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화>
진유성이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사이, 고등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눈에서 번쩍번쩍 빛을 뿜는 아이언맨의 자태가 너무 황당해서였다.
게다가…….
‘저 자식, 날아오지 않았나?’
어두운 골목길이라서 확실히는 못 봤지만, 분명 대로 쪽에서 이쪽으로 휙 날아온 것 같다.
착지할 때 난 소리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친구의 장난이거나, 인터넷 방송 몰카라고 보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 자신들의 폭력 행위가 영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야, 몰카 아니야?”
“씨발, 어쩌지?”
다들 생각은 비슷한 듯했다.
고등학생들은 바닥에 쓰러진, 지금껏 폭력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이를 몸으로 가렸다.
그사이, 가장 성격이 급한 놈이 진유성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아이언맨!”
일단 저 병신 같은 아이언맨 가면을 벗기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그 순간.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가면으로 뻗어 오던 손을 금나수로 낚아챈 진유성이 놈의 오른팔을 부러트려 버렸다.
오른팔이 기이한 각도로 덜렁이고, 팔꿈치 부근에 뼈가 튀어나왔다.
어찌나 빨리 부러트렸는지, 피가 터지는 건 그다음이었다.
“미, 미친!”
“씨발!”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현실성 없는 광경에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그사이 진유성은 팔이 부러진 무뢰배를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자를까?’
지금까지 이들이 나누는 대화로 비춰 보건대, 이놈들은 갱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욕하고 때리는 것을 넘어서, 피해자 부모님에 대한 모욕까지 섞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사이, 고등학생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상대가 얼굴을 가렸다는 사실 자체가 더한 공포로 다가왔다.
증거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으니까.
“사, 살려 주세요!”
“저, 저희 잘못한 거 없어요!”
진유성이 폭력에 노출되어 쓰러진 학생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아이가 너희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려 주면.”
“그……!”
“선생한테……!”
그러나 머뭇거릴 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없으니까.
마음의 결정을 내린 진유성이 번개처럼 움직여 무뢰배들의 오른팔을 전부 부러트렸다.
팔을 자르진 않겠지만, 이들은 평생 오른팔로 누군가를 때릴 수 없을 터였다.
어느 정도 이상의 힘이 들어가지 않게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밥 먹는 것에는 지장이 없을 거다.
“흠.”
진유성은 눈물을 흘리고 벌벌 떨고 있는 무뢰배들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들이 근성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피해자에게 보복을 가할까 걱정이 된다.
잠시 고민하던 진유성이 허공섭물의 묘로 피해자를 일으켰다.
그러자 기절한 척을 하던 피해자가 벌벌 떨었다.
중간에 정신을 차려서 진유성의 행각을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떨지 마라.”
진유성이 피해자를 무뢰배들 눈앞에 세웠다.
내공을 움직였다.
두근.
두근.
진유성의 내공이 무뢰배들의 심장을 옥죄고, 두뇌에 공포를 각인한다.
일종의 내공을 이용한 암시였는데, 암시가 발동되는 기폭제는 피해자의 얼굴이다.
이제 놈들은 다시는 피해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리라.
“강자가 되어라.”
진유성이 떨고 있는 피해자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훌쩍 자리를 벗어났다.
“후아!”
가면을 벗으니 상쾌하다.
손에 든 가면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진유성이 멈칫했다.
“첫 협객행의 기념으로 챙겨 가야겠군.”
그러고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상림의 집으로 향했다.
* * *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 소파에 유혜연이 앉아 있었고, 상림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별생각 없이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유혜연이 그를 붙잡았다.
“유성아.”
“네.”
“너무 늦게 온 거 아니니? 외숙모가 내내 걱정했잖아.”
유혜연의 말에 진유성이 거실의 시계를 힐끔 보았다.
휴대전화도, 시계도 없어서 몰랐는데 어느덧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벌써 자시(子時 : 오후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로군.’
물론 그가 정말 시간을 몰랐던 건 아니다.
진유성은 음기와 양기의 변화를 감지해서 십이 간지를 꽤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몰랐다기보다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문득 진유성은 누군가에게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듣는 게 아주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귀찮다라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진유성은 긴 세월 동안 중원을 일통한 교주로 살아왔고, 말년에는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진유성이라고 어찌 인간적인 고민이 없고, 감정이 없었겠는가.
단지 누군가에게 보일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유혜연의 별것 아닌 걱정이 진유성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주의할게요.”
“그래. 밖에서 별일 없었지?”
“네. 서울의 밤은 환하고 안전하니까요.”
진유성 딴에는 유혜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유혜연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북의 차갑고 냉혹한 사회에서 살아왔을 진유성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동안 이 소년은 남파공작원으로서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왔을까?
아마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었다.
유혜연이 소파에서 일어나 진유성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진유성을 꼭 껴안았다.
“어렵거나 힘든 거 있으면 외숙모한테 얘기하고. 알겠지?”
“음, 네.”
진유성이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포옹을 푼 유혜연이 진유성의 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그건 뭐니? 아이언맨 헬멧이네.”
“샀어요.”
“이걸?”
“네.”
유혜연은 피규어 같은 물건에 무지했지만, 진유성의 손에 들린 헬멧은 딱 봐도 보통 정성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다.
싸구려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값이 상당히 나갈 것 같다.
‘남편이 사 준 건가? 아니면 용돈을 많이 줬나?’
유혜연은 더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진유성이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서재에서 나오는 상소윤이 보였다.
“어, 뭐. 왔냐?”
“그래.”
“늦게 왔네. 뭐 하다 왔냐? 친구도 없는 게.”
“놀았다.”
“뻥치시네. 야, 다음에 나갈 때 말해. 데리고 나가 줄게. 네가 뭐 놀 줄은 알겠냐?”
“일 없다.”
진유성이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상소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엄마가 너 때문에 계속 걱정하고 있었거든!”
“뵙고 오는 길이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진유성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어머니께 잘해라. 좋은 분이시다.”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하셔.”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하였다.”
“수, 뭐?”
“나무는 머물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
“뭐든지 때가 있는 게다.”
방으로 들어가는 진유성을 보며 상소윤은 가슴이 덜컥했다.
진유성이 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부모님은 돌아가셨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혼자 정착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을 할 때면 생각을 좀 하고 해라! 상소윤! 이 모질아!’
너나 잘하라는 말은,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는 이에게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낀 상소윤이 미안함에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 * *
방으로 들어온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문밖에서 괴로워하는 상소윤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본인은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매사에 틱틱거려도 본성은 착하군.’
진유성이 한순간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상소윤의 생각처럼 괴로워하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이 역도들의 손에 돌아가신 지 어느덧 100년도 더 지났다.
그리움은 있지만, 괴로움은 없다.
‘하늘에서 편히 계시겠지.’
그렇게 생각한 진유성이 가져온 가면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또 뭘 잘못 눌렀는지, 가면이 이상한 소리를 토해 낸다.
-Good morning. It’s 7A.M. The weather in Malibu is 72degrees with scattered clouds.
자세히 들어 보니 조금 전에 습득했던 색목인의 언어였다.
‘날씨를 알려 주는 건가? 희한한 기물이군.’
진유성은 몰랐지만, 헬멧의 내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영화 속 인공지능 캐릭터의 대사였다.
진유성이 기억을 더듬었다.
이 가면을 본 이들이 하나같이 ‘아이언맨’이란 단어를 꺼냈었다.
이 역시 색목인의 단어였다.
‘강철 남자라.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뜻하는 단어인가?’
호기심을 느낀 진유성이 컴퓨터로 낯선 단어를 검색하니, 이런저런 사진과 정보가 나왔다.
“뭔 소리야?”
하지만 진유성이 이해하기는 힘든 내용들이었다.
그때 진유성이 내공을 움직여 방문을 열었다.
스윽 열린 문틈으로 상림이 쭈뼛거리면서 들어왔다.
“술 마셨냐?”
“아, 예.”
“잘하는 짓이다. 이제 막 혈도의 불순물을 걷어 놨더니. 쯧쯧.”
내공의 고수가 되면 주정(酒精)으로 인해 쌓인 화기(火氣)를 스스로 씻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내공을 쌓기 시작한 초심자들에게 화기란 탁기보다 위험한 것이었다.
상림이 과거에 어떤 경지를 밟았는지와 무관하게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초심자와 다름없었다.
진유성이 혀를 차자 상림이 발끈했다.
그가 왜 술을 마셨는가.
진유성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동생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냥 돌려보내기가 미안해서였다.
“그야 교주님이 홍대에서 사고를 치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게 뭐?”
“제가 수습한다고 동생들 데려가서…….”
상림이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그러자 진유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 정도 일로 각성자라고 의심받는단 말이야?”
“고작이요?”
“나름 조심했단 말이야. 내공도 전혀 안 썼고.”
“하지만 교주님은 심어행의 경지를 넘어서 의념만으로 자연의 기운이 움직이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상림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진유성에게 각성자로 보이는 걸 조심해 달라고 했는데, 왜 이런 사고를 쳤나 했다.
알고 보니 진유성은 자신의 내공만 쓰지 않으면 각성자로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교주님이 내공을 썼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남들한테 각성자로 보이는 게 문제죠.”
“…….”
“그리고 어디 사람들이 교주님의 내공 기척이나 읽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잘 못 읽었겠던 걸.”
확실히 진유성은 일반인들의 감성과 많이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근 백 년간 떠받들려 살다가 새로운 세상에 와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상림의 말을 듣고 있던 진유성이 뚱한 표정으로 툭 뱉었다.
“그래서 나한테 욕했냐? 개자식이 따로 없다고?”
상림이 움찔했다.
진유성 때문에 개고생을 했지만 생색도 못 내고 있던 게 이것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순간 억울한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이번엔 나한테도 명분이 있다!
교주님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한 게 사실이니까!
상림이 굳은 각오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상림은 당황했다.
분명 자신은 진유성에게 ‘너무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조건반사처럼 사과부터 나갔다.
‘크윽.’
상림이 분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힘이 없어도 더 이상 고개 숙인 남자가 될 수는 없다!
그때였다.
“그래, 뭐. 너도 고생했으니.”
“예, 예?”
“내 실수 때문에 네가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없던 일로 치자고.”
평소에 착하던 이가 갑자기 나쁘게 행동하면 원래 화날 것보다 더욱 화가 난다.
반대로 평소에 나쁘던 이가 갑자기 착하게 행동한다면?
엄청 감동적이다.
지금의 상림이 그랬다.
“교, 교주님.”
“왜, 인마.”
상림은 진유성의 너그러움에 큰 감동을 받았다.
시큰둥한 말투조차 관대해 보인다.
‘내가 사과해서 그런 거야! 사과하길 잘했어!’
그렇게 상림은 오늘도 진유성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