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49화>
잠시 뒤, 복장 점검을 끝낸 진유성은 상림과 함께 상하이 밤거리로 나섰다.
수많은 관광객과 그들을 유혹하는 호객꾼 사이로 온갖 불빛들이 번쩍거리는 상하이의 밤은 화려했다.
물론, 서울의 밤거리도 충분히 화려하지만, 상하이는 좀 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진유성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상림이 말했다.
“너무 두리번거리지 마세요.”
“왜?”
“눈에 띄잖아요.”
“뭐 어때. 다들 우리랑 비슷한데.”
상해는 미세먼지가 심한 도시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또한, 어제까지 비가 내렸던지라 날씨도 쌀쌀했다.
그들과 비슷한 차림을 한 이들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였다.
“뭐…… 그것도 그러네요.”
상림이 수긍하자 진유성은 본격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발전된 상하이를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가 남직례 동쪽의 그 촌구석이란 말이지.’
진유성이 살던 명나라에도 강소성과 절강성 사이에 상해란 도시가 있었다.
하지만 도시라고 표현하기에는 그저 어부와 어민들이 사는 곳이었고, 행정구역 편성이 애매하단 문제도 있었다.
상해의 일을 두고 강소성에서는 절강성의 일이라고 외면했고, 절강성에서는 강소성의 일이라고 외면했다.
그사이 왜구의 출몰이 잦아 민초들은 고통받았고.
이런 상해에는 상일문(桑鎰門)이라는 문파가 있었다.
상일문은 강호에서 유명한 문파는 아니었다.
중원을 일통한 진유성이 한 번도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문파였으니 말이었다.
그런 상일문주가 천신궁에 찾아온 것은 소천한 신주청의 주검을 거둔 지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상일문주는 어지간한 구대문파의 장문인들보다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무인이었다.
구름 위를 노니는 진유성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였지만, 무명 문파의 무인이 구대문파의 장문인들보다 윗줄에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상일문주는 진유성에게 한 가지 내기를 제안했다.
“소인이 천신의 옷자락을 베어 낸다면, 한 가지 부탁을 간청드리고 싶사옵니다.”
당시의 진유성은 신주청이 죽고 나서 심적으로 여유가 없던 상태였다.
평소였다면 부탁이 무엇인지부터 물었을 텐데, 그때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내기가 시작되었다.
상일문주는 최선을 다해 온갖 절기를 쏟아 냈지만, 진유성의 그림자도 스치지 못했다.
그동안 진유성은 상일문주의 무공을 지켜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상일문주는 곧고 밝은 선천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무공 역시 그와 비슷하며 잡스럽지 않고 솔직했다.
뒤늦게 상일문주의 부탁에 호기심을 느낀 진유성이 입을 열려는 찰나.
상일문주가 검을 양손으로 붙잡더니, 모든 선천진기를 한 호흡에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니…….”
진유성은 드물게 당황했다.
선천진기를 불태운다는 건 목숨을 걸었다는 것과 같았고, 이 싸움이 끝나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상일문주를 말리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선을 넘은 상태였다.
그렇게 상일문주의 일검이 진유성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진유성의 옷자락은 멀쩡했다.
일부러 내어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목숨을 건 무인에게 할 짓이 못됐다.
“부탁이 무엇이냐.”
죽어 가는 상일문주에게 진유성이 묻자, 상일문주가 꺼져 가는 생명력으로 대답했다.
“동쪽의 바닷가는 왜구의 출몰이 잦습니다. 해서 많은 민초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
“왜구를 정벌해 주시길 간청드리옵니다.”
“어찌 관청을 통하지 않고…….”
“배움이 짧아 깨우친 바가 궁즉통(窮卽通)밖에 없사옵니다.”
겸손하게 돌려 말했지만, 관청에 통하지 않아 궁했다는 말이었다.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감사합니다.”
그렇게 상일문주는 죽었다.
진유성은 자신을 반성했다.
상림, 주혜미, 멀더, 신주청…….
인간적인 의미를 주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부터 생존대의 오랜 다짐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민초들을 위하는 정책을 만들고, 관리들을 부렸지만, 그 안에 진심은 없었다.
그걸 상일문주가 일깨워 줬다.
“나 때문에 아까운 무인이 아쉽게 죽었구나…….”
왜구의 침략이 진유성 때문은 아니겠지만, 진유성은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중원의 지배자였으니까.
다음 날, 진유성은 관리들에게 왜구를 정벌할 군대의 편성을 명하고는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그러곤 입멸검 하나로 왜국을 평정했고, 돌아오는 길에 상해 와 상일문을 둘러보았다.
상일문주 덕분에 평온을 찾을 바닷가의 도시.
그곳이 바로 상하이었다.
‘뭐, 내가 살던 곳과 이곳의 역사는 다르지만…….’
역사는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문화는 비슷한 면이 많고, 지리적으로는 완전히 같았다.
그렇다면 그 촌동네도 이 정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진유성이 상하이 밤거리를 구경하는 걸 즐긴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점차 인적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진유성과 상림을 노려보기도 했다.
세상 어디를 가나 뒷골목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헤매던 상림이 마침내 목적지를 발견한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진유성과 상림은 3층짜리 건물로 들어섰다.
외관상으로는 영락없는 폐건물이었다.
2층과 3층은 콘크리트 대부분이 부식되어 철골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나마 멀쩡한 1층도 허름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는 사람 사는 곳 특유의 온기가 물씬 풍겼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것 같진 않지만, 사람이 상주할 때 필요한 물건들은 전부 있었다.
또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는 몇 명의 남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험악한 인상의 대머리가 다가와 중국어로 물었다.
인상과 다르게 제법 친절한 말투였다.
“누구 소개로 오셨소?”
“베이징의 류찬에게 소개를 받았소.”
“아, 한국에서 오신다던 손님이군. 지하로 내려가서 제일 끝방으로 가슈.”
“고맙소.”
고개를 끄덕인 상림이 지하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진유성에게서 전음이 날아왔다.
[상림아, 나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막 들지?]
[네?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네가 피한 운명을 보아라.]
상림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였다.
* * *
즉매회의 아지트는 생각보다 산뜻했다.
겉에서 보기엔 흉물스러운 건물이었지만, 안에는 히터도 틀어져 있다.
게다가 폭력 조직과 하는 불법적인 거래치고는 젠틀하다.
겁을 주지도 않고, 불법적인 느낌도 없다.
‘뭐, 어차피 교주님과 왔으니 겁을 먹을 일은 없겠지만.’
상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한 명은 얼굴을 숨기지 않은 중국인이었고, 한 명은 자신들보다 더 얼굴을 꽁꽁 숨긴 남자였다.
사실 남자라는 것도 골격과 체형을 보고 짐작할 뿐,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얼굴을 숨기지 않은 남자가 자신을 즉매회와 일하는 브로커 제이라고 소개했다.
“류찬의 소개를 통해서 왔다고요?”
“그렇습니다.”
제이가 얼굴을 감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각성 상품들을 감정해 줄 분입니다. 감정인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각성 상품이 불법 거래되는 과정은 간단했다.
딱 하나의 준비물만 있으면 아무런 잡음 없이 상호 간에 만족하는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
그 준비물이란 감정인이라고 불리는 SG 소속의 각성자였다.
진유성이 감정인에게 인벤토리 목록을 공유하면, 감정인은 그것을 각성 마켓을 통해 거래가를 감정했다.
그러고는 미리 정해진 요율에 맞춰 거래 품목을 결정하는 것이다.
가장 요율이 낮은 건 마정석이었다.
마정석은 각성자와의 거래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루트로 구매할 수 있기에 요율이 45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각성 마켓이라면 1억에 팔 수 있는 마정석을 여기서는 4천 5백만 원에 팔아야 했다.
각성 마켓을 이용할 시 떼이는 SG의 결제 수수료 10퍼센트를 고려한다면, 딱 반값에 파는 셈.
거기에 나라에서 고소득 각성자들에게 매기는 세금까지 계산하면 제값의 55~60퍼센트 정도의 금액에 파는 셈이었다.
다만 마정석의 경우에는 각성자가 가져온 전 물량을 무조건 구매해 주었다.
지속 가능한 거래를 위한 포석이자, 소득 신고가 되지 않는 검은돈에 익숙해지게 만들려는 CSG의 방침이었다.
마정석의 요율이 가장 낮다면, 요율이 가장 높은 건 SG 각성 마켓에서 거래된 기록이 적은 희귀한 상품들이었다.
거래 기록이 10회 이하인 제품에 한해서 F급은 80퍼센트, E급은 85퍼센트, D급은 90퍼센트, C급은 95퍼센트, B급은 100퍼센트, A급은 105퍼센트, S급은 11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등급의 변화에 따라 5퍼센트씩 요율이 인상되는 것이었다.
등급의 변화뿐만 아니라, 단계의 변화에 따라서 1퍼센트씩의 인상도 있었다.
F급의 80퍼센트, FF급은 81퍼센트, FFF급은 82퍼센트 같은 식으로.
마지막으로 각성 마켓의 거래 기록이 3회 이하이며, C급 이상인 상품에 한해서는 10퍼센트의 추가 요율이 붙었다.
이처럼 SG 각성 마켓의 거래액을 기준으로 요율을 정해놓으면 싸울 일도, 어려울 것도 없었다.
판매자의 판매 희망 상품과 구매자의 구매 희망 상품의 리스트 정도만 맞춰보는 단순 노가다였다.
라고 즉매회 상해 지부의 전담 브로커인 제이는 생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마정석이 34킬로그램이요? 제대로 작성한 수치 맞습니까?”
놀란 제이의 물음에 감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제법 놀란 모양이었다.
현재 마정석의 SG 시세는 148.8달러, 즉매회의 거래가는 시세의 45퍼센트인 66.96달러이다.
34킬로그램의 마정석을 전량 구매하기 위해서는 약 226만 달러(약 26억 6천만 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마정석이야 어차피 환급성이 높으니까 상관은 없는데…….’
마정석을 이 정도로 가져온 각성자라면 다른 아이템들은 얼마나 된다는 걸까?
제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감정인이 기록하는 상품 리스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사기당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허황된 상품 리스트였다.
B급 아이템이지만 인간형 몬스터에게는 A급을 넘어서는 효율을 내는 긴나라의 방패.
개당 7만 달러에 거래되지만 없어서 못 파는 긴나라의 방패의 옆에는 9개란 숫자가 적혀 있다.
‘63만 달러.’
이건 시작일 뿐이다.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해 마력으로 치환하는 S급 뱀파릭의 단검은 4년 전에 88만 달러에 거래됐고,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길이가 1미터에서 4미터까지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S급 오가토닉의 창은 120만 달러에 거래됐다.
이런 아이템과 비슷하거나 더 값비싼 물건들의 이름이 리스트에 끝없이 적히고 있었다.
“잠깐, 잠깐.”
제이가 손을 흔들더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진유성에게 말했다.
“나에게도 리스트를 공유해 주시오.”
상림을 힐끔 본 진유성이 제이에게 리스트를 공유했다.
인벤토리와 관련된 기능은 무척 편리해서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리스트를 공유할 수 있었다.
상림이 진유성에게 리스트를 공유받았던 것처럼 말이었다.
꼼꼼히 리스트를 확인하던 제이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왜 B급 이상의 아이템만 리스트에 적혔나 했더니, C급 이하의 아이템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지경이라 그런 듯했다.
‘도대체 이자의 정체가 뭐지?’
마정석 전량과 B등급 이상의 상품을 전부 구입할 시, 지불해야 할 금액이 최소 3천만 달러(약 350억 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