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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5화 (3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5화>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참격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도 안 맞으면 그만이다.

진유성은 가볍게 대검을 피해 내고는 다짜고짜 공격을 한 무뢰한 놈의 가슴팍에 일장을 날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진유성을 공격했던 놈이 나가떨어…….

“음?”

놀랍게도,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놈은 허공에서 몸을 뒤틀어 장력에 담긴 힘을 해소하고는 두 발로 착지했다.

마지막에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훌륭한 대처였다.

“쿠어어어어!”

흉성을 내지른 몬스터가 대검을 꼬나들고는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누카족 불세출의 영웅 린트콕.]

‘누카족의 영웅?’

누카 종족이라면 진유성이 서울역 게이트에서 만났던 몬스터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몸이 훨씬 거대할 뿐 흑성성을 닮은 누카 종족과 생김새가 흡사했다.

어쩌면 린트콕이란 놈이 누카 종족의 복수를 위해 날뛰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유성이 없었다면 서울역 게이트에서 죽은 것은 누카족이 아니라 인간들이었을 건데.

‘쳇.’

마음이 식었다.

몬스터의 강함에 호기심을 느껴 손속을 겨뤄 보려고 했는데, 그 목적이 복수라면 희롱하고 싶지 않았다.

“쿠워어어어어!”

린트콕이 흉성을 터트리며 벼락처럼 몸을 내던졌다.

대검을 쥔 오른손을 늘어트린 채 왼쪽 어깨를 들이미는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보법으로 피하자니 어깨가 점한 공간이 너무 넓고, 신법으로 피하자니 가속이 붙은 일검이 날아올 터였다.

‘대단하군.’

정말 훌륭한 공격이었다.

어지간한 문파의 장문인들도 팔 한쪽은 내놔야 피할 수 있을 만한 완벽에 가까운 공격.

하지만…….

린트콕이 완벽에 가깝다면 진유성은 완벽했다.

투-쾅!

진유성의 주먹이 린트콕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린트콕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그러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필터 몬스터가 사망했습니다.]

[현재까지 필터링 진척도는 33퍼센트입니다.]

[마스터 플레이어에게 필터링이 완료된 에너지에 대한 흡수가 진행됩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메시지 이후, 신전 내부에 기운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윽고 엄청난 양의 기운이 진유성을 향해 쏟아졌다.

* * *

차정명은 문수혁과 함께 대한민국 각성 랭킹 1, 2위를 다투는 실력자였다.

이 말은 곧, 대한민국이랑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 중에 두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강하다는 소리였다.

그런 그가 이토록 놀라고, 당황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럴 수가…….”

몇 초간 기절해 있었던 차정명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탄식을 내뱉었다.

서울역에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게이트가 생기는 순간, 차정명은 검을 빼 들었다.

미증유의 기운이 꾸물꾸물 모여들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 차정명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러곤 검을 뺏으려 했다.

깜짝 놀란 차정명은 몸을 뒤틀어 피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공격에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다.

단 몇 초뿐이긴 했다.

하지만 흉수의 몸놀림을 생각하면, 그사이 열 번도 더 죽었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죽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마도보검을 빼앗겼다……!’

차정명과 함께 무수한 수라장을 헤쳐 온 마도보검은 전 세계에 100개도 되지 않는 SS급 아이템이었다.

대한민국에 SS급 아이템을 보유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문수혁과 차정명.

그런 차정명이 아이템을 잃어버렸으니, 이제 그는 문수혁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과 다름없었다.

‘젠장,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참 사람이 우습다.

마도보검을 훔쳐 간 흉수의 정체를 추측하거나, 목숨을 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랭킹 2위가 된 걸 우려하고 있는 본인에게 어이가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SG 대한민국 본부장이 헐레벌떡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서울 같은 각 도시의 지부장들이 철저한 실무자들이라면 본부장은 그저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차정명은 친SG 계파였고, 본부장은 친한국 계파였다.

별로 막을 섞고 싶은 위인은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본부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차 각성자! 무슨 일입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된 연유인지는…….”

“아니, 그거 말고요! 방금 누가 차 각성자를 습격한 거 아닙니까?”

평소에 굼뜨다가도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다.

차정명은 마도보검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대의적인 차원에서라도 마도보검을 빼앗아 갈 만한 실력자가 그를 습격했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차정명이 똥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도보검을 강탈당했습니다.”

“뭐, 뭐요?! 마도보검?”

“네. 자세한 이야기는 보고서로 올리죠.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아니, 아니. 나도 초동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어떻게 빼앗겼습니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누구한테요?”

차정명이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지 알면 지금 이러고 있겠는가?

“모릅니다.”

“아니, 뒤통수를 맞았다면서요? 누군지 몰라요?”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SG 대한민국 본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에는 분명 ‘지인, 혹은 주변인’에게 속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보통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을 쓰진 않았다.

본부장은 강한 의심이 들었다.

‘뭔가 숨기는 게 있구나.’

그러나 차정명은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누구한테 뒤통수를 맞았냐는 겁니다.”

“모른다니까요.”

“그걸 어떻게 몰라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언성을 높인 차정명은 순간 의심이 들었다.

본부장이 왜 이렇게 캐묻는 걸까, 하는 의심이.

혹시 마도보검을 강탈해간 쪽과 친한국 계파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게 아닐까?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의심이었다.

하지만 뒤통수를 맞아 기절한 것도 창피했고, 마도보검을 빼앗겨 당황스러웠던 차정명은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상태였다.

그동안은 친한국 계파와 친SG 계파의 갈등이 분출되지 않았다.

수면 아래 갈등은 있었으나 대놓고 조장하거나 의심하진 않았단 말이다.

하지만 차정명과 본부장이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지금, 갈등이 폭발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이게 다 진유성이 잠시 검을 빌린(?) 탓이었다.

* * *

게이트에 들어온 47명의 각성자들은 침묵했다.

단 한 번도 클리어된 적 없는 S급 레이드 미션을 어떻게 풀어 갈지에 대한 막막함 탓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힘을 합쳐 12시간 안에 보스를 처리해야 합니다.]

본래 레이드 미션은 일주일 안에 보스를 처리하는 미션이었다.

그런데 이번 미션에는 단 12시간만 주어졌다.

모두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 조금이라도 해법을 생각하는 척했다.

어쩌면 단 몇 시간이라도 생을 연명하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그때 김인창이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공략해야 합니다.”

“지금?”

“용기란 마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강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문수혁이 반문했다.

“하지만 김인창 각성자, 우리는 게이트를 클리어하느냐 못하느냐만 염두에 둬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S급 게이트의 폭발 반경은 서울의 면적을 넘는다고 배웠습니다. 12시간 안에 서울 전체를 비우길 기다릴 바에는 진척도를 높여 폭발 반경을 줄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김인창은 ‘그게 서울의 재건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란 말을 애써 삼켰다.

“1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결국 또 1시간을 기다릴 거고, 또다시 1시간을 더 보낼 겁니다. 결국, 뜬 눈으로 12시간을 날리고 최악의 상태로 보스와 싸우겠죠.”

그때,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 문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갑시다.”

문수혁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곧장 각성자들을 인솔해 보스의 신전으로 향하며, 서로의 스킬 구성을 공유했다.

보스 레이드를 처음 경험해 보는 김인창이 물었다.

“보스는 어떤 개체입니까?”

“매번 다릅니다. 전사처럼 우직한 놈도 있고, 암살자처럼 어둠에 숨은 놈도 있고, 소환술사나 마법사 같은 놈도 있습니다. 여기 상처 보이십니까?”

문수혁이 자신의 팔뚝을 보여 줬다.

팔이 반 토막 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상처가 보였다.

“6년 전, 제주도 AA급 보스 레이드 때 얻은 상처입니다. 총 70명이 참가했는데…… 다섯 명만 살아 나왔죠.”

김인창은 그 순간 깨달았다.

문수혁이 서두르는 이유는 그가 과감해서가 아니었다.

가장 겁을 먹어서였다.

순간마다 마모되는 용기를 붙잡고 S급 각성자로서 팀을 인솔하기 위해서였다.

아마 여기서 S급 보스의 무서움을 정확히 체감하는 각성자는 문수혁 혼자일 테니까.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서 거대한 석조 건물이 보였다.

* * *

진유성은 보스 몬스터를 죽이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신전 내부를 가득 채우는 걸 느꼈다.

기운은 진유성을 향해 쏟아졌다.

‘뭐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잠깐 멈칫했던 진유성이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순하거나 미심쩍은 기운이었다면 거부했을 테지만, 이 기운은 영약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농밀하고 정순한 기운이 꽉 압축된 느낌이었다.

‘엄청나군.’

과거에 먹었던 만년설삼도 지금의 기운과 비교하자면 새 발의 피였다.

사실 진유성이 아닌 다른 이가 이곳에 서 있었다면, 지나치게 많은 기운 탓에 혈맥이 터져서 죽어 버렸을 것이었다.

진유성쯤이나 되니까 이 기운을 조절하며 흡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진유성이 게걸스럽게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신전을 가득 채운 기운의 대부분을 축기한 진유성이 운기행공을 멈추곤 내공의 양을 확인했다.

‘3할 정도네.’

중원에서 가지고 있던 내공의 3할 수준까지 회복한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신전 입구로 근접하는 이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게이트에 들어왔던 각성자들인 것 같은데, 무아지경으로 기운을 흡수하다 보니 조금 늦게 파악했다.

진유성은 일단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인벤토리에서 아이언맨 헬멧을 꺼내 썼다.

그러고는 교복을 숨기기 위해 보스 몬스터의 가죽 갑옷에 달려 있던 망토를 빼서 온몸에 둘둘 둘렀다.

‘이 정도면 모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상림이 해 줬던 조언이 떠올랐다.

“교주님은 생각보다 말투가 되게 특이하시거든요?”

“내가?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한국에서 교주님처럼 말하는 사람 한 명도 없을 거예요.”

“흠…….”

“그러니 앞으로 정체를 숨기실 때는 남의 말투를 따라 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남? 누구?”

“음, 막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트리머 같은 사람들이요. 교주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유명인을 따라 하면 적어도 말투는 확실히 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진유성은 상림의 조언을 수용하기로 했다.

학교에 가서 자신처럼 말하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때, 신전의 출입문이 열리며 잔뜩 긴장한 각성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이 죽은 린트콕의 사체에 닿았다가…….

그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아이언맨에게 닿았다.

진유성이 육합전성과 혜광심어를 섞어 입을 열었다.

[보스를 플렉스해 버렸지, 뭐야.]

[빠끄!]

진유성은 자신의 대사가 꽤 센스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유투브에서 봤던 말투였는데, 꽤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채채챙!

파지지직!

인상을 팍 쓴 각성자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진유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고?’

각성자 무리의 선두에 있던 문수혁이 이를 악물며 몸을 던졌다.

“죽어!”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문수혁의 손에 들린 방패가 폭발적인 기세와 함께 진유성의 가슴팍을 노리는 순간.

열 받은 진유성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너나 죽어라! 빠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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