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41화>
최유리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던 진유성이 사태를 수습했다.
“그러니까 이건, Latte is horse랑 같은 느낌인 건데…….”
“홀스? 말?”
“아, 그건 ‘나 때는 말이야’를 재미있게 바꾼 건데…….”
“뭐가 말이야?”
“…….”
수습이 전혀 안 됐다.
최유리는 중원에서 100년 넘게 살다 온 진유성보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을 모르는 것 같았다.
“말이 헛나왔다.”
“근데 체육관엔 무슨 일이야?”
“역도 훈련을 해 보고 알려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사실 진유성의 말은 굉장히 무례한 것이었다.
일반 학생이 국가 대표를 지망하는 체육 특기생에게 뭔가를 알려 주겠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최유리는 화를 내기는커녕 궁금한 듯 물었다.
“뭔데?”
공자의 논어에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지나가면 그중 한 명에게는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인데, 말은 쉽지만 실천하긴 참 어렵다.
하지만 최유리는 그것을 실천하는 보기 드문 인간형이었다.
내심 고개를 끄덕인 진유성이 체육관 한쪽에 있는 역기를 가리켰다.
선수들에겐 비교적 가벼운 60킬로그램짜리 역기였다.
“한번 들어 봐.”
“인상으로? 아니면 용상으로?”
“무슨 차이였지?”
“인상은 한 번에 드는 거고, 용상은 가슴에 한 번 걸쳐서 두 동작으로.”
“용상으로.”
진유성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최유리가 역기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힘들지 않게 가슴에 걸쳤고, 살짝 인상을 쓰며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한 번 더.”
진유성의 요구에 최유리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호흡이 남는군.’
인간의 호흡에는 기운이 있다.
기운이란 단어에는 많은 뜻이 있지만, 상승 무리에서는 호흡을 운행함을 뜻했다.
외공의 고수들은 단지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한 이들이 아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기운의 소모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한 호흡에 천근의 힘을 싣는 이들이 외공의 고수이다.
내가기공이 꾸준히 축적된 힘을 내는 공부라면, 외가기공은 순간적으로 집약된 힘을 내는 공부인 셈이었다.
‘뭐…….’
말은 복잡하게 했지만, 최유리에게 무공을 전수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무공을 전수하는 순간 최유리가 그동안 갈고닦아 온 꿈과 목표는 허망한 것이 될 테니까.
진유성이 알려 주려는 것은 호흡을 쓰는 방법이었다.
그동안 유튜브를 보며 느낀 건데, 각 분야의 전설적인 스포츠 선수들은 호흡을 쓰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숨을 반만 쉬고 들어 봐.”
“반만 쉬라는 게 무슨 말이야?”
“호흡의 양을 줄여 보라고.”
“음…….”
잠시 고민하던 최유리가 숨을 짧게 들이켜고는 역기를 들으려 하자, 진유성이 만류했다.
“숨을 쉬다 마는 게 아니라, 절반의 숨을 깊게 들이켜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들이쉬는 양에 집중해 봐. 할 수 있어.”
최유리는 꽤 오랫동안 진유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진유성이 호흡의 개폐를 관장하는 혈도를 자극시켜 준 이후에야 이해했다.
그 상황에서 최유리가 역기를 들었다.
“어때? 더 힘들어?”
“아니? 똑같은데?”
“계속 반만 쉬면서…….”
진유성이 역기의 양쪽에 10킬로그램짜리 플레이트(바벨 원반)를 꽂았다.
이로써 역기의 무게는 총 80킬로그램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최유리가 눈을 빛냈다.
아무리 양손에 나눠 들었다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사람은 20킬로그램의 플레이트를 공깃돌처럼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진유성은 아무 무게도 느끼지 않는 듯 들었다.
최유리도 진유성이 훈련하며 130킬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들어 올리는 걸 보았다.
용상 130킬로그램이면 여자 역도 53킬로그램급의 세계 신기록 134킬로그램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무게를 훈련 한번 안 하고 들었단 말이지.’
최유리는 진유성에게 뭔가 힘을 쓰는 노하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유성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최유리는 그 이후에도 숨을 반만 쓰면서 무게를 조금씩 늘려 갔다.
마침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록인 용상 105킬로그램이 됐을 때, 최유리는 역기를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들긴 했지만, 대회에서 클린 판정이 나오지 않을 자세였다.
비록 연습이라지만 평소의 기록도 들지 못하는 건 불만스러운 일이다.
최유리의 얼굴에 불만스러운 기색이 번지는 순간, 진유성이 말했다.
“눈 감아 봐.”
“눈은 왜…….”
“빨리.”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최유리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녀의 귓가로 진유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숨을 끝까지 들이쉬고, 뱉을 거야.”
그런데, 진유성의 목소리가 귀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호흡에는 힘이 있어. 넌 한 호흡에 200킬로그램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어. 지금까진 호흡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것뿐이야.”
최유리는 진유성의 목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고, 집중력이 최고조에 오르는 걸 느꼈다.
진유성은 혜광심어를 약하게 운용하고 있었다.
“이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전부 뱉을 거야. 코와 입이 아닌, 팔과 어깨와 등으로.”
최유리가 눈을 감은 채로 역기를 잡았다.
눈을 감고도 정확한 자세와 정확한 포인트를 잡는 모습이 그녀의 연습량을 증명했다.
“흡!”
숨을 깊게 들이마신 최유리가 역기를 들기 시작했다.
‘어? 생각보다 가볍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지 못했던 무게였는데…….
어딘지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절반의 호흡을 쓰다가 완전한 호흡을 쓰게 됐으니.
그리고 최유리가 역기를 가볍게 느꼈다는 건, 그녀가 호흡으로 힘을 쓰는 법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걸 의미했다.
“읍!”
최유리가 눈을 감은 채로 역기를 들어 올리고, 클린 자세를 취한 다음에 바닥에 던져 버렸다.
쿵, 쿵!
역기 튀는 소리 사이로 진유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눈 떠 봐.”
최유리가 눈을 떴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역기에 시선을 주더니…….
“……!”
깜짝 놀랐다.
“이, 이거 진짜야?”
“네가 든 거야.”
최유리가 눈을 감고 있던 사이, 역기의 양쪽에 5킬로그램짜리 작은 플레이트들이 끼어져 있었다.
즉, 그녀는 방금 115킬로그램을 들어 올린 것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최고 기록 105킬로그램을 훌쩍 뛰어넘는 무게였다.
* * *
점심시간 이후의 역사 수업이 끝나고, 체육 시간이 돌아왔다.
대정고의 체육 시간은 학급별이 아니라 개인의 적성과 취미에 맞는 체육부에서 운동을 하는 시스템.
그래서 같은 체육부에서 운동하는 학생끼리 이동하기 위해 모였다.
그사이 진유성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역도부에 가는 건 그 혼자였으니까.
그렇게 교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누군가 진유성의 앞을 막았다.
지종수였다.
“진유성.”
“왜 그러느냐.”
“……왜 더는 축구를 하지 않는 거지?”
“바빠.”
“하지만……!”
진유성에게 무참한 패배를 경험한 지종수는 처음에는 화가 났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건 잠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으로 자꾸 진유성의 플레이가 리플레이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드리블이라니!
그토록 강력한 슈팅이라니!
난생처음 명화를 감상했을 때처럼 순간순간 진유성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지종수는 진유성의 망령을 떨쳐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운동에 몰두해 봤고, 게임에 빠져 봤고, 아버지의 와인 창고에서 몰래 술도 마셔 봤다.
하지만…….
진유성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런 지종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막상 자신을 이렇게 만든 진유성이 더 이상 축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네가 나를……!”
소리를 치려던 지종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유성이 없었다.
이미 진유성은 지종수를 지나쳐 체육관으로 떠난 후였던 것이다.
지종수가 비참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진유성…….”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종수의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뭐?”
“종수가 아버지 회사 물려받을 때 공매도(주가가 하락할 때 돈을 버는 상품)에 베팅하면 큰돈 벌 수 있을 거 같아.”
“에이, 나쁜 새끼.”
* * *
진유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최유리에게 숨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준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진유성과 최유리는 제법 친해졌고, 드디어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았다.
‘오늘은 전화번호를 받아 내야겠군.’
그리고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내 안에, 너 있다.
“크으으.”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체육관으로 향하던 진유성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체육관에서 들리는 역도부원들의 대화의 내용 때문이었다.
체육관과 진유성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 됐지만, 진유성이 듣지 못할 거리는 결코 아니었다.
-축하해, 유리야.
-먼저 가 있어. 나도 금방 갈 테니까.
사람들은 최유리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태릉촌으로 떠나게 됐으니까.
최유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대정고는 체육 특기생이 국가 대표가 되어 태릉촌에 들어가거나 프로 선수가 되면, 졸업장을 발부했다.
그러곤 재단을 통해 지원을 이어 갔다.
‘대정고 출신’이란 타이틀을 박아 두고, 세계 무대에 이름을 떨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의무 수업 일수 같은 어쭙잖은 교육청의 제약 따윈 대정고의 권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이 말은 곧 이제 최유리를 만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때, 진유성의 귓가로 최유리의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유성이한테는…… 도대체 어떻게 말하지?
* * *
최유리는 대정고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오늘 훈련이 끝나고 진유성에게 자신이 떠난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 줄까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사귀게 됐다거나, 뭔가를 약속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보도 아닌 이상 진유성이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 걸 모를까.
게다가 그녀는 진유성의 도움 덕분에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모든 훈련이 끝나고…….
최유리가 진유성에게 다가갔다.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여는데, 진유성이 툭 던졌다.
“이제 좀 지겹군.”
“어?”
“너와 노는 게 지겨워졌단 말이다. 잠깐의 유희치고는 너무 몰입했던 모양이야.”
차갑게 웃은 진유성이 말했다.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말도록.”
그렇게 진유성이 떠나가고, 최유리가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진유성은 연기를 참 못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잊지 못할 거야.’
최유리는 한참 동안 하염없이 진유성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 * *
시무룩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던 진유성이 문득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곤 인상을 마구 찡그리며 셀카를 찍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민하던 진유성이 내공으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셀카를 찍다가 벤치를 떠났다.
* * *
숙제를 하는 척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던 상소윤이 흥 하는 콧소리를 냈다.
진유성이 좋아요를 누른 인스타그램이 온통 역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최유리가 먼저 게시물을 클릭하고, 그걸 본 진유성이 따라 클릭한 것 같았다.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이나 하고 있어?!’
이상하게 화가 났다.
진유성이 연애를 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진유성이 자신보다 먼저 연애를 해서 화가 나는 것이리라.
‘나도 남자 친구 만들 거야.’
그렇게 다짐한 상소윤이 다시 진유성의 인스타그램을 다시 보려는데 갑자기 모든 게시물이 사라졌다.
“뭐지?”
인터넷 오류인가 싶어 새로고침을 하는데.
“컥!”
상소윤에 입에서 이상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모든 게시물이 지워지고 달랑 하나 남은 인스타그램의 사진…….
거기에는 눈물을 흘리는 진유성의 부담스러운 초근접 셀카가 있었다.
한 줄의 글귀와 함께.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