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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52화 (5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2화>

Quest 11. 즐기는 천마님

호텔로 돌아오자 상림이 진유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씻고 나온 듯한 상림이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물었다.

“꿍쳐 놓은 돈이 있던가요?”

“당연하지. 없을 리가.”

종두평이 비상금까지 전부 털어서 아이템을 구매했다면, 진유성은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딱 봐도 진유성은 종두평이 최후의 보루를 꿍쳐 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뒤를 밟았고, 자비롭게 딱 절반만 가져왔다.

평화롭게 거래하러 온 고객을 다짜고짜 공격한 놈이니 좀 혼이 나도 된다.

진유성이 인벤토리에서 달러를 꺼내서 상림에게 내밀었다.

“이게 한국 돈으로 얼마냐?”

“잠시만요.”

상림이 달러 뭉치를 센 다음에,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환율을 검색했다.

“12억이 조금 안 되네요.”

“그럼 이거까지 합쳐서 총 얼마를 번 거지?”

“대충 225억? 그보다 좀 더 많겠네요.”

“큰돈이냐?”

“당연하죠. 평범한 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만질 수 없는 엄청난 돈이에요.”

“너한테도 많은 돈이냐? 너네 회사 엄청 크던데?”

“저희 회사가 일 년에 버는 돈이야 그거보다 많죠. 근데 말 그대로 회사 차원에서 버는 돈이지, 개인으로 그만큼 버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진유성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유성은 금전적 감각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차피 필요한 돈이야 상림한테서 뜯어 낼 수 있으니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사이 상림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오늘 진유성이 벌어들인 225억은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팔아서 번 돈이 아니다.

즉매회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서 판 것뿐이다.

즉, 진유성에게는 오늘 팔아치운 것보다 더 많은 아이템들이 있었다.

‘각성자가 대단한 게 아니라, 교주님이 대단한 거겠지?’

지금까지 진유성이 게이트에 들어간 횟수는 세 번밖에 안 된다.

서울역 1차 비징후 D급 게이트.

경산 송림 저수지 F급 게이트.

서울역 2차 비징후 S급 게이트.

보통의 각성자들이 한 번의 헌팅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정도 된다고 들었다.

물론 이 수치는 아이템 판매는 제외한 금액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 수백 배를 벌어들였다.

아마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때문인 듯했다.

“교주님.”

“엉?”

“궁금한 게 있는데, 등급 높은 아이템들 있잖아요?”

“어.”

“그거는 세 번째 게이트에서 벌어들인 겁니까? 그러니까 서울역에서 두 번째로 열린 게이트요.”

“몰라? 난 인벤토리 알람 꺼 놓는데?”

상림이 듣기로 보스 레이드는 마정석은 거의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보스 한 명을 잡아 봤자 드롭되는 마정석의 양은 몬스터 한 마리를 잡을 때 드롭되는 양과 비슷했다.

하지만 대신 아이템을 엄청나게 줬다.

그래서 각성자들은 종종 보스 몬스터를 보물 상자라고 부른다고도 들었다.

“상림아, 근데 우린 이제 즉매회랑 거래를 못하는 거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걱정 마세요. 중국은 넓으니까 다른 블랙 마켓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뛰어서 찾아볼게요.”

상림이 그렇게 말하며 진유성의 눈치를 살피자, 진유성이 피식 웃으며 상림의 딱밤을 때렸다.

딱밤을 맞았음에도 상림은 헤실헤실 웃었다.

진유성의 말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2할 줄 테니까 가져가라.”

“진짜죠?”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많이 봤죠. 제가 옛날에 태극검법은 왜 익히시냐고 물어보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며 죽이려고 했잖아요.”

“거짓말은 안 했잖아? 그냥 죽이려고 했지.”

“…….”

“아무튼, 2할이면 45억인가?”

“그쯤 되죠.”

“그걸로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는지 알지?”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진유성의 애마를 사줘야 했다.

‘그래도 뭐…….’

페라리 가격이 5억 정도 하니까 40억은 남는 셈이었다.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알겠습니다.”

“내가 너 힘들지 말라고 애마는 미리 골라 놨다.”

“네?”

진유성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뭔가를 보여 줬다.

페라리의 창업주는 엔초 안셀모 페라리(Enzo Anselmo Ferrari).

2002년에 페라리가 창립 60주년과 창업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모델명이 ‘엔초 페라리’였다.

엔초 페라리는 전 세계에 399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희귀 모델이었다.

이러한 프리미엄 때문에 20년이 지난 2022년에도 중고가가 무려 350만 달러였고.

그러나 올해부터는 슬슬 엔초 페라리의 가격이 떨어질 예정이었다.

왜냐하면, 20년 만에 창립 80주년을 기리는 ‘엔초 페라리Ⅱ’가 발매됐으니까.

그 찬란한 자태가 진유성의 스마트폰 속에 있었다.

“난 이 말이 마음에 든다.”

엔초 페라리Ⅱ의 가격은 400만 달러.

한화 47억 6천만 원.

“아, 씨바.”

적자였다.

* * *

CSG의 인적안전관리국.

공식적으로 인안국은 4팀까지 존재했다.

아마 중국의 국가 주석도 4팀까지밖에 알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인안국에는 5팀이 존재했다.

서울역 1차 게이트에 참여했던 강새룡이 부팀장으로 있고, CSG의 수장 월성이 팀장으로 있는.

사무실에서 강새룡이 묘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넘겼다.

보고서에는 오랜 추적 끝에 실마리를 잡은 왕후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던 강새룡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진 속의 남자는 자신이 기억하던 왕후와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흡사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왠지 분위기가 달라 보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역에서 만났던 왕후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였다면, 지금 사진 속 남자는 어딘지 날이 선 느낌이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했다.

‘뭐, 사진이니까.’

강새룡이 그런 생각을 하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는 왕후가 끝까지 발각되지 않기를 바랐다.

어찌 됐든 왕후 덕분에 자신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은혜를 입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인안국에 실마리가 잡힌 이상 자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 * *

상하이에서 맞이하는 둘째 날.

늘어지게 잠을 잔 진유성은 상림과 아침을 먹고 쉬다가 홀로 호텔을 빠져나왔다.

상림은 중국에 온 김에 만나기로 한 거래처가 있다며 먼저 떠났다.

사고 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사고는 무슨, 내가 애도 아니고.’

낮의 상하이 길거리는 밤의 그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밤이 고즈넉하면서도 활기찬 매력이었다면, 낮은 온갖 인간 군상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별천지였다.

진유성은 그 별천지 속을 부지런히 누볐다.

길거리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좌판에 깔아 놓은 관광 상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호오, 오랜만에 보는군.”

진유성이 전갈 튀김을 입에 넣었다.

익히 알고 있던 식감보다는 조금 더 딱딱한 느낌이었다.

중원에는 ‘교주의 음식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황제의 음식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그러하다는 말은 아니고, 황제의 위에 있는 천마신교의 위세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진유성의 혀를 즐겁게 해 주었던 음식이 황실의 숙수들이 만든 것이긴 했다.

진유성이 과거에 먹었던 전갈 튀김은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씹는 순간 육즙이 배어 나왔다.

진유성은 생각보다 맛이 없는 전갈 튀김을 추억으로 먹었다.

그런 진유성의 모습을 보고 있던 중국인 노점상이 호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한국인인가? 중국말 할 줄 알아?”

“어, 조금.”

“이 친구, 아직 존칭어는 못 배웠구먼.”

그 뒤로 노점상 주인이 진유성에게 이것저것을 권했다.

전부 진유성의 추억 속에 있는 음식들이었지만, 역시 맛은 별로 없었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런저런 요리를 먹고 다녔다.

먹은 양을 생각하면 배가 부를 법도 했건만, 끝이 없었다.

사실 진유성은 내공을 이용해 신진대사를 한순간에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단 몇 분이면 완전히 소화시킨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길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던 진유성의 눈에 문득 작은 가게가 보였다.

어선방(禦膳房)이란 이름을 가진 가게의 입구에는 이곳이 정통 황실 요리 전문점이란 긴 설명문이 걸려 있었다.

어선방이라는 이름도 사실 진선(進膳 : 황제의 식사)을 책임지던 궁내 기관을 뜻했다.

‘호오.’

진유성이 어선방이란 가게에 시선을 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는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천신궁에서 먹던 음식의 냄새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기심을 느낀 진유성이 어선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이상하군. 음식 냄새는 나는데.’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어딘지 추억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에 진유성이 몸을 움직였다.

* * *

어선방의 주인이자 숙수인 왕호일이 신중하게 요리의 향을 살폈다.

‘비슷하다.’

과거 아버지가 만들었던 요리와 거의 비슷한 향이 났다.

하지만, 맛을 보는 순간 왕호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

이것은 정통 황실의 요리가 아니었다. 그냥 비슷한 맛을 내는 현대 요리일 뿐.

절망한 왕호일이 몇 시간에 걸쳐 만든 요리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남들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황실 요리법에 집착하는 왕호일을 미련하다고 비웃었지만, 왕호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명나라 황실의 숙수였던 조상이 창업하여 수백 년이 넘게 이어 오던 가업을 자신의 대에서 끊을 수는 없었다.

처음엔 자신이 있었다.

요리를 전수해 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만, 그 비법은 전부 기록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게다가 몇 대 위부터 내려오던 기록이라 불친절하기도 했고.

한때, 국가 주석도 상하이를 방문할 때마다 찾았던 어선방이 건물세를 유지하지 못해 뒷골목으로 밀려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왕호일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곤 다시 열정적으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맛을 보는 순간, 그의 입에서 다시 한번 욕설이 터져 나왔다.

뭔가 달랐다.

분명 뭔가 다른데, 뭐가 다른지 모른다는 점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 순간이었다.

“순서가 완전히 틀렸는데?”

“……!”

깜짝 놀란 왕호일이 뒤를 돌아보았다.

웬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남자라기엔 조금 어린 티가 났다. 고급중학생 정도?

‘분명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왕호일이 얼른 주방 너머로 보이는 가게의 정문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단단히 잠겨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누, 누구냐?”

“지금 팔종신채명보탕 만드는 거 아니야?”

“……!”

이번엔 더욱 깜짝 놀랐다.

팔종신채명보탕이란 명칭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수대를 이어져 내려온 서책에는 똑똑히 적혀 있었지만, 현대 중화요리에서는 간추려서 팔보탕이라고 불렀다.

“그걸 어떻게……?”

“야채랑 고기를 넣는 순서가 틀렸어. 그리고 버섯 볶아서 넣는 거 아니고, 우려만 내고 나중에 빼야 해. 아, 너 고기에 소금 간까지 했냐? 그것도 아닌데.”

“소금 간을 하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냥 소금을 고기 밑에 두라는 뜻이었을걸.”

왕호일이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 같으면 욕을 하며 쫓아냈을 테지만, 문을 열지도 않고 들어온 게 신비했고, 요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기에 왕호일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소?”

“알아서 뭐하게? 그냥 한번 만들어 보라니까?

진유성의 닦달에 왕호일이 잠시 고민하다가 무엇을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요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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