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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59화 (5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9화>

* * *

진유성은 블타바강이 한눈에 보이는 체코 시내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방은 2개를 잡았는데, 하나는 상림과 진유성이 쓰고, 또 하나는 상소윤과 유혜연이 쓸 예정이었다.

체코의 기후는 한국과 비슷했다.

다만 겨울에는 눈과 비가 한국보다 더 많이 오는 편이었는데, 다행히도 최근 일주일간은 눈과 비가 온 적이 없어서 거리가 깨끗했다.

짐을 푼 진유성과 상림의 가족은 점심을 먹기 위해 프라하의 거리로 나섰다.

“우와.”

프라하의 명물인 까를교 위를 거닐며 상소윤이 연신 감탄했다.

상림의 가족도 겨울 방학마다 해외 여행을 가는 편이었지만, 프라하는 유독 예쁜 도시였다.

도시 전체에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따뜻한 톤의 건물들이 알록달록 번져 있었고, 그 위로 바로크 시대 양식의 건물들이 우뚝 서 있었다.

천문 시계탑이나 프라하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이곳이 2022년이 아니라, 중세 시대 같았다.

‘아, 이제 2023년이지?’

상소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유성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진유성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동아시아권의 문화 말고는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생의 대부분을 중원에서 보냈고, 새로운 세계로 건너와 도착한 곳이 옛 고려 땅에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건물들이 제법 신기했다.

‘멀더가 이런 곳에 살았을까?’

멀더의 고향은 서반아(西班牙).

지금으로 따지면 스페인이었다.

“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스페인과 체코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어쩌면 멀더도 저런 고성에서 밥을 먹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첨탑에 올라 시간을 때웠을 것 같다.

‘아, 그렇지.’

멀더를 생각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떠올랐다.

진유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을 훑었다.

그러곤 개중 가장 밝고 청명한 선천진기를 가지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서 영어로 물었다.

“Are you Czech?”

“Oh, Yes.”

체코인이냐는 진유성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유성이 멀더의 술법을 사용했다.

진유성은 멀더에게 많은 술법을 배우진 않았었다.

그냥 마도술이란 게 어떻게 발동하는지 궁금해서 몇 가지만 배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언어를 습득하는 마도술 만큼은 배워 두길 정말 잘한 것 같았다.

‘또 뭐 쓸 만한 게 없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없는 거 같다.

멀더는 ‘교주님이 드디어 마도술의 위대함을 아셨다!’라며 신나서 이것저것을 알려 줬지만, 대부분이 공격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름 괜찮은 공격 기술들이었지만 진유성은 그 모든 것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 기술을 알고 있었다.

멀더가 108가지의 마도술로 공격하는 것보다 그냥 진유성이 다가가서 쥐어박는 게 훨씬 강하니까.

생각해 보니 조금 아쉽긴 했다.

귀찮아서 배우지 않았던 것들 중에는 비를 내리게 한다든가, 천둥을 치게 하는 술법들도 있었다.

그런 걸 배웠다면 드라마 대사를 인용할 때 훨씬 현장감 있게 써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때 진유성이 마도술을 시전한 남자가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스르륵 잠에 빠졌다가 화들짝 놀라 깨어난 표정이었다.

“뭐, 뭐야?”

“여기 어디 맛있는 음식점 없어?”

“엉?”

체코는 유럽의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은 탓인지, 유럽의 온갖 어려운 문법을 흡수한 난이도 높은 언어였다.

그런 언어를 유창하게 쓰는 동양인 소년의 모습에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세상 어느 관광지를 가도 그 나라 언어를 알면 편한 법이었다.

“오, 좋은 곳을 알고 있지.”

진유성이 남자한테 좋은 식당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돌아오자, 깜짝 놀란 상소윤이 물었다.

“뭐야? 방금 체코 말 쓴 거야?”

“그렇다.”

“헐, 체코어는 언제 배웠어?”

“비행기에서 잠깐 안내 책자를 봤다.”

“그걸로 배웠다고? 그러기엔 좀 유창한 거 같았는데?”

“원래 전교 9등은 처음 보는 외국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법이다.”

상소윤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유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정고에서 96등을 한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 * *

진유성 덕분에 맛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네 사람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상소윤과 유혜연은 시계 첨탑 주변의 관광지를 구경할 거고, 상림과 진유성은 스포츠 펍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한국과 체코의 축구 국가 대표팀의 친선 경기가 있는 탓이었다.

“유성이 술 먹이면 안 돼요. 알았죠?”

“걱정하지 마. 무슨 술이야.”

상림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는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사람.

유혜연은 단박에 진유성이 상림에게 술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요. 그럼 딱 한 잔만. 오케이?”

“한 잔도 안 마시게 할 거라니까?”

“잘도 그러겠네. 이따 봐요.”

유혜연이 상소윤과 함께 사라지자, 진유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체코의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교주님, 아까 술법 쓰신 거죠?”

“그래.”

“나중에 할 거 없으면 동시통역사 하셔도 될 거 같아요.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언어를 다 배울 텐데, 뭐.”

“그렇긴 하지.”

쓸 일 없는 고대 고려어와 고대 중원어를 제외해도, 진유성이 쓸 수 있는 언어는 무려 4개였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체코어.

‘아, 멀더의 모국어도 있군.’

언어습득의 마도술로 가장 먼저 배운 게 멀더가 사용하던 서역의 언어니까.

“스포츠 펍은 어디로 갈까요?”

“기다려 봐. 현지인들한테 물어보게.”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행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곤 인상을 찌푸렸다.

음습하고 묘한 기운이 그의 기감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느껴 본 기운이었다.

‘게이트였나?’

비슷하긴 하지만, 게이트가 탄생할 때 풍기던 기운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순간, 기감을 자극하던 기운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상림이 다가와 물었다.

“왜요? 뭐 있어요?”

“응? 아니다.”

잠시 생각하던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물어보고 올게.”

진유성은 주변 행인에게 다가가 스포츠 펍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 * *

올드 캐슬에 어둠이 찾아왔다.

빛과 어둠은 행성의 자전에 따른 자연의 현상이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 앉은 지금이 한낮이라는 건, 이 어둠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둠 속에는 두 명의 백인 남성이 있었다.

본래 셋이서 모이던 회동 장소였지만, 중원으로 떠났던 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군.]

[중원은 먼 곳이니까.]

[시간대가 너무 꼬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페이즈2 전에는 돌아오겠지.]

중원과 지구를 연결하는 게이트에는 ‘상실의 공간’이 겹쳐 있고, 그곳에는 관리자가 있었다.

관리자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셋에게도 두려운 존재였다.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상실의 공간에 기거하는 미증유의 관리자는 그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 갔다.

그들은 관리자와 격렬한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소중한 것을 지켜 내지 못했다.

물론 셋이 동시에 덤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실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시험은 함께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관리자를 두려워한 그들이 중원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길을 돌아가는 것이었다.

수십 개의 하위 차원을 지나다 보면 종종 중원과 연결된 하위 차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을 통하면 상실의 공간을 우회해 중원에 도달할 수 있고.

운에 달린 일이지만, 연결 빈도가 드문 것도 아니었다.

무릉도원, 저승, 천계, 서천 같은 하위 차원들은 태생적으로 중원과 연결이 잦은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위 차원을 이동하는 것에도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위 차원의 시간은 상위 차원과 달리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해서 중원까지 도달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막상 중원에 도착해 보면 과거나 미래일 수도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마도사라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중원으로 먼길을 떠난 사이, 남은 둘은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드디어 2차 각성자들이 탄생했군.]

[조만간 부모의 형질을 물려받은 3차 각성자들도 탄생할 것이다.]

[끝을 보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

[글쎄, 인간들의 적응력을 믿어 본다면 5년에서 10년이면 충분하겠지.]

[페이즈2가 멀지 않았군.]

[문제는 아카샤(?????k??a)다.]

[아니, 아카샤에는 그 자체의 의지가 없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두 명의 백인 남성은 늘 그래 왔듯이 0.1초의 오차도 없이 대화를 나눴다.

사실 대화라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말했고, 동시에 답하고 있었으니까.

태생부터 이러했다.

세쌍둥이로서 어미의 태중에 자리 잡았을 때부터 그들은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또한 같은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

[답답하다.]

[이곳은 답답하군.]

[여기서 나가야겠어.]

그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껴 어미의 자궁을 찢고 세상으로 나왔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신 게 죽은 어미의 피였다.

배우지 않았음에도 사악한 마도술의 사용할 수 있었고, 배우지 않았음에도 인간들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증오했고, 신뢰하면서도 의심했다.

겸애와 자애와 편애.

미움과 증오와 혐오.

이율배반적이며 끔찍한 악의 속에서 탄생한 이들.

그들이 바로 암흑기로 불리는 서역의 100년을 지배했던 세쌍둥이였다.

[페이즈2가 시작될 때까지 첫째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 생각인가.]

[우리끼리 만찬을 즐겨야지.]

[하지만 중원의 절대자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다리는 게 옳지 않겠나?]

[뒷걸음질로는 성을 함락시킬 수 없는 법이다.]

세쌍둥이라고는 하나, 그들의 성질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니었다.

가장 늦게 어미의 피를 마셔 셋째가 된 록펠러는 개중 가장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록펠러의 말에 한동안 침묵하던 둘째가 입을 열었다.

[동의한다.]

[페이즈2를 기대하지.]

[나 역시.]

둘째의 말을 끝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둘째가 사라지기 직전에 말했다.

[해피 뉴 이어.]

[재미있는 농담이군.]

그렇게 올드 캐슬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고, 햇볕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둠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아직 셋째, 록펠러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록펠러는 어둠 속에서 잠겼다.

그는 첫째가 중원으로 떠난 이유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면서도 의심했고, 사랑하면서도 증오했으니까.

둘째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록펠러는 첫째가 단지 그들의 계획을 위해 중원으로 향했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건 너무 헌신적인 행동이었으니까.

하위 차원에서 얼마의 시간을 허비할지 모르는데, 자신의 시간을 희생한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해도 첫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상념 끝에 자리에서 일어난 록펠러가 올드 캐슬을 떠나려는 순간.

[……!]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뭐야, 이 시꺼먼 놈은?”

누군가 록펠러의 감각을 속이고 그들의 안식처, 올드 캐슬에 나타난 것이었다!

“대답 안 해?”

진유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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