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화>
* * *
전 세계의 시선이 서울역에 쏠렸다.
게이트야 세계적으로 하루에도 몇 개씩 열리는 것이지만, 서울역 게이트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서울역은 아시아 물류의 중심이다.
게이트 사태 이후 국토가 작으면서 국력이 강한 나라들이 안전한 나라로 떠올랐다.
국토가 넓으면 사회안전망을 유지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었는데, 한국은 국토 대비 국력 수준이 최상위인 국가였다.
주민등록 시스템.
의료보험 시스템.
징병제 현역-예비군 시스템.
여타 국가들이 게이트 사태 이후 징병제의 필요를 느끼면서도 시도하지 못했다면, 한국은 징병제를 유지했다.
주적이 북한에서 몬스터로 바뀐 것뿐이니까.
외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한국은 게이트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장 안전한 땅인 한국-특히 서울-은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서울역 게이트가 폭발하면 수많은 피해가 발생한다.
게다가 이번 게이트는 GEL 수치를 무시한 첫 번째 <비징후 게이트>였다.
과학자들이 GEL 수치를 발견해 냄으로써 게이트는 ‘무작위’라는 단어와 멀어졌고, 사회 시스템의 유지로 이어졌다.
한데 <비징후 게이트>라니?
다시 게이트가 무작위 생성될 수도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지난 몇 년간 오류가 없었던 GEL 시스템에 알지 못하는 결함이 생긴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서울역 게이트를 뜯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SG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번 서울역 게이트는 D등급이고, 참여 인원 전원이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원은 어떻게 되죠?
-노숙인들이 대거 포함된 관계로 정확한 인원은 파악 되지 않았으나, 200명에서 230명 사이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선별 인원에 단 한 명의 각성자도 포함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확률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겠군요.
-국민 모두가 기적을 기도해야 하는 때입니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연일 떠드는 내용처럼 클리어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게 문제였다.
클리어가 실패하여 게이트가 폭발하면 <비징후 게이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날아가 버린다.
* * *
“젠장, 돌아 버리겠군.”
SG 서울지부장 한지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난 5일 동안 다 합쳐 봐야 10시간이나 잤을까?
그런데도 할 일이 태산이었다.
특히 서울역 인근의 기업들과의 협의가 문제였다.
한지후 소장은 이번 서울역 게이트가 확실히 폭주할 것이고, 대대적인 폭발을 일으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게이트 폭발은 게이트 등급이 높을수록, 클리어 진척도가 낮을수록 위력이 강하다.
‘D등급 게이트에 일반인 200여 명.’
처참한 수준.
최악을 고려해야 하는 SG 입장에서는 진척도 5퍼센트를 가이드라인으로 잡고, 서울역 인근 2킬로미터까지의 기업들을 전부 대피시키려고 했다.
직원은 물론이고 장비들이나 물류들도 전부 이전해야 했다.
위험을 직감하고 있는 1킬로미터 이내의 기업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1~2킬로미터 사이의 기업들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게이트 폭주로 인한 폭발이 1킬로미터 반경을 넘은 적이 드물다는 것을 근거로 버티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2킬로미터면 명동, 충정로, 아현이 전부 걸친다. 엄청난 숫자의 기업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개자식들. 그러면서 지들은 절대 출근 않겠지.’
한지후 소장은 대피가 싫으면 당일에 기업의 오너도 출근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전 직원을 대피시키는 것은 합의됐지만 물건이나 기계가 문제였다.
“부소장, 일단 우리가 강력 권고했다는 걸 문서화해. 나중에 딴말 못 하게.”
“팩스도 메일도 절대 안 받을 겁니다. 그래야 나중에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니까요.”
“2시간 안에 기자들 올 거야. 걔들이 보는 앞에서 팩스, 메일, 전화 싹 다 돌리면 기자들이 알아서 게이트 안전불감증 같은 기사 써 주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좀 주무시죠?”
“잠이 올 리가 있나…….”
“소장님 탓이 아니잖습니까?”
“내가 5분이라도 빨리 현황을 알았으면 각성자 한두 명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D등급 게이트입니다. F등급도 아니고 한둘로는 어림도 없죠.”
“폭발 반경은 줄어들었겠지.”
부소장은 한지후 소장의 자책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참, 서울역 노숙인들의 신원은 파악했나?”
“네, 거의 진행됐습니다. 선별 인원 중 130명 정도가 노숙인들로 짐작되는데, 108명의 신분은 파악했습니다.”
“그는? 김인창 소령이 맞나?”
한지후 소장은 서울역 CCTV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육사 출신인 한지후의 몇 기수 선배였던 김인창 소령이었다.
불의를 지나치지 못하는 의로움 때문에 불명예제대를 했지만, 육사 출신들 사이에서는 존경받는 이었다.
“맞습니다. 김인창, 육사 출신, 만 43세.”
“카드가 하나 정도는 생겼군.”
한지후는 김인창을 고평가했다.
그라면 선별 인원을 규합해서 최소한의 저항은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클리어까지는 불가하겠지만, 진척도를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럼 그 남자는? 인적 사항이 나왔나?”
“누구 말씀이십니까?”
“김인창 소령 옆에 있던 젊은 남자 있잖아.”
“아, 희한한 옷을 입은 남자 말이군요.”
CCTV를 출력한 조악한 화질의 사진에는 김인창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남자의 옆모습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남자가 눈에 띈 것은 SG가 노숙자들의 인적 사항을 확보하기 위해 CCTV 기록을 살피면서였다.
그는 노숙자들의 무리에 전혀 등장하지 않다가, 갑자기 게이트 발생 당일에 나타났다.
그러곤 노숙자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타 지역의 노숙자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고, 옷차림이 이상했다.
정황상 의심이 갔다.
이 남자가 의심받는 것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의 얼굴이 단 한 번도 CCTV에 찍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카메라가 남자의 얼굴을 정면 각도로 잡은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화면에 노이즈처럼 보이는 빛이 생겼다.
다른 부분은 선명한데 이 남자의 얼굴에만 노이즈가 생긴다는 건 충분히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이 남자는 아무 제보도 없습니다. 허위 제보도 없어요.”
“언론에 사진 뿌렸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옷이 특이해서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얼굴이 안 나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거주 지역이 아예 다를 수도 있고, 젊은 게 아니라 어린 거라면 가출 청소년일 수도 있어.”
“염두에 두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지후 소장이 게이트 클로징 타임에 맞춰진 전광판을 힐끔 보았다.
게이트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났다.
남은 날짜는 2일뿐.
“36시간 남았군…….”
48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인 이유는 게이트의 마지막 날에는 12시간의 휴식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튿날부터 휴식 시간이 필요 없었을지도.’
죽음이 바로 휴식이니까.
한지후 소장은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 * *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마침내 서울역 게이트 종료일의 아침이 밝았다.
언론사의 기자들은 전부 철수하고, 종군기자들만이 서울역 인근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SG의 정식 출범 이후 최악의 게이트 폭주 사태가 예견되는 서울역 게이트의 종료까지 12시간이 남았습…….
-군경은 합동작전을 펼치며 인근 2킬로미터 지대를 통제하고 있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 헬기의 비행경로를 수정하고 있으며…….
-게이트 클로징까지 6시간 남았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떤 채널을 틀어도 보이는 게 서울역 풍경뿐이었다.
-한국에서 D등급 게이트의 폭주 사례로는 5년 전 전주에서 벌어진 한옥마을 게이트 사건이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3개월 전 러시아에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게이트 사전 관리에 SG의 책임이 있다면 1000만 시민을 대신해 단호한…….
-게이트 클로징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수많은 소식들 속에서도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갔다.
공중파 3사 뉴스의 시청률 합계는 40퍼센트가 넘어갔고, SNS를 비롯한 인터넷 세상에서도 ‘서울역’이란 단어밖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안전을 위해 기자들이 철수한 관계로 지금부터는 서울역에 인근과 내부에 설치된 초정밀 카메라를 통해 송출합니다.
-25분 남았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다함께 기적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10분 남았습니다.
-모 종교 단체에서 게이트 위험지역으로 난입을 시도하다가 군경에 제압당했다는 속보를 전해 드리며…….
-5분 남았습니다.
게이트 클로징이 5분 남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D등급 게이트가 폭주할 시 얼마만큼의 폭발이 일어날까’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전주에서 폭주했던 D등급 게이트는 폭발이 크지 않았다.
높은 진척도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전원 사망했지만, SG는 게이트에 투입되었던 각성자들이 클리어 직전까지 갔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번엔 단 한 명의 각성자도 없었다.
슬프고 끔찍한 일은 이미 예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픔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ㅋㅋ걍 다 뒈졌으면 좋겠다.
└살겠냐ㅋㅋㅋ 각성자 하나도 없다는데ㅋㅋ
└키야, 오늘 서울역 폭죽놀이 볼만할 듯.
└한 5km까지 터지면 좋겠다.
└그럼 군인이랑 경찰도 다 죽겠네ㅋㅋㅋ
└레알 창조경제ㅋㅋ 일자리 창출 개꿀.
사람들은 분탕질을 하는 이들을 무시하거나 욕했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역 실시간 중계가 이루어지는 곳에 가서 끝없이 사람들의 분노를 만들어 냈다.
한국에만 이런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Monkey Firecracker!
└Yellow Monkey Fire!
└Boom!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배설하며 조롱하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유튜브 실시간에 몰려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는 걱정을.
또 누군가는 조롱을.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째깍째깍 시간은 흘렀다.
마침내 60초가 남았을 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그리고.
1.
서울역 5킬로미터 안의 주민들이 게이트 폭발 후폭풍에 대비해 머리 위로 물건이 떨어질 만한 장소를 피하고, 고막을 보호하려 귀를 틀어막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 탄생할 피해자들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예정된 피해자들의 조롱했지만…….
└뭐야? 렉인가?
└뭐지?
└여기 용산 쪽인데 폭발음 없어요!
└Wow! Clear?!
└Unbelievable!
└미친! 뭐야?! 저게 다 각성자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게이트가 소멸되며 170여 명의 사람들이 카메라 앞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진유성은 없었다.