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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47화 (4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47화>

사실 말만 삼합회의 하부 조직이지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각성자의 등장 이후 삼합회나 야쿠자 따위의 폭력 조직은 폭력에서의 우위를 완전히 잃었다.

S급, A급도 필요 없이 B급 각성자 열댓 명 정도면 대부분의 조직이 박살 나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능한 것과 실제로 행하는 건 다른 문제이긴 했다.

2016년에 인터폴이 추산한 전 세계 삼합회의 숫자는 8,000만 명.

이 많은 숫자를 강경 진압하다가는 무슨 후폭풍이 불어 닥칠지 몰랐다.

막말로 삼합회가 음지에 숨어들어 게릴라전이라도 펼치면 고통 받는 건 일반 시민뿐이다.

그렇기에 21세기의 동창이라 불리는 CSG의 인적안전관리국은 수뇌부를 설득-협박을 동원한-하는 온건한 방식으로 삼합회를 흡수했다.

대외적으로는 삼합회와 CSG는 관련이 없지만, 알만한 이들은 다 알았다.

CSG가 삼합회를 관리한다는 걸.

상림이 이번에 거래할 즉매(卽賣)란 조직도 엄밀히 따지면 중국 정부 밑에서 일하는 하청업체인 셈이었다.

‘뭐, 반인륜적 행위가 드러나면 CSG는 냉큼 꼬리를 자르겠지만.’

상림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혜연이 물었다.

“갑자기 유성이랑 중국은 왜요?”

“그게, 우연히 중국에서 유성이의 친가 쪽 친척일 수도 있는 분을 찾았거든.”

“그래요?”

“응. 근데 그분이 한국으로 올 상황이 아닌가 봐.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아.”

이유를 둘러댄 상림이 힐끔 유혜연의 눈치를 살폈다.

‘의심하진 않겠지?’

상림이 지어낸 진유성과 관련된 설정은 이러했다.

상림은 어린 시절에 큰 교통 사고로 일가친척을 전부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에겐 나이 차이가 나는 누님이 한 명 있었는데, 교통사고 당시 누님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누님의 아이-진유성-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진유성은 친척집에 맡겨져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게이트 사태 때 진유성을 키워 주던 이들이 사망했고, 진유성도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상림과 조우한 것이었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미안했지만, 혼외자식으로 의심할까 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토록 완벽하고(?) 짜임새 있는(?) 설정을 만든 것이었다.

물론 상림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북한이구나.’

‘북한이네.’

유혜연과 상소윤은 상림이 말하는 친척이 중국이 아니라 북한에 있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유혜연이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위험한 건 아니죠?”

“뭐가 위험해?”

상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중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는데 위험할 게 뭐가 있겠는가.

유혜연은 상림의 반응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남편은 거짓말을 못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위험했다면 저렇게 순진무구한 태도로 고개를 갸웃하지 않았을 거고, 어떻게든 안전한 척을 했을 것이다.

유혜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유성이가 조금이라도 가족을 찾을 가능성이 있으면 가 봐야죠.”

상소윤이 물었다.

“아빠, 그럼 주말에 가는 거야?”

“응.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일요일 밤에 올 거 같은데?”

“아, 씨. 나도 중국 가고 싶다.”

“어허, 우리 딸은 공부해야지. 곧 있으면 시험인데.”

“아빠는 아직도 날 그렇게 몰라? 난 공부를 안 해야지 시험을 잘 보는 타입이야.”

“그럼 그동안은 뭔데?”

“어설프게 공부를 해서 내 머릿속에 편견이 생긴 거지.”

“…….”

상림은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사랑스러운 딸의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서 진유성의 사상이 담겨 있었다.

말투나 내용이 딱 진유성이었다.

원래 친구는 닮는다지 않는가.

진유성과 상소윤은 친구고, 정신 연령까지 비슷했다.

상림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소윤의 손을 잡았다.

“딸내미.”

“왱?”

아빠가 갑자기 손을 잡자 반찬을 우물거리던 상소윤이 말했다.

“방금 되게 유성이 같았어.”

상소윤이 씹던 반찬을 꿀꺽 삼켰다.

그러곤 곰곰이 생각하다가.

절망에 휩싸였다.

“바보가 옮았어…….”

그 모습을 보며 진유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중원에서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행동이나 말투를 따라 하고 모방했었다.

한국에 오며 교주의 지위를 버렸지만, 태생적으로 타고난 영향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 * *

테이블에 앉은 문수혁과 차정명은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S급 각성자인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친분이 있냐면 그건 아니었다.

문수혁은 친SG 계파를 대표하고, 차정명은 친한국 계파를 대표했다.

과거에는 두 사람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분은 자리와 위치에 먹혀 버렸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SG 서울 지부의 한지후 소장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잠시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리던 한지후 소장이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실례지만 두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전에 저희를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 질문을 들으시면 대답이 될 겁니다.”

문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죠.”

“혹시 최근에 미행을 당하는 느낌을 받으신 적은 없습니까? 꼭 미행이 아니더라도 도청, 감청, 감시 등등 전부 좋습니다.”

문수혁과 차정명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서울역 게이트에서 우스운 모양새가 되어 버렸지만, 저희는 S급 각성자입니다. 미행이나 감시는 없었습니다. 도청이나 감청은, 글쎄요. 아마 없었던 것 같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지후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혹시라도 반SG 체제의 인사가 접근해 온 적이 있습니까?”

“CSG 같은 곳 말입니까?”

“CSG는 중국만을 위한 자치독립각성자 집단이지, SG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한지후 소장의 대답에서 ‘반SG 체제’에 대한 정의를 알 수 있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SG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 어느 집단에 불만이 없겠는가.

당장 그들만 해도 친SG니 친한국이니 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하지만 SG에 불만을 가지는 것과 아예 전복을 시키려는 건 엄연히 달랐다.

분위기를 살핀 한지후 소장이 가방에서 보고서를 꺼냈다.

“이걸 보여 드리는 건, 임현상 부소장 이외에는 처음입니다.”

“왜죠?”

“아무도 믿을 수 없거든요.”

“저희는 믿으십니까?”

“80퍼센트 이상은 신뢰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뢰할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분이 반SG 쪽이라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니까요.”

솔직한 한지후 소장의 대답에 문수혁과 차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 * *

한지후 소장이 떠나고, 차정명과 문수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동안은 미로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한지후 소장은 본인이 내린 결론이 확인된 사실이 아닌 정황 증거에 의거했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이 보기엔 틀림없었다.

이 적은 단서로 진실을 유추해 낸 그의 추리력에 놀랄 따름이었다.

미로에서 벗어난 두 사람이 침묵하는 것은 한지후 소장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 때문이었다.

“저는 두 분이 손을 잡고, 친분을 쌓길 바랍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알 수 없는 이들로부터 한국의 SG를 지키길 바랍니다.”

“…….”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S급의 벽을 넘으세요. SS급에 올라서서 다시 구름 위의 존재가 되세요. 두 계파의 갈등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도록. 오로지 두 분의 무력으로 결정되도록.”

“S급은 인간의 벽이라고 불립니다. SS급에 올라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두 분이 경험을 공유하고, 감각을 공유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한지후 소장은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강요하지도, 부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은 더 무거웠다.

한국은 각성자 전체의 평균적인 강함이 매우 뛰어난 국가였다.

대부분 국가의 평균 각성등급이 C급인 것에 비해, 한국은 두 단계나 높은 CCC급이니까.

하지만 최상위 랭커 구간의 평균 등급은 오히려 낮았다.

당장 문수혁과 차정명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각성 순위 3위권 밖이었다.

미국으로 간다면 톱5 안에 드는 것도 간당간당했고.

인외(人外)로 분류되는 SS급에 올라서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기에 문수혁도 차정명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S급의 벽을 돌파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대부분 저열하다.

‘경험을 공유했는데 난 넘지 못하고, 저 녀석만 넘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었다.

차정명은 본능적으로 오늘의 기회가 두 사람이 협력할 마지막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만약…….

차정명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문수혁이 오른손바닥을 쭉 폈다.

“이지스의 방패를 다루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무슨…….”

“스킬이란 그저 수학 공식에 불과하다는 것. 공식을 파헤치고, 증명하면 다른 방식으로도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것.”

“……?”

문수혁의 오른손이 맹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른손밖에 쓰지 못하지만, 이건 이지스의 방패에 부여되었던 대일여래의 금강이다.”

“……!”

차정명이 깜짝 놀랐다.

이건 단순한 노하우가 아니었다.

문수혁이란 각성자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비기 중의 비기였다.

“게이트에서 만났던 몬스터가 사실 각성자였고, 그가 SG를 전복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막을 수 없다. 이게 내 진심이다.”

문수혁의 말을 듣고 있던 차정명이 미소를 짓다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혹시 F급 감각 개방 스킬을 얻었나?”

“당연히.”

“F급 저항 스킬은?”

“얻었다.”

둘 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기본적으로 얻는 스킬이었다.

“그럼 각성 마켓에서 E급 공포 스킬을 구매해라.”

“공포? 이미 있는 스킬인데? 별로 쓸모는 없지만.”

“쓸모없지. 나보다 현저히 약한 상대가 아니면 걸리지 않으니.”

“한데 왜?”

“감각 개방과 저항 스킬을 동시에 쓴 채, 공포 스킬을 본인한테 시전하면…… 감각 개방 스킬을 무한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

“뭐?!”

“당신의 말을 들으니 알겠군. 스킬을 진화시킨다기보다는 스킬을 쓰는 방식을 진화시키는 것이다. 저항은 방어, 공포는 공격, 감각 개방은 증폭. 세 가지 스킬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오감을 훈련시키는 것 같다.”

문수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보검을 쓰는 차정명의 트레이드 마크는 완벽한 방어였다.

그는 어떤 사각지대에서 공격을 받아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는데, 그게 전부 감각 개방 스킬 덕분이었다.

좀 우스운 일이긴 했다.

방패로 일격필살을 날리는 문수혁과 검으로 절대 방어를 구사하는 차정명의 특징은.

그래서 세간에는 두 사람을 하나로 합치면 완벽한 각성자가 탄생하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경험을 공유하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꽉 막혀 있던 S급의 벽.

그 너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전 세계에 33명뿐인 SS급에 올라서는 건 불과 한 달 뒤에 벌어질 일이었다.

또한 친SG 계파와 친한국 계파의 화합도 멀지 않은 시점에 벌어질 일이었다.

이게 다 진유성 때문이었다.

* * *

자신 덕분에 대화합의 장(?)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진유성은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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