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0화 (3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0화>

“아니, 운전자를 때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생사현관도 타통된 놈이 사고를 내면 주화입마에 걸린 거지. 그치? 내 말이 맞지?”

아니라고 하면 주화입마에 걸리게 할 기세다.

한동안 투덜거리던 상림이 진유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제가 요즘 애들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SNS로 호감을 표현하는 것 같더라구요.”

“SNS?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거?”

“네. 막 의미심장한 댓글 같은 거 달아서 설레게 하고 그러던데요. 아, 익명으로 많이 한대요.”

“흠…….”

“아니면 선물은 어때요? 일단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무슨 선물이 좋을까?”

“그 사람한테 필요한 걸 찾아야죠. 아니면 모두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라든가.”

“맛있는 거라.”

진유성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상림이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여인이 꽤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이렇게 적극적이신 걸 보면.”

“새로운 세상에 왔으니 나도 남들처럼 살아 보려고.”

“그래도 외모가 마음에 드셨으니 이러는 거겠죠.”

“얌마, 외모가 중요하냐? 마음이 중요한 거지.”

진유성은 정말로 외모보다는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중원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주혜미도 빈말로라도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그에게 미추의 기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을 살다 보니 외모는 잠깐 스쳐 갈 뿐이란 진리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늙으면 외모의 아름다움도 점차 시들기 마련이다.

꽃이 시들고 나면 남는 건 향기뿐이고, 사람의 향기는 그 사람의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혜미는 여기선 미녀로 취급받았겠군.’

아직도 전혀 공감할 수 없지만, 한국의 미인상은 중원과는 달랐다.

비슷한 점이라고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정도?

“에이, 그 잠깐 봐 놓고선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왜 몰라? 난 선천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선천진기를 느낀다고요?”

“엉.”

“언제부터 그런 재주가 있으셨어요?”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르고부터. 아, 네가 천신궁 게이트를 통과한 이후구나.”

선천진기는 내공과 달라서 갈고닦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축적된다.

그래서 선천진기가 음습한 이들은 대체로 성품도 음침했고, 선천진기가 밝은 이들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오늘 진유성이 스쳐 지나갔던 여인은 강직하면서도 밝은 선천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이태원에서 만났던 색목인 여성에 못지않다.

진유성이 대정고의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에는 단지 외모의 영향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진유성의 설명을 들은 상림이 입을 쩍 벌리다가 말했다.

“교주님.”

“왜.”

“나중에 저랑 사업 하나 하시죠.”

“무슨 사업?”

“결혼 정보 회사요.”

“선천진기로 궁합을 볼 순 없는데?”

“그래도 비슷한 성격은 찾아 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성격이 아니라 성품 정도만 느낄 수 있다니까. 성품이랑 성격은 별개야.”

무모하면서 긍정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계획적이면서 긍정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긍정적이라는 성품은 같지만 성격적으로는 최악의 궁합일 터였다.

“그럼 헤드 헌팅 업체 어떠세요.”

“흠.”

“교주님은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찾아 줄 수 있지 않겠어요? 정직하고 강직한 사람을 원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노련하고 잔머리 좋은 사람을 원하는 회사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그러니까 저랑 헤드 헌팅 사업하시면…… 어, 잠깐만요.”

상림이 핸드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교주님.”

“어?”

“저희 다음 주에 중요한 임원 면접이 있거든요? 그때 회사 한 번 오실래요?”

“공짜로?”

“외부 면접관 초빙 비용만큼 챙겨드릴게요.”

“좋다.”

그때,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주차를 마친 상림이 차에서 내리려다가 물었다.

“근데 교주님.”

“왜.”

“제 선천진기는 어떤 느낌입니까?”

“너? 몰라.”

“아이, 왜 그러십니까. 복비 드릴게요, 좀 알려 주세요.”

딱!

진유성이 상림의 이마를 때렸다.

“아! 왜 때려요!”

“내가 점쟁이냐? 복비를 받게?”

“아니, 그럼 자리 비움 서비스로 10만 원 받을 때는 청소부였어요?”

“그거야…….”

진유성이 상림의 이마를 다시 한번 때렸다.

“아! 또 왜!”

“할 말이 없어서.”

“할 말이 없으면 말을 마셔야죠!”

“그래서 말은 안 하고 때렸잖아?”

“…….”

화가 난다.

언젠간 이 복수를 하고 마리라!

“이왕 때린 거 제 선천진기 느낌이나 알려 주세요.”

“진짜 몰라. 내공 때문에.”

선천진기가 타고난 뼈라면 내공은 단련한 근육이다.

근육이 크면 클수록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 뼈의 형태를 짐작할 수가 없다.

“아예 못 느끼는 건 아닌데 내공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매해.”

“근데 명동에서 재회했을 때는 저한테 내공이 없었잖아요? 그때는 어땠는데요?”

상림의 집요한 질문에 진유성이 툭 말했다.

“대머리 고자.”

“……갑자기 그 흉측한 단어는 왜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노쇠한 게, 딱 대머리 고자의 선천진기였다.”

상림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잔뜩 튀어나온 입을 실룩거리며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진유성은 제대로 삐진 상림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다가 생각에 잠겼다.

‘선천진기라…….’

확실히 커다란 내공을 가진 무림인들의 선친진기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저 불같은 성정이겠거니, 차가운 성정이겠거니 짐작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틀릴 때가 있었다.

실제 성격은 냉철할지라도 내력이 화기(火氣)의 성격이면 불같다고 오해하는 식으로 말이었다.

하지만…….

과연 진유성이 몇십 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상림의 선천진기를 모를까?

상림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칼이었다.

성격에 화가 많고, 날카롭다는 뜻이 아니다.

평소의 상림은 지금처럼 실없는 놈이다.

장난을 좋아하고, 하루하루 재밌게 살아가는 걸 목표로 삼는.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는 뜨겁고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었으며, 그 칼을 뽑았을 때는 진유성도 허투루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상림이 멸마대에서 생존대를 거쳐 천마신교의 삼인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데 지금은…….

‘불꽃이 꺼지고, 칼은 무뎌졌지.’

선천진기의 성질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물론 내공을 잃은 채로 한국 땅에서 22년간 생활하면서 조금씩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 땅은 무력을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니까.

하지만 선천진기는 그렇게 쉽게 바뀌는 놈이 아니다.

유년기라면 모를까 자아가 확립된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면 아마도…….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의 무(武)는 규칙을 뛰어넘었기에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는 ‘--’의 9할을 잃고, ‘무’의 1할을 잃겠는가.]

[아니면 ‘무’의 9할을 잃고, ‘--’의 1할을 잃겠는가?]

진유성은 천신궁 게이트 안에서 이상한 놈을 이기며 ‘상실의 공간’의 규칙을 뛰어넘었다.

그래서 선택과 보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본래 선택도 보존도 없이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무조건 잃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상림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진유성은 쉽게 그 답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무(武), 그 자체.’

진유성과 신주청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이들이다.

만약 진유성이 없었다면 신주청이 천하제일인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상림은 아니었다.

상림의 무공에 대한 재능은 천재(天才)의 영역이 아닌 수재(秀才)의 영역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림이 고강한 무공을 얻은 것은, 그만큼 그가 무공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추측건대, 상림은 천신궁 게이트에서 뭔가-아마 무공과 관련된-를 잃은 것 같았다.

그게 선천전기에 영향을 줬고.

진유성이 상림의 물음에 괜히 말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타인의 손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었다는 게 반가울 리 없으니까.

상림도 막연히 생각이야 하고 있겠지만, 막연한 추측을 누군가 확인시켜 주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근데 이 자식은 내 배려도 모르고 삐졌단 말이지?’

모르라고 배려를 했지만, 진짜 모르니까 좀 억울했다.

이래서 왼손이 한 선행은 오른손으로 알리라는 선인의 말이 있나 보다.

그 선인은 물론 100년을 넘게 산 진유성이고.

진유성은 차에서 내려 정원을 거닐었다.

‘그럼 내가 지킨 건 뭘까?’

그는 무공의 9할을 잃으면서 ‘--’의 9할을 지켰다.

하지만 ‘--’가 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택지를 듣는 순간 별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를 택했다.

끙끙거리며 한참을 고민했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에이 씨, 몰라.”

결국 진유성은 떠올리는 걸 포기했다.

그게 정말 중요한 선택이었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깨닫게 될 것이고, 끝까지 모른다면 별로 중요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차피 잃어버린 내공이야 게이트 안에서 쌓으면 그만이고.

그때 대문이 열리며 상소윤이 걸어 들어왔다.

“뭐야? 왜 정원에 서 있어?”

“오랜만에 두뇌를 가동하고 있었다.”

“뭔 소리야? 너 학교는 어떻게 됐어? 입학 허가 났어?”

“월요일부터 등교.”

진유성의 대답에 상소윤이 보일 듯 말 듯 볼을 씰룩이다 말했다.

“야, 학교에서 친척이라고 말하지 마. 창피하니까.”

“뭐가 창피해?”

“너 또 오빠라고 우길 거잖아. 이상한 말투 쓰면서.”

“우기다니. 엄연히 내가 오라버니다.”

“웃기고 있네. 열흘 차이 가지고 무슨 오빠야? 그냥 친구라고 해.”

“친구?”

“어, 친구.”

진유성이 낯선 단어에 잠시 상소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진유성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고려에서는 왕자였고, 명나라에서는 노예로 시작해 멸마대주, 생존대주, 그리고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상림이나 신주청을 친우로 여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상소윤은 아니다.

그들은 대등한 관계였다.

진유성의 시선을 받은 상소윤이 인상을 팍 썼다.

“왜, 또 뭔 소리 하려고.”

“친구라…….”

“꼽냐?”

진유성이 환히 웃었다.

“좋다.”

“어?”

“아주 좋다고.”

“어, 음, 그래. 아무튼 사촌이라고 하지 마!”

“알았다.”

“말투도 좀 고치고.”

“노력해 보마. 들어가자.”

그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상림의 머리가 빼꼼 튀어나왔다.

“진유성! 멍청하게 정원에 서 있지 말고 과일이나 먹어라!”

문에 가려서 상소윤을 못 본 상림이 문을 쾅 닫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잔뜩 삐져서 집 안에 유혜연이 있다고 배짱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상림이 게이트에서 잃어버린 건 하늘 같은 교주님에 대한 존경심이 아닐까?

진유성은 상림을 어떻게 혼내 줄까 고민하며 걸음을 옮기다 뒤를 돌아봤다.

상소윤이 가만히 서 있다.

“멀뚱히 뭐해?”

“갈 거야.”

두 사람이 집 안으로 향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