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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58화 (58/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8화>

Quest 13. 마주친 교주님

진유성이 상하이에서 벌어들인 돈은 한화로 약 225억이었다.

그중 45억은 중개 보수로 상림에게 주기로 했고, 신분 구매, 자동차 수리, 학비 등등을 포함해 통 크게 10억을 더 줬다.

즉, 225억 중 55억은 상림이 가질 돈이고, 170억이 진유성의 돈이었다.

상림은 170억 중 15억을 먼저 진유성에게 주었다.

15억은 즉매회가 달러로 지불한 돈이라서 추적당할 염려가 없었다.

사실 나머지 돈도 추적당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돈의 원주인이 삼합회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했고.

그래서 상림은 무기명 채권과 예금 증서들을 해외에서 몇 쿠션 돌리며, 세탁하고 있었다.

이 돈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건, 진유성의 고3 생활이 시작되는 3월 중순쯤일 것이다.

어찌 됐든 15억이란 거금이 생긴 진유성은 기분이 좋았다.

‘이 돈으로 뭘 하지?’

소소하게 하고 싶은 건 있어도, 딱히 의욕을 가지고 하고 싶은 건 없었으나 진유성은 곧장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상림, 유혜연, 상소윤과 함께 겨울 방학을 맞이해 방문할 체코.

체코에는 몇 가지 유명한 것이 있었는데, 그중 진유성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맥주.

인터넷에서 알아본 바로, 체코는 전 세계에서 개인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였다.

그런 체코의 속담 중에 진유성의 심금을 뒤흔드는 것이 하나 있었다.

-좋은 맥주는 한 모금만 마셔 봐도 알지만, 그래도 확인을 하려면 전부 마셔 봐야 한다.

‘크으.’

이 얼마나 깊은 진리가 담긴 속담이란 말인가.

그래서 진유성은 체코에 여행을 가서 100여 종의 맥주를 전부 마셔 볼 생각이었다.

나이의 문제는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체코나 한국이나 만 18세 미만은 술을 구입할 수 없었으나, 만 18세 미만이 술을 마시다가 걸려도 처벌하는 규정은 없었다.

‘구매야 뭐, 쉽지.’

구매는 사전적 의미로 재화를 치르고 물건을 사는 걸 의미했다.

진유성은 그렇게 체코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잘 안 간다.

체코로 여행을 떠나는 게 2022년 마지막 날이니, 3일밖에 안 남았는데…….

그 3일이 3년같이 안 갔다.

답답한 진유성은 상림에게 징징거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림아, 시간이 안 간다.”

“벌써부터 이러시면 군대에서는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군대? 나 군대가?”

“가셔야죠. 대한민국의 건강한 성인인데. 나랏법이 그래요.”

바로 자신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성인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건 머리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체감해 본 적은 없었고, 그 의무가 자신에게 다가올 거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유성은 최선의 대답을 찾아냈다.

“군대에 가는 게 북한 때문이지?”

“어, 네. 그렇죠.”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는 북한 때문이었고, 한동안은 게이트 때문이었고, 이제는 다시 북한 때문이 되었다.

한동안 게이트로 고생하던 북한이 게이트 안정국에 접어들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진유성이 말했다.

“통일을 시켜야겠다.”

“네?”

“통일이 되면 군대에 갈 일이 없는 거 아니야?”

“그, 그렇게 단순하진 않을걸요? 아마 통일이 돼도 십 년 정도는 징집 체제를 유지할 거예요. 그,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진유성이 정말 통일을 시도할까 두려워진 상림이 고개를 저었지만, 진유성은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왜요?! 어차피 간다니까요?”

“가만히 있으면 군대에 갈 확률이 100퍼센트지만, 통일되면 그 확률이 단 1퍼센트라도 줄어들 테니까.”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보는 것.

그게 진유성이란 사람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상림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미친 교주 놈이 군대에 가기 싫다고 통일을 시키려고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서 더 문제였다.

통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설령 진유성이 북한의 김씨 일가를 모두 납치해서 청와대 앞에 던져 버린다고 해도, 그게 통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분노한 북한군의 총공격으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고.

‘아, 씨. 군면제는 내 깜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상림이 아무리 돈이 많다지만, 권력과 연관되지 않은 이상 군면제를 시도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재벌들이 손쉽게 면제를 받는다고 욕했지만, 사실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재벌가가 아닌 졸부가 괜히 시도했다가는 역풍 맞기 딱 좋았다.

“교주님!”

“엉?”

“아직 입대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제가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흠, 그 방법이 불법은 아니어야 한다. 난 불법을 저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어, 그렇다면 그냥 입대를 하시는 게…….”

“통일은 불법이 아니지.”

“속하, 노력하겠습니다.”

결국 상림은 ‘불법이 아닌데 군대를 가지 않을 방법’이라는 난이도 극상의 미션을 받고야 말았다.

상림은 진유성이 내준 미션의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가,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 * *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2022년 12월 31일이 다가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공항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이용객들의 수가 상하이에 가려고 찾았을 때보다 배는 많아진 듯했다.

“젠장.”

진유성은 그런 인천 공항의 풍경을 외면했다.

그는 공항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마음속 올 타임 넘버 원이었던 로맨틱한 공간이 사실은 드라마의 허구였다니.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외면할 뿐이었다.

“왜 그래? 유성아?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저 가슴으로 울 뿐.”

“……?”

유혜연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진유성 일행은 탑승수속 카운터에 도착했다.

탑승 수속 과정은 상하이에 갈 때와 똑같았다.

딱 하나만 빼고.

“제 눈을 똑바로 응시하시고, ‘인벤토리 목록 공유’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비인가 각성자의 출국을 방지하기 위함이니,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동안 뜨겁게 타올랐던 2차 각성에 대한 놀람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되돌릴 수도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는가.

변화된 환경에 맞춰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공항에서는 비인가 각성자의 해외 출국을 막기 위해 인벤토리 기능을 이용하기로 했다.

각성자들이 인벤토리 목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록 공유는 정신계 각성자가 아닌 이상, 보통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설령 정신계 각성자라고 해도, 심상 전달에 능숙하지 않은 각성자들은 언어를 이용해야 했다.

각성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비인가 각성자들이 벌써 심상 전달을 이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이러한 검색 방법은 꽤 적절한 것이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상림이 진유성을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갑자기 왜 이런 걸 합니까? 각성자 해외 출국이 불법은 아니잖아요?”

“밀수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인가 각성자들 중 몇몇이 마약을 대량으로 들여왔거든요.”

“네? 왜요?”

“돈 때문이겠죠, 뭐.”

“…….”

상림은 할 말을 잃었다.

각성해서 가장 먼저 하는 짓이 마약 배달이라니.

어떻게 보면 어이가 없고, 어떻게 보면 영리했다.

걸리지만 않았으면 큰돈을 번 다음에 당당하게 각성 신고를 하지 않았겠나.

상림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인벤토리 목록 공유’를 외쳤다.

“네. 통과되셨습니다.”

각성자가 아닌 상림, 유혜연, 상소윤이 문제없이 통과했고, 이제 남은 건 진유성의 차례였다.

상림이 불안한 마음이 든 것은 진유성 때문이었다.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괜찮습니까?]

[뭐가?]

[인벤토리 목록 공유되는 거 아닙니까?]

[날 뭘로 보는 거냐? 별 걸 다 걱정하네.]

진유성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탑승수속 카운터 앞에 섰다.

무공의 최고봉은 심검(心劍)이다.

그렇기에 각 문파에는 심검으로 향하는 단서가 숨긴 무공이 하나쯤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무당파의 양의심공(兩儀心功).

마음을 둘로 갈라 심동과 무심동의 상태에서 무공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무당의 비기였다.

무당파의 장문인은 양의심공을 이용해 마음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두 가지 무공을 한 번에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 이상을 할 수 있었다.

반이 아니라, 육 대 사, 혹은 칠 대 삼으로 나눌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무당파에서 알았다면 놀라서 까무러치겠지만, 진유성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양의심공을 운용한 진유성이 공항 직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인벤토리 목록 공유.”

하지만 직원에게 인벤토리 목록은 공유되지 않았다.

작은 마음으로 ‘인벤토리 목록 공유’를, 더 큰 마음으로 ‘인벤토리 목록 공유 금지’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진유성은 무난히 탑승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상림은 그런 진유성의 모습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세관 신고가 필요 없겠는데?’

해외에서 구입한 물건을 진유성의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완전 범죄다.

상림은 해외에서 현금으로 이것저것을 구매하고 진유성의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상림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과연 진유성이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온 물건을 순순히 내어 줄 것인지에 대해서.

* * *

직항으로도 12시간 가까이 걸리는 기나긴 비행 끝에 진유성은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 주변을 둘러본 진유성이 감탄했다.

진유성의 시력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의 건물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호오…….”

프라하의 첫인상은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상하이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도 제법 있었는데, 이곳은 완전히 달랐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건물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외양도 이국적이었다.

게다가 언어조차 완전히 달랐다.

체코는 체코 고유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어도, 중국어도, 영어도 여기선 통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제법 넉넉해 보였…….

팍!

“억!”

진유성은 어수룩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자신을 목표로 삼은 소매치기를 단매에 퇴치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화장실에 다녀온 상소윤과 유혜연이 커다란 캐리어를 끈 채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상소윤이 다가와 물었다.

“아빠는?”

“우연히 만날 수 있겠지.”

“뭐?”

“우연히 만나면 인연이라고 억지 부려도 되니까.”

상소윤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드라마냐?”

“프라하의 연인. 공간적인 배경을 좀 신경 써 봤다.”

“넌 대체 그 많은 드라마 대사를 어떻게 기억하는 거냐?”

“난 전교 9등이니까.”

“…….”

“96등 따위가 이해할 수 있는 암기력이 아니지.”

“야!”

상소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진유성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어허, 96등은 9등한테 소리 지르는 거 아니야.”

“어, 엄마…….”

“유성이한테 바보가 옮으면 어떡할 거야?”

“…….”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의 뼈를 때리는 공격에 상소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공항 직원에게 호텔로 가는 길을 묻고 온 상림이 캐리어를 끌며 나타났다.

“이제 96번 구역으로 가면…….”

“아빠 미워!”

어렵사리 길을 알아 온 상림은 영문도 모르고 단단히 삐진 상소윤을 달래 줘야 했다.

가장의 어깨는 이토록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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