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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6화 (1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화>

* * *

다음 날.

진유성은 점심을 먹고 뒹굴거리다가 집을 나섰다.

상림의 말처럼 요즘 너무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았다.

그동안은 컴퓨터란 기물이 흥미로워서 밖으로 나갈 필요를 못 느꼈지만, 막상 나오니 여전히 신기한 것들투성이다.

‘저 유리는 정말 신기하군.’

진유성이 살던 명나라에도 유리가 있었지만, 저렇게 맑고 투명하지는 않았다.

진유성은 번쩍번쩍하는 거리를 구경하며 길을 거닐었다.

그가 있는 곳은 홍대였다.

상림이 추천해 준 곳이었는데, 토요일 오후 4시의 홍대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진유성은 하릴없이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노상 음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항주에서는 규화계를 먹어야 하고, 사천에서는 어항육사를 먹어야 하니, 홍대에도 뭔가 음식이 있을 것이었다.

‘홍대(弘大 : 넓고 큼)라. 이름 한번 거창하군.’

진유성이 선택한 거리 음식은 닭꼬치였다.

거무튀튀하고 끈적거리는 게 맛있을까 싶었지만, 냄새가 괜찮아서 맛을 봤는데…….

‘대, 대체 무슨 맛이란 말인가!’

달짝지근하면서 고소한 맛이 천상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서울역에서 먹어 봤던 소주와 함께 먹는다면 너무 맛있어서 이승을 하직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주인장!”

“엉?”

“스무 개 담아 주시오!”

노점 주인이 신나서 닭꼬치를 포장하는 사이, 진유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뒤편에서 뭔가를 두드리고 있는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쾅!

오락실 앞의 펀치 머신을 치고 있는 체대 학생들이었다.

“아, 까비.”

“950 넘기기가 생각보다 어려운데?”

“비켜 봐.”

펀치 머신 옆에는 950점이 넘을 시 가져갈 수 있는 물품 목록이 붙어 있었다.

체대생들은 한동안 펀치 머신을 두들겼지만, 그 누구도 900점을 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잠시 뒤, 닭꼬치를 한 움큼 들고 우물거리는 진유성이 펀치 머신 앞에 섰다.

진유성은 희한하게 생긴 기물이 주먹질의 충격량을 측정해 점수를 매긴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점수가 일정 이상 나오면 물건을 하나 가져갈 수 있다는 것도.

물건의 목록을 보니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지만, 전리품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때리면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천 원이 어떻게 생겼더라…….”

진유성은 닭꼬치를 사고 남은 잔돈에서 천 원짜리를 찾아 펀치 머신에 투입했다.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돈을 먹은 펀치 머신이 자신을 때리라는 듯 불빛을 반짝였다.

‘세게 쳐도 되려나?’

아까 이것을 치고 있던 사내들은 근육이 발전한 게 몸이 꽤 건장했었다.

내가기공은 전혀 익히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외공을 단련한 이들 같았다.

그런 이들이 힘껏 쳐서 800점 정도가 나왔으니, 자신도 내공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제법 세게 쳐도 되지 않을까?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먹을 들었다.

그러곤 내질렀다.

크게 힘을 주지 않은 모양새였지만…….

콰아-앙!

지나가던 행인들이 화들짝 놀랄 만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펀치 머신을 쳐다본 행인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펀치 머신의 미트 부분이 기계에 박혀 버린 것이다.

진유성은 기대에 찬 눈으로 점수판을 쳐다보았지만, 이미 고장 난 기계는 점수를 보여 주지 않았다.

“뭐야?”

잠시 지켜보던 진유성이 실망해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오락실 주인이 튀어나왔다.

“하, 학생!”

“왜 그러시오?”

“기계를 망가트리고 그냥……!”

오락실 주인이 말을 흘렸다.

호리호리해 보이는 학생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니, 애당초 사람이 펀치 머신이 부서질 정도의 힘을 낼 수가 있을까?

“학생, 혹시 각성자야?”

“아니오.”

“진짜?”

“그렇소.”

잠깐 의심이 들었지만, 각성자라면 이 정도 금액은 그냥 물어 주고 갔을 것 같았다.

SG 소속 각성자가 일반인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그들의 정산 비율이 낮아진다는 건 유명하니까.

‘기계가 오래되긴 했는데…….’

결국 오락실 주인은 CCTV를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진유성에게 연락처를 요구했다.

연락처를 준 진유성은 닭꼬치를 우물거리면서 투덜거렸다.

“요즘 애들은 참 나약하군.”

외공을 익힌 이들이 힘껏 치길래 괜찮을 줄 알았건만, 그냥 부서져 버렸다.

다시 닭꼬치를 먹으며 홍대 안쪽으로 향하던 진유성은 또다시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방 탈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최고 난이도의 방을 30분 내에 탈출할 시 상금 100만원 지급!

도전비 : 인당 2만원]

“탈출?”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멸마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부터 기관을 해제하고 진법을 통과하는 건 자신 있었다.

탈출하면 100만 원이나 준다니 꿩 먹고 알 먹기가 따로 없다.

‘100만 원이면 헬리콥터 날개 한쪽은 살 수 있으려나?’

진유성이 호쾌한 걸음걸이로 방 탈출 카페 안으로 향했다.

잠시 뒤.

최고 난이도의 방에 입장하기 전에 알바생에게 주의 사항을 듣던 진유성이 물었다.

“어떻게든 이 문을 열면 되는 것이오?”

“네. 30분 내에 단서를 찾아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시면 돼요. 아, 문을 부수는 건 안 되고요!”

알바생의 장난 섞인 주의 사항에 진유성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문을 부수면 너무 쉽지.’

그렇게 진유성이 안대를 끼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응대를 끝낸 알바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투가 왜 저래?”

외국인들 중에 간혹 이상한 말투를 쓰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외국인이라고 보기엔 발음이 너무 정확하다.

‘그나저나 저걸 도전하는 사람이 은근히 있단 말이야.’

사실 상금이 걸린 최고 난이도의 방은 깨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힌트들도 무성의하기 짝이 없고, 설령 힌트를 전부 풀더라도 30분 안에 깨는 건 불가능하다.

알바생은 그런 생각을 하며 CCTV를 확인하다가 화들짝 놀라서 방으로 뛰어갔다.

“저, 저기요!”

“왜 그러시오, 소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관진식을 깨고 있소.”

“그, 그걸 부수면 어떡해요!”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김)의 깨달음이 드높다 하나, 강함이 능히 부드러움을 제압할 수 있다면 강함으로 상대하는 것이 맞소.”

진유성의 손에는 힌트가 들어 있는 자물쇠와 금고들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알바생이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사장님!”

* * *

상림은 휴일을 맞아 모처럼 한가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딸은 자기 방에서 뭐 하는지 몰라도 조용했다.

‘여유롭네.’

원래 수도권의 건설회사들은 폭발 예정이었던 서울역의 재건 사업에 투입됐어야 했다.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돈은 별로 남지 않았지만, 빠질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유성 덕분에 서울역은 폭발하지 않았다.

덕분에 서울역 재건 사업을 위해 비워 놓은 시간이 여유 시간으로 변했다.

이게 얼마만의 휴식인지.

기분 좋게 한가했다.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까.’

그때 방문이 열리며 상소윤이 나타났다.

상소윤은 거실 전체를 힐끔 둘러보더니 소파에 널브러진 상림의 옆에 앉았다.

상림이 TV 소리를 줄이며 몸을 일으켰다.

“우리 딸, 오늘 어디 가?”

“응? 아니. 왜?”

“예쁘게 차려입어서 약속 있는 줄 알았지.”

“무슨 소리야? 완전 대충 입은 건데. 맨날 이러고 있는데?”

상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딸의 옷차림은 꼭 드라마 여주인공들의 평상복 차림 같았다.

안 꾸민 듯 한껏 꾸몄다는 말이었다.

‘뭐, 한참 꾸미고 싶을 나이니까. 아이고, 우리 딸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상림이 흐뭇하게 웃자 소파에서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던 상소윤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유성은 또 히키코모리 놀이 하고 있어? 걔는 대체 방에서 맨날 뭐 하는 거야?”

“응? 아니야. 교, 유성이 아까 나갔어.”

“어딜 나가? 친구도 없는 놈이.”

“그냥 밖에 구경하고 싶대서 용돈 좀 줬어. 근데, 딸.”

“응?”

“왜 맨날 유성이랑 싸워? 안 싸우면 좋잖아.”

“아, 몰라! 걔 완전 짜증 나!”

상소윤이 팩 토라진 표정을 지었지만, 상림은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상소윤은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로 ‘유성이 집에서 내보내!’라는 말을 안 했다.

진유성이 여길 나가면 살 곳이 없다는 걸 생각해 선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기 쉬운 나이인데 대견하다.

“유성이가 세상 물정도 어둡고, 눈치도 없고, 철도 안 들고, 싸가지도 없고, 건방지고, 인성도 더럽고 안하무인이지만, 우리 딸이 좀 참아. 알았지?”

“……그 정도였나?”

“그럼. 얼마나 애가 문제가 많은데. 마음 같아서는 확 한 대 쥐어박고 싶다니까.”

“아, 알겠어.”

그렇게 상림이 다시 소파에 드러누우려는데 그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상림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여기 홍대 XX 방 탈출 카페인데요! 그쪽 아드님이…….

수화기 너머로 화가 단단히 난 주인이 진유성의 행각을 고발했다.

힌트가 들어 있는 모든 자물쇠와 금고를 부숴 버리고는 달랑 번호 하나만 남기고 사라졌단다.

상림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예, 예. 지금 가겠습니다. 위치 좀 찍어 주세요.”

상림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또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전화를 받으니, 이번엔 오락실 주인이었다.

오락실 주인은 CCTV를 돌려 보니 진유성이 펀치 머신을 부쉈다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어디시죠?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유성은 코인 노래방에서 기계를 부수어 버렸으며-음공을 쓴 걸로 추측된다-, 당구장에서 딱 한 큐로 포켓볼 15개를 가루로-내가중수법을 쓴 걸로 추측된다-만들어 버렸다.

실내 사격장에서는 표적물을 싹 다 부수어 버렸으며-탄지공이 분명하다-, 실내 낚시터에서는…….

‘낚싯바늘로 물고기들을 전부 기절시켰다고?!’

상림이 더 열받는 것은 진유성의 사고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었다.

연락도 안 된다.

진유성이 맨날 집에 있고, 신분이 나오지 않아서 아직 휴대전화를 사 주지 않았는데, 그게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진유성이 각성자가 아니냐며, SG에 신고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한국은 일반인 사회 구성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각성자가 사고를 치면 SG한테 크게 벌을 받는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로 받는 벌보다 훨씬 과하게 인식하기도 했다.

문제는 진유성이 SG에 이름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인가 각성자에다가 서울역 게이트의 주인공이라는 게 밝혀지니 말이었다.

모든 전화를 받은 상림이 한숨을 푹 내쉬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태야. 바쁘냐?”

친한 인력사무소장 김지태였다.

* * *

홍대의 방 탈출 카페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흠칫 놀랐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가게로 들어오는데, 누가 봐도 조폭이다.

“무, 무슨 일이신가요?”

그때 조폭들을 통솔하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방 탈출 카페의 주인은 조폭들이 운영하는 건설업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상림이란 남자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내 조카가 사고를 좀 쳤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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