진유성의 행동을 비웃은 놈이, 미증유의 힘으로 공격해 온 것이었다.
엄청난 살기와 악의를 가득 품은.
[―――!]
놈이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진유성은 그 거대한 힘 속에서 인상을 썼다.
힘의 총량이 어마어마했다.
진유성은 천신궁의 게이트를 건너오며 대부분의 내공을 잃었다.
그 이후, 이런저런 게이트들을 클리어하며 내공을 회복하긴 했으나, 그래 봐야 예전 내공의 3할 수준.
게다가 3할까지 회복됐던 내공도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느라 조금씩 소모돼서 이제는 3할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기에 진유성의 내공은 시꺼먼 놈이 내뿜는 기운과 비교해 절반의 수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의 양은 강함의 척도가 될 수 없었다.
중원에 있을 때, 마음만 먹으면 훨씬 많은 내공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의미가 없었으니까.
쿵-!
진유성의 오른발이 바닥을 내딛는 순간.
진동이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정말 소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너무나 거대한 소리를 인간의 귀가 인식할 수 없을 뿐이었다.
쿵-!
이번엔 진유성이 왼발을 바닥에 내딛었다.
사람이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소리를 만들던 기운이 진유성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쿵-!
다시 오른발.
고작 두 걸음을 내딛었을 뿐인데, 고성의 최상층을 채우던 어둠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새까만 악의와 영기로 가득 찼던 공간.
그 공간의 주도권은 이제 진유성의 손에 있었다.
[――! ―!]
놈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지만 진유성은 관심이 없었다.
대화가 필요하다면, 다짜고짜 살수를 날린 저 무례한 놈의 무릎을 꿇리고 난 뒤에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쿵-!
마지막 한 걸음.
처음엔 사람들은 진유성을 천마라고 불렀다.
나중엔 그를 천신이라고 불렀다.
마(魔)에서 신(神)까지.
참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호칭이 아니었다.
뭐라고 불리든 진유성은 진유성이었다.
고려의 왕자에서 멸마대주로, 멸마대주에서 생존대주로, 천마로, 천신으로.
그는 조금씩 변해 갔지만, 변함은 사라짐을 의미하지 않았다.
과거의 것들이 누적됨을 의미했다.
지금 이 무공처럼.
삼적천능보(三積天凌步).
세 걸음이 쌓이면 능히 하늘도 내려다보리라.
투-쾅!
진유성의 주먹이 새까만 어둠 속의 놈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