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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3화 (3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3화>

Quest 7. 게이트 속 천마님

대정고를 빠져나온 진유성은 곧장 서울역으로 향했다.

대정고에서 서울역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8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경상도 경산까지 뛰어다니는 진유성에게는 아주 가까운 거리란 뜻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돌아다니고 있어서, 이목을 피하느라 시간이 제법 소모됐다.

“흠.”

서울역에 도착한 진유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강한 기운이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기운의 발원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기를 느끼는 진유성의 섬세한 능력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땅속인가? 아닌데?’

어쨌든 확실한 건 이곳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 형태가 일전에 조우했던 서울역 게이트와 비슷했다.

워낙 은밀한 흐름이라 보통의 사람들은 느낄 수 없겠지만, 진유성의 감각을 속일 순 없었다.

진유성이 스마트폰을 툭툭 두드려 상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나 게이트 들어갈 것 같다.

-갑자기 웬 게이트요?

-전학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어디예요? 대정고에?

-아니, 서울역.

-교주님이 꼭 가셔야 해요? 거기 각성자들 없어요? 오늘 전학 가셨는데 일주일이나 결석하면 이상하잖아요.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수비, 공격, 레이드, 셋 중 하나의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지금까지 2번의 게이트에 들어간 진유성은 수비 미션만 경험했다.

통계상으로 70퍼센트가 수비 미션, 20퍼센트가 공격 미션, 10퍼센트 미만이 레이드 미션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7일간 살아남아야 하는 <수비 미션>과 7일차에 거점을 점령하고 있어야 하는 <공격 미션>에 일주일이란 시간이 소모된다는 것이었다.

각성자가 아무리 강해도 클리어 타임을 줄일 순 없었다.

상림이 걱정하는 것도 이 부분이었다.

당장 송림 저수지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만 해도 유혜연에게 변명하느라 고생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변명은 작은 문제고, 진짜 문제는 의심스러운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다.

게이트가 또 정체불명의 각성자에 의해 클리어되면, SG는 일주일간 사회 활동을 멈춘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을 것이다.

게이트 안에 들어간 시간만큼 한국에서 사라진 것과 같았으니까.

물론 진유성은 고등학생 신분이니 발각될 확률이 낮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주님, 가급적이면 게이트에 들어가지 마시죠.

상림의 메시지를 받은 진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합당한 걱정이고, 조언이다.

그는 상림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순 없었다.

진유성은 세상의 모든 불행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신주청, 상림을 비롯한 생존대원들과 정도맹에 쫓겨 다닐 때도 그랬다.

산에 호랑이가 있어서 약초꾼들이 물려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랑이를 처리했고, 녹림도들이 화전민을 납치한다는 이야기에 산채를 와해시켰다.

그럴 때마다 생존대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 급히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오지랖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었다.

“대주. 대체 왜 그런 사소한 일까지 도와주는 겁니까? 흔적이 남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진유성의 대답은 간단했다.

“할 수 있으니까.”

처음엔 생존대의 대원들이 진유성에게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도주 생활이 길어질 수록 그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진유성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냥꾼이 천라지망의 도주로를 알려 주고, 약초꾼 덕분에 은신처를 구했다.

나무꾼 덕분에 기연을 얻은 적도 있고, 시골 아낙네의 한 끼 식사에 주린 배를 달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다 죽은 화전민의 모녀도 있었다.

생존대원들은 모녀의 시신 앞에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라도 그들이 정도맹에 복수를 하고 중원을 얻게 된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무림인과 관리가 민초를 무제한적으로 수탈하는 세상에서,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은 진유성, 신주청, 상림은 그 다짐을 지켰다.

비록 한국은 그가 다짐을 한 중원과 전혀 다른 세계였지만, 진유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서울역 게이트에 들어가려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할 수 있으니까.

물론, 호의가 배신으로 돌아온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갚아 주면 될 일이었다.

‘뭐, 내공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 기운이라면 꽤 많은 스탯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이놈들은 뭐야?’

진유성이 아까부터 서울역 앞에 모여 있는 이들을 쳐다보았다.

200명이 조금 안 되는 무리였는데, 그중 100명 정도가 기운을 품고 있는 각성자였다.

진유성은 몰랐지만, 현재 서울역에 모인 각성자들은 그냥 각성자가 아니었다.

대부분이 한국의 각성 순위 200위 안에 걸친 하이랭커들이었다.

호기심을 느낀 진유성이 각성자들에게 다가갔다.

* * *

서울역에 나와 있던 SG 서울지부의 한지후 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SG는 두 집단으로 나뉜다.

친SG 계파와 친국가 계파.

두 집단의 싸움을 좋게 표현하자면 ‘전 지구적인 평화’를 우선하느냐와 ‘자국민의 평화’를 우선하느냐의 이데올로기 싸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곳에 끈을 댄 정치적인 싸움에 불과했다.

그 결과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각성 앞으로!”

“받들어총!”

구호에 맞춰 각성자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허공에 스킬을 시전했다.

파파파팍!

태도는 심드렁했을지언정, 백에 달하는 각성자들이 한 번에 스킬을 쓰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받들어총에 스킬을 쓴 게 넌센스긴 하지만.’

오늘 각성자들이 서울역에서 사열식을 벌이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UN SG 본부의 본부장이 한국에 내한했다.

대한민국의 각성 자치권을 주장하는 친한국 계파는 기회다 싶어서 각성자를 동원한 무력시위에 나섰다.

자신들이 보유한 각성자-현 소속은 SG지만-만으로도 충분히 한국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자 친SG 계파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친SG파는 친한파보다 자신들의 무력이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각성자들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 90여 명의 상위 랭커들이 서울역에 모여 사열식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물론 각성자 대부분의 표정에는 ‘우리가 왜 이딴 짓을 하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느껴졌지만 말이다.

한지후 소장은 저들의 자괴감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는 각성자가 정치적인 이유로 동원되면 안 된다고 믿었다.

아무리 GEL 수치를 체크하고 동원한 것이라도 해도, 만약이라는 게 있다.

일전의 서울역 게이트처럼 GEL 수치를 무시하는 게이트가 생기기라도하면 어쩔 것인가?

오늘 사열식을 주도한 정치인들이 책임을 질까?

‘퍽이나.’

그럴 리가 없었다.

한지후는 게이트 사태가 이대로 안정화될 리 없다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2022년, 한국은 게이트의 위협에서 거의 해방되었다.

2018년 성수동 게이트 폭주 이후 서울에서는 단 한 건의 게이트 폭주도 없었고, 광역시를 포함해도 4건뿐이었다.

땅덩어리는 좁고 각성자는 많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각성자와 관련된 정·재계의 분위기는 점점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게이트 사태가 이대로 안정화에 접어들까?

그렇다면 게이트는 왜 생겨났지?

게이트를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한지후 소장이 보기에 게이트는 지나치게 이질적이고, 인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의지가 섞인 것처럼.

사실 게이트 사태 초창기에는 한지후 소장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외계의 침략이라든지, 비밀 집단의 실험이라든지.

하지만 18년이란 시간은 인간이 타성에 젖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한지후 소장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오히려 음모론자나 게이트 편집증 환자 취급을 받았다.

한지후 소장은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사열식 틈에 있는 한 명의 각성자를 보았다.

김인창.

존경하는 육사 선배에서 노숙자로, 다시 노숙자에서 각성자가 된 인물.

김인창은 사열식을 하는 내내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아마 군인 신분이었을 때를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김인창을 쳐다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각성자들이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문수혁, 차정명.

SG는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각성자 랭킹을 매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대외적인 이야기이고, 비공식적으로는 명확한 랭킹을 가지고 있었다.

한 해커에 의해 몇몇 국가의 랭킹 순위표가 유출된 적이 있었는데, 문수혁과 차정명은 대한민국의 비공식 랭킹 1위와 2위의 각성자들이었다.

하지만 누가 1위고, 누가 2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이름 옆에 동일하게 1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으니까.

아마 SG에서 실력의 우위를 가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완전히 동일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을 터.

둘 중 누가 더 강한지에 대한 궁금증은 늘 각성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주제였다.

본래 랭킹 1, 2위쯤 되면 이딴 사열식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그만이었으나, 문수혁은 친SG 계파를 대표하는 각성자였고, 차정명은 친한국 계파를 대표하는 각성자였다.

둘 다 정치적인 이유로 서울역 사열식에 참가한 모양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은근히 서로를 의식하고 있던 문수혁과 차정명이 동시에 흠칫 놀란 것이.

그러곤 오늘 처음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왜 저러지?’

우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된 한지후 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별거 아닌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놀란 게 좀 이상하다.

한참 동안 서로를 쳐다보고 있던 문수혁과 차정명의 얼굴에 점차 당혹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문수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각성자 전원……!”

문수혁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굵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들이 서울역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니까.

고오오오오오.

아지랑이와 함께 불길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뭐, 뭐야!”

“경호실장!”

“가, 각성 테러인가?”

오늘의 자리가 끝나면 써먹을 온갖 정치적인 수사를 떠올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정치인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오오오오오오!

바람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신문지가 날아다니고, 현수막이 펄럭였다.

각성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딘지 사람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바람 소리지만, 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숨이 막힐 것같이 농밀한 기운이었다.

그때였다.

서울역의 상공을 부유하던 아지랑이들이 한곳에 모여들며 타원형의 게이트를 열어 버린 것은.

이윽고 게이트에서 빛이 뿜어지며 참여 인원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정치인들이 기를 쓰면 빛을 피하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게이트에서 뿜어진 빛은, 누가 봐도 각성자들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게이트 인원의 선별이 무작위라는 상식이 부서지는 광경이었다.

잠시 뒤, 선별된 각성자들이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파지직 거리는 게이트뿐이었다.

“인원 파악!”

게이트에 끌려가지 않은 차정명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각성자들이 SG 수칙에 맞춰 인원 파악과 보고를 수행했다.

“47명이 선별됐습니다.”

“전부 각성자입니다.”

“일반인은 선별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역에 모인 94명의 각성자 중 절반인 47명.

이게 갑작스러운 게이트에 선별된 인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선별 인원에 각성자 이외의 고등학생이 한 명 포함됐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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