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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2화 (1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2화>

Quest 3. 적응하는 천마님.

집 앞에 선 상림이 불안한 기색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괜찮을까?’

머리를 굴려서 진유성에 대한 백 스토리는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진유성이 자신의 혼외자식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친자 확인을 하면 된다.

“상림아, 여기가 너희 집이냐?”

“그렇습니다.”

“벌이가 썩 좋진 않나 봐. 집이 좁네.”

줄곧 자금성에서 살아온 진유성의 반응에 상림이 발끈했다.

“강남에 전원주택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이거 엄청 넓은 거예요.”

“알았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집이 좁은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는 거지.”

상림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화가 난다.’

“이제 들어갈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안에서는 제가 외삼촌이니까 반말하시면 안 돼요. 아내한테도요.”

“알았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만족할 건데?”

“불안해서 그래요.”

“야, 우리 멸마대에 있을 때 세작, 첩보, 침투 교육 받은 거 기억나지?”

“나죠.”

“내가 너희 집에 조카로 위장해 침투한다고 생각해 봐. 일반인한테 발각될 거 같아?”

상림이 고개를 저었다.

“음, 아뇨.”

진유성은 무공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요원이었다.

그렇기에 멸마대주가 됐다.

과거를 상기하자, 상림의 얼굴에서 드디어 불안함이 사라졌다.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들어가시죠.”

“다시. 반말로.”

“드, 들어가자, 유성아.”

“잘해라.”

상림이 안으로 향하고, 진유성은 뒤를 따르며 집을 구경했다.

비좁긴 하지만, 정원에 나무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그때 인기척을 들었는지 안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상림의 아내, 유혜연이었다.

“왔어요, 여보?”

상림을 맞이한 유혜연의 시선이 대번에 진유성에게 향했다.

“손님이 있네요?”

“아, 그게…….”

상림이 준비해 온 변명을 풀어놓기도 전에 유혜연이 진유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녕? 소윤이 친구니?”

“외숙의 조카되는 사람이오. 처음 뵙겠소, 외숙모님.”

“어……?”

“이름은 진유성이오.”

“그, 그래.”

아내의 떨떠름한 표정을 본 상림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처, 청학동 스토리를 삽입해야 하나?’

상림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섰다.

“여보, 그러니까 이 애는 내 외조카인데, 아, 좀 당황스럽지?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상림의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유혜연은 웃음을 참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구멍 숭숭 뚫린 거짓말을 뱉는 남편이 귀여워서였다.

‘으이구, 멍청이. 이런 거짓말에 누가 속겠어?’

지금껏 남편은 큰 교통사고로 일가친척을 전부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한데 난데없이 갓난아기 때 본 외조카가 등장한다고?

바보가 아닌 이상 믿는 게 이상하다.

남편은 정말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순진한 사람이니 그럴 수도.’

하지만 유혜연은 남편의 믿기 힘든 비밀을 전부 알고 있었다.

처음엔 조금 이상한 정도였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다 온 것처럼 부족한 기본 상식과 한국인에게 당연한 관습들을 모르는 모습들이 말이다.

그러다가 유혜연의 의심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이야 어엿한 건설회사의 사장이지만,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남편은 공사장의 인부였다.

어느 날, 공사장에 문제가 생겼다.

SG와 마찰을 빚던 하급 각성자 3명이 난데없이 공사장을 점령하고 인부들을 인질로 잡아 항전한 것이었다.

각성자 사회가 구성된 지 얼마 안 됐던 초창기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 상림은 각목을 하나 들고서 각성자 3명을 제압했다.

비록 그들이 정신계 각성자였다지만, 각성자들은 평범함을 아득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었다.

맨손으로 쇠파이프를 구부리고, 벽돌을 부순다.

남편은 그런 이들 세 명을 두들겨 패고는 놀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애들인데 뭐…….’

평범한 사람이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유혜연은 그 뒤로 남편-당시에는 남자 친구-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고, 믿기 힘든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남편은…….

북에서 왔다.

처음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활동 중인 게 아닐까?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연애를 시작하고, 청혼을 한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남편은 북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었고, 딸과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마 이 아이도…….’

유혜연이 안쓰러운 눈으로 진유성을 보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잘 모르겠다.

전우의 아들일 수도 있고, 우연히 인연이 닿은 소년일수도 있고,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지만 진짜 친척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소년도 분명 남파공작원일 것이다.

그녀의 확신은 상림과 진유성의 습관이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었다.

등 뒤를 내주지 않는 습관.

낯선 곳에 가면 지형지물부터 확인하는 습관.

어디에 가든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는 습관.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상림에게는 이런 습관들이 많았다.

심지어 서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이 아이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봤겠지.’

남편은 그래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유혜연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의 앞뒤를 짜 맞추는 남편을 보며 마음을 정했다.

“그래요, 같이 살아요.”

“아무래도 힘들…… 어? 뭐라고?”

“같이 살자고요.”

“저, 정말이야?”

“그럼요.”

“왜, 왜? 아니, 그, 내가 부탁하긴 했지만…….”

“왜는요. 당신의 하나뿐인 혈육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죠.”

유혜연의 미소 섞인 대답에 상림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

자신이 만든 백스토리는 완벽하고 치밀했지만, 의심하자면 의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을 믿어 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빨리 내공을 되찾을게, 여보! 당신이 좋아했던 풍성한 모발도!’

그때쯤이면 아내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날도 찾아오지 않을까?

유혜연이 상림의 손에 잔뜩 들린 쇼핑백을 보며 물었다.

“그것들은 뭐예요?”

“교…… 유성이 옷이랑 소윤이가 부탁한 물건이야.”

“소윤이 물건은 이리 줘요. 내가 전해 줄게. 사촌이 생겼다는 걸 설명해 줘야지.”

“아, 그렇지. 싫어하면 어쩌지?”

아내라는 산을 넘고 나니 딸이 생각난다.

사춘기 여학생이 난데없이 한집에 낯선 사촌이 들어온다는 걸 반길 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혜연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말아요. 소윤이가 철없어 보여도 그 정도는 아니니까.”

“그럼 부탁할게.”

상림이 건넨 쇼핑백을 받은 유혜연이 빙긋 웃고는 진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조카는 몇 살이야?”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한 진유성이 상림을 쳐다보았다.

기본적인 인적 사항은 다 설정했는데, 정작 나이 이야기는 안 했다.

“아, 유성이는 열여덟이야. 소윤이랑 동갑.”

“그래요? 잘됐네. 어쩌면 같은 학교에 다닐 수도 있겠다.”

유혜연이 진유성의 손을 꼭 잡았다.

“외숙모 이름은 유혜연이야. 앞으로는 외숙모님 말고 외숙모라고 불러. 알았지?”

“알겠소.”

“그, 그래.”

유혜연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상림이 입을 열었다.

“아, 교주님! 갑자기 하오체를 쓰시면 어떡합니까? 당황했잖아요!”

“외숙모니까 이게 맞잖아?”

“……중원에서는 그랬던가요?”

“어.”

상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제는 ‘습니다’ 아니면 ‘요’를 쓰세요. 제가 교주님한테 하는 것처럼요.”

“근데 여긴 가장이 조카와 함께 살겠다는데도 아내의 허락이 필요하냐? 좀 이상한데?”

“그게, 명나라랑 사회 풍토가 달라서 그럽니다.”

“뭐가 다른데?”

“이곳은 왕이나 황제가 없습니다.”

“뭐? 그럼 나라는 누가 통치해?”

“좀 어려운데. 몇 년마다 백성들이 투표를 합니다. 5년간 나라를 통치할 왕을 뽑자고. 백성들이 왕을 고르는 거죠.”

“오…… 그렇다면 백성들의 삶을 위하는 왕이 뽑히겠네.”

“대충은 그렇죠.”

“살기 좋은 곳이네.”

진유성의 표정이 사뭇 부드럽게 바뀌었다.

물론 진유성의 생각처럼 정치체제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상림은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어차피 말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겪어 봐야 안다.

“이걸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다수결에 의해 왕이 선출되는 걸요. 이 세계는 민주주의적인 관념이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민주주의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이해했어.”

진유성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상림이 다가왔다.

“한데 교주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당부, 아니, 경고할 것이 있습니다.”

“경고?”

“네. 이건 결단코 경고입니다.”

자신의 앞에만 서면 작아지던 상림의 강한 어투에 진유성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뭔데?”

“절대로 제 딸한테 흑심을 품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흑심?”

“네, 제 딸은 아내를 닮아서 엄청 예쁘거든요.”

상림의 딸은 정말로 예뻤다.

길을 걷다가 연예기획사의 명함을 받은 것도 몇 번이나 되고, 딸을 좋아하는 학교 남자애들도 몇 번이나 봤다.

아까는 아내가 어떻게 반응할까란 걱정밖에 없었는데 아내의 허락을 받고 보니 다른 걱정이 든다.

‘교주님이 우리 딸한테 반해 버리면 어쩌지?’

그래서 강하게 말한 것이었다.

무인으로서 패배할지라도 아버지로서 패배할 수는 없으니까!

한데, 진유성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잠깐 숨을 크게 들이켜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음, 그래. 절대로.”

상림은 문득 진유성이 지금과 똑같은 표정을 짓던 상황 하나가 떠올랐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마교의 교주 진유성은 황명을 받들어 무릎을 꿇어라!’

천마신교가 무림을 일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일만 금군을 봤을 때의 표정이 딱 이랬다.

어이가 없어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 표정.

상림은 뒤늦게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생각났다.

중원과 지구의 미의 기준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중원은 약육강식의 세계였기에 강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일맥상통하던 곳이었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강한, 한마디로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미남이다.

여자도 마찬가지여서, 살집이 넉넉하면서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들이 미녀였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지금이야 상림이 가진 미의 기준도 한국에 맞게 바뀌었다지만, 처음에는 참 이상했다.

남들이 칭송하는 외모가 상림의 눈에는 못생겨 보였으니까.

또한 중원에서 손꼽히는 미남이었던 자신이 험상궂고 무섭게 생겼다는 것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진유성의 눈에는 모든 사람에게 미인 소리를 듣는 아내가…….

‘못생겼다.’

상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뭐가?”

“다들 제 아내 보고 미인이라고 하거든요? 저 엄청 부러워하거든요?”

“갑자기 뭔 소리야?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웃었잖습니까!”

“안 웃었어.”

“웃었어!”

“안 웃었다니까.”

“못생겼다고 생각했잖아요!”

“큼, 그런 적 없다. 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아.”

“왜 헛기침해!”

“이 자식이 왜 자꾸 반말이야? 너 몇 살이야? 엉? 끽해 봐야 지천명(知天命 : 50살)이나 조금 넘긴 놈이!”

“어이구, 백 살 먹은 노괴라서 좋겠습니다! 곧 관짝 들어가시겠네!”

“내가 너보다 오래 살걸?”

“……아무튼! 제 아내는 엄청 미인이라고요. 여긴 미의 기준이 달라요. 중원처럼 막 우락부락하고 거친 게 예쁘고 잘생긴 게 아니라…….”

상림이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진유성은 자신과 반대다.

여리하게 생긴 진유성은 중원에서는 잘난 외모가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교주라는 후광효과 덕분에 많은 여인들이 그를 좋아했지만, 솔직히 외모는 많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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