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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9화 (3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9화>

* * *

-당신은 타고난 기운이 정명하고, 닦아 온 방식이 청정한 사람입니다. 꼭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의 맑은 선천진기를 느낀 순간,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기운이란 단어를 풀어 보면 숨을 운행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분명…….

-무릇 만물이 소생하는…….

-사람이 날 때부터…….

“흠. 이상하군.”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스타그램의 DM(다이렉트 메시지)에 대해서 알게 된 뒤부터 매일같이 최유리에게 댓글을 달고 메시지를 보냈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DM을 통해 친분을 쌓는다고 했는데 말이다.

‘혹시 내가 너무 과한 칭찬을 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건가?’

원래 적당한 칭찬은 상대의 호감을 사지만, 지나친 칭찬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정말로 최유리의 선천진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선천진기는 순백색이다.

정명(正命)하고, 정명(正明)하다.

중원에서부터 수많은 이들의 선천진기를 느꼈지만, 최유리의 것이 단연 으뜸이었다.

사실 천마신교의 교주가 기운을 칭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은혜였다.

품은 기운이 옳다는 건 물려준 부모를 높이는 것이며, 계속해서 아름답게 품어 온 행실을 칭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유성은 최유리가 과한 칭찬(?)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므로 진유성은 상림이 해 줬던 다른 조언을 떠올렸다.

“선물은 어때요? 일단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무슨 선물이 좋을까?”

“그 사람한테 필요한 걸 찾아야죠. 아니면 모두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라든가.”

역시 맛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뭐가 맛있을지 고민하는데, 유혜연이 노크를 하곤 문을 열었다.

“유성아, 아침부터 컴퓨터니?”

“잠깐 찾아볼 게 있어서요.”

“어서 내려와.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네.”

컴퓨터를 끄고 1층으로 향하니, 유혜연이 두 명분의 아침밥을 차려 놓았다.

상림은 지방 출장으로 어제부터 집에 없었고, 상소윤은 학교에서 할 일이 있다며 이른 아침에 택시를 타고 등교했다.

“잘 먹겠습니다.”

진유성은 유혜연과 별다른 말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침묵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다.

불편한 침묵과 평온한 침묵.

전자는 할 말이 없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될 때 생겨나는 소통의 단절이고, 후자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이 될 때의 여백이다.

같은 공간에서 아무런 대화도 없이 평온하다는 건, 서로의 존재가 그만큼 편하다는 뜻이었다.

“왜 웃니, 유성아?”

“네? 아뇨. 그냥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요.”

“어, 맞아. 소윤이가 웃기다며 보내 준 사진 있었는데.”

“사진이요?”

진유성이 의아한 듯 반문하자 유혜연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상소윤이 보내 준 사진을 열었다.

그러곤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봐도 웃긴 사진이었다.

“뭔데요?”

“네 인스타 계정이 해킹 당했다던데?”

“해킹이요?”

진유성이 의아해 하고 있자 유혜연이 웃으며 사진을 보내 주었다.

인스타그램 화면이 캡처된 사진 속에는 누군가 댓글로 도(?)를 설파하고 있었다.

Jinyousung 당신은 곧고 맑은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Jinyousung 당신은 타고난 기운이 정명하고 닦아 온 방식이 청정한 사람입니다. 꼭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혜연이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린 이유는, ‘도를 아십니까’의 말투가 진유성과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탓이었다.

내용도 웃긴데, 그 내용이 진유성과 잘 어울리기까지 하니 유혜연은 상소윤과 한참을 웃었다.

그때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게 왜 해킹당한 건가요?”

“응? 딱 봐도…….”

“제가 쓴 건데.”

“……?”

잠깐 당황했던 유혜연의 얼굴에 심각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불현듯 세상 물정 모르는 진유성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건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이걸 유성이 네가 썼다고?”

“네.”

“왜?”

“호감을 표현한 거죠.”

“호감?”

순간 유혜연은 상소윤이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더 웃긴 게, 이 여자애가 우리 학교거든.”

“아, 진짜?”

“응. 역도부 체육 특기생인데, 나랑 같은 학년이야.”

유혜연이 물었다.

“근데 내용이 왜 이래?”

“음, 역시 외숙모가 보기에도 지나친 칭찬이었나요?”

“……지나친 칭찬?”

“아직 통성명도 못했는데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군요. 역시 먹을 걸 사 줘야 하나…….”

진유성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유혜연은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진유성이 같은 학교의 여자애한테 호감을 느꼈다.

좀 더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북한식(?) 칭찬으로.

유혜연이 중얼거렸다.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 * *

새벽부터 일어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던 최유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힘들다.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게 자신뿐일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더 무거운 기구로, 더 오래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본래 48kg급이었다가 키가 크는 바람에 53kg급으로 체급을 변경했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으윽!”

이를 앙다물고 기구를 들어 올리는 최유리를 보며 코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유리는 타고난 골격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역도 선수들과 비교하자면 좀 가늘었다.

하지만 최유리에게는 신체 조건을 뛰어넘는 강인한 의지가 있다.

‘최유리는 분명 다음 올림픽 때 금을 들어 올린다.’

그렇게 확신하는 코치들도 많았다.

“5분 휴식!”

훈련 타임을 재고 있던 코치의 외침에 최유리가 네트 위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 * *

정해진 시간과 식단에 맞춰 아침을 먹고 있던 최유리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전 7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DM이 날아왔다.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진 기운을 선천진기라고 합니다. 무릇 태어난 순간…….

벌써 며칠째다.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꾸준히 도를 전파하는 거야?’

어쩌면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건 아닐까?

최유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DM을 차단하지는 않았다.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아침마다 잘생긴 얼굴을 보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잘생겼네.’

이래서 사칭꾼들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의 사진을 가져다 쓰나 보다.

뻔히 사이비라는 걸 알면서도 차단할 마음이 안 드니까.

‘아, 혹시 아이돌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DM속 프로필 사진을 유심히 쳐다봤지만, 역시나 모르겠다.

훈련 때문에 TV를 거의 못 보는 최유리로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스타들이 아니면 알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지막으로 오전 훈련이 끝낸 최유리는 교실로 향했다.

아무리 체육 특기생이라지만 학교의 방침상, 오전 수업은 반드시 들어야 했다.

최유리가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온 것은 점심시간이 끝난 13시 30분이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역도부원들이 체육관에 정렬해 있는데, 감독이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밥 맛있게 먹었지?”

“네!”

“체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다들 힘내 보자.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있으면 나나 코치한테 언제든지 말하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오늘부터 오후 타임에 같이할 훈련할 친구가 생겼다. 특기생은 아닌데, 역도에 관심이 있어서. 뭐, 대충 알지?”

“알겠습니다!”

대정고 체육부는 프로를 지망하는 특기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후 타임 2시간에 한해서는 일반 학생들도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고등학교처럼 학급별로 체육 시간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적성별로 체육 시간을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프로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훈련에 일반 학생들이 참여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코치들도 신경을 써 줘야 하고, 어딘지 산만한 분위기가 형성되니까.

하지만 체육특기생들은 딱히 불만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대정고에 스카우트된 순간부터 돈 한 푼 내지 않고 엄청난 지원을 받았다.

최고급 시설과 장비.

최고의 감독과 코치.

최고의 식단과 관리.

그러니 2시간 동안 일반 학생과 훈련하는 귀찮음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취향 한번 특이하네. 일반 학생이 역도라니.’

최유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축구, 농구, 야구처럼 메이저 스포츠 체육부에는 일반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일단 재밌으니까.

하지만 최유리가 입학한 뒤, 일반 학생이 역도부 훈련에 참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유리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코치가 학생 한 명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어……?”

최유리가 깜짝 놀랐다.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남학생의 얼굴이 굉장히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DM으로 도를 설파하던 그 얼굴이었다.

‘이 학교 학생이었구나…….’

물론 저 학생이 DM을 보내진 않았을 거고, 사진을 도용당했으리라.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봤던 얼굴을 실물로 보는 기분은 묘한 기분이었다.

‘실물이 더 낫네.’

최유리가 그런 상념에 빠진 순간이었다.

갑자기 남학생이 최유리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곤 무심하게 툭.

“오다 주웠다.”

최유리는 엉겁결에 남학생이 주는 걸 건네받았다.

그러곤 고민했다.

이렇게 긴 닭꼬치가 어떻게 안주머니에서 나왔는지.

* * *

그날부터 진유성의 선물 공세가 시작되었다.

닭꼬치, 어묵, 피자, 햄버거, 치킨, 족발, 보쌈…….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지 모를 음식들의 향연에 최유리는 당황했다.

체육관 안에서는 감독과 코치가 바로 제재했지만, 체육관 밖에서는 아니었다.

“오다 주웠다.”

무심하게, 툭.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오전에 진유성이 건넨 햄버거에 최유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진유성은 꼭 먹을 걸 주고는 빤히 쳐다봤다.

어서 먹으라는 듯이.

결국 최유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잘생긴 얼굴에 부담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매번 어디서 사 오는지 모르겠는데, 엄청나게 맛있었다.

포장부터 고급스러운 것이 평범한 브랜드의 햄버거는 아니었다.

“저, 이거 어디서 산 거야?”

“청담동 갤러리아 뒤에 보…….”

말을 하던 진유성이 멈칫했다.

그러곤, 무심하게 툭.

“오다 주웠다.”

* * *

오늘도 최유리에게 먹을 걸 주고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로 돌아온 진유성은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지식 iN에서 추천을 받은 소설이었다.

‘흠, 이런 거군.’

소설을 읽고 있던 진유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 세계의 연애는 중원에서의 감성과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렇게 한참 소설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진유성의 등짝을 때리려고 했다.

진유성이 부드럽게 피하자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두르던 상소윤이 균형을 잃고 책상 위로 철푸덕 엎어졌다.

“허어, 박색한 것이 행동까지 추하군.”

“죽을래?”

상소윤이 투덜거리며 진유성이 보고 있던 소설책을 가리켰다.

“인터넷 소설은 왜 보고 있어?”

“배울 점이 많다.”

“야, 너 따라와 봐. 얘기 좀 하자.”

“귀찮다.”

“아, 좀 오라고.”

상소윤이 귀찮아하는 진유성을 질질 잡아끌고는 교실 밖으로 향했다.

그러곤 주변에 듣는 귀가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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