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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4화 (2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4화>

Quest 5. 떠나간 천마님

-송림 저수지 게이트 폭주 방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박태길 경산시 시장이 밤샘 조사 끝에 대부분의 혐의를 시인했습니다. 이에 국회는…….

-SG 한국 본부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게이트를 사적 도구로 이용한 참혹한 행태에…….

-박태길 시장과 유착한 혐의를 받고 있는 대림 건설의 대표 장 모 씨가 검찰 출두…….

TV를 보고 있던 진유성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권선징악이군.”

“그러게요.”

“이제 저 자식은 옥사에 갇히는 건가?”

“그럴 것 같아요. 돌아가는 분위기가 시장직 사퇴로 끝나진 않겠어요.”

“탈옥하면 내가 잡으러 가야지.”

“에이, 무슨 탈옥입니까. 영화도 아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상림은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진유성이 준 자료가 경산시장에게 별다른 타격을 못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해도, 정치인들끼리 비호하면 공론화되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서 자료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경산시장에게는 아무 타격도 없는데, 그들의 행적이 역추적 당할 위험만 무릅쓰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상림은 진유성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한번 해 봐, 이 자식아.”

결국, 상림은 익명으로 언론사에 자료를 뿌렸다.

그 결과, 놀랍게도 경산시장의 잘못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아무래도 훔쳐 온 자료 속에 등장하는 ‘윗선’이 경산시장을 버린 것 같았다.

이유가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진유성의 행동이 옳았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중원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았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하는 일이어도 해야 한다면 끝까지 밀어붙였다.

물론 사람들의 예상처럼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일들조차 시간이 흐르면 ‘한번 해 보길 잘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경험이 결국은 도움이 됐으니까.

생각해 보면 진유성은 참으로 이상적인 리더였다.

천마신교가 중원을 완전히 지배하고는 살짝 맛이 가서 그렇지.

“너 무슨 생각하냐? 얼굴이 심히 불경해 보이는데.”

맛이 가도 눈치는 귀신같다.

“회사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막 찔러 보지 마세요.”

“흠…….”

“김운철 이야기는 끝까지 안 나오네요. 그 친구 유서에 윗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유서는 죽음으로 완성되는 물건이잖아. 안 죽었으니 신빙성이 떨어지지.”

상림이 턱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폭주 예정이었던 게이트가 클리어된 게 바로 이슈가 되는군요. 인터넷에는 벌써 서울역이랑 연관 짓는 사람도 있어요. 음모론으로 취급받긴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어. 안 걸릴 테니까.”

“CCTV에 교주님 얼굴이 안 나온다고 해도, 빛무리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을걸요.”

진유성은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내공을 상시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카메라로 찍으면 얼굴에 빛 같은 노이즈가 꼈다.

영상 매체에서 얼굴을 숨길 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빛무리로 얼굴이 가려지는 것 자체가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얼굴이 가려지는 사람을 역추적하다 보면 정체가 발각될 수도 있고.

그러나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특히 조심히 움직였어. 적어도 경산 안에선 CCTV에 찍힌 적이 한 번도 없을 거야.”

“자동차 블랙박스도요?”

“어.”

“어떻게 CCTV를 전부 피해요? 사람처럼 기척을 내는 것도 아닌데.”

“소리가 달라.”

“네?”

“CCTV들이 내는 특유의 소리가 있다고.”

“그럼 다행이네요.”

상림이 아는 진유성이라면 정말 경산 내에서 CCTV에 찍히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경산까지 가는 기차에도 CCTV가 있을 거 같다.

“기차에서는 내공 운용을 안 하셨어요?”

“기차? 무슨 기차?”

“경산까지 기차타고 가신 거 아니에요?”

“아닌데? 뛰어갔는데?”

“네? 경산까지 뛰었다고요?”

“어. 산 좀 타고 뛰니까 금방 갔어. 한 시진 정도 걸렸나?”

상림이 핸드폰을 꺼내서 서울에서 경산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300㎞.

한 시진이 2시간이니, 대충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렸다는 뜻이다.

직선거리로 돌파할 걸 생각하면 자동차보다 낫다.

낫긴 나은데…….

“아니, 대체 뭐 하러 그 먼 길을 뛰어가셨어요?”

“멀긴 뭐가 멀어? 하북성 뛰어다니던 거 생각하면 가깝던데.”

“…….”

할 말이 없다.

생각해 보면 자금성이 있던 하북성이 한반도 면적이랑 비슷했다.

북한을 빼고 대한민국만 생각하면 하북성의 절반도 안 된다.

‘와, 그러고 보니 옛날엔 하북성에서 안휘성까지 걸어 다녔었는데.’

새삼 자신의 행동력(?)에 감탄하면 상림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제가 교통비하라고 십만 원 드렸잖아요?”

“어. 왜?”

“교통비가 안 나갔으니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 아끼려고 뛰어갔잖아. 그러니까 내 거지.”

“돈 모아서 뭐하시게요.”

“네가 말을 사 준다고 했으니까 난 헬리콥터를 사야지.”

“……아무튼 게이트를 클리어해서 내공을 모으는 건 잠시 중단해야 할 거 같습니다.”

“갑자기?”

“의심 살 일은 아예 안 하는 게 좋죠.”

“난 네가 말 바꾸는 게 더 의심되는데.”

“아, 참. 교주님 아내가 조만간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던데요?”

“엉? 가족 여행?”

“네. 교주님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가자고 하더군요.”

“아, 그래. 잘됐다. 이왕 여행 갈 거면 심산유곡으로 가자.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갑자기 심산유곡은 왜요?”

“네 생사현관(生死玄關)을 타통할 때가 됐으니까.”

생사현관이란 임맥과 독맥을 의미했다.

임독양맥을 타통하면 백회혈에서 회음혈까지 진기 수발에 막힘이 없고, 천지의 기운을 받아들여 축기 효율이 극대화됐다.

바야흐로 절정의 고지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셈이었다.

하지만 임독양맥을 생사현관(생과 사의 관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타통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작은 실수가 있으면 주화입마에 걸리고, 큰 실수가 있으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상림은 한번 밟아 본 경지라서 위험성이 적었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그……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직 내공을 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위험하지. 그것도 엄청나게.”

“그럼 좀…….”

“백만 원.”

“네?”

“단돈 백만 원에 생사현관 타통을 위한 진기도인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

아무래도 교주님은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빨리 적응한 것 같다.

* * *

SG 서울지부의 한지후 소장과 임현상 부소장이 은밀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호텔 주차장에 의심 가는 이는 없는 듯했다.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둘은 직원용 계단을 통해 주차장에서 곧바로 2층으로 향했다.

영화에서는 비밀스러운 만남을 위해 호텔 최상층을 이용하지만, 사실 가장 안전한 곳은 2층이다.

이동 거리가 짧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 접근하기도 편하니까.

2층에 도착한 둘은 가장 가까운 방 안으로 들어갔고, 미리 도착해 있던 남자와 인사를 나눴다.

꾀죄죄한 모습의 남자는 약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도, 돈은 확실한 거죠잉?”

지독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남자는, 서울역 노숙자 권경재였다.

겁에 질린 남자의 모습에 한지후 소장이 말했다.

“걱정 마시죠. 이래 봬도 저희 공무원입니다.”

“근디 뭔다고 이래 비밀스럽당가…….”

“그걸 알고 싶으면 더 비밀스러워야 할 텐데, 괜찮습니까?”

임현상 부소장의 협박에 가까운 말에 권경재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이었다.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온 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권경재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그는 방문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대로 털썩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권경재를 재운 방문인이 한지후 소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Mr. 한.”

한지후 소장도 방문인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사실 좀 신기했다.

뉴스나 잡지에서 보던 인물이 눈앞에 서 있는 게.

호텔 방으로 들어온 것은 유명한 정신계 각성자이자 하이 랭커인 아멜라 메건이었다.

* * *

SG는 UN 산하의 기관이지만, SG를 운용하는 비용의 대부분은 지부가 설립된 해당 국가에서 나왔다.

UN이 세계적인 단체라고 해도 지구 전체의 방범 비용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가는 돈을 내고, SG는 게이트에 대한 안전을 제공했다.

그러니 국가와 SG의 관계는 기업과 방범 업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에는 이 같은 관계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전 세계의 각성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한정된 인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지도부가 필요했다.

중국에 놀고 있는 각성자가 있다면 한국의 급한 게이트에 투입하는 식으로 조율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게이트 사태가 안정화되고, 점차 각성자의 수가 늘어나자 국가들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각성자를 고용해, 대한민국의 세금으로, 대한민국을 보호한다.

한데 각성자 소속은 SG이며, 각성자 파견인사권을 SG가 독점한다?

뭔가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이때부터 국가들은 각성자 소유권을 가져오기 위해 많은 정치적 행동을 벌였다.

그래서 현재는 각성자에 대한 소유 지분이 5 : 5로 맞춰졌다.

대한민국 국적의 각성자가 탄생하면 각성자를 운용할 권리를 SG와 국가가 나눠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SG도, 국가도 이대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 6 : 4의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G 내부에서도 파벌이 나뉠 수밖에 없었다.

친 SG 계파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SG가 파견인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이야 게이트 사태가 안정화됐지만 변화가 일어나 다시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그 경우를 대비하자는 말이었다.

친 국가 계파는 비용을 지불하는 국가가 파견인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G 서울지부의 한지후 소장과 임현상 부소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친 SG 인사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울역 게이트의 왕후를 쫓으면서도 중요한 비밀은 공유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서는 서울역의 노숙자 권경재의 제보.

‘타겟이 호남 토박이일 것이다.’

하지만 노숙자의 일방적인 정보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

정신계 각성자를 통해 감정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SG 본부를 통해 정신계 각성자를 수배했는데, 본부에서 마침 한국에 있는 각성자 한 명을 추천해 주었다.

그 인물이 바로 미국 내 친 SG 계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멜라 메건이었다.

* * *

아멜라 메건이 잠에 빠진 권경재를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한지후 소장과 임현상 부소장은 영어에 능통했기에 그들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남자인가요?”

“맞습니다.”

“확인해 볼까요?”

아멜라 메건이 권경재를 깨웠다.

곧 권경재가 잠에서 깨어났지만,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게 아닌 반수면 상태였다.

[사이코 메트리]

[기억 공유]

[진실의 저울]

연거푸 스킬을 쏟아부은 아멜라 메건이 권경재의 기억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아멜라 메건이 뒤로 물러나며 크게 심호흡했다.

“끝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남자가 했던 증언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가 속은 게 아니라면 믿어도 좋습니다.”

한지후와 임현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써 서울역 게이트를 해결하고 사라진 타겟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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