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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51화 (5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1화>

무방비해 보이는 진유성의 모습에도 무장 인원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진유성이 너무 멀쩡해 보여서?

그것도 맞는 말이었지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옷’이 너무 멀쩡해서였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섬광탄, 연막탄, 수류탄, 소화액.

이 모든 걸 피해 없이 막아 낼 수는 있다.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다든가, 값비싼 1회용 방어 아이템을 사용했다든가, 수비에 특화된 고랭크의 각성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설령 아무런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토록 멀끔할 수가 있을까?

그런 의문 때문에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좁은 문을 선두의 인원들이 막고 있는 탓에 내부 상황을 모르던 종두평이 입을 열었다.

무장 인원을 통솔하던 게 그였다.

“뭐야, 설마 죽은 거냐?”

머뭇거리는 부하들의 모습에 당황한 종두평이 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황당한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젠장, 똥 밟은 건가?’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했으나,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이미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는데 이제 와서 ‘허허, 이게 즉매회식 손님맞이입니다.’ 따위의 변명이 통할 리가 없으니까.

적을 쓰러트리는 수밖에.

“전-!”

전원 공격이라는 말을 외치려던 종두평이 풀썩 쓰러졌다.

외마디 비명조차 없었다.

뭔가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풀썩 쓰러졌다.

진유성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탄지신공(彈指神功)이었다.

사실 진유성은 박색한 여자 두 명이 들어와 친절하게 굴 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 봤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반응하지 않은 건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였다.

원래 암흑 상인들과 거래할 때는 호구가 아니라는 걸 무력으로 증명해야 할 때가 있다.

이제 압도적인 무력을 증명할 시간이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이상한 것처럼 보여선 안 된다.

사술이나 기문진법 따위의 술법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제대로 싸우면 내가 이긴다’라는 헛된 희망을 심어 준다.

완벽히 압도적인 무(武).

그것이 필요했다.

고민하던 진유성의 눈에 문득 최루 가루들이 들어왔다.

‘호오.’

사실 진유성은 상림과 신주청에게까지도 말하지 않은 한 가지 취향이 있었다.

바로, 태극을 좋아한다는 것.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휘몰아칠 때 태극 무늬가 새겨지는 것이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배운 말로 표현하자면 간지가 바짝 선다고 해야 할까?

천마신교는 중원을 일통하고 구파일방에게 복종의 대가로 무공비급을 거둬들였다.

단순한 무공비급이 아니었다.

소림사의 백보신권, 점창파의 사일검법, 화산파의 매화검법처럼 각 문파를 대표하는 무공이었다.

당연히 무당파에서는 태극검법을 받았다.

그리고 진유성은 수하들 몰래 태극검법을 익혔다.

굳이 몰래 익힐 필요까진 없었지만, 괜히 취향을 발각당하는 거 같아서 좀 창피했다.

마음을 정한 진유성이 의도적으로 과장된 기합을 뱉었다.

“하압!”

그러곤 쿵 하고 진각을 밟자, 바닥에 내려앉아 있던 최루 분말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비산했다.

양손을 부드럽게 휘젓자, 최루 분말들이 진유성의 내력에 따라 허공에 흐름을 그리기 시작한다.

태극(太極)의 문양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무당파의 말코도사들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진정한 태극은 거대한 흐름이 아니었다.

흐름 속에 수많은 흐름이었다.

진유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태극 속에 작은 태극들이 또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 듯.

수많은 태극이 커다란 태극의 회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태극회류(太極回流).

원형의 태극이 일의 내공으로 삼의 힘을 낼 수 있다면, 태극회류는 일의 내공으로 능히 십의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유성은 수없이 맞물린 태극의 중심을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절반의 태극은 역행으로, 절반의 태극은 정행으로 돌아간다.

정반합을 일으키는 태극의 문양이 주는 거대한 압박감.

이것이 바로 역행태극(逆行太極)!

진유성은 눈을 감은 채로 마치 마에스트로라도 되는 양 태극을 지휘했다.

기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이들도 최루 가스를 통해 이 흐름을 능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원형태극이 삼의 힘을 내고, 태극회류가 십의 힘을 낸다면, 역행태극은 일의 힘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십을 투자해 일도 못 건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역행태극에는 중요한 쓰임새가 있었다.

바로, 멋.

일단 존나 멋있다.

너무 멋있어서 스스로 보고 있음에도 취해 버릴 것만 같다.

그것을 지휘하는 자신은 어떻겠는가?

‘존나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이제 끝맺음을 낼 시간이었다.

정행과 역행으로 회전하는 태극이 화살처럼 쏘아지며 적들을 섬멸할 시간이 온 것이었다.

감고 있던 진유성이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곤 실망했다.

“뭐야?”

적들이 모조리 침을 질질 흘리며 기절해 있었다.

심지어 상림도 벽 한쪽에 쫓겨서 굵은 침을 흘리고 있었다.

계속 전음을 보내는 모양인데 역행태극의 기류가 너무나도 강렬해 전음이 닿지 않았다.

전음이란 소리의 매개체를 내공으로 치환하는 기술인데, 상림의 내공은 진유성의 태극을 통과하지 못했다.

진유성이 상림의 전음이 닿도록 내공의 길을 열어 주자 고함이 들려왔다.

[야, 이! 태극 중독자야! 최루 가스로 뭐하는……!]

순간 상림이 입을 멈췄다.

전음이 진유성에게 닿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낙장불입.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상림이 이를 악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초절정 고수가 된 상림의 정순한 내공이 수혈을 두드렸다.

진유성의 수혈이 아닌, 자신의 수혈을.

상림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즉매회의 간부들과 무장 인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벌을 세워 놓은-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진유성과 상림이 고민에 잠겼다.

일단 아무도 죽이진 않았다.

암흑 상인들과의 기싸움이야 으레 있는 일이니 죽을죄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템의 처분이었다.

[상림아, 얘네가 우리 역추적할 수 있냐?]

[없을걸요. 제가 베이징 류찬의 소개를 받고 왔다고 했잖아요?]

[어. 그랬지.]

[류찬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메시지 같은 거예요. 중간 고리를 완벽히 잘라 버린 고객이라는.]

상림은 진유성이 워낙 많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중간 고리를 완전히 끊었으니 더더욱.

하지만 방비를 하진 않았고, 할 생각도 없었다.

진유성이 있는데 무슨 방비가 더 필요하겠는가.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저희를 역추적하진 않을 거예요. 얘네를 전부 죽이지 않는 이상.]

[흠.]

[그냥 비싸게 아이템 팔고 가시죠. 원래 받기로 한 요율의 2배씩만 받고 살려 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

[네. 어차피 즉매회가 뻘짓거리 해서 이렇게 된 거니까, 삼합회가 저희를 추적할 리는 없습니다. 보고해 봤자 믿지도 않을 거고요. 즉매회가 돈 빼돌리고 거짓말까지 한다고 욕이나 먹겠죠.]

[두 배 이상은 어때?]

[상관없긴 한데…… 너무 코너로 몰아넣으면 뭔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삼합회랑 엮이는 건 엄청 귀찮습니다. 걔네 숫자가 한국 인구보다 많아요.]

[그 정도야?]

[네.]

상림의 통찰력은 정확했다.

설령 진유성과 상림이 즉매회에게 바가지를 씌운다고 해도 즉매회에는 윗선에 보고할 수가 없었다.

그걸 믿어 주면 내부 방침을 어기고 각성자에게 시비를 건 멍청한 놈이 되고.

믿지 않으면 돈을 빼돌리고는 거짓말하는 놈이 되기 때문이었다.

“야, 대머리. 일로 와봐.”

진유성이 중국어로 말하며 손을 까딱거리자, 한쪽에서 손을 든 채 벌을 서고 있던 종두평이 후다닥 달려왔다.

“돈 가져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너희가 지불할 수 있는 돈을 전부 가져와. 마정석에다가 네가 원하는 아이템과 교환해 주마.”

종두평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아이템을 잘 골라서 팔면 오늘의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거란 행복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 두 배를 받겠다.”

“네?”

“원래 받을 돈의 두 배를 받겠다고.”

“그런……!”

종두평은 항의하고 싶었지만, 사실 이것도 굉장한 자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자들이라면 그들을 죽이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종두평은 머리 회전이 빠른 이었다.

괴물 같은 이들에게 이보다 많은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남는 것은…….

‘내가 뽑은 아이템이 떡상해야 한다.’

아이템도 시기별로 유행이 있고, 처음엔 저평가됐다가 고평가 받는 타입도 있다.

긴나라의 방패, 뮬니르의 손잡이 같은 게 대표적인 예였다.

긴나라의 방패는 인간형 타입에게 큰 효과가 있다는 게 밝혀지며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했고, 뮬니르의 손잡이는 사용법이 알려진 뒤 가격이 20배 이상 폭등했다.

종두평이 봤던 아이템 리스트에는 각성 마켓에서 단 한 번도 거래되지 않았던, 하지만 시스템이 B등급 이상으로 분류하던 아이템들도 있었다.

그런 걸 전부 뽑은 다음에 가격이 오르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 제가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그래.”

“받아들이겠습니다.”

잠시 뒤, 종두평의 수하가 엄청난 양의 달러와 무기명 예금 증서, 무기명 매출 채권, 스위스 비밀 은행의 계좌 정보 등등을 가져왔다.

종두평은 내심 이들이 물건들을 제대로 현금화하지 못하길 바랐다.

그렇게 되면 되찾아올 일푼의 기회가 생기는 법이니까.

하지만 LF 건설을 이끄는 상림에게 이 모든 것들을 몇 쿠션 돌려서 안전하게 현금화할 방법이 수두룩했다.

금액을 확인한 상림이 중국어로 입을 열었다.

“천칠백만 달러가 조금 안 되는데, 그냥 반올림해서 천칠백만 달러로 해 주시죠.”

“그래.”

1,700만 달러.

한화로 2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진유성이 종두평에게 아이템 리스트를 공유했다.

마정석의 값어치 450만 달러를 제외하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은 1,250만 달러만큼.

‘제발, 제발, 제발.’

그렇게 종두평의 인생을 건 ‘뽑기똥망게임’이 시작되었다.

* * *

그날 밤.

종두평은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윗선에서 아이템 가격으로 보고할 수 있는 건 1,700만 달러의 절반인 850만 달러.

즉, 남은 850만 달러는 자신이 채워 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주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뽑은 아이템 가격 상승폭이 30퍼센트를 넘을 것 같진 않다.

뭐가 됐든 500만 달러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하아…….”

상황이 이쯤 되니, 어제 마작판에서 날린 3만 달러도 아쉽다.

평소 같으면 ‘그깟 3만 달러’라며 술 한 잔 마시며 잊어버렸을 텐데 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두 명의 각성자에게 끝까지 숨긴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매회 차원의 비상금.

200만 달러(약 한화 23억).

무슨 비상금을 200만 달러나 가지고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즉매회는 각성자들과 거래를 하는 집단이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몰랐다.

오늘은 종두평이 욕심을 부리다가 재앙을 맞이했지만,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는 각성자들도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군.”

종두평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집의 금고문을 열고 돈을 확인했다.

즉시 사용해야 하는 비상금만큼, 전부 달러였다.

‘그냥 이거 들고 날라 버릴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다가 발각되면 그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리라.

그 순간이었다.

퍽!

난데없이 뒤통수를 맞은 종두평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누, 누구냐!”

몸을 버둥거렸지만 등을 밟고 있는 자의 수법이 고명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손만 보이는 누군가가 금고에 놓인 달러를 차곡차곡 가져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그 돈은 안 된다!”

종두평이 버둥거렸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정확히 금고에 들어 있는 돈의 절반을 챙긴 정체불명의 남자가 당당하게 외쳤다.

“난 딴 돈의 반만 가져가.”

그러곤 사라졌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킨 종두평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남자와 돈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종두평이 스르륵 무너졌다.

“그게 왜 네가 딴 돈이냐! 이 개자식아!”

상해 밤거리를 주름잡던 즉매회의 보스 종두평의 비명 섞인 고함이 상해 밤거리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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