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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53화 (5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3화>

왕호일의 두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종신채명보탕은 손이 많이 가는 요리였고, 재료도 많았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정체불명의 남자가 훈수를 뒀다.

“버섯 볶지 말라니까?”

“아.”

워낙 손에 익은 방식이라서 저도 모르게 버섯을 볶아버렸다.

그 뒤로도 남자의 훈수는 이어졌다.

디테일한 훈수도 있었고, 본인도 잘 모르겠는데 그럴 것이라는 식의 훈수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요리가 완성될수록 왕호일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요리의 향 때문이었다.

‘이건…….’

팔종신채명보탕은 팔보탕의 원류가 되는 음식이지만, 현대의 팔보탕과는 엄연히 달랐다.

현대의 팔보탕이 국물 요리라면 팔종신채명보탕은 국물이 바닥에 은근히 깔려 있는 볶음 요리였다.

한데, 이 볶음 요리라는 편견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던 왕호일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알려 준 대로 만들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소스를 끼얹는 게 아니었어. 요리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이 소스처럼 이용되는 거였어.’

어느덧 말투가 좀 더 공손해진 왕호일이 물었다.

“고기 밑에 소금을 두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나도 몰라. 근데 간을 하는 게 아니라, 고기 아래에 소금을 둔다던, 아, 소금을 볶아야 할걸?”

“소금을 볶는다고요?”

“어어.”

왕호일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요리를 진행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요리가 완성되었다.

긴장해 마른침만 삼키던 왕호일이 조심스럽게 음식의 향을 맡았다.

‘똑같다. 완전히 똑같아!’

기억 속의 아버지가 하던 팔종신채명보탕과 완전히 똑같은 향이 났다.

앞선 요리에서도 향은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이게 진짜였다.

두근, 두근.

소리가 들릴 정도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왕호일이 젓가락을 놀렸다.

그렇게 한 입.

“…….”

다시 한 입.

“…….”

마지막으로 한 입.

음식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왕호일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가 난데없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시작됐던 어선방의 몰락, 명성을 잃고 자존심만 남았다던 주변 상인들의 비아냥.

모든 게 일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맛있냐?”

“드셔 보시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러려고 알려 준 건데.”

정체불명의 남자가 야무지게 젓가락을 놀려 팔종신채명보탕을 먹었다.

그러곤 고개를 흐뭇하게 웃었다.

“맛있네. 똑같아.”

그 순간, 왕호일이 흠칫 놀랐다.

방금, 정체불명의 남자가 ‘수백 년이 지나도 요리는 전승되는군.’이라고 말했다.

‘설마…….’

믿을 수 없는 가설을 떠올리고 있던 왕호일에게 정체불명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야. 십이간소대명하는 못 만드냐?”

“……깐쇼따명샤(깐쇼새우)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부르나? 아무튼 그거.”

“만들 수는 있습니다만…… 완벽한 맛은 내지 못합니다.”

“너 아까부터 뭔가 조금씩 부족하다?”

“요리를 전수해 줄 아버지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흠. 십이간소대명하 한번 만들어 봐.”

왕호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잘하네. 그냥 자차이(중국식 짱아치)랑 식초가 틀려먹은 거야.”

“예?”

“너 자차이랑 요리에 넣는 식초랑 같은 거 쓰지?”

“예, 예! 그렇습니다!”

“두 식초의 맛을 다르게 하면 될걸? 요리에 넣는 식초에 꿀을 좀 타 봐. 진짜 조금만.”

“예!”

왕호일은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남자의 조언을 따랐다.

그 결과…….

“이, 이럴 수가!”

아버지가 만들었던 바로 그 맛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왕호일은 그 뒤로 소실되었던 음식들의 요리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남자는 거의 대부분의 요리를 알고 있었다.

간혹 모르는 것들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대에서 맥이 끊길 뻔한 황실 정통 요리의 정수를 대부분 알 수 있었으니까.

또한 남자의 조언을 통해서 황실 요리의 법칙과 핵심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조금만 연구한다면 남자가 알지 못했던 요리법도 전부 복구할 수 있을 듯했다.

왕호일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희망을 더 품었다.

이 남자가, 아니 이분이 술에 대한 것까지 알려 준다면……!

주방의 어딘가로 후다닥 달려간 왕호일이 오랜 시간 밀봉된 흔적이 있는 두 병의 술을 가져왔다.

“뭥냥?”

끝없이 음식을 입안에 집어넣던 남자가 술을 가리켰다.

“귀룡주, 송령태평춘주입니다. 은인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왕호일이 공손히 술을 건넸다.

아버지가 빚은 마지막 남은 술이었다.

“오호, 오랜만에 보네.”

“이 두 술도 알고 계십니까?”

“알지, 왜 몰라? 귀령주는 귀령집으로 담근 거고, 송령태평춘주는 소나무 뿌리 밑에 담그는 거잖아.”

“……!”

왕호일이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히 대가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만, 혹시 술을 담그는 법도 알고 계십니까?”

“알려 줘?”

“부탁드립니다.”

“귀령주는 귀령집이란 보약으로 담그는 거야. 알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거 설명해 봐.”

왕호일이 입을 열었다.

가루로 만든 귀령집의 약재들을 꽁꽁 싸매 단지에 넣고, 소주 30근과 찹쌀로 빚은 백주 10근을 섞어 단지를 채운다.

그다음에 단지 윗부분을 한 층 한 층 봉하는데, 밀봉은 황토와 소금물을 섞은 진흙으로 해야 했다.

“뭐야, 거기까지밖에 몰라?”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혀를 쯧쯧 찬 남자가 추가 설명을 이어 갔다.

“녹두 가루로 단지를 한 번 더 봉해야 해. 그리고 삼복철에 햇빛을 쬐야 하는데, 단지를 동서남북 방향으로 고루고루 돌리면서 각 방향이 다 햇빛을 받아야 해.”

“그래, 그거였어……!”

남자는 이어서 송령태평춘주에 대해 설명했다.

송령태평춘주는 중원에서도 만들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술이었다.

깊은 산속의 곧게 잘 자란 늙은 소나무를 골라 뿌리까지 땅을 파고, 술 단지의 덮개를 연 후 나무뿌리 밑에 묻는다.

뿌리에 구멍을 뚫어 놓으면 술이 소나무 뿌리의 액체를 차츰 흡수하는데, 1년 후에 술의 색이 호박색이 되면 완성된 것이었다.

왕호일은 정신없이 남자가 해 주는 말을 받아 적었다.

고개를 드니 술과 모든 음식을 다 먹은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왕호일은 남자의 앞에서 28가지의 황실 요리를 만들었다.

즉, 28인분이 넘는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왕호일은 황실 숙수답게 넉넉한 양의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아마 정량으로 따지면 50인분 가까이였을 것이었다.

한데, 이 남자는 그 모든 걸 먹고도 전혀 배부른 기색이 없었다.

왕호일은 이제는 완벽히 납득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난다지 않은가.

이분의 정체는…….

왕호일이 큰 절을 올렸다.

“뭐야? 갑자기 웬 절?”

“조상님의 은덕, 앞으로 살며 두고두고 세상에 보답하겠습니다.”

“엉?”

“후손, 전통과 맥을 이어 가문에 부끄럽지 않은 황실 숙수가 되겠습니다!”

왕호일이 다시 한번 절을 올렸다.

살아 있는 이에게는 할 수 없는 두 번의 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너를 굽어 보겠느니라.]

어디서 들리는지 짐작할 수 없는, 꼭 자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 천지에 울려 퍼졌다.

왕호일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동안 조아렸다.

한참의 시간 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조상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텅 빈 스물여덟 개의 접시와 두 개의 술병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훗날 전 세계를 매료시킨 황실 요리 전문가이자, 평생에 걸쳐 수많은 선행을 베풀며 요리하는 성자로 추앙받는 왕호일.

그는 늘 자신의 시작을 조상신의 은덕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것이 그의 시작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난데없이 공짜로 먹었네?”

횡재한 진유성 덕분이었지만.

* * *

왕호일의 오해를 눈치챈 진유성은 혜광심어와 육합전성으로 상대를 홀리고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제는 맛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추억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이 웃긴 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조미료와 자극적인 음식이 그렇게 맛있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이곳의 음식에 익숙해지자, 종종 중원의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어 좋았다.

‘시킨 대로 제법 잘 만들었고 말이야.’

진유성이 요리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긴 수명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처음 자금성에 눌러살기 시작했을 때, 당시 황실의 숙수는 장씨 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의 요리만큼은 아직도 기억할 만큼 굉장한 솜씨였다.

진유성은 그의 요리를 좋아했다.

한데, 세월이 흐르고 장씨가 늙어 기력이 쇠해지자 새로운 황실의 숙수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맛이 예전만 못했다.

맛이 없다는 건 아닌데, 진유성의 취향은 장씨의 요리였다.

결국, 진유성은 장씨 숙수를 찾아가 상세한 요리법을 알아 왔다.

그러곤 황실의 숙수가 바뀔 때마다 요리법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황실 숙수는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5년 정도 근무했지만, 진유성은 백 년을 넘게 황실에서 군림했다.

그가 만나 본 숙수만 두 자릿수란 말이었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진유성은 황실 요리에 대해서 빠삭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황실 요리를 한 적은 없지만.

술도 마찬가지였다.

진유성은 한국에 와서 소주를 먹고는 신이 내린 맛이라고 칭찬했었다.

하지만 그건 진유성의 오감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완벽한 멸균 공법이 된 현대의 술들을 더 맛있게 느끼는 것일 뿐이었다.

당연히 중원에서도 즐기던 술들이 있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중원의 4대 명주였다.

오늘 왕호일이 물어봤던 귀령주와 송령태평춘주는 모두 4대 명주에 속했는데, 진유성이 이것들에 대해서도 해박하게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환경과 문화가 같다고는 하지만 요리를 하는 법까지도 같은 게 참으로 신기했다.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전승됐다는 것도 대단했고.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기분 좋게 상하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음식을 먹었는지 어느새 하늘의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 * *

“하루 종일 뭐하셨습니까?”

어딘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진유성을 보며 상림이 미심쩍게 물었다.

진유성은 기분이 좋을 때마다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림의 불경한 눈빛을 본 진유성이 손을 들어 상림의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아니, 때리려고 했는데 상림이 피했다.

“어쭈?”

“아, 왜 자꾸 때리십니까.”

“눈빛이 불경해 보이잖아.”

“불경해도 봐주실 수 있잖아요.”

“천마신교 몇 번째 교리였지? 일곱 번째였나?”

“뭐였죠?”

“천신에게 죄를 짓고 합당한 벌을 피할 경우 삼대에 걸쳐 횡액을 나눠 받는다.”

“아니 근데 그 교리는 대체 누가 만든 겁니까?! 진짜 나쁜 사람이네!”

“주청이가 만들었는데? 기억 안 나?”

“……아, 맞다.”

“이거 완전 나쁜 놈이네.”

“Rest in peace.”

상림이 신주청의 명복을 비는 사이, 진유성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상림은 또다시 피해 냈다.

“어라?”

“왜요?”

“생각보다 무공이 많이 증진했네?”

물론 진유성은 마음만 먹으면 일초식으로 상림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기에 상림의 수준에 맞춰서 손을 쓴 것이었는데, 상림의 경지가 자신의 생각보다 좀 더 위였다.

‘하긴, 한번 밟아 봤던 경지니까.’

처음 가는 길을 걷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겪어 본 길을 걷는 게 빠를 수밖에 없다.

진유성은 잠시 상림을 쳐다보며 서울역에서 만났던 각성자를 떠올렸다.

검을 빌리려고 손을 움직였는데, 그의 금나수(擒拿手)를 피해 냈던 놈.

당시에 진유성은 마음이 급해서 제법 빠르게 움직였었다.

최선을 다한 건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정도?

그런데도 피해 냈다는 건 제법 싹수가 있는 놈이란 뜻이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아, 내가 서울역에서 봤던 각성자가 있는데 걔가 더 강한지, 네가 더 쎈지 비교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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