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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7화 (2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7화>

* * *

“유성아.”

“네?”

“그거 술 아니야?”

“아뇨. 쏘맥인데요.”

“……쏘맥이 술이잖아?”

“누군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건 음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영약입니다.”

“여보! 여보!”

유혜연의 목소리에 고기를 굽던 상림이 후다닥 달려와 진유성의 손에 들린 쏘맥을 빼앗았다.

“유성아, 술은 먹으면 안 돼.”

동시에 상림이 진유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중에 드세요, 나중에. 아내 없을 때.]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좋은 것 중 하나는 전음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무협소설들에서는 전음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기술로 묘사하지만, 사실 전음입밀의 기예는 진기수발이 자유로운 이들만 쓸 수 있는 최상급 기술이었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의 매개체를 내공으로 바꾸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상림의 전음을 들은 진유성이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답했다.

[술을 먹으면 안 되나?]

[드라마에서 안 보셨어요? 원래 20세 이하 음주는 불법입니다.]

[왜? 이유가 뭔데?]

[그…….]

막상 이유를 생각하니 잘 모르겠다.

미성년자가 사고 치지 말라고?

정상적인 성장에 방해가 되니까?

뭐가 됐든 진유성에겐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나라 법이 그래요.]

[젠장. 위정자들이란.]

전음을 보낸 진유성이 아쉬운 표정으로 쏘맥이 담긴 잔에서 시선을 돌렸다.

늘 마음대로 사는 것 같아도 진유성은 의외로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진유성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상림이 법을 들먹인 것이었고.

그사이, 진유성을 북한에서 왔다고 믿고 있는 유혜연과 상소윤은 속으로 ‘북한에는 청소년보호법이 없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돼지! 이리 와서 고기나 먹어.”

“어허, 오라버니라고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

“또 헛소리하네.”

진유성이 틱틱거리는 상소윤의 옆에 앉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 사람은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술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진유성에게도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공원을 구경하던 유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요. 밤 되니 꽤 쌀쌀하네.”

“큼큼.”

그 순간, 상림이 진유성에게 사정없이 눈빛을 보내며 헛기침을 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대체 사람들은 이딴 걸 왜 좋아하는 걸까’ 고민하던 진유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약속의 시간이 도래했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소윤이랑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상림이 산에서 했던 부탁이 이것이었다.

“상소윤.”

“어? 왜?”

핸드폰을 보며 커피를 홀짝이던 상소윤이 고개를 들었다.

“가자.”

“어디를?”

“산책.”

이건 또 무슨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인가 고민하던 상소윤은 진유성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아, 왜. 뭐하게.”

“산책 가자고.”

“지금? 추운데?”

“추워?”

진유성이 의자에 걸어 두었던 자신의 옷을 상소윤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이제 안 춥지? 가자.”

“아, 귀찮게…….”

상소윤이 말꼬리를 흐리면서도 진유성의 뒤를 따르자, 상림이 속으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완벽했다.

[자리 비움 서비스는 10만 원이다.]

자본주의에 의거한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진유성과 상소윤이 멀어지자, 상림이 슬쩍 유혜연의 손을 잡았다.

“뭐예요?”

“알면서.”

“흐음? 모르겠는데? 지난번에 분명…….”

“난 다시 태어났어.”

상림의 호언장담과 함께 두 사람은 펜션 안으로 향했다.

상소윤과 함께 바닷가로 향하던 진유성은 멀리서 들리는 상림의 느끼한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지천명(50살)도 넘긴 놈이 하는 짓이 제법 귀여웠다.

“왜 웃어?”

“그냥.”

“근데 너 안 추워?”

상소윤의 물음처럼 11월 말의 날씨는 꽤 추웠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닷바람은 매서웠고.

진유성은 자신에게 롱패딩을 건네주고는 달랑 맨투맨을 하나 입고 있는 상태.

본래 상소윤은 진유성이 춥다고 호들갑을 떨면 놀리면서 패딩을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춥다는 말도 안 한다.

‘간첩은 추위도 안 타나?’

덜 탈 수는 있겠지만 안 타진 않을 것 같다.

상소윤이 어깨에 둘러멘 진유성의 패딩을 돌려주었다.

“빨리 입어. 어디서 센 척이야.”

“너나 입어라. 답답해서 싫으니까.”

“답답하긴 뭐가 답답해. 감기 걸린다니까?”

“안 걸린다.”

“그걸 어떻게 알아?”

“다 아는 수가 있지.”

사실 유혜연이 감기 걸린다고 기겁하지만 않았으면 답답한 패딩 따위 진작 벗어 버렸을 것이었다.

진유성은 한서불침(寒暑不侵 : 한기와 더위가 침입하지 않음)의 경지를 초월해 신체의 상태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빙산(氷山)에서 땀을 흘릴 수 있고, 뜨거운 온천수에서 추위를 느낄 수도 있다.

오히려 패딩처럼 인위적으로 모공의 통풍을 제한하는 옷을 입으면 불편했다.

체온을 올리고 내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 과정이 평소와 달라져서 귀찮았기에 진유성은 끝내 옷을 돌려받지 않았다.

자꾸 상소윤이 토를 달고 번거롭게 굴자 후드를 뒤집어씌우고 지퍼를 턱까지 올려 버렸다.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진유성은 그렇게 바닷가를 거닐며 주변 풍경을 구경했다.

‘바다는 정말 오랜만이군.’

백수십 년 전, 정도맹에 쫓겨 다닐 때 해남으로 도망쳤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바다를 봤고, 바다가 가진 웅혼함에 놀랐다.

삶을 연명하려 나무뿌리까지 캐 먹으며 도망치는 그들 앞에 나타난 거대한 자연은, 인간의 삶이 참으로 하잘것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 정도맹의 일원인 해남파 장문인과 해남삼검이 나타나 물었다.

“왜 우는 겐가?”

“내가 울고 있나?”

“그렇다네.”

“딱히 이유는 없는데…… 바다가 생각보다 커서 눈에 담기 아팠나 보군.”

“처음인가? 바다는?”

“아마도.”

진유성은 그곳이 자신들의 무덤이라고 생각했다.

내공도, 기력도 전부 쇠하고, 남은 것은 오기와 독기뿐.

당시 해남삼검과 해남장문인의 무공을 생각해 보면 오기와 독기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한데, 해남파 장문인은 그냥 그들을 보내 주었다.

“왜 보내 주는 거지?”

“딱히 이유는 없는데…… 자네가 생각보다 커서 눈에 담을 자신이 없었나 보지.”

정확히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정치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해남파가 정도맹에 불만이 있긴 했으리라.

하지만 그 불만이 맹적(盟敵)을 살려 보내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12년 뒤.

진유성은 정도맹을 평정하고 해남파의 장문인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노환으로 사망한 뒤였다.

다음 장문인이 된 해남삼검의 일검에게 그날의 연유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일검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도 모르셨소, 교주? 당신이 그날 울고 있지 않았다는 걸.”

진유성은 아직도 해남파 장문인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얼추 짐작할 뿐.

인생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 속에서 알 수 있는 일들을 붙잡고 있는 것.

그때 상소윤이 소매로 진유성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왜.”

“자크 좀 내려 줘.”

“네가 해.”

“손 안 보이냐?”

상소윤이 몸을 좌우로 흔드니 패딩의 팔 부분이 너풀거렸다.

상소윤은 본인의 패딩을 입고 그 위에 진유성의 패딩을 걸쳤다.

거기서 자크를 턱까지 올려 버렸으니 패딩 안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진유성과 상소윤의 옷 크기 차이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랬고.

진유성이 자크를 내려 주자, 답답했던 상소윤이 푸하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곤 진유성을 힐끔 쳐다보더니 물었다.

“뭔 생각 하냐?”

“옛날 생각.”

“그러니까 뭔 옛날 생각.”

“날 살려 준 이들에 대한 생각.”

잠깐 말이 없던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참 나,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있다, 그런 게.”

“네네, 계시겠지요.”

모르는 척을 한 상소윤이 화제를 돌리려 아무 말이나 꺼냈다.

“그, 뭐, 옛날에 여자 친구는 없었냐?”

“정인이라…….”

“으, 정인이래.”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우연이라면 공교롭게도 아비와 딸이 같은 걸, 같은 날 물었다.

진유성에게 정인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가는 여인이 없었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인벤토리를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직후 가장 먼저 보관한 물건.

“그거 뭐야?”

“칠성(七星).”

“칠성? 팔찌야?”

“어.”

“우와…….”

진유성은 칠성에 엮인 7개의 보석이 그가 온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보석이었다는 걸 굳이 말하진 않았다.

칠성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천잠사와 고래의 심줄을 엮어 특별한 내공을 주입하고, 천 일 동안 끓인 순금에 담그면 천년금사(千年金絲)가 탄생한다.

이런 천년금사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 7개를 줄줄이 엮어 놓은 게 바로 칠성이었다.

“예쁘다…….”

상소윤이 홀린 듯 칠성을 쳐다보았다.

분명 옛날 디자인의 팔찌인데도 사람을 홀릴 만큼 예쁘고, 영롱했다.

“누구 거야?”

“내 거.”

“누가 준 건데? 어머니?”

“……아니, 주혜미.”

대명제국의 세 번째 황제 주혜미.

여황제 주혜미는 진유성을 사무치게 사랑했기에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진유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보석을 만들고자 했다.

“하늘의 유성은 세상을 잠깐 스쳐 지나가건만 당신은 영원한 삶을 사는군요.”

“내 삶도 영원하진 않을 거요. 남들보다 조금 길 뿐.”

“내가 죽은 뒤에도 긴 시간을 살아갈 당신이지만, 이걸 볼 때마다 내 생각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노력해 보겠소.”

“절대 바뀌지 않는 하늘의 보석으로 이름을 지어 봤어요. 마음에 드세요?”

칠성.

북두칠성의 줄임말이었다.

대명제국에서 칠성의 값어치는 하나의 성과 맞먹었다.

아마 진유성이 칠성의 주인이 아니었다면, 칠성을 차지하기 위한 피바람이 중원에 불었을 것이다.

주혜미는 약관(弱冠 : 20살)을 넘기는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진유성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공식석상에서도 늘 대리인을 보냈고.

진유성에게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아무도 모르게 주혜미를 찾아가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사실 진유성도 주혜미에게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주혜미를 선택하는 순간, 간신히 눌러 놓은 주씨 황가의 권력이 무소불위가 되어 되살아날 터였다.

그래서 주혜미에 대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몇 년 동안이나, 우유부단하게.

그러던 어느 날, 주혜미가 죽었다.

비린내 나는 황실 권력의 암투로 인해 이복동생의 손에.

진유성은 교주의 직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분노했고, 처음으로 그 분노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자…….

진유성을 신으로 추대하는 이들이 광기에 젖어 끔찍한 성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분노를 삭인 진유성은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수습은 불가능했고, 정확히 2달 만에 중원에서 주씨 성을 쓰는 사람이 모두 사라졌다.

황족뿐만 아니라, 모든 주씨 성을 가진 이들이 죽은 것이다.

진유성은 그 뒤로 절대 타인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더욱 신으로…….

“야.”

“왜 그러느냐.”

“무슨 이혼한 전부인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냐?”

“내가 그랬나?”

“어. 완전 아재 같았어.”

진유성이 피식 웃으며 칠성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상소윤의 눈에는 주머니에 넣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너, 뭐. 요즘 지내는 건 괜찮냐? 엄마가 궁금해 하던데.”

“아주 좋다.”

“뭐가 그렇게 좋은데?”

진유성이 빙긋 웃었다.

모든 게 좋다.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없는 것도 좋았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상림을 다시 만난 것도 좋았고, 상림 말고도 감정적으로 교류할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다.

“다 좋다. 외삼촌도, 외숙모도, 너도.”

“…….”

진유성은 문득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옛날 생각이 많이 났는지를 깨달았다.

떠나보내 줄 때가 됐으니까.

과거의 것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여기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싶으니까.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자.”

“벌써 가게?”

“춥다.”

“그치? 춥지? 옷 가져가.”

“됐다.”

진유성은 상소윤과 함께 펜션으로 돌아갔다.

과거의 것들을 겨울 바다에 묻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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