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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3화 (1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화>

하지만 여기서는 먹힐 외모다.

곱상한 게 요즘 애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게다가 실제 나이가 어떻든, 겉모습은 젊고 어리지 않나.

“…….”

억울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왜 그렇게 봐?”

“아무튼 제 아내와 딸은 예쁩니다.”

“알았다니까, 누가 뭐래?”

“그럼 예쁘다고 해 보세요.”

“…….”

순간 진유성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거짓말하는 걸 싫어한다.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하지만 상림을 위해서라면…….

“안사람이…….”

“안사람이?”

“박색이더구나. 미안하다.”

“아니라고!”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며 유혜연이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요. 소윤이한테 잘 말해 놨으니까. 유성아, 이리 와.”

고개를 끄덕인 진유성이 유혜연에게 다가가자, 상림이 진유성의 뒷모습을 째려보았다.

남들이 어떻게 보건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건 변하지 않지만, 뭔가 기분이 나쁘다.

유혜연과 진유성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상림도 툴툴 거리며 뒤를 따랐다.

* * *

서울역 게이트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진유성이 상림의 집으로 들어가는 그 시각.

자취를 감췄던 또 한 명의 남자가 칭다오 류팅 공항의 VVIP 라운지로 들어섰다.

중국인 각성자 강새룡이었다.

강새룡은 라운지에 들어서자마자 늘씬한 정장 차림의 30대 남자에게 급히 달려가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느리게 날아온 전세기 대신 사과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앉지.”

자리에 앉은 강새룡은 남자에게 감히 눈을 마주칠 생각을 못했다.

정치인과 재벌을 위해 만든 국제공항의 VVIP 라운지가 텅 비었다는 것만 봐도 이 남자의 파워를 알 수 있다.

그가 바로 China-SG, 통칭 CSG의 수장 ‘월성’이었으니까.

CSG는 이름만 SG에서 계승했을 뿐, SG와는 독립된 단체였다.

SG가 UN에 소속된 범지구적인 단체라면 CSG는 오직 중국을 위한 단체였다.

즉, 게이트의 시대에 CSG는 중국 내 최고 권력 기관이었고, 월성은 중국 내 최고 권력자였다.

국가 주석과 맞먹는!

“강새룡. 전투형 서포터. A급. 특이 사항 모친이 한국인. 맞나?”

“맞습니다.”

“서울역 비징후 게이트에 선별 인원으로 참여했다고?”

“그렇습니다.”

“보고해.”

조심스레 자리에 앉은 강새룡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지금부터 꺼낼 이야기는 진실이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제가 서울역 게이트에 포함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강새룡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던 왕후의 행적을 말하면서도 월성이 믿지 않을 거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월성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모든 이야기를 꼼꼼히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왕후라고?”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이는?”

“10대로 보였습니다.”

“흐음…….”

뭔가를 생각하던 월성이 재차 물었다.

“얼마나 강했지? 아니, 레벨이 몇으로 추정되나?”

“잘 모르겠습니다.”

“추측으로.”

“그러시다면…… 이백이 넘어 보였습니다.”

“이백이라.”

각성자들은 자신의 레벨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음알음 밝혀진 바로, 보통 레벨 100을 랭커의 기준선으로 두었다.

강새룡은 하이 랭커로 추측되는 진유성의 레벨이 200을 조금 넘지 않았나 추측했다.

몬스터들을 잡을 때 사용한 공격 스킬의 강력함과 횟수를 고려한 것이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가 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어이없는 가정입니다만, 그가 기억을 잃은 하이 랭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

“예?”

“과일을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 본 적이 있나?”

뜬금없는 질문에 강새룡이 머뭇거렸지만, 월성은 딱히 대답을 바란 게 아닌 듯했다.

“과일을 갈다 보면 믹서기의 날에 찌꺼기가 묻지.”

“…….”

“웃긴 건 날에 묻은 찌꺼기가 주스만큼 진할 수도 있다는 거다. 총량은 적겠지만.”

이해하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 월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새룡.”

“예.”

“넌 오늘부터 CSG의 인적안전관리국 5팀 소속이다. 아직 5팀은 없지만, 곧 꾸려 주지.”

강새룡의 눈이 커졌다.

인적안전관리국.

21세기의 동창이라고 불릴 만큼, 악명과 위세를 동시에 지닌 기관.

인적안전관리국의 주된 활동은 증거 인멸, 조작, 협박, 매수, 살인이었다.

요직 중의 요직이었기에, 강새룡 같은 애매한 포지션의 각성자는 언감생심 노려 볼 곳이 아니었다.

강새룡은 각성자 등급 자체는 A였지만, 전투형 서포터라는 이도저도 아닌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었다.

‘한데, 나를 왜?’

그가 월성의 의도를 추측하고 있을 때,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5팀의 목표는 서울역 게이트의 십 대 왕후를 죽이는 것이다.”

*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새벽 1시.

상림은 침실을 빠져나와 2층으로 향했다.

아내 때문이었다.

“오늘은 유성이랑 자는 게 좋지 않겠어요? 많이 낯설 텐데.”

교주님이 서울역 게이트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고는 급해져서 못 다한 말들이 많았다.

상림도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던 참이었다.

‘세상에 우리 와이프 같은 천사는 없을 거야.’

2층에는 서재와 손님용 방이 2개가 있었는데, 이제 손님용 방 중 하나가 진유성의 차지가 되었다.

2층에 도착하자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이 스윽 열렸다.

“왔냐?”

“제가 올 걸 알고 계셨습니까? 혹시 1층 대화를 들은 건 아니죠?”

그러나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정도 배려심도 없겠냐? 집 안에서는 소리를 흘릴 거야.”

진유성은 마음만 먹는다면 반경 500미터 안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벌레가 기어 다니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이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수가 될수록 흘리는 공부가 깊어져야 한다.

흘리는 공부는 듣고 나서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정보 외에는 듣지 않는 공부를 뜻했다.

“기척을 읽고 문을 연 거니까 걱정 마.”

상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성이 집 안의 모든 소리를 듣는 건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특히 밤에는 더욱.

“방은 편하십니까?”

“침대라는 거 되게 신기하다. 푹신푹신해. 안에 충격을 흘리는 장치가 있는 거지?”

“네, 스프링이란 장치가 있죠.”

“여긴 참 신기한 세계야. 뭐랄까, 사람을 위한 장치가 굉장히 많아.”

“무공이 없는 대신 과학이 발전해서 그럴 겁니다.”

“그래, 그게 제일 궁금했어. 여긴 왜 무공이 없지? 처음부터 없었나? 아니면 무공이 전수되지 않고 소실된 건가?”

진유성의 질문을 받은 상림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 처음부터 없었을 겁니다. 한데 교주님,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여기? 너희 집이잖아.”

“아뇨. 국가 지리적으로요.”

“너 바보냐? 그걸 어떻게 알겠어?”

“아뇨, 아시는 곳입니다.”

상림이 말을 이었다.

“여긴 고려의 남경입니다.”

“뭐? 남경?”

“네. 이곳이 고려 후손들이 세운 나라란 말입니다.”

“어떻게……?”

“1392년에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란 나라가 세워집니다. 조선은 1910년에 망하고,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 들어섭니다. 여긴 대한민국입니다.”

“…….”

“연도는 2022년이고요.”

상림의 말을 들은 진유성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그럼 여긴 미래냐?”

그러나 상림은 고개를 저었다.

“이 세계에도 고려가 존재했고, 명나라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라고 보기엔 저희가 살던 곳과는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무공도 없죠.”

“정확히 뭐가 다르다는 거야? 무공 말고.”

“교주님, 명나라 초대 황제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주장후? 주장호?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주장후입니다. 한데 이곳에서는 주원장이란 이가 명나라의 태조죠.”

“주원장? 그런 이름을 가진 놈은 없었는데?”

“고려의 왕자 중에도 진유성이란 사람이 없습니다. 애초에 진씨 왕가도 아니고요.”

왕자였던 진유성은 고려 무신들의 반란에 의해 명나라로 도망쳤지만, 지구의 역사 속 무신정변은 1170년이다.

명나라 자체가 건국되기 전이란 말이었다.

이처럼 두 세계 간의 역사에는 세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풍토는 비슷했다.

상림은 돈과 시간이 생긴 이후, 이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그가 세운 이론은, 두 세계가 같이 탄생한 쌍둥이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한쪽은 기운이 사라진 채 과학이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네.”

“그쵸?”

“그럼 게이트는 뭐야? 게이트 안에서 레벨업을 하면 내공과 비슷한 기운을 주던데.”

“그건 그냥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생긴 괴현상입니다. 아무도 이유를 몰라요.”

“흠…….”

“처음엔 세상이 뒤집어졌는데, SG란 단체가 출범하고는 나름대로 관리가 되더군요. 각성자들이 허구한 날 사고 치지만, 그래도 한국은 사정이 좋아요.”

“넌 게이트 들어간 적 없냐?”

“없죠. 근데 레벨업하면 내공을 줍니까?”

“그건 아닌데, 레벨업하면 얻는 스탯? 그걸 내공으로 바꿀 수가 있어.”

“그럼 저도 레벨업을 통해서 내공을 쌓을 수 있습니까?”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힘들 거다. 이 갑자 정도의 내공은 들고 있어야 할 수 있을 거야.”

진유성은 선천적으로 내공에 대한 강한 구속력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스탯이란 기운을 내공으로 억지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무인이 이런 일을 하려면 내공을 통해 억지로 끌어와야 했다.

“결론은 내공부터 얻어야 한다는 거군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너 여기서 축기해 본 적 있어?”

“아뇨. 온갖 불순물이 혈도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 시도도 안 했습니다. 괜히 선천진기까지 오염될까 봐서요.”

“잘했어. 일단 벌모세수부터 하자.”

벌모세수란 신체에 쌓인 노폐물과 탁기를 내공으로 제거해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축기를 시작하면 내가 불순물을 주기적으로 걸러 줄 거야. 축기 효율이야 중원에서만큼은 안 나오겠지만, 내공의 정순함은 유지할 수 있지.”

“교주님은 스스로 노폐물을 걸러 내며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겁니까?”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난 해 봤자 손해야.”

“왜요?”

“내공이 지나치게 정순해서 노폐물을 걸러 내는 게 힘들거든. 축기를 해서 10의 내공을 쌓았다면, 노폐물을 걸러 내면 1이나 남을까? 근데 노폐물을 걸러 내는 데 들어가는 내공이 또 있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손해지.”

게다가 진유성은 대기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를 차단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호흡기관에 내공을 두르고 있었다.

탁기를 내공으로 전환하는 건 여러모로 손해였다.

진유성이 침대에서 일어나 방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여기 누워 봐. 일단 추궁과혈부터 하게.”

“추, 추궁과혈이요? 벌모세수한다면서요?”

“그냥 내공으로 밀어내기엔 혈을 안 쓴 지가 너무 오래됐어. 일단 혈을 좀 덥혀야지.”

상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추궁과혈은 혈자리를 직접 타격해서 뭉친 울혈을 풀어 주는 기술인데, 과거에 진유성에게 받아 본 적이 있었다.

시술자야 정확한 힘으로 정확한 혈자리를 타격하느라 고생을 좀 하지만, 피시술자는 그냥 개 맞듯이 맞는 거다.

그것도 엄청 아프게.

“그럼 마음의 준비…….”

그 순간, 번개처럼 날아온 진유성이 상림의 아혈을 짚었다.

“어차피 할 거면 바로 하자. 시간 아깝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잖아.”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겠는가?

교주님이 괴롭히려는 것도 아니고, 내공을 위해서니 견뎌야지.

크게 숨을 내쉰 상림이 바닥에 대(大)자로 눕자, 추궁과혈이 시작되었다.

퍽! 퍽! 퍼퍼퍽!

진유성의 무자비한 손속이 상림의 온몸을 두드렸다.

상림은 죽을 듯이 아팠지만, 아혈을 점혈당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참자! 참아! 날 위해서잖아!’

그렇게 고통을 인내하고 있던 상림의 귀에…… 진유성의 중얼거림이 들어왔다.

“날 보고 도망쳤다 이거지?”

퍼퍼퍽!

“교주가 독을 먹었다면 먹은 줄 알아야지, 날 무시해?”

퍼퍼퍼퍽!

“뭐? 백 살 넘은 노괴?”

퍽퍽퍽!

상림은 그 순간, 교주가 되기 전의 진유성이 떠올랐다.

아주아주 뒤끝이 길고, 속이 좁쌀 같던 쫌생이가 추궁과혈을 빌미로 그냥 패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읍읍!”

“조용히 해, 이 자식아!”

진유성이 상림의 뒤통수를 딱 때렸다.

“읍읍읍!”

그렇게 진유성이 온 첫날 밤, 소리 없는 상림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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