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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2화 (3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2화>

* * *

돌아온 월요일.

진유성은 유혜연의 차를 타고 이른 아침부터 대정고로 향했다.

전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 때문이었다.

“에이 씨, 너무 빨리 왔어.”

함께 등교한 상소윤이 투덜거리며 2학년 본관으로 향하고, 진유성은 유혜연과 함께 교감실로 들어섰다.

대정고의 교장은 한 명이지만, 교감은 학년별로 한 명씩 존재했다.

유혜연은 2학년 교감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 참. 교감선생님, 소윤이랑 유성이가 사촌인 건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문제는 아니고, 소윤이가 사춘기라서 그런지 남들이 아는 게 싫다네요. 그냥 부모님들이 워낙 친해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고 하죠.”

“음, 알겠습니다.”

2학년 교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납득되는 이유는 아니지만 사춘기 학생들은 까탈스럽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눈앞의 학부모는 LF 건설의 사모님이었다.

LF 건설은 게이트 재해 복구 사업의 포문을 연 상징적인 건설사였다.

정치권과 거리를 둬서 정?재계에 영향력은 없지만, 상림 대표가 노선만 튼다면 금방이라도 엄청난 포텐셜을 터트릴 중견 기업이었다.

교감이 조금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아예 반도 다르게 배정해 드릴까요?”

“아뇨. 반은 같은 게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잠시 뒤, 교감과의 대화를 끝낸 유혜연이 진유성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를 했다.

“유성아, 동무들이 맘에 안 든다고 때리면 안 돼. 알았지?”

“동무요?”

“아니, 친구.”

그렇게 유혜연이 학교를 떠나고, 진유성은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면담을 위해 담임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유성의 담임은 박민선이란 이름을 가진 3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다소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진유성 학생 맞지? 사진보다 훨씬 잘생겼네?”

“안녕하세요.”

“2학년이 몇 달 안 남긴 했지만, 그동안 널 담당할 담임 선생님이야. 역사 담당이고.”

인사를 나눈 박민선이 본인이 어디서 공부를 했으며,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랑하는 건가?’

하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건, 자랑이라기보다는 좀 더 사무적인 느낌이었다.

진유성은 몰랐지만, 대정고에 워낙 부잣집 자제들이 많다 보니 종종 선생의 자격을 의심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박민선은 그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 조회 시간이거든? 다들 모여 있을 때 인사하는 게 낫겠지?”

“그러시죠.”

진유성과 박민선은 2학년 본관 건물로 향했다.

교정이 어찌나 큰지, 교무건물에서 2학년 본관 건물로 가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다.

물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진유성은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2학년 3반 교실 앞에 도착한 박민선이 교문을 열려는 찰나.

진유성이 그녀를 제지했다.

“선생님.”

“응?”

“먼저 들어가시죠.”

“나 혼자 들어가라고? 왜?”

“전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아, 교문은 닫아 주세요.”

박민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학생이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얼핏 자기소개 같은 단어가 떠올렸지만 어울리지도 않는 상상이었다.

대정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들 굉장한 부잣집의 자제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본인은 의식조차 못하는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소개하는 것보다 소개 받는 게 익숙하단 소리였다.

‘아니, 뭐. 그런 걸 떠나서 무슨 전학생이 자기소개를 준비했겠어? 근데 문은 왜 닫아 달라는 거지?’

박민선이 별수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 철없는 금수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대정고 교사들의 원칙은 ‘선 보고, 후 조치’였다.

보고를 통해 어느 금수저의 수저가 더 순금인지 확인한 다음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박민선은 교문을 열고 혼자서 2학년 3반의 교실로 들어갔다.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 * *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는 분명 진유성이 같은 반이 될 거라는 아주 귀찮은 말을 했었다.

‘아, 이러면 또 내가 케어해 줘야 하잖아. 세상 물정도 모르고 멍청멍청해 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교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담임 선생님뿐이었다.

‘뭐야…… 다른 반으로 배정된 거야?’

상소윤이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의 앞문이 열렸다.

이윽고 교탁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온 진유성이 교실을 오시하다가 말했다.

“이 반 짱 나와.”

“…….”

상소윤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또라이야!”

드물게 진유성의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흘렀다.

“……너냐?”

* * *

진유성은 1교시가 시작하기 전부터 매점 뒤편의 화단에서 상소윤에게 혼이 났다.

“야 이, 바보야! 대체 뭐하는 거야?!”

“이렇게 하랬는데.”

“누가! 도대체 어떤 놈이!”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어젯밤 지식iN에서 얻은 답변 중 가장 길고 성의 있던 댓글에 쓰여 있었던 내용이니까.

물론 진유성이라고 답변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한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도 생각을 해 봤다.

그러곤 어떤 무리에 새로운 이가 나타났을 때 서열을 가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자가 내 위로 올지, 내 밑으로 들어올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맹수들도 견주어 보기 마련이었으니까.

‘멸마대에서도 그랬단 말이지.’

고아와 노예들을 모아 만든 정도맹 멸마대의 첫 번째 훈련이 무엇이었을까?

200여 명의 훈련생도들을 좁은 동굴에 풀어 놓고, 휴식도 규칙도 없는 싸움을 시키는 것이었다.

서열을 가리기 위해서.

‘내가 그때 몇 번째였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10등 언저리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낮은 순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시 진유성의 위에 있던 훈련생도들은 모두 무공을 정식으로 익힌 이들이었다.

아무튼 진유성은 이 같은 이유로 전학 첫날 서열을 확인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다.

진유성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상소윤에게 반문했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한 거냐?”

“그걸 말이라고 해?!”

“왜? 짐승들도 무리에 신입이 들어오면 서열을 정리하는데?”

“사람이 짐승이냐?”

“사람에게도 짐승의 면모가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폭력과 관련된 부분에는.”

진유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이 있었는데.”

“그거야 드라마니까 그렇지!”

“드라마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거 아니야?”

상소윤은 묘하게 반박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때가 종종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인데도 진유성과 대화를 나눠 보면 진유성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는 걸.

아마 너무 다른 문화권에서 와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 근데 북한이 이 정도로 다른가?’

어쩌면 북한의 문화라기보다는 간첩들의 문화일 수도 있겠다.

“몰라, 몰라. 하려면 선생님이라도 없을 때 하던가! 돼지야!”

그나마 다행인 건, 상소윤이 제법 그럴듯하게 진유성의 행동을 변호해 줬다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어제 얘랑 내기를 해서 이겼거든? 그래서 장난으로 시킨 건데…… 와, 진짜로 할 줄 몰랐네. 완전 또라이야, 또라이.”

상소윤의 변명은 어설픈 구석이 있었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졌다.

첫 번째는 부잣집 자제들 중에는 이보다 더한 또라이들이 많다는 것.

분명, 학교에서 진유성보다 훨씬 어이없는 행동을 한 이들도 있었다.

두 번째는 상소윤의 말 속에 숨겨진 뉘앙스 때문이었다.

“뭐야? 그럼 전학생이랑 원래부터 알던 사이야? 친한가 본데?”

“어, 아.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끼리 왕래가 있어서.”

“근데 왜 그런 걸 시켰어? 이 반 짱 나오라니. 상소윤 스타일 아닌데?”

“어, 아. 같이 영화 보는데 비슷한 장면이 나와서…….”

상소윤은 대정고, 아니 압구정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인사였다.

이유는 딱 하나.

예뻐서.

진유성은 상림이 상소윤을 자랑할 때마다 팔불출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상림의 자랑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상소윤이 남학생들에게 받은 고백과 연예 기획사에서 받은 캐스팅 제의를 합치면 적어도 세 자릿수는 되리라.

그러나 상소윤은 단 한 번도 YES를 외친 적이 없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고, 연예인을 하기엔 집에 돈이 너무 많았으니까.

상소윤이 특별히 도도하게 군 것도 아니고, 애당초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그녀는 철벽녀였다.

그런 상소윤과 친해 보이는 전학생의 등장은 진유성의 튀는 행동을 묻어 버릴 만한 이슈였다.

이런 이유 덕분에 진유성의 행동은 그냥 좀 황당한 장난 정도로 묻히는 분위기였다.

“어유, 진짜 진유성.”

“왜.”

“나 아니었으면 어떡하려고 했냐?”

“뭐가?”

“뭐가는 무슨 뭐가야. 내가 다 해결해 준 거잖아.”

“그런가?”

확실히 한 가지 고민을 해결해 주긴 했다.

진유성에게 조언을 해 준 댓글에는 짱이 나오면 가볍게 혼내 주고 그 자리를 뺏으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상소윤이랑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지식iN에서 얻은 답변은 자신의 상황과는 조금 맞지 않는 모양새가 되었다.

계획의 첫 단추를 잘못 꼈으니 폐기하는 게 맞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상소윤을 쳐다보았다.

과연 핏줄은 어디 가지 않는다.

상소윤이 이 반 짱이었다니.

생각해 보면 멸마대의 첫 번째 서열전에서도 1위를 먹었던 건 상림이었다.

그때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가자.”

진유성을 혼내는데 너무 몰두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몰랐던 상소윤이 호들갑을 떨었다.

* * *

1교시, 2교시, 그리고 3교시.

진유성의 첫 학교 생활은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갔다.

정확히 말하면 좀 지겨웠다.

진유성은 평생 가만히 앉아서 남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끼어들어 딴지를 걸고 갈궜으니까.

그러나 선생의 수업 시간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있었다.

‘지겹군.’

적응이 덜 돼서 그런 것이겠지만, 좀이 쑤셨다.

진유성은 지루함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선생의 말에 집중해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이 7할 정도 되고, 자신처럼 딴짓을 하는 이들이 3할 정도 됐다.

상소윤은 그중 후자였다.

교과서가 담겨 있는 태블릿 PC를 가지고 열심히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었다.

‘허어, 장차 이 나라의 기둥이 될 학생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다니.’

사진을 찍어서 유혜연에게 보내 주려던 진유성은 한 번 봐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가 지겨움에 몸부림치던 순간.

묘한 기의 파장이 진유성의 기감에 감지되었다.

‘이거……?’

일전에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기운이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서울역에서 조우한 게이트.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고, 심지어 위치도 서울역인 것 같았다.

진유성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강남에서 서울역까지 기감을 확장시켜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감이 자극받은 것은, 서울역에서 느껴지는 게 그만큼 강력하고 묘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좀 이상했다.

진유성은 얼마 전 경산 게이트의 탄생을 지켜본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이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 정도로 강한 기운이라니?

호기심이 들었다.

그때, 3교시의 끝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며 수업이 끝이 났다.

“그럼 다들 점심 식사 맛있게 하세요.”

선생이 교실에서 나가는 순간, 진유성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교실의 뒷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야, 점심 먹으러 가냐?”

딴짓을 하던 상소윤이 뒤늦게 뒷문을 열고 따라 나갔는데…….

복도 어디에도 진유성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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