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0화>
3천만 달러도 아이템들의 시세를 가장 보수적으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7만 달러에 거래되었던 긴나라의 방패가 지금도 7만 달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반드시라도 표현해도 좋을 확률로 가격이 올라갔을 것이었다.
현 사회는 상위 각성자들에게 부의 집중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부유한 상위 각성자들은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그 아이템으로 다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최대 5천만 달러까지 염두에 둬야겠군.’
제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두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보이는 건 눈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이는 두 남자의 정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눈가에 보이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한 명은 나이가 좀 있고, 한 명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린 쪽이 각성자였고.
‘오천만 달러라…….’
사실 아이템 가격으로 얼마를 지불해도 제이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돈이야 삼합회에서 나오는 것이고, 더 크게 보자면 CSG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오히려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키면 제이에게도 떨어지는 콩고물이 제법 되리라.
하지만…….
‘이 자식의 아이템을 뺏으면?’
눈앞에 보이는 두 남자만 제압하면 엄청난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어차피 그들이 구매하는 아이템은 ‘신원 미상’인 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신원 미상’인 인물에게서 아이템을 빼앗아 ‘가상의 신원 미상’을 만들어 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돈이 들어가는 주머니만 달라질 뿐.
물론 CSG의 내부 정책은 블랙 마켓을 이용하는 고객을 장기 고객으로 만들라는 것이지만…….
‘우리가 언제 남의 말 꼬박꼬박 듣고 살았나?’
영화나 드라마가 아무리 조폭을 미화해도, 그들은 타인의 것을 폭력으로 갈취하는 폭력 집단이다.
게다가 CSG에 흡수된 이후 꽤 온건한 삶을 사느라 몸이 근질거리기도 했고.
‘문제는 이놈들이 얼마나 강하냐는 건데…….’
젊은 놈은 각성자가 확실하고, 늙은 놈은 모르겠다.
하지만 거사를 치르려면 일단 늙은 놈도 각성자로 상정하는 게 좋다.
적을 강하게 봐서 문제 될 건 없지만, 약하게 보면 문제가 발생하니까.
‘등급은 얼마나 될까? 이 정도 아이템을 들고 당당히 찾아왔다면 둘 다 A급 이상인가?’
제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 각성자를 훑어보다가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떨고 있는 건가?’
젊은 놈과 늙은 놈은 말은 하지 않으면서 눈길은 계속 주고받고 있었는데, 늙은 놈이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가가 찡그려지고 살짝 붉어진 것을 보아하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처음엔 사내놈 둘이서 무슨 눈을 저리 마주치나 했는데…….
‘겁을…… 먹었다?’
살짝 몸을 떨고, 주먹을 꽉 쥔 모습, 거기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까지.
겁을 먹은 모습이 틀림없었다.
늙은 놈은 겁을 먹은 반면, 젊은 놈은 전혀 겁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계속 눈빛을 주며 늙은 놈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한 명만 각성자일 확률이 높군.’
제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늙은 놈이 ‘큭.’하는 소리를 냈다.
필시 자신이 갑자기 일어나 깜짝 놀란 탓이리라.
제이가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아이템이 너무 많아서 지불 가능 금액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그, 그러시, 죠.”
말까지 더듬는 늙은 놈의 모습을 보며 제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감정인과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 * *
두 사람이 빠져나가자 상림이 진유성을 홱 하고 노려보며 전음을 보냈다.
[아, 자꾸 웃기시면 어떡합니까!]
[웃기면 웃으면 되지?]
[괜히 삽합회 놈들 자극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요! 값을 후려칠 수도 있다고요!]
[그만큼 네가 메워 놓으면 되잖아?]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니, 그 전에 왜 웃기려고 하세요?]
[그냥 너무 심심해서.]
상림이 겁을 먹었다고 추측한 제이의 생각은 완전 틀렸다.
상림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주먹을 꽉 쥐며, 얼굴이 붉어진 것은 웃음을 참느라 그런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진유성이 감정인이 아이템을 감정하느라 심심했던지 전음을 보냈다.
[고개를 들어라.]
[네?]
[그리고 네가 피한 운명을 보아라.]
여기까진 전혀 웃기지 않았다.
제이라고 소개한 브로커가 대머리였을 때부터 진유성이 칠 수 있는 드립이라고 짐작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집요했다.
[네가 피한 운명이 환히 빛나고 있구나.]
상림이 저도 모르게 제이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환한 전등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큼.”
거기까진 그래도 참을 만했다.
사실 별로 웃긴 말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이란 동물이 묘한 게, 웃으면 안 된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사소한 것들이 웃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뭐야.’하고 말았을 드립들인데!
[네가 피한 미래가 왼쪽으로 15도가량 기울고 있구나.]
[네가 피한 필연에 땀방울이 맺혀 있구나.]
[허어, 모발이 나지 않는 땅에서 물이 나다니. 그것참 자연의 신비로다.]
[메마른 땅을 적셔 줄 단비가 여기서 나온 표현이었군.]
진유성은 집요했다.
마치 내기라도 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상림의 웃음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상림이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한 건, 마지막이었다.
제이란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진유성이 말했다.
[개기일식.]
상림은 보지 않으려 했건만, 저도 모르게 눈이 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제이의 머리가 전등을 완벽히 가리고 있는 그 모습을.
전구와 완벽히 같은 그 모양을.
제이가 정중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더 웃겼다.
상림이 웃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 덕분이었다.
“그, 그러시, 죠.”
말을 더듬은 것까진 어쩔 수 없었지만.
즉매회의 미래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진유성의 농담이라는 걸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 * *
제이는 거래처로 이용되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각성자들은 귀가 밝다지.’
삼합회와 CSG가 대립각을 세울 때, CSG의 수장이 삼합회장의 은신처로 찾아온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대체 여길 어떻게 찾았냐는 삼합회장의 물음에 CSG 수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귀가 좀 밝아서.’
그래서 제이는 거래처에서 최대한 먼 아지트로 즉매회의 간부들을 불러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앉아라.”
제이는 손님들에게 자신을 즉매회의 전담 브로커라고 소개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상하이 전역과 장쑤성의 동쪽을 담당하는 즉매회의 회주 종두평.
이것이 제이의 진짜 정체였다.
종두평이 이전과는 다른 말투로 감정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보기엔 둘 중 젊은 놈만 각성자인 거 같은데, 어때?”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뭔데?”
“아이템의 값어치에 대해 잘 모르는 기색이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유명 아이템의 등급을 몇 번 다르게 말해 봤는데, 전혀 모르는 기색이더군요.”
“흠.”
“그래도 거사를 치를 거면 일단 둘 다 각성자로 상정하시죠.”
“그래야지. 등급은 어떻게 될까?”
“S급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SS급 이상의 각성자들은 블랙 마켓을 이용할 이유가 없고, A급이라기엔 가져온 아이템이 지나치게 많더군요.”
종두평이 민머리를 쓰다듬었다.
“둘 다 S급으로 상정하면…… 사냥할 수 있겠냐?”
“네.”
감정인의 확신에 찬 대답에 간부들 중 한 명이 물었다.
“S급의 각성자면 괴물 아니오? 그런 괴물이 둘이나 있다면…….”
“젊은 쪽이 정신계 각성자입니다. 그는 입을 열지 않고 리스트를 공유했습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입을 통해 나오는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서 시스템을 이용했다.
하지만 정신계 각성자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심상 전달을 통해서 시스템을 이용하곤 했다.
감정인이 말했다.
“대인전에 능숙한 각성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몬스터와 싸우는 이들입니다. 삼합회에서 키우는 D급 암살자들이 A급 각성자의 목을 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습니까.”
물론 다수의 각성자들이 완벽히 무장하면 일반인들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삼합회도 그렇게 CSG에 흡수당했으니까.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현대화기를 퍼부으면 아무리 SS급 각성자라고 해도 죽일 수 있다.
이것이 감정인이 주장하는 바였다.
감정인 본인이 각성자였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신빙성이 쏠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종두평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남은 문제는 두 가지로군.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과 아이템을 토해 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후자는 쉽습니다. 마약과 고문이면 충분합니다.”
각성자의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처럼 죽이면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벤토리 내의 물품은 강탈이 불가능했다. 주인의 의지에 따라 양도될 뿐이다.
하지만 마약과 고문은 그 의지를 강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이었다.
“제압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대는 정신계 각성자니까요.”
정신계 각성자들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마약을 투여한 이들에게는 그들의 스킬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활동성을 떨어트리지 않는 마약을 최대한 많이 수배해야 합니다.”
“그거라면 문제없지.”
“전 각성자 용병들을 고용해 보겠습니다. 무력화시키더라도 마지막에 제압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1시간 안에 가능하겠어?”
“가능합니다.”
“두 놈한테는 먹을 것 좀 가져다주고, 제일 예쁜 계집애 두 명 넣어서 아이템 시세에 대해 최대히 자세하게 설명하라고 해.”
“약을 탈까요?”
“아니. 섣부른 짓 하지 마. 계집애들도 사무적으로 대하라고 그래. 괜히 허튼 수 쓰지 말고. 대신 칭찬은 계속해 주고.”
“알겠습니다.”
“윗선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용히 움직이자.”
즉매회는 최소 3천만 달러짜리 황금 잉어를 낚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각종 현대 병기로 무장한 18명의 무장 인원과 5명의 각성자 용병.
1시간 만에 구성했다고 믿기 힘든 대인원이었다.
무장 인원의 선두에 있던 남자가 수신호를 보내는 순간, 수하들 중 두 명이 솜씨 좋게 섬광탄을 던졌다.
쨍그랑!
창문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두 개의 섬광탄이 떨어졌다.
콰앙!
달팽이관을 무력화시킬 거대한 폭음과 함께 시신경을 무력화시킬 밝은 빛이 터졌다.
그러나 즉매회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시간차를 두고 2개의 섬광탄을 더 까 넣고는 최루 성분의 연막탄을 까 넣었다.
마지막으로 지상층에서 연결해 온 소방 호스를 가지고 분말소화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각성자 용병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만일 자신이 저 안에 있었으면?
스킬이고 나발이고 정신없이 맞다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을 거 같다.
“소화기는 왜 뿌리는 겁니까?”
“스킬을 못 쓰게 하려고. 저러면 화염 계열이든, 냉매 계열이든 쓸 수가 없거든.”
정확히 말하면 쓸 수는 있지만 위력이 극히 약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소화액을 뿌리던 무장 인원들이 마지막으로 고무탄이 터지는 수류탄을 까 넣었다.
고무탄이 산탄으로 퍼지는 수류탄은 비살상용 무기였지만 눈이나 머리에 맞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무기였다.
온갖 현대 무기를 퍼부은 무장 인원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마침내 진입 신호가 떨어졌다.
쾅!
문을 걷어찬 이들이 고무탄을 장착한 총구를 들이밀었다.
“헛!”
선두의 진입 인원이 깜짝 놀랐다.
방 안에는 분명 최루 가스, 소화액, 고무탄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야 했는데…….
누군가 빗자루로 정리한 것처럼 모든 잔해들이 벽 한쪽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으니까.
방의 중심은 깨끗했다.
그 소름 돋을 만큼 청결한 바닥 위에 서 있던 두 남자 중 젊은 쪽이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드루와, 드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