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5화>
임현상 부소장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몽타주였다.
“이 얼굴이 노숙자 기억 속의 얼굴과 일치합니까?”
몽타주는 진유성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것이었다.
CCTV에 얼굴이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얼굴을 알아낼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몽타주 속의 얼굴은 실제 얼굴이 아닌 확률이 높았다.
상식적으로 마음먹고 정체를 숨긴 이가 맨얼굴을 드러낼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정체에 대한 단서가 전무한 상황에서는 바꾼 얼굴조차도 소중한 증거였다.
임현상 부소장의 기대가 담긴 물음에 아멜라 메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억 공유의 스킬로 읽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왜곡된 기억이니까요.”
“왜곡됐다니요?”
“부소장님의 얼굴을 본 백 명의 사람들에게 기억 공유 스킬을 쓴다면, 백 개의 얼굴이 나옵니다.”
사람이 타인을 인식하는 방법은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게 아멜라 메건의 설명이었다.
“약간의 인식 차이가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아주 큰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한지후 소장이 물었다.
“닮은 구석도 없습니까?”
“노숙자의 기억 속에 있는 타겟은 옷과 입이 부각되어 있었습니다. 옷차림과 말투에 주목했다는 거지요. 이목구비는 얼추 비슷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되진 못할 겁니다.”
“흠……. 특이한 옷에 시선을 주고, 동향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럴 수 있겠군요.”
한지후 소장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몽타주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진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이용하려면 SG를 통해 한국 언론에 뿌려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SG 내의 친 국가 계파에서 먼저 접촉해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 내에서의 인프라는 친 국가 계파가 친 SG 파보다 더 촘촘했다.
그러므로 서울역 게이트의 타겟에게는 무조건 친 SG 계파에서 먼저 은밀하게 접근해야 했다.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면 제거해야 하고, 사정이 있어 몸을 숨긴 인물이라면 포섭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아멜라 메건에게 확인하려고 했지만, 기억 공유 스킬에 이런 단점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아멜라 메건은 이들에게 한 가지 거짓말을 했다.
기억 공유 스킬이 개인화된 장면을 보여 주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알아볼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생겼군.’
아멜라 메건이 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한 가지 의심 탓이었다.
이태원에서 자신의 정신 방벽을 무력화시켰던 모종의 각성자.
그자의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몽타주 속 얼굴과 흐릿하게나마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동양인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으니 확신할 순 없지만, 조심해야 했다.
이태원에서 그자에게 인류의 미래가 걸린 ‘패스워드’를 강탈당했으니까.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진심입니다.”
아멜라 메건은 그 뒤로 한지후 소장과 몇 마디를 나누다가 사후 처리를 마치고 사라졌다.
사후 처리란 권경재에게 금제를 거는 것이었다.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서울역 타겟에 대한 이야기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경재가 잠에 빠진 얼굴로 조용히 호텔에서 나갔다.
그는 평상시에 거주하는 공간으로 돌아가서 정신을 차리고는 화들짝 놀랄 것이었다. 자신의 주머니에 왜 이렇게 큰돈이 들어 있는지 몰라서.
호텔을 나서는 권경재의 뒷모습을 본 임현상 부소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입맛이 쓰군요.”
“어쩔 수 없지.”
본래 SG 소속의 정신계 각성자들은 일반 시민에게 스킬을 사용해서는 안 됐다.
한지후 소장의 묵인하에 벌어진 아멜라 메건의 행동은 사실상 인권 유린이었다.
SG는 분명히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단체였지만, 그 수단 자체가 늘 평화로운 건 아니었고, 손익에 자유롭지도 못했다.
씁쓸함을 털어 버리려는 듯 임현상 부소장이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경산 게이트를 클리어한 각성자는 서울역의 타겟이 아닐 확률이 높겠군요.”
“경산을 드나들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체크한 게 확실하다면.”
한지후 소장과 임현상 부소장은 경산 게이트를 클리어한 미지의 인물이 서울역 타겟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기상으로 공교롭지 않은가.
서울역 비징후 게이트가 해결되고, 몇 달 뒤에 폭파 예정이던 경산 게이트가 갑자기 클리어되다니.
의심을 갖게 된 한지후와 임현상은 무지막지한 일을 벌였다.
기차, 버스, 고속도로, 국도, 톨게이트 등등.
경산으로 통하는 모든 진입로 CCTV에 잡힌 외지인 이용객을 전수 조사한 것이었다.
그것도 게이트 클리어 전후 보름, 총 한 달간의 기록을!
완벽에 가까운 주민 등록 시스템과 차량 등록 시스템을 가진 한국에서나 가능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생을 했음에도 경산 게이트 클리어 각성자로 의심되는 이는 없었다.
한지후 소장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나.’
본래 경산에 살던 각성자가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둘.’
외지인이 정체를 완벽하게 숨겼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 보면 전자였다. 경산 출신의 각성자에 의한 클리어.
아무리 뒤져도 외부에서 들어온 각성자가 없으니까 이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한지후 소장은 자꾸 후자에 시선이 갔다.
근거는 없지만, 그의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서울역 게이트와 경산 게이트를 클리어한 이가 같은 인물이라는 본능적인 감각이.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각성자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글쎄요. F급 게이트라면 50명은 있을 거고 D급 게이트라면…… 모르겠군요.”
“흠.”
“경산 게이트와 서울역 게이트를 클리어한 이가 같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심증으로는.”
“하지만 소장님, 경산 게이트를 혼자 클리어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그로가 먹는 F급 게이트는 셋 이상이라면 난이도가 확 내려갑니다.”
“아냐. 혼자일 거야. 둘 이상이라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
혼자 움직이는 것과 둘 이상이 움직이는 것은 남기는 흔적부터 달랐다.
첩보원들이 발각되는 이유 1순위도 아군과 접촉해서였다.
곰곰이 고민하던 한지후 소장이 입을 열었다.
“서울역 타겟이 경산 게이트를 클리어했다고 가정하면 문제가 커진다.”
무거워진 표정의 한지후 소장이 말을 이었다.
“만약 그가 역정보를 주려던 것이라면? 자신이 호남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경상도로 향한 것이라면?”
“그 말씀은……!”
“그래. 우리가 노숙자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타겟이 사투리를 구사한 것 자체가 일부러 흘리는 ‘미끼 정보’였을 경우.
호남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미끼 정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오히려 경상도민인 척 역정보를 준 것이다.
의심스러운 반대의 정보를 줌으로써 미끼 정보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
정보전의 최상위 기술이다.
한지후 소장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떤 방면으로 생각해도 완벽한 위장이 가능했다.
만약 서울역 타겟과 경산 게이트가 동일 인물에 의해 클리어됐다면…….
‘그는 지독하게 치밀하고, 지독하게 완벽한 자이리라.’
* * *
“가격을 좀 올려야겠다.”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주먹을 꽉 쥐었다.
지독하다.
진짜 지독한 사람이다.
“아니, 교주님!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심산유곡이라고 해서 공기가 맑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잖아? 이 경우에는 쇼당이 안 붙지.”
“……쇼당이 뭔지나 아십니까?”
“영화에서 봤는데 협상이 안 통한다, 뭐 그런 뜻 아니야?”
“눈치는 빨라 가지고.”
“내가 그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가 뭔지 알아?”
상림은 왠지 진유성의 이어질 대사를 알 것만 같았다.
“……묻고 더블로 가?”
“비슷해.”
“그럼요?”
“널 묻어 버리기 전에 더블로 가자.”
“…….”
살짝 겁을 먹긴 했지만, 진기도인 서비스가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오른 것에 울컥한 상림이 따지려는데, 휴게소 편의점에 들어갔던 유혜연과 상소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양손 가득 뭔갈 들고 있는 게 먹을 걸 사 온 모양이었다.
“자, 유성아. 이거 좋아하지?”
“감사합니다.”
진유성을 먼저 챙기는 유혜연을 본 상림은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 줄도 모르고!
“나는!”
“왜 없겠어요. 여기 당신이 좋아하는 빠다코코넛.”
“어, 음. 고마워.”
그 모습을 보던 상소윤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보면 아빠도 완전 애였다.
그렇게 3인 가족과 1인 교주, 남들이 보면 영락없는 4인 가족이 차에 올라탔다.
“여보, 속초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이대로 안 막히면 30분이면 도착할 거 같은데?”
“생각보다 금방 왔네요?”
그들의 목적지는 강원도 속초에 있는 <속초생태공원>이었다.
속초는 게이트 폭발 이후 경제가 살아난 대표적인 곳이었다.
게이트 사태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쯤, 속초에서 E급 게이트 발생이 예고되었다.
문제는 동시에 3개의 게이트가 예고되었다는 점이었다.
벤 다이어그램을 그리듯 속초 바닷가와 산맥에 탄생한 게이트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세쌍둥이 게이트였다.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3개의 게이트가 어떤 연쇄 작용을 일으킬지 모르니 클리어하자는 것과 하나라도 실패하면 모든 각성자가 죽을 테니 일단 내버려 두자는 것.
결과적으로 후자의 방안이 채택됐다.
게이트 영역이 속초시와는 거리가 있어서 선택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대피한 이후 세쌍둥이 게이트가 일제히 폭주했다.
그 결과는 꽤 긍정적이었다.
게이트 폭발의 잔해를 거름 삼아 자연 생태계가 완전히 살아났고, 아마존이나 DMZ에서나 볼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자연 환경이 되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폭발로 인한 잔해들을 정리한 뒤, 폭파 지역 일대를 생태 공원으로 만들고 일부를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후, 인세의 것이 아닌 듯한 속초 생태공원의 자연 환경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강원도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이상하군.’
하지만 진유성은 속초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속초는 분명 때 묻지 않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속초에 가까워질수록 미세먼지도 줄어들고 대기 중에 불순물도 적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천지간의 기운도 맑아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축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탁기의 농도는 여전했다.
‘환경오염 탓이 아니었군.’
지구에서 무공이 발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았다.
이 세계의 기운은 응집시켜 몸에 쌓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유성이 생사현관 타통에 200만 원을 부른 것이기도 했다.
이런 탁기 속에서는 생사현관을 타통하는 게 오히려 위험했다.
활짝 열린 임맥과 독맥에 오히려 탁기가 내려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300만 원을 부를 걸 그랬나?’
그런 고민을 하던 진유성이 마음을 착하게 먹기로 했다.
상림은 진유성이 가진 게이트 부산물을 팔기 위해서 암흑상인, 이 세계에선 브로커라 불리는 이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나름 고생을 하는 모양이니 한 번쯤은 자비를 베풀어도 될 터였다.
진유성이 자신의 자비로움에 감탄하고 있을 때 상소윤이 불렀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너 다음 주부터 학교 가지?”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아, 또! 너 진짜 그러다가 학교에서 왕따당한다?”
진유성이 훗 웃으며 말했다.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네.”
“미쳤어. 넌 진짜 미친놈이야.”
상소윤의 중얼거림에 유혜연이 뒷좌석을 쳐다보며 눈을 흘겼다.
“상소윤, 무슨 그런 험한 말을 써?”
“아, 엄마! 엄마도 들었잖아. 얘 이러다가 애들한테 욕먹고 왕따당한다니까?”
“욕은 먹겠지만 왕따는 안 당해.”
묘한 확신에 찬 어조에 상소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잘생겼잖아. 여자애들이 잘 챙겨 줄 거야.”
“……뭐가 잘생겨!”
“대답이 느리다?”
“어이가 없어서 그래, 어이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상소윤은 내심 엄마의 말에 공감했다.
일단 진유성은 싸움만큼 잘할 것이다.
겉보기엔 못할 것 같지만 어쨌든 간첩이지 않은가.
호신술 정도는 익혔으리라.
‘얼굴도 뭐…… 저 정도면 무난하지. 잘생긴 건 절대 아니지만.’
진유성을 화제로 떠드는 모녀를 보고 있던 상림이 운전대를 꽉 부여잡았다.
‘으으!’
누군 눈이 빠지게 운전하고 있는데, 100살도 넘은 노괴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나 억울했다!
분노한 상림이 감정을 담아 액셀을 밟자 자동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속력 좀 줄여요. 카메라 찍혀.”
“찍힐 테면 찍히라지!”
그렇게 영락없는 4인 가족, 실제로는 3인 가족과 1인 노괴를 태운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