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화>
상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스프레소요? 드셔 보셨어요?”
“먹어 봤겠냐?”
“근데 왜 그걸……?”
진유성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떤 객잔을 가도 가장 자신 있는 걸 맨 위에 적어 놓기 마련이니까.”
상림은 진유성을 말리려다가 멈칫하며 벨을 눌렀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먹은 교주님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잠시 뒤 커피가 나왔다.
“잔이 귀엽다?”
“한번 드셔 보시죠.”
“그럴까?”
상림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진유성을 쳐다보는 사이, 진유성이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잔을 내려놓았다.
‘뭐야. 별 반응 없네? 처음 먹으면 엄청 쓸 텐데?’
상림이 실망하는 찰나, 진유성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였다.
[상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듣기만 해라.]
전음입밀(傳音入密 : 기를 통해 음성을 전달하는 기예)이었다.
[독이다. 누군가 음료에 독을 탔다.]
“…….”
[이제 도착한 내게 적이 있을 리 만무하니, 널 노리는 듯하다.]
“…….”
[살기가 감지되지 않는 걸로 봐서 굉장한 독공의 대가인 듯하다. 음료에 입을 대는 척만 해라. 마시지는 말고.]
“…….”
이윽고 진유성의 손끝에서 검은색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체에 들어간 독, 아니 커피를 기운으로 밀어내 배출하고 있었다.
“…….”
[혹시 이미 중독됐나? 그렇다면 눈을 두 번 깜빡여라.]
“교주님.”
[입 열지 말라니까!]
“그게 원래 그런 맛입니다.”
[아니다! 순간적이지만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게 바로 카페인의 효능입니다…….”
상림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본 순간, 진유성은 자신이 뭔가를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치이이익-
진유성의 몸에서 배출된 커피가 부글부글 끓더니 테이블을 녹이기 시작했다.
“봤지? 독이라니까.”
“아, 예, 독이군요. 전음은 왜 안 쓰십니까? 독공의 고수가 노리고 있을 텐데?”
“……도망가는 기척을 감지했다.”
“예예, 그러시군요.”
상림은 결국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을 포기했다.
독으로 우기려고 내공까지 써 가며 테이블을 녹이고 있는데 따져 뭐하겠는가.
앞으로는 이런 일이 무수히 많을 텐데 일일이 따지면 피곤해 죽는다.
‘잠깐. 무수히 많아?’
상림은 문득 오싹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교주님, 머물 곳은 있으시죠?”
“아니.”
“그, 그럼 어디서 머물 생각이신가요?”
“어디겠어? 네 집이지.”
“절대 안 됩니다!”
“걱정 마, 될 거야.”
“아니, 내가 안 된다고요!”
“된다니까. 잘 생각해 봐. 내가 몰래 네 뒤를 밟아서 너희 집에 들어가면 어쩔래? 넌 못 막잖아, 그치? 그러니까 그냥 안내해야겠지?”
상림이 식은땀을 흘렸다.
아내와 딸이 어떻게 생각할지 벌써부터 눈에 훤하다.
남편이 밖에서 웬 소년을 데려왔다? 갑자기 같이 살자고 한다?
그게 숨겨 놓은 아들 아니면 뭔가!
“차, 차라리 제가 집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에이, 내가 왜 수하를 놔두고 불편하게 혼자 살아? 세상도 낯선데.”
“야, 이 개……!”
“방금 말실수는 봐줄게. 나도 염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상림은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이 둘리 같은 교주님아!”
* * *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각성자 한 명 포함되지 않은 D등급 게이트가 클리어된 것도 놀라운데, 사상자가 고작 40여 명에 불과했으니까.
사람들은 초대형 각성자의 탄생을 직감했다.
분명 누군가 각성을 했고, 사람들을 이끌었고, 하드캐리를 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누굴까?”
“엄청난 룬 가호나 스킬을 얻은 게 아닐까?”
“아니면 무술 고수일 수도 있어. 소문에 따르면 사전 각성자들이 있었다잖아!”
사람들의 호기심이 극대화되었음에도 생존자들을 수습한 SG는 몇 시간 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각성관리부 장관이 직접 찾아왔음에도 말이었다.
“뭡니까, 지금! 각성자는 해당 국가에 소속되는 걸로 UN 방침이 세워진 거 아닙니까! 설마 SG에서 각성자를 독점하려는 겁니까!”
각성관리부 장관이 거칠게 항의했음에도 한지후 소장은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도 미칠 듯이 답답했다.
하지만 도저히 생존자들의 증언을 믿을 수가 없었고, 공개할 수도 없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소년 한 명이 혼자서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때려잡았다.
우리는 구경만 했다.
소년은 게이트가 클리어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 중국인 각성자도 하나 있었는데 전투에는 잘 참여하지 않았다.
6일차부터는 미친 듯이 몬스터들이 몰려와서 우리도 싸우긴 했는데…….
‘각성한 사람이 고작해야 22명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D등급 게이트에서 살아 나온 178명의 생존자 중 156명은 여전히 일반인이었다.
이걸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사실대로 공표해 봤자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SG가 각성자를 일반인으로 속여서 뭔가를 꾸미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한지후 소장은 얼굴이 시뻘게진 장관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왕후란 소년의 존재는 믿기지도 않고, 그나마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중국인 각성자도 자취를 감춘 지금.
마지막 날 전투 중에 의식을 잃은 김인창 소령이 깨어나야만 모든 의문이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에겐 직감이란 게 있다.
간신히 흥분한 장관을 내보낸 한지후 소장은 곧장 CCTV 속에 김인창과 함께 있는 이상한 옷의 남자를 확인했다.
조악한 화질이라 제대로는 알아볼 수 없지만,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소장.”
“네.”
“생존자 중에 각성했고, 정신이 가장 멀쩡한 사람 다섯 불러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로따로 진술받아.”
“네.”
“진술서 다 쓰면 CCTV 보여 주고, 이 남자 아는지 물어봐. 반응 전부 녹화하고.”
“얼굴이 안 보이지 않습니까?”
“옷이 특이하잖아.”
“알겠습니다.”
“난 김 소령님 입원한 병원 다녀온다.”
한지후 소장은 사무실을 나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 소년이 그런 믿기 힘든 일을 해냈다면, 그는 대체 지금 어디에 있을까?
* * *
간신히 진정한 상림과 진유성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감정이 진정됐다 뿐이지, 상림은 진유성을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방법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떻게든 막으리라!
“그나저나 게이트에는 왜 들어오셨습니까? 대명제국은 어쩌고요?”
“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네? 그럼 말도 없이 게이트에 오셨다는 말입니까?”
“어. 좀 힘들더라고. 외롭고.”
“하지만 교주님이 이리 훌쩍 떠나시면 남은 이들이 당혹스럽지 않겠습니까? 특히 주청 형님이 그렇고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든 상림이 밝은 얼굴로 물었다.
“혹, 돌아갈 길을 열어 놓고 오신 겁니까? 절 찾으러?”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럼 왜?”
“나 빼고 다 죽었으니까.”
“죽다뇨? 전쟁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니, 전쟁으로 죽을 리가 없는데…… 그럼 내전? 전염병?”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내공을 잃은 상림이 90년 가까이 살아 있던 게 의아하던 참이었는데, 아무래도 양 세계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 듯했다.
“상림아, 난 네가 떠나고 90년을 더 살았다.”
“네? 그 무슨…….”
“대부분이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내전이나 전염병 같은 건 없었어.”
“…….”
“나와 동시대를 공유한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결국 그들의 아들과 손자가 내 옆을 채웠는데, 예전 같지 않더라고.”
“어째서……?”
“모두가 날 신으로 생각하니까. 인간이 아니라.”
진유성의 고독과 외로움을 어렴풋이 느낀 상림이 입을 다물었다.
진유성이 자신이 도망친 것을 보고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알 것 같았다.
교주님은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90년 동안이나.
“전…… 22년이 지났습니다.”
“22년이라. 꽤 기네?”
“교주님의 사분지 일도 안 되는데요, 뭘.”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세계에서 정착하는 게 쉽진 않았겠지. 그러다 보니 마음의 병도 얻었고.”
상림은 콕콕 찔려 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90년이나 지났는데도 교주님은 전혀 안 늙으셨습니다? 오히려 어려지셨군요.”
“환골탈태를 두 번 하고, 반로환동을 두 번 하니 이 상태에서 더 이상 늙지 않더라고.”
“중원 역사상 환골탈태를 한 이도 손에 꼽을 텐데 그걸 두 번씩이나…….”
“나잖아.”
“하면, 교주님은 중원에서의 내공을 그대로 가져오신 겁니까?”
“설명하자면 좀 긴데, 난 잃었다가 되찾는 중이지. 너는 내공을 잃었지?”
“예. 단전이 아닌 신체에 흩어진 것들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인은 내공을 단전에 쌓지만 그렇다고 모든 내공이 단전에 쌓이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혈도를 타고 전신으로 흩어지는 기운들이 있는데, 이런 기운들은 선천진기와 합치된다.
무인이 무병장수하는 것에는 내공의 고강함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흩어진 기운이 선천진기를 보강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재 상림은 남들보다 조금 많이 건강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상림은 그게 너무 아쉬웠다.
무력이 필요해서 내공을 얻고 싶은 게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상림이 내공을 찾고 싶은 것은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다.
주민등록상의 나이로는 40대 초반이지만, 상림의 중원에서의 나이와 한국에서의 나이를 더하면 벌써 50대 중반이다.
어느덧 남자의 자존심이 한풀 꺾이는 나이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되찾을 수 있다면?
아내의 괄시 앞에 당당한 남자가 될 수 있다!
상림은 혹시나 싶어 진유성에게 물었다.
“교주님, 혹시라도 제가 내공을 다시 연마할 수 있을까요?”
“안 될 건 또 뭐야?”
“하지만 이곳의 기운은 너무 혼탁해서 축기해 봤자 이롭지 않을 것 같더군요.”
“일단 쌓고, 내가 탁기들을 걸러 주면 불가능하진 않지. 효율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저, 정말입니까?”
“어, 왜? 해 줘?”
“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럼 나 너희 집에서 산다?”
순간 상림은 엄청난 내적갈등을 느꼈다.
진유성이 그의 집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생기는 단점과 장점을 저울에 올리고 면밀히 비교했다.
단점이 더 크다.
훨씬 크다.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남자는 때론 실리보다 자존심이 중요하기 마련이다.
상림이 기쁜 마음으로 물었다.
“한데 교주님은 천신궁 게이트 안에서 이상한 놈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상한 놈?”
“흐릿한 꿈 같아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누군가를 만났고, 그놈한테 내공을 뺏겼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아, 그놈? 나도 만났어. 그래서 내공의 대부분이 소실됐지.”
“역시…… 교주님도 빼앗기셨군요.”
“아니? 난 뺏긴 건 아닌데?”
“네? 방금 소실됐다고…….”
“싸우다가 다 써 버렸다고. 거기 안에서 싸울 때는 내공 회복이 안 되더라고.”
상상도 못 한 말에 상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무서운 놈이랑 싸웠다고요? 진짜요? 정말로?”
“어. 근데 기억도 안 난다면서 무서운 건 또 뭐야?”
“그래서 더 무서운 것 아닙니까. 교주님에 비하면 약했다지만 저도 중원에 적수가 드물던 고수였습니다. 그런 제 내공을 숨 쉬듯이 가져가 버렸단 말입니다.”
저항도 못 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내공을 빼앗겼고, 일반인의 몸으로 한국에 떨어졌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